카쉬카르 구시가지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보면 왠지 이곳이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이 녹아내린 골목이기도 하거니와 박제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여행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끈끈한 삶의 흔적들이 눈길을 머물게 하는 곳.
카쉬카르에 머무는 시간동안 몇 번이나 찾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습기로 가득한 바라나시의 골목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막힌 듯 이어져 있고 단절된 듯 소통하는 공간.
왜곡되지 않는 삶이 있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위구르인들의 모습이 그곳에는 존재했다.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영도의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골목의 풍경은 '회상'과 '추억'의 공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다.
힘겨운 70년대를 살아갔을 젊은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어 더욱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우리는 가난했고 살림살이도 궁핍했으며
겨울밤이면 복병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연탄가스에 중독되기 일쑤였다.
땟국물에 찌든 얼굴은 이곳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몇 번씩이나 기워입은 헌옷들은 어린 마음에도 남에게 드러내기 싫었을만큼 가난한 삶은 구차했다.
그래도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행복하다.
카쉬카르의 오래된 골목에서 나는 영도의 좁디좁은 골목을 회상하기에 충분했고
조각조각 잃어버린 어린 날의 꿈들을 다시 줍고 싶었다.
새로(오후)의 긴 햇살을 받고 달려가는 여자 아이.
카쉬카르는, 아니 신강성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인도지역을 여행하면서 이슬람 문명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위구르인들은 비교적 개방적인데다 이방인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반한족적인 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사람임을 먼저 밝혀 두는 게 좋다.
한국인들의 생김새가 한족과 비슷하기 때문에 자칫 위구르인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사람임을 미리 밝히기만 하면 비교적 한족들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그들이긴 해도,
단지 한족이 아니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오히려 훨씬 친근하고 정감있게 다가온다.
구시가지의 오래된 골목은 지금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앞서도 애기했지만 지진에 취약한 구조와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에
위구르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목하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위정자들의 그릇된 판단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그들의 도시를 넋놓고 바라보아야 할 위구르인들의 마음은 참담하리라.
하물며, 이방인인 나조차도 붕괴의 현장을 바라보며 분개하고 통탄 할 정도인데,
오랜 세월부터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터전이
한 순간의 꿈처럼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니 그 허탈감이야 오죽하겠는가.
위구르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근간마저 뒤흔드는 이 모든 것이
카쉬카르를 관장하는 한족 위정자들에 의해 촉발된 정책들인데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이주 한족들에 의해 그들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을 지경에 이르다 보니,
반한족 기류는 마치 백척간두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한숨부터 터져나왔다.
한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
그들의 환한 웃음만으로도 가득한 오래된 이 골목은 그것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충분한데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같이 허전하고 서글프다.
삶...
그리고 영속성...
영속성이 끊긴 삶은 참담한 파멸밖에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한 민족의 영속성이 타의의 강압에 의해 단절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빌 뿐이다.
우리 역사도 그런 과정을 겪어었고,
아픈 역사의 생채기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앙금처럼 남아있지 않은가.
더이상 그들의 미래에 그늘이 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빤미엔'과 '양꼬치 구이'였다.
그 날 저녁도 빤미엔과 양꼬치 구이, 볶음밥 등을 먹기 위해서 카쉬카르의 또다른 작은 골목으로 찾아들었다.
상호마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작은 골목안의 위구르 식당이었지만,
식당 앞에는 작은 도랑이 흘렀고 도랑을 따라 나무들이 길게 생명수처럼 이어져 있었다.
위구르인들의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만든 것은 마을마다 잘 갖춰진 수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척박하고 거칠며 건조한 사막지대.
오랜 유목생활을 접고 일찌기 농경민으로 정착한 위구르인들은 천산산맥의 남쪽인 남강南疆지역에 터전을 일구어 왔다.
실크로도 무역의 구심점으로서의 오아시스 도시를 더욱 번성시켰으며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관개수로를 더욱 계승 발전시켜 사막까지 수로를 이었고
풍부한 일조량을 바탕으로 당도높은 과일들을 꾸준히 재배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도와 하미과(참외 종류)의 주산지가 되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이라는 거대한 자연적인 재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놀라운 오아시스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수로가 놓여있는 작은 골목에서 만난 큐지브라는 이름의 소녀.
처음 본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 여유로움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식당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
식당 앞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들.
6월의 카쉬카르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선선한 새벽 혹은 저녁시간을 제외하고는 연신 퍼붓는 불볕 더위에 꼼짝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낯시간을 이용해서 몇 번이나 카쉬카르 시내를 돌아다녀 보지만 숨통을 턱턱 막는 혹독한 더위에
낯시간의 대부분을 호텔에서 보내야 했다.
해거름이 길어지는 오후 시간이면 어김없이 구시가지의 오래된 골목을 찾았다.
몇 번을 오가다보니 미로같이 얽힌 복잡한 길도 이제는 우리 동네처럼 친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었다.
'약시스무시스'로 인사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은 '할로'를 외치며 카메라를 든 우리 뒤를 졸졸 따랐고,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친근해진 얼굴들도 꽤 보였다.
낯설었던 오래된 이 골목이 보다 정감있게 다가오는 건,
짧은 한 때나마 함께 보냈던 위구르사람들(또는 아이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촘촘하게 이어진 작은 골목길은 금새 어두워졌고,
셔터스피드 확보가 어려워 iso를 한참이나 올려놓고도 곧잘 사진은 초점이 틀어지고 만다.
오후의 빛살이 따뜻하게 스며 드는, 그 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시선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너희들의 행복한 미소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길...
그들에게 마음 속으로 건낸 소박한 소망의 메시지였다.
그렇게라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엄마를 바라보는 아기의 지긋한 눈빛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보채지도, 울지도 않는 아기의 눈빛은 깊고 맑았으며 그윽했다.
엄마를 향해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저 애뜻한 눈빛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그 모습을 찍고 있는 내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먼 훗날 아이가 자라서 이 사진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여전히 엄마를 향한 그(또는 그녀)의 마음은 간절하고 애달프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 사진을 포함해서 몇 장의 사진을 젊은 엄마에게 건내주었다.)
큰 여자아이의 이름은 아자고리阿子古麗.
어느 골목을 떠돌다 우연히 만난 아자고리는 아름다운 미소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지긋한 눈으로 나와 눈길을 마주친 아자고리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나의 작은 요구에 고개를 숙여 허락했고,
미소같이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그녀의 두 동생들과 사진을 나란히 찍었다.
아자고리와는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이런 그녀와의 작은 만남들이 쌓여서 인연이 되듯이
나는 카쉬카르의 오래된 골목을 떠올릴 때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자고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소녀를 떠올리는 걸 서슴지 않는다.
아자고리와 그녀의 막내동생.
치마만 걸치지 않았다면 그녀의 여동생은 사내아이라고 착각할만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빡빡 민 머리형태도 그렇지만 땟국물이 주르륵 흐르는 얼굴과,
개구스럽던 행동이 꼭 그랬다.
부모들이 일하러 나가버리고 나면
어린 동생들은 언니나 누나, 또는 오빠나 형에게 양육되기 마련이다.
언니에게 꼭 달라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의 어린 여동생은
영도의 산동네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막내동생을 연상시켜서 픽 웃음이 났다.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했던 그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우리도 그랬지,
우리도 꼭 그랬었지.
일하러 나간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린 두 동생들과 지루하고 낯선 오후를
내내 놀이에 탐닉하면서 보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흑백필름같이 그리워졌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줄도 모르고 공기놀이 빠진 두 여자 아이.
■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후원하는 세계 3대 박물관 문화여행의 꿈을 이루자.
모집기간 2009. 12. 1 ~2010. 1. 31
■ [호주 멜번 여행 이벤트] 2010년 호주 멜번을 빛낼 최고의 팀 블로그 리포터를 찾아라
모집기간 2010. 1. 5 ~ 2010. 2. 1
■ [삼성셀디스타 4기 모집] 대한민국 블로그라면 도전하라.
모집기간 2010. 1. 12 ~ 2010. 2. 7 (4주간)
'여행과 사진'에 대한 다른 포스팅 살펴보기
■ 나만의 일출촬영 요령
■ 겨울 설산 촬영을 위한 준비물과 유의사항
■ 나만의 야경사진 촬영법과 간단한 보정팁
■ 여행,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5가지 방법
■ 인물사진, 느낌있게 보정하는 2가지 보정법
■ 야경사진, 멋지고 쨍하는 보정하는 법
■ DSLR로 좋은 사진 찍는 7가지 방법
■ 여행에서 DSLR 망원렌즈 활용법
■ 배낭여행자를 위한 여행 준비물 총정리
■ 혼란스러운 여행 첫날 제대로 극복하는 법
■ 해외여행에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는 법
■ 유럽여행 중에 겪었던 소매치기 유형들
■ 디지털 사진 여행자를 위한 필수 장비 3가지~!
■ 나만의 여행사진을 위한 7가지 방법
'해외여행사진 >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티벳 여행] 즐거움으로 들뜨게 만든 랑무스 여행 (47) | 2010.02.05 |
---|---|
라블랑스에서 티벳탄들과 코라를 돌다 (52) | 2010.02.03 |
위구르인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던 카스의 아침 (46) | 2010.01.29 |
사진으로 보는 랑무스의 낯선 풍경속으로 (44) | 2010.01.26 |
사막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우팔시장 (46) | 2010.01.25 |
한류에 빠진 티벳소녀를 만난 랑무스 여행 (44) | 2010.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