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중에 만났던 중년의 한국 배낭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장기배낭여행자는 태국의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넘어왔고 카트만두에서 며칠을 보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abc 트래킹의 전초기지인 포카라로 힘겹게 이동했다고 합니다.
abc트래킹을 하다가 실패하고 바로 포카라로 내려온 다음 카트만두와 인도의 바라나시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 남자의 심사는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느린 입국심사부터 마음에 들지 않더니 제대로 차례조차 지키지 않고 무분별하게 끼여드는 새치기에 마음이 틀어졌고
공항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는데도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가격으로 폭리를 취하려 드는 기사들의 거만한 태도에 빈정이 상했다고 합니다.
짙은 매연, 소음과 차와 사람이 뒤엉켜 무질서의 극치를 달리는 카트만두 시내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네팔에 대한 불신의 거대한 벽이 이 남자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자라고 있었던 것이겠죠.
게다가, 어수선한 타멜거리에서 호객행위하는 상인과 릭샤꾼들, 구걸을 일삼는 아이들과 걸인들.
때때로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강도 등의 이야기. 비싼 공산품 가격들....
늘 웃돈을 요구하는 네팔리들의 어설픈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다고 합니다.
좋지 않은 식수사정과 지저분한 게스트 하우스, 현지의 느린 인터넷 상황까지
네팔에 관한 한 어떤 것이든 이 남자에게는 하나의 혐오스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말로만 듣던 abc 트래킹 자체도 너무 힘든데다 때마침 우기가 시작된 터라 곧잘 만나게 되는 고장 샤워기처럼 쏟아지는 소나기에,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가파른 계단길의 연속인 고행같이 힘든 산행, 열악하고 지저분한 롯지에다가 미덥지 않는 포터까지...
이 남자의 네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에서 열까지 반복되는 악몽의 연속이었다며 길게 푸념을 털어놓습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돌아다닐 때에도 곳곳에 도사리고 상당한 위험요소들 때문에 카메라조차 꺼내지 못할 상황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한 서양인 여행자가 허름한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캐논 카메라를 뺏겼다는 소문에서부터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여자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와
인도여행을 하던 한국인 배낭여행자 몇 명이 기차에서 만난 친절한 네팔인 남자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그가 내민 음식을 먹었다가 혼절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귀중품이나 돈은 모두 탈취당했다는 루머까지
차마 떠올리기조차 무섭고 불쾌해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배낭여행을 자주 다니는 내 입장에선 그런 애기를 들으니 답답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중년의 배낭여행자라면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직장(또는 직업)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가족에게까지 힘겹게 양해를 구하는 등,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떠난 여행일텐데, 비록 여행의 초반이라고 하지만 벌써부터 그런 선입견을 갖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주관과 편견을 가지고 그 나라를 이해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느닷없는 의문을 갖게 됐는데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도 안될 뿐더러 용납도 안되는 겁니다.
물론, 그 전에는 곧잘 패키지로 여행을 떠나오긴 했지만 배낭여행은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 맞춰놓고 여행하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인지상정이겠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틀 안에 모든 것을 가둬놓고 짜맞추듯 여행을 풀어나갔으니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근접할 수 없이 쌓인 불신들로 인해 네팔과 네팔인들에 대해 극단적인 분노로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견으로 똘똘 뭉친 남자가 어떻게 장기 배낭을 결심하고 떠났을까 하는 의아심에서부터
앞으로 그 남자가 겪고 부딪혀야 될 수많은 고통과 가시밭길 같은 고난이 눈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그 남자가 지닌 다양한 문화들에 대한 타협하지 못하는 외골수적인 편집증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못사는 후진국인 주제에...'라며, 말끝마다 비꼬듯이 내뱉는 저급한 문화적 우월주의 성향의 발언도 귀에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견고하게 굳어져버린 그의 선입견을 몇 마디 독설로 힐난해 버리면 결국 끝도 없을 소모적인 논쟁에 휩쓸릴 것 같아 말을 아꼈지만
명치 끝에서부터 치고 오르는 삭히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그저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은 오픈 마인드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어야 생각합니다.
제대로 준비조차 없이 무턱대고 여행을 떠나온 중년의 저 남자처럼
편견의 테두리 속에서는 결국 그보다 더 큰 편견의 혹을 달고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제대로 된 준비조차 없이 abc 트래킹을 감행했다는 것부터가 놀라웠습니다.
그저, 한국의 뒷동산처럼 가벼운 산행일 것이라는 정보만 믿고
등산화를 준비안한 것은 물론이고 침낭도 없었고 워킹 스틱도 없었고 우기에 대한 어떤 방수대책도 없는데다
루트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나 정보도 없이, 7일이상이나 소요되는 abc 트래킹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박 3일 또는 3박 4일 정도되는 짧은 지리산 종주에서조차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아무리 길이 잘 뚫린 트래킹이라곤 하지만 애초부터 트래킹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시작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후유증을 자신의 부족하고 잘못된 준비 탓으로 돌린 게 아니라 힘든 루트를 짜준 포터 탓으로 돌리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특정 롯지들이 암암리에 포터들과 결탁되어 있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커미션을 포터들이 챙겨먹는다는 불신에서부터,
산을 오르면 오를 수록 점점 비싸지는 롯지의 체류비와 식비도 불만이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급기야, 트래킹을 포기하면서부터는 선불로 준 7일분의 트래킹 비용에 대한 부분까지 이어졌습니다.
따지고 들자면 계약을 먼저 파기한 것은 그 쪽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그가 져야 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포터 쪽에서 요구하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랑말랑하지 못한 성격의 그 남자는 발끈했습니다.
아무튼 그 한국남자는 엄청난 편견과 선입견의 시각으로 네팔과 네팔인들을 본 듯 했습니다.
그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조금만 가슴을 열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만 달리 보면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일텐데...
모든 여행자가 반드시 그렇진 않나 봅니다.
늘 자신의 잣대와 기준으로 세상을 보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긴, 성급한 판단으로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쩌면 작은 오류이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남자도 금새 세상에 동화되어 즐거운 여행을 다녔을 것이라 꼭 믿습니다.
여행은 옹졸한 편협마저도 대범하게 포용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네팔의 빨래하는 처녀(나와 결혼하자고 했었던 것 기억나시죠?)
중국 칭하이성 먼웬(門源)의 백리유채화해(百里油菜花海)
중국, KKH 위의 키르키즈인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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