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배낭여행,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배낭여행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돌아왔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는 시기가 되면 배낭여행은 극성수기를 맞게 되는데, 이 시기에 국제공항들은 바리바리 짐을 꾸린 대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풍경들이 이젠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미 배낭여행은, 대학생들 사이에선 당연히 거쳐야 할 젊은 날의 통과의례 쯤으로 여겨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에선 꿈꾸던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설레임과 함께 낯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여행은, 현재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열정을 더욱 담대히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톱니바퀴처럼 빡빡하게 돌아가던 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난만큼 웃고 즐기는 유쾌한 여행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수없이 겪게 될 소소한 문화적 충격과 낯선 풍경 속에서 고뇌하며 사색하는 과정도 잊지말자. 정신적으로 자신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배낭여행이 대학생들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났다. 주 5일제 근무 확대 등으로 잉여시간이 늘어난 직장인들도 주저없이 배낭여행을 떠나고 있다.
배낭여행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간이 길 필요는 없다. 여름휴가만 적절히 활용한다면 적어도 1주일에서 열흘짜리 배낭여행은 충분히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열흘짜리 배낭여행]이라는 책을 펴 낸 김유경씨 케이스가 문득 떠오른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은근히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었다. 책 출간 당시 16년 차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휴가를 이용해 야금야금 배낭여행을 떠났고, 홈페이지(http://hi60.com)에 여행정보와 여행기를 게재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담한 그녀는 그 짧은 휴가를 이용해 세계의 여러지역으로 매년 배낭여행을 떠났고, 꼼꼼한 성격답게 여행의 기록들을 빠짐없이 홈페이지에 올려 정보를 공유했었다.

그렇게 그녀는, 직장인들도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로망을 제대로 일깨워 준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실,  내 여행이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건 거의 없다.

직장인으로써의 짧은 배낭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그녀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여행의 목적도 달랐다.  

 

군생활하던 1988년에야 본격적으로 해외여행 자율화 시대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배낭여행은 극히 일부분의 대학생들만 가는 넘사벽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갈망으로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혼란스러웠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지금의 대학생들 못지 않아서 외국여행은 그저 허영기 많은 사람들의 사치와 호강 쯤으로 여겨었다. 인터넷이 없었으니 여행정보가 있을 리 없었고, 여행에 대한 풍토는 전혀 조성되지 않은 탓에 '해외여행'이라면 그저 사막의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다. 70년대 편찬된 김찬삼씨의 세계여행이라는 책이 한때 세간의 화제를 가져오긴 했지만 특정인의 여행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긴 힘들었다. 꿈은 그저 꿈으로만 묻어둬야 했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시만 해도 꽤 값비싼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다.
제대하면 두 번 다시 산에 오르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산행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하게 된 것이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랐으니 산에 거의 미쳐있었다.  뒷동산이나 다름없던 관악산은 수도 없이 올랐고, 지리산 종주만 해도 30여회가 넘었으며, 겨울이면 눈쌓인 설악산을 마치 연례행사처럼 다녀와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수많은 한국의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우리 산하가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총각시절,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불태웠던 산과의 인연도 결혼과 함께 시나브로 종결된다. 집중해야 할 대상이 바뀐 탓이었다. 가정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 머물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지니고 나온 방랑벽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쉬는 날이면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내와 함께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쉴새없는 들숨과 날숨으로 마치 폐부가 끊어질 듯한 극심한 고통에 빠지면서도 한켠으로는 오르가즘같은 희열이 교차하는 산행의 즐거움에야 비할 수 없지만, 아내와 함께 오롯하게 즐기는 여행은 또다른 별미였다.  

 

그러다가, 꿈으로만 여겼던 배낭여행의 기회가 다가왔다.  
신설되는 새로운 지점의 책임자로 발령이 나서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계약이 지연되는 바람에 한순간에 존재감이 허공에 뜬 상태가 되고 말았다. 남아서 허드렛일을 하느니  [배낭여행]이라는 어린 날의 절실했던 로망을 이 기회에 실현해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내와의 상의를  통해,  2개월동안의 휴직계를 회사에 신청했고 정말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영원한 배낭여행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유럽으로 목적지가 정해졌고, 50일 정도의 일정으로 루트가 짜여졌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은 짜릿할 정도로 흥분되었다. 어쩌면 여행하는 순간보다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은 그야말로 배가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배낭여행은 김포공항 2청사에서 시작되었다.(당시만 해도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이었다.)

 

배낭여행...

처음 맘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경험하고 나니 그 자유로움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마치 오랫동안 여행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아내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낭을 꾸렸다. 직장인이었던 탓에 시간이 없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비록 특이한 케이스였던 유럽여행처럼 오랜 기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단기간에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만을 선택해서 주로 다녔다.

 

일본, 태국. 캄보디아, 홍콩, 싱가폴을 필두로 여행지는 베트남, 네팔, 몽골, 인도, 중국 등으로 다양화되었고 여행의 성향도 점점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많은 여행은 세상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공정함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으며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향적인 생각들을 중도적으로 유화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어쩌면 내 사진의 성향이 변화하게 되는 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입에 맞지 않는 거친 현지인의 음식을 먹었고, 안락하지 않는 싸구려 호텔방에서 잠을 자긴 했어도 단지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현지인들과 소통하면서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은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은 마치 구도의 길과도 같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사념들로 인해 낡은 여행수첩은 휘갈겨 쓴 낙서들로 가득했지만, 내 사유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론 뿌듯했다.

 

믿기진 않겠지만, 여행지에서 미친듯이 사진만 찍어본 적은 거의 없다. 

낙서는 마구잡이로 휘갈겨 쓰지만, 셔터를 누를 때의 내 시선은 한층 민감해진다. 절대 의무감이나 사명감 따위의 값싼 동정이 내 셔터를 농락하게 하면 안된다는 사고가 은근히 의식 전반에 깔려있었나 보다. 항상 사진과 연계된 여행을 떠나긴 하지만, 아무리 낯선 여행지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셔터를 누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이 그렇듯이 여행도 그렇다. 

다니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끄는 여행지가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는 긴 호흡을 하 듯 오랫동안 하릴없이 머물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게 버릇처럼 되었다. 그게 바로 배낭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며 묘미가 아닐까 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바티칸시티의 야경



이탈리아 포지타노




이탈리아 토스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몽골의 어느 초원



몽골의 흡수골




몽골의 에르덴죠 사원



몽골의 어느 초원


 

 네팔 카트만두의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네팔 카트만두의 달발광장


 네팔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의 불타는 시신


 네팔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의 악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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