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3일 정도 차량을 렌트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토스카나 지방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대중교통보다는 차량을 렌트해서 여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적어도 토스카나 지방만큼은 렌트 차량으로 돌 예정이어서 유럽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게 동행이 구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이탈리아 드라이빙 여행... 동행들과는 로마의 떼르미니역에서 만났고 차량인수도 떼르미니역내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에서 손쉽게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몰 차량은 '크라이슬러 300c 2.7L A/T'. 소형차가 대세인 이탈리아에선 부담스러울 웅장한(?)하고 둔탁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 녀석의 키를 건내받았을 때의 그 당혹감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영어로 된 네비게이션이 당연히 장착되어 있었고, 오토차량이었다. 미제차인만큼 기름을 덩어리째 퍼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어쨋든 그렇게 낭만적인 자동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추억하는 지금이야 낭만적인 여행이 되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지만, 처음 차량을 인도받은 뒤 시동을 걸고 서서히 가속패달을 밟을 때의 그 긴장감은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였다.
로마의 도로는 폭이 좁은데다 노면은 심하게 울퉁불퉁했고 중앙선도 제대로 그어지지 않은 곳이 많았다.
정말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도로 위로 트램이며 각종 차량들, 불법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까지 뒤섞여서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를 연출하고 있었다. 중앙선이 제대로 그어져 있지 않으니 차선 바꾸는 일도 고역이었다.
수없이 나타나는 로타리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빠져나가는 길을 잘못 찾아들어가기라도 하면 이제는 일방도로에 갖혀서 하염없이 돌고 도는 악순환을 거듭해야 했다. 로마의 일방도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이제 갓 핸들을 잡은 우리에게 이런 일방도로는 그야말로 미로 속을 거니는 기분이어서 정신줄을 쏙 빼놓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로타리와 일방도로의 덫에 갇히다 보니 우리의 친절한 '네비양'마저도 혼란스러웠던지 끊임없이 'turn left, turn right'만 연발했다. 일단 육안으로라도 확인하기 위해 표지판을 찾았지만, 한국에서는 그 흔한 표지판이 이곳에서는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거기다 약간 느리게 달리기라도 하면 뒤에서 연신 '쾍'하는 클랙션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다 한국보다 더 심한 끼여들기에 앞지르기는 예사였다.
'신발끈같은 이탈리아 녀석들'이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그들에게 퍼부었는데도 우리의 정신상태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빠져나올 채비도 못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성질급한 이탈리아 운전자들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로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도시들의 도로사정은 한결같이 열악하다. 이탈리아에 비하면 한국은 양반이다.
대부분의 유럽나라들이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도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이 엄청 많다.
아무리 빨간 불이 켜져 있더라도 약간의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무식하게 도로 위를 달리는 보행자들을 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려오는 차량이 신경질적으로 클랙션을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운전 거칠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운전자라도 해도 보행자를 철저히 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차를 무서워 하는 게 아니라 차가 사람을 무서워 하는 이런 풍토는 꽤 바람직해 보였다. 파란불이 점등해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는 우리의 운전자들과는 사뭇 비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운전했다가는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보행자 우선'에 대한 생각은 한국의 운전자들도 반드시 숙지해야 할 아주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부가적인 것이지만, 차선에 'stop'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무조건 서야 된다. 아무리 차가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무조건 달려가면 안된다. 일단 정지 후에 차가 있는 지 없는 지 살펴보고 통과해야 한다. 일단정지(stop)가 없는 차선의 차들은 정지없이 무조건 달리기 때문에 자칫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달리 고속도로는 주행선과 추월선이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특별히 질주하는 차량이 아닌 이상 대부분 주행선으로만 달린다. 주행선으로 달리다가 앞 차가 느릴 경우 다시 추월선으로 넘어와서 추월한 다음에도 반드시 주행선으로 들어간다. 한국처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추월선으로만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추월선을 달리다가도 뒷차가 더 빨리 다가오면 깜빡이를 켜서 주행선으로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바로 주행선으로 들어온다.
한국처럼 질주하는 차가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경우는 볼 수가 없다. 물론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아무리 다혈질인 이탈리아인들도 요즘은 교통법규를 제대로 준수한다고 한다. 적어도 고속도로에서만큼은 매너있는 그들의 운전 때문에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도 과속을 단속하는 카메라는 곳곳에 눈에 띄였다. 일반적으로 110km가 규정속도인 고속도로에서는 숨어서 단속하는 과속카메라나 경찰들에게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정속도를 철저히 준수하는 편이다. 물론... 과속질주를 하는 차량도 가끔 눈에 띄기도 했다. 속도규정을 초과해서 단속에 걸렸을 경우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게 되는데, 자그마치 500유로(한국돈으로 85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후덜덜이다.
속도 애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도심에서는 50km, 일반도로에서는 90km, 고속도로에서는 110km, 이탈리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인 아우토스트라가 130km가 규정속도다.
가끔 한국에서도 차털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는 유독 심하다.
보통 차 유리창을 깨고 안에 있는 가방 등 물건을 가져가는 식인데 심할 경우 오디오와 내장 네비양까지 뜯어간다고 한다. 나폴리 등의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서는 아예 차를 통째로 가져간다고 하니 대단하다. 이렇게 피해를 본 한국인 여행자들이 꽤 있다는 후문을 들었는데, 대부분이 눈에 띄게 가방 등을 차 안에 두고 내려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렌트차량은 번호판이 빨간색. 도둑놈들의 표적이 되기에 가장 좋은 색깔로 선정해놓았다.
꼭 렌트차량이 아니더라도 이런 차털이는 이탈리아에서 일반적으로 횡행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차 내부를 한 번 살펴보면 가방이나 물품 하나 없이 속을 깨끗하게 비워놓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핸들에 굵은 와이어까지 채워놓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차털이가 심각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 마디로 '드럽게' 비싸다. 적어도 한국의 1.5배 정도는 더 비쌌던 것 같다.
먼저 주차부터 이야기해보자. 대도시에서는 주차장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찾았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힘들더라도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려고 했다. 만약 불법주차를 했을 경우에는 범죄에 적나라하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단속으로 걸렸을 때는 그 벌금만 해도 만만찮다. 주차할 곳을 못찾아서 1시간 넘게 빙빙 돌다보면 복장 터진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지만 그래도 그나마 저렴한 가격의 공영주차장을 애용했다.
기름값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그렇찮아도 기름을 퍼마시듯 호쾌하게 달리는 우리의 크라이슬러는 끊임없이 기름을 달라며 재촉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이탈리아 주유소는 무인 주유소가 대부분이다. 처음엔 주유하는 법을 몰라 꽤 헤맸던 기억이 나는데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닥치면 안될 게 없다.^^(겨우 주유 한 번 했다고 이런 소리까지 한다.)
거기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엄청나게 비쌌다. 조금만 달렸다 싶으면 30-40유로(6-7만원)가 기본적으로 나갔는데, 그나마 토스카나지방을 돌 때는 주로 국도만 이용했기 때문에 통행료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튼 만만찮은 주차비, 주유비,고속도로 통행료 때문에 가슴앓이를 톡톡히 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를 돌고 온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탈리아의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는 다른 유럽의 국가들보다 훨씬 비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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