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는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해외여행, 패키지여행과 배낭여행 중에 어떤 것이 좋은가'라는 것이다.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 사람의 여행성향과 목적, 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통칭 배낭여행이라고 부르는 자유여행을 주로 다니기 때문에 당연히 '배낭여행' 쪽으로 기우는 게 사실이지만,
두 여행 모두 극명하게 엇갈리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개인적인 성향을 전혀 무시하고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먼저 패키지 여행의 장점부터 한 번 살펴보자.
1. 경제적인 측면에서 유리하다.
여행사에서는 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을 사전에 미리 항공사와 호텔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일정량을 확보해놓고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밖에 없다. 만약 배낭(또는 자유) 여행자가 동급의 호텔에 묵기 위해서 예약을 해야 할 경우에는 거의 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알다시피, 주기적으로 고객을 창출해내는 여행사와 호텔간에는 유기적인 협력관계, 즉 계약이 성립되어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지만 개인자격의 여행자에게는 그런 혜택이 전혀 없다.
이런 시스템은 항공과 숙박 뿐만 아니라 교통, 식사, 관광 등 모든 여행요소에 적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패키지 여행이 저렴하다.
하지만, 너무 저렴한 관광상품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수시로 옵션이 붙어서 고객들에게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방문하는 쇼핑센터는 은근히 여행의 맥을 끊어놓고 피곤하게 만드는 불쾌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2. 모든 것은 여행사가 알아서 척척~!
여행의 출발지인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여행사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해준다. 여행하려는 나라에 도착해서도 여행의 기대나 설렘 같은 것을 채 느낄 새도 없이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라타고는 일정표대로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니,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여행 준비나 계획 같은 것에서는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편안한 특급호텔에서 잠을 자고,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이 준비된 뷔페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일행과 즐겁게 관광하면서 사진만 찍으면 끝이다. 패키지여행은 그야말로 손 안되고도 코 풀 수 있게 해주는 편리성으로 똘똘 뭉쳐있다.
3. 안전한 여행을 보장한다.
개별여행을 다닐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게 안전 부문인데, 패키지여행에서는 이 부분이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기를 당할 위험도, 소매치기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훔쳐갈 위험도, 아파서 병원에 가야할 때도, 어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도, 현지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갈 때조차도 여행사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괜한 컴플레인으로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여행사의 영업이나 이미지에 심각한 손실을 줄 수 있다. 그런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해놓고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기획되는 여행상품만 세상에 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4.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서유럽 6개국 12일 : 서유럽 핵심 6개국(영/프/스/이/오/독) 및 3대 박물관 관람(대영/루브르/바티칸)'
실례를 들어서 어느 여행사의 상품을 한 번 살펴보면 패키지 여행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지 감이 올 것이다.
특정 도시나 유명하고 이름있는 유적지나 관광지 방문에 여행의 의미를 둔 여행자라면, 거기다 빠듯한 휴가 일정 때문에 실속있게 볼꺼리들만 보길 원하는 여행자라면 당연히 패키지여행을 추천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꺼번에 많은 곳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가이드의 친절하고 풍부한 설명은 지식 함양에 지대한 공헌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물론 얼마나 지식을 습득하느냐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이렇듯 패키지 여행은 경제성, 편의성, 안정성, 시간 절약 등 다양한 장점이 이미 확보되어 있다.
경제성으로 따지자면 배낭여행이 훨씬 낫지 않느냐고 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한 경제성은 어디까지나 가격 대비 질로 따졌을 때의 경제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무조건 저렴함만 추구하는 경제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완벽해 보이는 패키지 여행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는 해마다 점점 늘고 있다. 심지어는 여행사에서조차 자유배낭여행이나 호텔팩 등의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걸 보면 배낭여행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대학에 들어가면 당연히 해야 할 1순위가 '배낭여행'이라는 사실은 나와같은 세대에겐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때 대학생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배낭여행은 마치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이젠 다양한 연령대로 급속하게 번져가고 있다.
30~50대의 주부는 물론이고, 60~70대의 건장한 노년층까지 배낭여행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니 여행을 하다가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던 여행의 패턴에서 힘들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기획하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형태로 여행의 식성(?)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편안한 배낭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들 애기하지만 한 번도 사진을 빼놓고 여행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도 같은 조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여행의 무게는 일반배낭여행자와 비교해도 갑절이나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지니고 있는 사진 장비가 여행을 위해 무게를 최적화시켰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게가 주는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전문적인 사진가나 여행가 쯤 되겠지 착각하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나 역시 여느 월급쟁이처럼 며칠 되지 않은 휴가를 어떻게 쪼개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일반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여행기간이 짧아서 늘 여행은 빡빡하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여행지의 선택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워 해야 할 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힘들고 고단한 배낭여행만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1. 나는 자유로운 여행자...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를 기울여야 한다. 목적지와 일정, 루트를 정하고, 지출금액이나 숙박, 교통 등 여행전반에 대한 정보를 자신이 직접 수집하고 계획해야 한다. 배낭여행은 준비가 여행의 절반이라고 할 만큼 준비단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획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만큼 무모한 것은 없다. 얼핏 보면 '자유로운 여행'에 가장 근접한 말이 '계획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일 것 같지만, 계획되지 않은 여행은 제대로 즐길 기회조차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을 부추길 수도 있다.
여행의 A에서 Z까지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는 번거러움을 단점으로 꼽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여행의 연장선상이고 그로인해 짜릿한 기대감과 설레임까지 선물받는다면 은근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료를 충실하게 준비해갔더라도 자료에 너무 얽매이게 되면 배낭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자유로움'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배낭여행은 현지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자료와 실제상황 간에는 많은 차이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움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는 보기좋게 포장하고 꾸며진 관광으로서의 문화가 아닌, 실제로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현지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시장통을 찾는 것이 좋다. 상인들과 물건값을 놓고 흥정하거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고 희안한 채소와 과일, 공산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할 뿐 아니라, 시장통의 작은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어보는 등의 시도는 꽤 흥미롭다.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다면 그들이 사는 골목을 배회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작은 일상들이지만 여행자들에겐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은 그야말로 지천에 늘려있다. '여행=이름난 유적지 방문'이라는 공식은 이제 패키지 여행에게 넘겨버리고 적어도 배낭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런 전형화된 공식에서 벗어나 최대한 자유스러움을 즐길 필요가 있다.
2. 의외성이 주는 행운
자유로운 여행에는 언제나 의외성이라는 복병(?)이 등장한다.
물론 의외성은 장점도 될 수 있지만 독도 될 수 있으니, 뜻밖에 맞딱뜨리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조절해나가느냐는 순전히 자신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의외성이야 말로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양념과도 같은 것이고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나는 유적지와 관광명소에 대한 관심이 아주 적은 편이다. 인도 여행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초기 일정에서는 배제할 정도로 건축물이나 유적지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진다. 내 관심은 오로지 '사람'에 있기 때문이다. '의외성'이라는 측면도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뜨내기 여행자인 내가 오랫동안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과 전혀 의도되지 않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면, 그래서 현지인의 집으로 초대받아 식사대접을 받거나, 곁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몸짓과 서로 다른 언어로도 충분히 대화나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때 느끼는 희열과 흥분은 정말 대단하다.
늘 빡빡하게 채워진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여행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의외성의 법칙'을 배낭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늘 유쾌한 의외성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듯이 '의외성을 가장한 모종의 접근'도 있을 수 있으니 안타깝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경계를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배낭여행에서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어떤 장치도 없다는 것. 결국 믿을 건 자신의 판단밖에는 없다.
3. 여행의 재미
어쩌면 의외성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지인들을 만나 소통하는 일은 내게는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비록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는 없지만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야 말로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난 관광지만 패턴처럼 도는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인들과 조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여행자를 봉이나 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장사치들과 접촉해서 끊임없이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고 때론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삐끼들과 거지아이들의 손을 과감하게 뿌리쳐야 하는 귀찮은 고통의 시간들도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과도 조건없이 순수한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뒷골목을 거닐다가 만나는 사람들이거나 어느 들판을 떠돌면서 만난 현지인들에겐 물질적인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우리네 시골의 넉넉한 인심처럼 단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그저 반갑고 고맙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분하기까지 한 친절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맙다. 이렇게 만난 현지인들의 모습을 내 카메라에 그대로 옮겨놓는 작업은 그래서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떠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그리고 추억을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과정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배낭여행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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