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 카메라 세례를 받은 네팔의 스튜어디스



 



 




포카라에서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며칠동안 누적되어 있던 피로가 싹 물러갔다.

밤새 그렇게 시큰거렸던 무릎의 통증도 꽤 완화되어 있었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피로와 통증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이젠 돌아갈 일만 남았다. 네팔여행의 시발점인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포카라에 올 때처럼 돌아갈 때도 비행기로 이동할 참이어서 카트만두에서부터 미리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며칠되지 않은 한정된 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둘러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기상악화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된다고 했다.

공항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버거스테이크와 커피로 점심을 떼우고 나서도 한참동안이나 서성대며 기다려야 했다.
이런 무작정의 기다림은, 여행을 하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긴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는 우리들에겐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맞춰가야 하는 건 여행자로의 기본 자세... 느긋해지기로 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늘 'calm down'하라고... 조급한 마음은 자신의 정신건강에만 해로울 뿐이었다.


카트만두로 돌아가서는 늦은 오후를 달발광장을 배회하며 보낼 참이었다.
이렇게 비행기가 연착되게 되면 계획된 일정을 수정해서 변경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우리의 여행일정이 너무 짧았다.
보고 싶은 건 많고 일정은 짧고… 직장인인 나의 여행은 그래서 늘 아쉽다.
그나마 2시간 정도 흐르자 우리가 탈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대기 시작했다. 



 





 

 

 

 

포카라의 마지막~!
리버사이드 쪽에 있던 한 과일 노점상.


 

 

 

 

 

 

 

 

구름에 둘러 쌓여 있는 히말라야 산맥

- 비행기 안에서


 

 

 

 

 

 

 

 

농경지와 시골집들...
어느새 카트만두 상공을 선회하고 있는 비행기

 

 

 

 

 

 

 

 

 

 

'나마스테'
두 손을 합장하고 선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내던 스튜
어디스.
단정하고 참한 용모를 가진 그녀는 이내 탑승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스타로 등극했다.





 

 

 



본격적으로 자리 경쟁 체제로 모드를 바꿔야 했다.

카트만두행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조망하기 위해선 왼쪽 좌석이 적격이라고 했다.
사진촬영 때문에 가급적이면 날개가 없는 쪽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선 자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으리라.
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이 걸리적 거렸지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일착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자 도 형님과 한국인 여행객들도 각각 왼쪽 좌석 쪽에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역시 한국인의 저력은 대단했다!

짙은 헤이즈와 구름 때문에 히말라야를 제대로 조망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간간히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늘 윗쪽은 짙푸란 색깔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대기를 둘러싸고 있는 옅은 헤이즈와 구름 때문에 전망은 그야말로 절망스런 수준이었다. 네팔의 얕은 산자락마다 층을 만들어 놓은 다랭이 밭들이 빼곡하게 깔려 있었다. 경사가 꽤 가파를 것 같은데도 한 뼘의 경작할 땅을 얻기 위해 산을 개간해서 일궈놓은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인간의 대단한 저력을 실감하게 했다.
위대한 것은 신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인간이 더 위대해 보였다.
어차피 신을 만든 것도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의 부산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갑자기 카메라의 후레쉬들이 일제히 어느 한 곳을 향해 번쩍거리며 터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다 보니 멀리서 걸어오는 예쁜 스튜어디스에게로 일제히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막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예쁘게 손을 모아 ‘나마스테’라며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내던 바로 그 스튜어디스였다.
'참하고 단정한 아가씨네'라고 생각하며 비행기에 허겁지겁 올랐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굳이 동양인이나 서양인을 가릴 것도 없이, 여자나 남자를 가릴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든 탑승객은 모두 그녀를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번쩍거리는 후레쉬 세례가 부담스러웠던지 엷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붉게 물들었지만 애써 거절하지 않았다.
양볼에 번지는 홍조가 더욱 매력적이어서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서양인 남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네팔의 미소'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자 좌중은 금새 웃음으로 뒤덮히기까지 했다.


그녀가 귀를 막는 솜과 사탕을 승객들에게 나눠줄 때에도 뒤쪽의 카메라들이 연신 번쩍거렸다.
그 대열에 동참해서 나도 어리숙하게 몇 컷을 날리긴 했지만 비행기의 잦은 요동 때문에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었다.
그나마 제일 괜찮게 나온 사진 몇 장을 출력해서 ‘선물이에요’라며 쟁반 위에 살짝 사진을 올려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양볼이 더욱 빨개지면서 '던야밧(고맙습니다)'을 나즉이며 곱게 목례를 하는 그녀.


옆에 앉은 네팔리들이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막 출력한 사진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싱긋 웃으며 “just photo”라고 애기했지만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에 이내 묻혀버렸다.



 





 

 

 

 

 

타멜거리로 가는 차 안에서 본 어느 우물가 풍경

 

 

 

 

 

 

 

 

 

네팔짱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금새 달발광장으로 뛰어나왔다.

 


 

 

 

 

 

 

 

 

 

어느새 해거름이 지기 시작한 달발광장.
달발광장, 영어로는 Durbar Square라고 부르는 이곳은,
발음에 따라 달발광장 또는 더르바르 광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달발광장 사원 곳곳엔 이렇게 사람들이 무리지어 모여 있었다.

 

 

 

 

 

 

 

 


달발광장의 오래된 분위기만큼, 그들의 표정도 사뭇 어둡게 느껴졌다.

 

 

 

 

 

 

 

 

 

 

우리를 태워준 릭사꾼.
기다려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는 마냥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의 햇살이 곳곳에 부셔지는 공항 주변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과 경적을 울리는 차들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복잡했다.
포카라와 트래킹을 하면서 조용하게 침잠해있던 마음이 화들짝놀라며 순식간에 깨어났다.
마침내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어떤 반가움이 물컹거리며 일어나기도 했지만 급변한 상황에 어리둥절해야 했다.

택시를 잡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한결같이 몇 배나 높은 택시비를 요구하는 기사들의 횡포에 떠밀리다 보니 슬그머니 짜증이 밀려왔다.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온 반가움도 잠시 기사들과 기나긴 흥정을 벌여야 될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외국인을 ‘봉’쯤으로 알고 있는 그들과의 흥정은 가끔 이런 식의 짜증을 유발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공항에서 타멜거리까지의 택시요금을 뻔히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몰라서는 속아도, 알면서까지 속지 말자고 굿굿하게 버텼다.
다행스럽게 네팔짱(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을 만나서 적정한 가격에 편하게 올 수는 있었지만
어디에서나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마주치게 되는 작은 혼란은 여전히 힘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다시 우리가 묵었던 네팔짱 게스트하우스으로 되돌아왔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타멜 거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트래킹 내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고 불빛마저 제대로 없이 성그렇게 며칠밤을 보냈던 그곳에서의 추억은 어느새 잔잔한 여운같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고 타멜거리를 가득찬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새삼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온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도회에서 자라온 탓에 이런 풍경들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비로소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타멜 거리의 혼탁함은 여전했지만 그것마저도 반가웠다.


숙소에 배낭을 던져놓고 릭샤꾼을 불러달라고 부탁을 해놨다.
계획보다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달발광장을 한바퀴 돌아보는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괜히 초행길에 헤매다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릭샤꾼의 도움을 받아 쉽게 오가면 오히려 더 다행일 것 같아서 릭샤꾼을 요청한 것이었다.
릭샤꾼은 역시 여리고 마른 사내였다.
장성한 남자 두 사람과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태운 그가 힘겹게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땐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릭샤꾼은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그럴 때마다 여린 다리에선 굵은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 올랐다.
이들의 삶은 왜 한결같이 애처러울까.

사내의 가녀린 어깨가 그 애처러움을 부추겼다.




 




 

 

아이들은 뛰어놀았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겼으며 가족들은 느긋하게 산책을 나왔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달발광장
카트만두는 어딜 가나, 이렇게 사람이 많았다.


 

 

 

 

 

 

 

 


인도나 네팔 등지를 여행한 사람들이 곧잘 하는 말이 그곳의 사람들은 사진찍히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여행자들의 카메라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빨리 찍는 게 좋다.
비록, 몰래 찍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양해를 얻는 게 좋다.


 

 

 

 

 

 

 

 

노점상에 들린 사두~.
물론 포즈를 취해주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 삶을 사는 그들.
힘든 하루의 끝을 담배 한 개피로 날려버리는 그의 뒷모습에서
살이의 고단함을 슬쩍 엿본다.

 


 

 

 

 

 

 

 

 

 

꾸마리 사원 앞에서 바라본 달발광장~

 

 

 

 

 

 

 

 

 

 

꾸마리 사원 앞

 

 

 

 

 

 

 

 

 

 

꾸마리 사원 앞은 포스트 카드나 먹거리 등을 손에 들고 파는
아낙들에 의해 이미 점령되었다.

 

 

 

 

 

 

 

 

 

 

 

 

 

 

 









  

 꾸마리 사원에서

 

 


숙소에서 달발광장까지는 멀지 않았다.
릭샤꾼 사내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정확하게 내려줬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이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달발광장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달발광장(Durbar Square).
유네스코에 등재된 구왕궁과 네팔의 살아있는 신을 모시고 있다는 꾸마리 사원이 있다는 이곳은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수많은 신들의 나라, 네팔.
물론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종교에 대한 열정이나  어떤 신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나 경외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분명 끌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을 경배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느낌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온 릭샤꾼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달발광장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전거 릭샤와 오토바이와 차량들, 때로는 소까지 엉겨붙은 거리의 생경스러움과 낯설음이 너무 흥미로웠다.
거리는 마치 중세 네팔의 어느 시간 대에서 그대로 멈춘 듯이 고즈넉해 보였다.
고도(古都) 안에서도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지 아닐까.
비록 낡고 오래되어 제대로 관리조차 안되는 건 안타깝지만
여전히 고도는 사람들의 힘찬 숨결의 한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낯선 풍경과 낯선 거리엔 어느새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사람들의 왕래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꾸마리(살아있는 어린 여신)가 살고 있다는 사원에도 들어가보고 광장 한 켠에 난전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
그녀가 나를 보기만을 기다렸던 나...
그렇게 그녀가 내 카메라 안으로 들어왔다.


 

 

 

 

 

 

 

 

 

 





 

어둠이 내려앉는 달발광장...

 

 

 

 

 

 

 

 

 

 

 

 

 

윙크하는 귀여운 아이...

 

 

 

 

 

 

 


아이가 찡긋거리며 윙크를 할 때마다 카르르 웃음소리를 내던 아이의 엄마
아이에게 사진 몇 장을 건내자 자신도 사진을 찍고 싶다며 포즈를 취한다.

 

 

 

 

 

 

 

 

 

 





 

 


공예품 노점상...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며, 팔고 있는 작은 목걸이를 건내던 '안야'

 

 







한 아이가 보였다.
카메라를 갖다대자 두 눈을 깜빡이며 윙크를 했다.
포즈를 취하는 지 촬영하려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두 눈을 깜빡이며 윙크를 했다.
윙크를 할 때마다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는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싱그럽게 들렸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즉석프린터기를 꺼냈다.
사진을 인화해서 아이의 엄마에게 줄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자 아이의 엄마는 너무 신기해하며 사진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의 귀여운 아이가 그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어딜 가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사람은 똑같은 법일테니까 말이다.


아이의 젊은 엄마는 노점상 장사꾼들에게 예의 그 옥구슬 웃음을 선보이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사람들이 꾸역꾸역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메라와 즉석프린터는 나와 네팔리들을 연결시키는 일종의 매개체였다.
촬영을 하고 즉석프린터기로 바로 사진을 뽑아주면 누구보다도 더 그들이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현지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뜨내기 여행꾼인 내겐 그것은 큰 기쁨이었고 행복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하고 신기해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들뜬 표정과 웃음을 볼때면 움츠려있던 긴장감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고 이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안야’라는 노점상 여주인은 고마움의 답례로 행운을 준다는 작은 목걸이 하나를 선물로 건냈다.
그리곤 헤어지는 나를 보며 너무 고맙다며 물건을 사게 되면 엄청 싸게 줄 것이라는 말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달발 광장에도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사진상으론 어둡지 않게 나왔다.)


 

 

 

 

 

 

 

 

이틀동안 나를 태워줬던 사이클 릭샤꾼~


 

  


 
 

 

어느새, 달발광장은 어둑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릭샤꾼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유명 관광지마다 꼭 있기 마련인 장사꾼이었다.

아름다운 부조로 잘 조각된 칼을 꺼내 보이며 끊임없이 사라고 종용했다.
언뜻 살펴보니 한눈에 봐도 꽤나 멋진 칼임에 틀림이 없었다..
네팔에 도착해서부터 유난히 칼에 관심을 보였던 도 형님은 가격 등을 물어보며 관심을 표명했다.

단지 잠시의 흥미를 보인 것 뿐인데도 장사꾼의 눈빛은 반짝이는가 싶더니 부담스럽게 유난을 떨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한국엔 칼을 사가지고 갈 수 없어요”라며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자기 것은 괜찮다며 마치 거머리처럼 찐득찐득하게 엉켜붙는다.
말도 안 되는 어거지를 피우는 장사꾼은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라는 게 지난 몇 번의 여행에서 터득한 일종의 노하우였다.

릭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우리를 이곳까지  태워준 그 릭샤꾼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순전히  장사꾼을 떼어놓기 위한 일종의 계책이었다.
나름대로 포즈를 취한 릭샤꾼을 향해 몇 컷을 날렸고 그 보답으로 사진을 뽑아 그에게 건냈다.
난생 처음으로 이런 선물을 받아본 사람처럼 릭샤꾼은 아주 호의어린 눈빛으로 사진을 쳐다보긴 마찬가지였다.
대뜸 도 형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다시 한 컷~!
그리고 또 사진 하나를 뽑아서 그에게 건냈을 때의 그 표정은 다름아닌 경이로움이었다.

곁에 있던 장사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칼은 안사도 좋으니 자기에게도 꼭 한 장 찍어달라며 간청을 했다.
아직 인화할 필름도 몇 장 남은 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그의 칼을 사줄 수 있는 입장은 못되지만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관대한 나였으니 말이다.
방금 찍은 따뜻한 사진을 받아 들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 장사꾼의 모습은 조금전까지 우리를 몰아붙이던 치밀한 장사꾼의 얼굴이 아니었다.
비록 작은 사진 한 장이지만 사진은 누구에게라도 작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다시 릭샤를 타고 타멜거리로 돌아왔다.
이미 어두워진 거리지만 타멜거리만큼은 불야성의 도시처럼 환했다.
가끔 불안한 전기상황 때문에 곧잘 정전사태가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타멜거리는 별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