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 삶이 숨쉬는 오래된 도시, 박타푸르에서



 


오전 일정은 카트만두 인근에 있는 고도古都 박타푸르였고 오후 일정은 보더나트와 스와얌부나트였다.

이미 다녀온 배낭여행객들로부터 박타푸르와 스와얌부나트의 입장권을 받아 챙겨 넣고는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미리 숙소에서 박타푸르까지 가는 택시비를 알아본 상태인데다,
택시를 타기 전엔 버릇처럼 기사에게 “How much”라며 묻고 탔기 때문에,
가끔씩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웃돈 시비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다.
카트만두 시내는 언제나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매캐한 매연이 가득 한데다 도로상황도 좋지 않아서 소형차인 택시는 연신 덜컹거렸지만,
작은 차의 질주는 그야말로 대단해서 마치 곡예라도 부리는 듯 차선도 없는 좁을 길을 종횡무진했다.
열린 차창 너머로 카메라를 꺼내서 거리의 모습을 담았다.
물론, 지나치게 흔들려 버려야 할 사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만큼 카트만두 시내의 풍경은 진한 삶의 체취가 묻어났다.
실업률이 높아서 그런지 거리에는 빈둥빈둥 놀고 있는 젊은 사내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가끔, 아름다운 사리를 입은 젊은 여자가 지나가는가 하면 꼬질꼴질하게 차려입은 힘없는 노인이 지나가기도 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집합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즈막한 집들은 낡고 오래된데다 잔뜩 먼지를 뒤집어 써서 그런지 궁색해 보였고,

검고 작은 체구를 가진 그들의 하얀 눈동자가 삶에 지친 듯이 거리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끔 지나치는 오래된 버스 안에선 수많은 시선들이 우리를 지켜봤고 우리는 어색하게 그 눈길을 피해야 했다.

멀리 작은 밭 위로 노란 유채꽃이 언뜻 건물에 가려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카트만두 시내의 외곽을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짙은 헤이즈 때문에 가시거리는 좋지 않았다.
회벽색의 우중충한 건물들과 빛 바랜 들녘, 게다가 낮게 깔린 하늘 때문에 외곽지대는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짙은 먹구름이 덮힌 하늘에선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 같은 태세였다.
택시는 박타푸르 입구의 매표소 부근에 우리를 내려줬다.
가이드를 자처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우리에게로 몰려들었지만 짐짓 무시하며 지나쳤다.


그렇게 박타푸르에서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네팔리들이 생활터전을 삼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박타푸르는 2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멈춰버린 시간의 도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 ‘리틀부다’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박타푸르의 달발광장에서...

혼자 앉아 계신 노인들이 꽤 보이신다.

 

 

 

 

 

 

 

 

 

오래된 건물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인...

그 묘한 동질감...


 

 

 

 

 

 

 

 

힌두교의 신들...

 

 

 

 

 

 

 

 

 

 

 

가게 앞에 걸려있는 인형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컷~

 

 

 

 

 

 

 

 





 

박타푸르는 공예품 상점들이 꽤 많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외국인들이 많이 외면하는 곳이긴 하지만...


 

 

 

 

 

 

 

 

 

의외로 소소한 재미가 박타푸르엔 늘려있다.

공예품 가게 앞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상점 앞은 한산하기만 하다.

 

 

 

 

 

 

 

 

 

 

사원에서 기도를 드리는 한 노파

 

 

 

 

 

 

 

 

사원의 구조물들

 

 

 

 

 

 

 

과거와 현재의 묘한 대비

 

 

 

 

 


본격적으로...

혼자 하는 매력적인 도시 탐험의 전주곡이 울렸다.
썰렁한 건물이나 유적지만 덜렁 있는 그런 보편화된 유적지가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데서 오는 익숙함과 친밀함이 홀로 여행의 재미를 부추겼다.  
적벽돌로 이어진 골목들의 색감이 선명하면서도 예쁘게 다가왔다.
어쩌면 날씨가 흐리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옛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을 온 눈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태양빛이 가득한 날엔 결코 느끼지 못할 정취가 담기있었기 대문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낮게 드리운 구름의 영향으로 강한 컨트라스트가 생기지 않으니 오히려 고유의 색감들이 더욱 살아났다.
다소 우중충하기는 하지만 중세의 느낌을 마음껏 발산하는 박타푸르의 골목들과
사람들의 무거운 걸음걸이가 절묘하게 매칭되면서 감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골목을 누비며 다녔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나길래 달려가 보니 결혼식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빨간 유니폼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악단들이 요란스럽게 연주하는 골목에서 우두커니 서서 한참이나 그들을 지켜봤다.
타악기의 신나는 음이 작은 골목을 꽉 채웠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소리의 공명조차 흩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난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트래킹을 하는 도중에도 그랬지만 이곳 박타푸르 도처에서도 쉽게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들은 한결같이 dslr 카메라였는데,
마치 수십명이 함께 출사라도 나온 것처럼 경쟁하듯이 촬영을 하고 있어서 볼썽 사납기까지 했다.
중국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선입견을 애써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전히 시끄러워서 어딜 가나 그들의 존재가 쉽게 드러났고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마치 거대한 궤도 탱크가 밀려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아내와 베이징을 경유하는 스위스항공을 탄 적이 있었다.
12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 속에서도 그들은 쉼없이 떠들고 먹고 마셨으며 무례하게 행동을 하고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탓에 위스키 몇 잔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중국인 특유의 요란스러움 때문이었다.

워낙 장거리 이동에 익숙한 중국인이라 그런지 12시간 정도는 적당히 즐기며 가는 거리였던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인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날에 대한 기억이 어느새 선입견이 되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멍석을 짊어지고 온 노인이 사원 앞에서 경배를 드리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종교...

종교엔 귀천이 없는 듯 했다.

영감님, 부디 오래 사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결혼식을 알리는 악단들의 연주가 한창이다.

그런데, 신랑 신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왜 자꾸 과일장수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일까.

내 카메라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놓여져 있었다.








 

                  
                   사람이 제법  모여있는 달발 광장을 지나면 미로 같은 수많은 골목들로 이어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서로 촬영하다 보니 취향이 다른 세 사람은 각자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골목 순례는 계속 되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촬영에 여념이 없었는데, 아까부터 낮게 드리운 하늘에서 마침내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골목의 처마끝으로 몸을 옮겨 굵은 빗줄기라도 피해야 했다.
                   비가 내리자 번잡한 골목은 잠시동안 정적 속으로 빠져 들었다.
                   비 올 때의 이런 느낌이 참 좋았다.
                   비에 의해 세상이 정화되는 느낌, 그리고 그 개운한 기분은 생각으로 잠겨들게 했다. 


                   빗방울 듣는 소리도 좋았고 마른 포도 위로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물도 좋있다.
                   그리고 말라 비툴어진 내 감정을 촉촉히 적시는 듯한 이런 감상도 괜찮았다.
                   특히, 이곳은 네팔의 오래된 도시 박타푸르가 아닌었던가.
                   그 도시의 이름모를 골목을 배회하는 작은 영혼을 위해,
                   누군가가 나타나서 구원의 노래를 불러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좋았다.

 

 

 

 

 

 

 

네팔의 독짓는 늙은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손을 벌리며 루피를 달라고 하셨다.


 

 

 

 

 

 

 

 

 

공예품을 들고 다니면 파는 아낙~


 

 

 

 
빗줄기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다시 골목은 수많은 사람들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원 앞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는 노인네를 카메라에 담은 뒤,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무작정 요구하는 외국인을 위한 앙케이트에도 정성껏 답해주고 다시 골목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도자기들이 마당에 늘려있는 곳이 나왔다.
어느 집안에서 한 노인이 도자기를 빗고 있는 게 눈에 띄였다.
꾸벅 인사를 드리며 사진을 부탁하자 ‘루피’하며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사진을 뽑아서 드릴께요’라는 시늉을 한 뒤, 노인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눈빛이 선한 노인은 부드럽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른바, 네팔의 ‘독 짓는 늙은이’.
나는 노인 앞에 털썩 주저 앉아서는 즉석 프린터기를 카메라에 연결시켰고 
잠시 후, ‘지이잉’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사진 하나가 프린터기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마른 입김을 불어넣자 희미하던 사진속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사진을 보여주니 노인은 하던 일까지 멈춘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진을 들여다 봤다.
그때부터 생기는 작은 교감...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노인과 나 사이엔 어느새 따뜻한 교감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현지인들을 만나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여행은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적어도 내 여행 방식은 그랬다.
현지인들과 많이 접촉하고 서로 교감을 나누자는 게 여행의 모토였다.
그들과 접촉해서 그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는 건 더한 즐거움을 내게 선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인에게 사진을 찍어주니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기웃거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둘러서서는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살피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내 손을 잡아 끌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나는 필름이 남아있을 때까지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와 손자...


 

 

 

 

 

 

 

 

엄마와 아이~

 


 

 

 

 

 

 

 

 

그 즐거운 한 때~

 

 

 

 

 

 

 

 

박타푸르는 목하(目下) 웨딩데이~

신나는 음악이 골목 곳곳에서 퍼져 나왔다.

 

 

 

 

 

 

 

차창 너머, 구경하는 사람들...


 

 


골목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화려한 복장의 악단과 요란한 음악소리가 가득한 걸 보면
이 날은 분명 웨딩 데이(wedding day)였으리라.

화려한 사리로 멋을 부린 처녀들과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청년들,
건물의 작은 창으로 부러운 듯 지켜보고 있는 많은 시선들과 꽃으로 한껏 장식한 자동차와
나 같은 구경꾼들이 뒤엉킨 좁은 골목길은 마치 축제를 벌이는 듯 요란스러웠다.
박타푸르는 여전히 삶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오래되어 낡고 허름했지만 사람들의 생기가 곳곳에 배여 있었고
과거와 현재가 여전히 공존했으며 끊임없이 삶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유독 정감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박제처럼 유적지만 덩그렇게 남아있었다면 난 이 정도의 시간을 이 곳에 할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감흥 같은 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오래된 데다가 방치되어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지만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삶이 그대로 꿈틀거려 오히려 멋진 곳,
그곳이  진정한 의미의 박타푸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