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벳 여행] 루얼까이 초원에 내리는 비





 초원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랑비처럼 내리던 비는 점점 굵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건조한 대지를 촉촉히 젖셨다.  

주머니에 구깃구깃 구겨넣어놓은 모자를 쓰고 오버트라우저를 이용해서 카메라와 가방을 감쌌다.

우두둑거리며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인지 왠지 감상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새 20여일 째, 한국말을 사용해 본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었다.

말문이 막히니 자연스럽게 잡생각만 늘어났다. 비를 맞으며 걷는 낯선 땅... 두드러기처럼 외로움이 물컹거리며 돋아났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애써 음악을 틀었더니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슬픈 노래는 더욱 무겁게 가슴 한 켠을 짓눌렀다.


혼자하는 여행은 그래서 외롭다.

특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증폭된 어줍잖은 외로움이 마음을 더욱 어수선하게 조장하고 있었다. 
두고 온 많은 미련들이 그제서야 고개를 내밀었고 달성하지 못한 목표들이 덜마른 걸레처럼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난간 끝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 해서 왠지 초조했다. 복잡한 현실을 풀어줄 대안으로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이용해서 용케도 미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면 나는 단지 여행을 그 방편으로 삼았을 뿐이고, 여전히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해답을 얻지 못하면 참담해지는 조급함이 늘 문제였다. 어쩌면 디오니소스적인 감정으로 무장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내게, 격정적이지 못한 여행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장쾌한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황하구곡 제일만의 비 내리는 오후.

탕케의 언덕에 있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그렇게 상념에 잠겼다.

 

다행히 지붕이 둘러쳐진 망루가 있어서 그곳에서 비를 그을 수 있었다.

중경에서 왔다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국 여행자 에디.
그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연신 빗속을 굴러다녔다. 중국인 뿐만 아니라, 티벳인과의 대화에서도 에디는 늘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적극적인 접근법과 대책없는 친근감으로 인해 이방인인 그를 자기들의 대화 속으로 기꺼이 합류시켰다. 허접한 감상에 젖어서 기분이 한껏 저조해진 나와는 달리 유쾌하고 활달한 에디 옆에는 늘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흘낏거리며 듣다가도 망원렌즈를 끼운 카메라로 이곳의 곳곳을 스케치하 듯 사진을 찍었다.

 

하늘이 금새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흐려지고 있었다.

다시 랑무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오전에 방문했던 티벳인 텐트에서 마른 빵과 야크차로 아침을 떼웠더니 아까부터 지독한 허기에 지쳐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하구곡 제일만의 광경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푸른 하늘이 보였지만,이내 짙은 먹구름에 닫히고 말았다.


아까 본 타르쵸와 전망대를 향해 나무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지만...
'뭐 먹고 살지?'라는 우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낮은 구릉에 위치한 작은 곰파와 황하, 그리고 그 너머의 가축들... 


사실 사진꺼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나무계단을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서 황하구곡 제일만 전경(특히 저녁무렵의 아름다운 노을빛)을 찍으면 끝인데...
희안하게 이 날은 비슷한 장면의 컷을 유난히 난발하고 말았다.


황하구곡과 그 너머에 있는 노란 유채밭...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이곳은 7월이 되어야지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났다. 





하산길에 찍은 타르쵸와 초원의 마을



7월의 루얼까이 초원은 이렇게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군락을 지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탕케마을과 황하. 그리고 풀을 뜯는 말들


망원으로 담은 탕케마을의 풍경들


전망대를 오를 때와는 달리 내려올 때는 주로 망원렌즈를 많이 사용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다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망원렌즈를 활용하면 좀 더 압축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찍었던 장면도 다시 한 번~!  


탕케마을의 스투파(탑) 


작은 구릉에 걸린 듯 놓여있는 곰파(사원) 주위로는 여전히 티벳인들의 코라가 이어지고 있었다.


비 내리는 황하강을 가로질러 오는 뱃사공과 나뭇배.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정면에 위치한 곰파와 스투파 때문에 늘 사진의 중심은 이것들에게로 쏠려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야크떼들...


너무나 탕케적인 분위기...이런 느낌이 너무 좋다.


나무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향하는 중국 관광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