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 큰 슬픔, 경차를 무시하는 운전자들








나는 뚜벅이 - 출퇴근 때는 차를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출퇴근을 할 때면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를 거의 이용하는 편이다.

한동안 많이 상승한 기름값에 대한 부담 때문에 버스만 타고 다녔더니, 그게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버스를 타면 내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할 때보다는 조금 더딘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보니 마음만은 정말 편하다.
더딘 것쯤은 조금만 일찍 서두르면 되니 크게 문제될 사항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바쁜 출근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
예전에 비해 독서량이 늘었고 짬짬이 생각할 여유도 많아진데다가 피곤하면 눈을 감고 잠시동안의 휴식을 취해도 되니 내 입장에서는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편리함이 훨씬 많은 편이다. 거기에 걷는 양도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늘어났으니 어느 정도 운동효과도 제대로 누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차를 몰지 않아서 굳게 되는 기름값도 쏠쏠해서 가정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1 3~4조 이상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경차를 몰고 거리로 나서다



 

그러다가 이틀 정도 아내의 경차를 몰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한 며칠 혹독한 찬바람을 맞으며 안오는 버스를 기다렸더니 어느새 감기기운이 도지는지 몸에 이상 조짐이 보였고 약을 먹었더니 그 약 기운 탓인지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 땀에 절은 질펀한 몸으로는 도저히 버스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학을 맞아 쉬고 있는 아내의 경차를 잠시 몰며 출근을 서둘렀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 위해 깜빡이를 넣고 직진하는 차가 가기를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직진하는 차가 가자마자 내 뒤에 있는 승용차가 금새 액셀을 밟더니 나를 가로질러갔다.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운전을 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차처럼 익숙하지 않다보니 항상 방어운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7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 미등부터 켜고 천천히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앞질러 간 승용차는 결국 머지 않은 곳에서 신호등에 걸려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까불어봤자 결국 얼마 못가서 멈춰설텐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아침부터 재수없게 끼어들기를 하는지그 운전자의 뒤통수에 대고 혀를 끌끌 찼다.



깜빡이도 넣지 않고 무대뽀로 경차 앞을 끼어드는 다른 운전자들


 

하지만 그게 악몽의 전주곡이었다.

평균 시속 5~60km, 앞차와의 차간거리 약 3~4m, 3개 차선 중에서 2차선 고정.

어느새 도로에 차량이 늘어나고 있어서 더 빨리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속도면 앞차와의 간격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따라오는 뒤차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을 정도의 속도와 차간거리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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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으로 달리던 차 한 대가 느닷없이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깜빡이도 넣지 않고 무대뽀로 끼어드는 차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 날은 어쩔 수 없이 용서하고 끼어들기를 용인했다.
조금 있다가 내 뒤에서 따라오던 SUV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서 속력을 높이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깜빡이도 넣지 않고 쑥 들어왔다.
아무리 방어운전을 한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끼어들어오는 차는 그야말로 대책없이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걸쭉한 육두문자를 살짝 날려주고는 예의바른 소년처럼 정색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데 갑자기 기분나쁜 경적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사거리가 나오면서 도로가 넓어졌는데 1,2차선은 좌회전 차선, 3,4차선은 직진차선, 5차선은 우회전 차선이 되었다.
나는 좌회전하기 위해서 2차선을 조심스럽게 타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3차선에 있던 차가 내 경차의 오른편으로 바짝 다가온 것이었다.
충돌일보 직전까지 갈 지경이 되자 그 차는 사정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그 절정의 상황 속에서도 머리를 살짝 굴려서 생각해보니 [자신은 2차선으로 차선을 갈아타기 위해 들어갈 테니 경차인 내가 당연히 비켜줘야 한다!] 뭐 이런 식의 유추가 흘러나왔다. 내 입장에서는 옆으로 바짝 붙은 그 차의 깜빡이가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부딪힐 정도로 바짝 다가온 상태에서야 그 차의 존재를 인지했기 때문에 당연히 양보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이 거리를 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차들에게 불쾌한 따임을 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방어운전의 기치만큼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버스 기사와의 한 판 승부?




잠시 후, 우회전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겨 깜빡이를 넣었는데 버스 정류장에 잠시 정차해 있던   육중한 버스가 길을 막고 있었다.
버스 앞에서 차선을 변경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버스 앞으로 나가 차선을 변경하려는데 느닷없이 빵빵거리는 웅장한 경적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멈춰있던 버스가 잠시 속력을 내더니 어느새 내가 들어가려던 틈을 바짝 막아선 채 허락하지 않겠다는 제스츄어를 취해온 것이었다
.
그렇다고 못들어갈 내가 아니지만, 이러다 보니 은근히 버스기사와 신경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버스 기사는 느닷없이 차장을 내리더니 가공할 위력의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단지, 끼어들기 한 번 하려고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듣게 되는 육두문자는 그렇찮아도 불편한 심기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
속으로 삼키듯이 내뱉는 욕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퍼붓는 육두문자의 향연은 듣는 당사자인 내게는 상당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끼어들기를 시도할 때 여유공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버스의 통행을 일방적으로 방해한 것도 아니었는데 졸지에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쯤 되니 슬슬 부아가 머리 끝에서 돌기 시작했다. 다혈질인 내 성격에 이런 일을 그냥 묵인하는 것은 치욕으로 여겼지만 무엇보다 출근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조용히 차창을 내린 뒤, 뒤에서 따라오는 버스기사를 향해 중지(가운데 손가락)을 우아하게 들어올린 채 내 의사를 표시했다. 한껏 열을 받은 버스기사가 연신 클랙션을 울렸지만 살짝 묵살시켜 버렸다.

 



'경차=무시해도 된다?' 한국사람들의 사고




에피소드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나와서 그런지 희한하게 꼬이는 일이 많은 아침이었다.
그전에도 차를 몰고 출근을 하긴 했지만 이런 무시냉대를 받아본 적은 단언하건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회사까지 차를 몰고 오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몰고 가는 아내의 차가 단지 경차라는 이유만으로 큰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경차뿐만 아니라 그걸 몰고 가는 사람까지도 무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번뜩 떠올랐다.

희한하게도 한국사람들은 경차=무시해도 되는 차쯤으로 도식을 그려놓고 도로 위를 나서는 것 같았다.
경차 앞으로 끼어들 때는 깜빡이쯤은 살짝 꺼두는 게 센스쯤으로 치부되기라도 하는 지 한결같이 무대뽀의 끼어들기로 일관했다.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떠나서 자칫 아찔할 정도로 공포를 느낄 정도의 위험을 겪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경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협을 느낄 뿐만 아니라 때론 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반증하는 셈이다.

 













 

얼마전 EBS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경차인 마티즈와 고급세단인 에쿠스 두 대를 각기 대기시켜놓고 신호가 바뀐 뒤에도 출발하지 않는다면 뒤차에서 얼마만큼 시간이 경과한 뒤에 경적이 울릴 것인지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었다.

평균적으로 마티즈는 3, 에쿠스는 10초만에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이렇게 두 대의 차량을 놓고 비교했을 때 사람들의 사회적 자각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즉 이 말은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경차를 무시하고 있는지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사람들은 경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은 그다지 경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9년 경차 판매량의 실적을 보면 전체판매대수의 1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경차의 판매량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를 간단하게 들자면 모델이 2개 차종이 국한되어 있다보니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게 그 이유다.

경차의 점유율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상당한 수의 모델을 보유하고 있고, 디자인도 독특하고 예쁜 모델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연비가 좋고, 다양한 세제혜택이 있는 경차를 사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모델을 2개 차종에서 골라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약간 틀리다.

 

경제적인 실용보다는 사회적인 위신이나 과시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한 마디로 쪽 팔려서 못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외부로 보여지는 것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비단 차 뿐만 아니라 옷이나 장신구, 취미생활의 카메라나 자전거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루이비통이 한국에서만큼은 ‘30초백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구수의 평균 총소득이 5,000만원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부채는 7,000만원을 상회한다.
집은 없어도 차는 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는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고 과시와 위신의 문화와 부합해서 차량 구매도 중형차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즘은 허례허식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70년대에서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이 말을 사용했었다.
허례허식에 빠진 결혼문화, 만연한 허례허식 풍조를 바로잡자라는 식으로 도덕적 캠페인이 한때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국민들의 의식까지 개화시키려는 가상한 노력은 과연 군사 독재정부답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만, 그 서슬 퍼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런 체면치레를 중시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풍토만큼은 전혀 바꿔지지 않았다.
오랜동안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내재해 있던 그런 문화적 요소들이 어떻게 정부의 강권만으로 단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겠는가.

 

경차에 대한 무시는 결국 이런 한국사람들의 국민성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MF
이후 최대의 경제불황을 겪었다는 2008년에도 경차의 판매대수가 그다지 상승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경차의 정의가 800cc에서 1,000cc로 오르면서 모닝이 경차의 대열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마티즈의 판매가 오히려 줄어드는 바람에 전체 판매대수를 놓고 볼 때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아무튼 우리의 자각이 필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생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어떤 발전도 도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서 국민의식은 한층 성숙되어 있고, 변화에 대한 지각은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다.

머지않아 경차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지금보다는 훨씬 따뜻하지 않을까 한다.

아니,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