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 구조한 다리저는 유기견 순돌이






            보름 전 쯤이었습니다.

우리집 강아지 다래(말티즈, 8년)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막 도로가로 접어들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겁에 질린 채 차도를 뛰어다니는 게 보였습니다. 해운대 신도시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내리막길이었는데, 인적이 드문 지역이라서 차량통행은 많지 않지만 내리막이다 보니 차들이 제법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유기견답지 않게 말끔하게 털을 자른데다 옷까지 입고 있었고, 주변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분들도 보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겁없이 차도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침 차가 지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꽤나 큰 사단이 났을 겁니다. 안되겠다 싶어 큰 소리로 여자분들에게 물어보니 주인을 잃어버린 유기견같은데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녀석의 동작이 워낙 빨라서 잡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는 중이라는 겁니다.

 

도로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래를 안고 녀석에게로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달려오는 나를 향해 잠시 흠칫하며 주춤거리던 녀석을 그렇게 생포할 수 있었습니다. 녀석의 눈빛은 겁에 잔뜩 질려있었습니다. 먼저 이름표가 있는지 녀석의 목주변부터 더듬거렸지만 안타깝게 이름표는 없었습니다. 혹시 몸 속에 칩이 이식되어 있다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녀석을 안고 단골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주인의 신상정보가 담긴 칩도 없었습니다. 유기견센터에 연락하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애기를 동물병원 원장님에게 듣고, 돌아오는 월요일에나 그렇게 해야겠다면 아쉬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야 했습니다.





 

털을 자른 지 얼마되지 않은 녀석의 상태는 아주 양호해 보였습니다. 입고 있는 옷도 깨끗했고 지저분한 냄새도 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버려진 강아지라기보다는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 생김새나 다소 집중력 떨어지는 녀석의 산만한 행동으로 봐서는 성견이 된 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이런 녀석들은 산책을 나오면 반드시 줄을 하고 다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왕성한 호기심으로 무작정 내달릴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주인과 영영 이별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녀석이 미아견이라면 주인이 애타게 찾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다래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곰곰히 따져봤습니다. 단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이내 머릿속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갔고,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자식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 그것과 다름없을 겁니다.  안되겠다 싶어, 먼저 녀석을 생포한 지역근처에 녀석의 신상정보와 내 연락처가 적힌 유인물부터 군데군데 붙였습니다. 녀석의 주인이 애타게 녀석을 찾는다면 금새 연락이 올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어쩌면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마음속에는 부담감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유기견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주인이 나타나지 않거나 새주인을 못만나는 개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말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사진처럼 겉모양은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녀석은 걸을 때마다 오른쪽 뒷발을 살짝 저는 불구견입니다.

몸을 더듬어보니 몇 개의 뼈마디가 기형으로 돌출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녀석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귀상태도 염증으로 인해 엉망이었고, 눈두덩이 주변도 눈물에 자극받아서 벌겇게 짓물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불구견이 유기견보호센터에서 새주인을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합니다. 우리집을 나서는 순간, 녀석의 운명은 한순간에 불귀의 객이 될 것이 분명한데... 마음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녀석도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으로 인해 꽤나 혼란스러웠는지 소파밑에서 거동도 않고 눈알만 굴렸습니다. 다래가 다가가기라도 하면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가기 일쑤였고, 오줌도 이 방 저 방 곳곳에 대책없이 지렸습니다. 게다가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자주 으르렁거렸고 급기야는 녀석을 만지려는 아내의 손을 두 번이나 물기까지 했습니다. 혹시 몰라 파상풍 주사까지 맞아야 했던 아내의 수난... 그로인해 녀석과 아내와의 간극은 점점 벌어져 갔습니다.

 

때마침 다래가 생리를 시작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개 나이 8살이면 사람나이로 따지면 50이 넘은 초로의 나이인데 다래는 출산경험이 전혀없는 숫처녀였습니다. 사람도 위험하다고 하는 노년임신은 개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눈 맞은 청춘남녀가 일(?)을 벌이게 된다면... 그것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제법 우리집 환경에 적응한 녀석은 예의 그 발랄무도한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컹컹짖는 울음소리가 좁은 아파트를 울리는 듯 했는데, 앙앙거리며 짖는 다래의 짖는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녀석이 컹컹 짖을 때마다 열린 문을 모두 닫고 리모컨을 들어 경고를 하곤 했는데, 녀석은 그 전에 맞은 전력이 꽤나 있었나 봅니다. 단지 경고의 의미로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인데도 날카로운 이빨을 못되게 드러내며 완강하게 반항하는 녀석의 모습에서 그런 전력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버릇이 나빠질 것 같아서 싶어서 몇 대 쥐어박으면 소리없이 소파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 내 화가 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살짝 내 곁에 기대는 녀석. 그런 녀석을 바라볼 때면 측은지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이제는 손을 들어 '안돼'라고만 자꾸 되풀이해주면 녀석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꼬리를 내린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성적으로 워낙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의 성격때문에 그동안 간극이 벌어졌던 아내와도 며칠사이 꽤 친해져서는 곧잘 장난까지 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녀석에게 물린 아내는 순해지라는 의미에서 녀석에게 '순돌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습니다. 드디어 '녀석'이라는 의미없는 호칭에서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녀석은 이 호칭이 자신의 이름인지 아닌지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순돌이'라고 불러줘도 고개조차 까닥않는 것을 보면 분명 순돌이의 이전 이름이 '순돌이'가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녀석의 모든 기억은 길을 잃는 그 순간부터 깡그리 지워지고 만 것입니다.

 

녀석의 거취에 대해서 아내와 몇 번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있었고, 여전히 순돌이의 거취문제는 우리 부부에게 진행형으로 남아있지만 적어도 초반만큼 날카롭게 닥달하지 않으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일단,  순돌이가 우리집에 머무는 것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구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래와도 별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래의 생리기간중에는 몇번이나 덮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녀석도 경험이 없는 숫총각이라서 그런지 거사를 치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터줏대감인 다래의 기세가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다래보다  훨씬 덩치가 큰 순돌이도 다래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꼼짝 못합니다. 몇 번 대들며 까불다가 날카로운 다래의 반격에 물린 다음부터는 다래주위에 얼씬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순돌이는 여전히 예전의 주인이 그리운가 봅니다. 녀석을 산책을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곰곰히 살펴보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서는 냄새를 맡아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사람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그리움을 삼키는 듯 했습니다. 녀석에게도 쉼없이 뛰는 따뜻한 심장이  있고, 길러준 사람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 순돌이를 바라볼 때면 왠지 가슴이 한켠이 찡해져 옵니다. 녀석의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더욱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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