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소수민족 박물관, 베트남 북부의 사파와 박하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인구의 86% 차지하는 낀(Kinh)족을 제외하고도,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소수민족의 수가 무려 54개부족, 약 800만명에 달합니다. 현재 베트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낀족(京族 또는 비엣족(越族))을 베트남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델타의 평야지대에서 벼농사에 주로 종사한다면 그 외의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산악이나 고원지대에서 화전을 일구거나 유목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몇 번 소개해드린 베트남 북부 고산지대에도 상당히 많은 소수민족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데요, 특히 이 지역은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판시판산(3,148m)이 있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다수의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생활양식, 그들만의 언어와 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라오까이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합니다. 기차옆 앞에는 사파로 향하는 미니버스들이 새벽 6시에 떨어지는 관광객들을 실어가기 대기하고 있는데, 이  미니버스를 타고 제법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다 보면 휘뿌연 아침 안개에 휩감긴 안개마을, 사파에 도착하게 됩니다. 처음 사파에 도착하시는 분들이 가장 놀라운 것은, 장사꾼들로 변한 한떼의 소수민족여인들이었습니다. 사파시내를 걸을 때마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는, 끊임없이 물건을 내보이며 구매를 요구하는데, 왠만한 여행지를 두루 섭렵한 저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혼쭐났습니다.   

 

 

 

 

흐몽족

 

사파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소수민족은 블랙 흐몽족Black H'mong들입니다. 사파에서 가까운 깟깟마을이나 라오차이 등에 거주하는 이들은 사파지역의 소수민족 중 53%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파를 대표하는 소수민족입니다. 이들은 검은색에 가까운 염색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블랙 흐몽족'이라고 불립니다. 모자부터 상의,토시까지 모두 검은색인 이들의 의상은 몇 번의 걸친 염색작업으로 완성되는데, 보온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제충의 효과까지 낸다고 합니다.







꽃몽족(Flower H'mong)

 

사파에서 93km 떨어진, 세계에서 가장 컬러풀한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꽃몽족의 화려한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필수코스로 찾는 곳이 바로 박하입니다. 이곳의 재래시장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보통 열리는데, 이 장을 보기 위해서 수많은 꽃몽족 여성들은 꽃단장하고 몇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서 힘겹게 걸어온다고 합니다. 이런 옷을 입고 과연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의 의상은 화려합니다. 이들은 블랙흐몽족처럼, 18세기무렵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이동해 온 민족으로 주로 박하 인근에 흩어져 살면서 화전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상은 '행복을 부르는 색'이라고 하는 빨강색과 분홍색을 기반으로 노랑, 파랑, 녹색 등이 가미되어지는데요, 머리에 두른 스카프나 블라우스, 스커트, 앞치마 등에 들어간 자수는 아주 정교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레드 자오족(Red Dzao족)

 

이마의 앞머리카락을 밀어서 이마를 둥글게 튀어나오게 하고 빨간 색두건을 쓰고 다니며, 사파인근의 상권을 거머쥐고 있는 레드 자오족. 깍은 머리카락이나 눈썹으로 인해 제법 섬뜩한 분위기를 내는 이 부족은 13세기 무렵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합니다. 도교와 유교의 영향을 강하고 받았고, 놈다오(Nom Dao)라는 독자적인 글자를 사용해서 그들의 역사나 시를 적어놓기도 합니다. 레드 자오족의 상징이라고 하면 단연 머리 위의 두툼한 붉은 색 두건이 압권인데요, 여러가지 장신구를 걸어놓은 이 두건의 무게는 무려 9kg까지 나간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블랙 자오족

레드 자오족과는 달리 블랙자오족은 사파시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사파에서 80km정도 떨어진 라이 차우Lai Chau쪽에서 주로 거주하고 있는데,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지프로도 2시간정도 달려야 합니다. 퐁토Phong Tho인근에는 천여명의 블랙 자오가 현재 살고 있습니다. 퐁토에는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에 재래시장이 들어서기 때문에 블랙자오족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때를 잘 맞춰야 합니다. 블랙 자오족의 머리에 얹혀진 장신구를 보고 어떤 분들은 조명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고 하시는데요, 예전에는 머리카락의 결로 만들었던 것을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레드 자오족처럼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깍는 습성이 있어서 다소 무섭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사실은 아주 상냥하고 웃음많은 부족이라고 합니다.

  


 

 

 

Giay(쟈이족)

 

선명한 형광색의 셔츠가 눈길을 끄는 이 소수민족은 200년 중국에서 도래한 농경민족으로, 언어는 태국사람들과 비슷한 '타이 어군'에 속한다고 합니다. 사파에는 타반Ta Van에 많이 살고 있고, 퐁토Phong Tho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하는 이들은 38,000여명이 베트남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쟈이족의 의상은 단색의 파스텔 색감과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중국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쟈이족은 농경민족답게 쌀로 만든 술이 특산품인데, 도수가 무려 40도에 육박하므로 드신다면 아주 조심해서 드셔야 합니다.


 

 

이 외에도 능족(Nung), 레드 흐몽족(Red H'mong), 사포족(Xa Pho) 등이 베트남 북부의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사파에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사파나 박하 등을 둘러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보통 의복으로 각 소수민족들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