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장의 사진에 담긴 인도여행의 추억











고도(高度)의 맹렬한 햇살이 여과없이 훓고 지나가자,
올드 레(old Leh)의 건조하고 척박한 시가(市街)가 그 낱낱의 발가벗겨진 속살을 저항없이 드러낸다.

여행자는 나즈막한 언덕배기에서
발 아래의 생경한 풍광을 마치 특권처럼 조망한다.
며칠동안 앓아왔다던 고산증의 고통마저 잊게 하는지 사색에 잠긴 그는 오랜 시간동안 미동조차 않는다.
해발 3,500m에서 부는 바람이 룽다를 흩날리게 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어색하고 불편해 지는 건 아니다.
그곳엔 또다른 삶이 있고,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은근하고 호소력 짙은 설레임과 기대감은 금새 익숙했던 생활과 풍족했던 물질들을 잊게 만든다.
알 수 없는 마력 때문이다.

인에 박힌 타성과 인습의 가면을 한 꺼풀 벗어 던지려는, 또는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기 위한 통과의례의 한 과정...
그것을 갈구하는 강한 자극은 모든 사람의 본성에 깊게 깔려있다.
그 발악의 끝에서 어렵사리 도출해 낸 결론이...
여행이라는 떠남의 행태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조심스레 자문해 본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고, 여전히 그것을 실행에 옮겨왔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순례자의 화두처럼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어서
그저 바라만 봐도 희열에 들뜨게 하는 여리고 가벼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지도 모른다.
떠남이 있으므로써 늘 곁에 있어왔던 익숙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절실히 깨닫는 그런 일련의 깨달음 같은 거 말이다.
바람결에 묻은 젊은 프랑스 여행자의 오랜 사색이 그렇게 내 마음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존재가
그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느새 가슴이 부푼다.'

 

 

 










 

 

 

 


판공초로 가는 길목인 창라고개(해발 5,320m) 너머...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탓에 찬바람만 황량하게 불어오던 그 곳.

풀 한 포기 없을 정도로 삭막해서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을 줄 알았던 그 곳.
공기가 희박해서 잠시만 걸어도 하늘이 노랗게 변하던 그곳에서 비탈진 언덕을 넘어 몇 마리의 야크를 몰고 가는 한 아이를 만난다.

달려간 이방인의 낯선 시선 때문인지 아이는 잔뜩 긴장을 한다.

며칠동안 고산증으로 고생하다 이제 겨우 진정되었다 싶었는데, 가뿐 숨을 고르고 있자니, 하늘이 삥 돈다.
그 와중에도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컷을 날린다.
아이의 표정이 꽤 굳어 있다. 경험하지 못했으니 어색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LCD를 보여 주자, 그제서야 신기한 듯 해맑게 웃는 아이...
오지에 사는 아이답게 천연의 미소를 가지고 있다.


때가 꼬질꼬질 묻은 옷가지와
태양과 거친 바람으로 인해 까맣게 타버린 여린 피부...
삶에 대한 질퍽한 애잔함이 밀려오지만, 그건 단지 내 감상일 지도 모른다.
늘 외양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 들고 늘 문명의 눈으로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려는 못된 버릇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삶의 가치가 있을 테고, 행복의 잣대가 있을 텐데 말이다.
살이가 궁핍해 보인다고 해서, 그게 곧 불행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아이에게 사진을 출력해 주려고 보니, 프린터를 차 안에 두고 온 모양이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꼭 출력해주고 싶어서 가지고 온 장비였는데 비록 지척에 차가 있긴 하지만,
그곳까지 가기에도 호흡이 너무 가쁜데다
여름옷과 샌들만 입고 신은 탓에 으슬으슬 몸까지 떨려올 정도로 춥다.
게다가, 함께 가는 일행들의 재촉도 한 몫을 한다.

용렬한 육체의 고통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하려는 지도 모른다.

결국 사진에 대한 내 욕심만 채운 셈이다.
너무 너무 아쉽지만, 가야 한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또아리를 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판공초까지의 그 험한 산길을 내달리면서
고산증처럼 폐부를 꽉 움켜쥐는 듯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그저 말로만 속삭이는 단순한 '미안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정말 미안해~

 





 

 





 





 


 


무더운 여름날, 기름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더운 불가에서 튀김과자를 구우며 가게일을 돕는 아이들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거리의 아이들과는 달리 말쑥하고 깔끔하다.

철부지 남동생은 카메라가 생소한 지 입을 가린 채 웃고,
일하다 시선을 돌린 소녀의 코밑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그들에게서, 달디 단 튀김과자 몇 개를 샀다.
얼마나 단 지, 한 입 배어먹었을 뿐인데도 골수까지 단맛이 스며든다.
찡그린 내 표정때문에, 아이들은 자지러지 듯 웃어재낀다.

어찌나 눈망울이 맑고 곱던지
조금 열린 마음의 틈 사이로 환한 햇살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서 그렇게 빛을 보고 희망을 본다.

내일을 꿈꾸는

그들은 천국의 아이들~

 

- 델리 빠하르간즈에서...

 






 










 






 

스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바로 인화한 사진 몇 장을 건낸다.
즉석에서 나온 사진을 보며 놀라워 하는 그들의 표정이 꽤나 흥미롭다.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고 따뜻한 짜이 한 잔을 건내는 그들...
말은 통하진 않지만, 그저 묵묵한 미소로써 소통하는 시간들이다.

몇 번이나 '쭐래'라는 고마움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며,
유난히 거친 손으로 곱게 사진을 스다듬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흥건하다.
그러기를 또 몇 번을 반복했을까...
품 안으로 사진을 집어넣는 그의 손길이 아주 조심스럽다.


그의 심장 곁엔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린 사진 한 장이 놓인다.
심장이 뛸 때마다 그렇게 저장된 추억의 한 켠이 파르르 되살아나리라.
마치 심장 떨리게 아득한 그리움처럼 어느새 라다크가 그립다.


'쭐래'는 라다키(라다크 사람)들의 인삿말

 

 

 

 

 

 

 

 







 

 

 


 

영감님의 짜이는 한 잔에 2루피다.
인근 가게들의 짜이 한 잔 값이 4루피인데 비하면 거의 반값이다.
이른 새벽이면, 제단근처의 계단에서 한참 불을 지피는 그를 발견할 수 있는데...
며칠 사이 익숙해진 내 얼굴을 슬쩍 확인한 영감님은 언제 씻었는 지 모를 지저분한 잔에다가 따뜻한 짜이 한 잔을 담아 건내신다.

그렇지 않아도 습기가 잔뜩 배여있는 눅눅한 열대야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몸은 피곤에 절어 물 먹은 솜마냥 무거운데다 입맛도 없다.
그런데도 유독 달콤한 짜이 생각이 간절한 걸 보면 시나브로 인도생활에 적응된 듯도 하다.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따뜻한 짜이 한 잔 때문인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살 것 같다는 생각까지 번뜩 든다.


그리고 보니, 영감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손가락 하나를 보여주며 짜이 한 잔을 주문했고
꽤 오랜시간 계단에 주저앉아서 그저 강가(갠지즈)강만 멍하니 쳐다보면서
짜이 한 잔이 주는 여유와 바라나시 특유의 늘어짐을 제대로 즐겼을 뿐이다.
자리를 툴툴 털 무렵에야 주머니에서 2루피를 꺼내 건내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대화를 하고 싶어도 끼여들 틈이 없는데다, 나는 인도어를, 그는 영어도 한국어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아침에 비로소 그에게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고 했고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표정한 눈빛으로 허락을 하는 듯 마는 듯 포즈를 취하신다.
찍은 사진을 바로 뽑아드렸지만 그는 웃지도 신기해 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덤덤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그는...

늘 표정이 없다.
그런 그를 바라볼 때면 무표정이 내게도 전염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무표정한 그의 눈빛 속엔 어느새 강가(갠지즈)강이 흐른다.

 

 

- 바라나시의 다사스와메드 가트에서...


 
 



 

 









 

 

 

 

 

건기의 끝.
막다른 골목.
요란한 수다.
푹푹 찌는 무더위.


6월 초의 델리,
건기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유난히 덥다.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이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옷이 흥건하게 젖는다.
바람 한 점 없이 데워진 지열은 숨통을 턱턱 막는다.
매캐한 악취에다, 골목을 가득 채운 파리떼들의 습격이 그렇잖아도 힘든
여정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후미진 골목의 작은 그늘 아래에서 마침내 가방을 내려놓는다.

끈적한 습기 때문인지 어느새 삭아버린 체력 때문인지 가방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라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진이고 뭐고 다 귀찮다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 골목의 끝에 털썩 주저 앉는다.
멀근 눈으로 골목 언저리를 돌아보며 담배를 꺼내 문다.
담배마저 피지 않으면 이 독한 악취를 도저히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좁은 골목의 쪽진 그늘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골목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흘러내린다.
덥다 덥다 생각하니 더 덥다.
힘들다 힘들다 생각하니 더 힘들다.
그늘에 앉아있어도 쉼없이 땀은 흐르고, 캐캐한 공기 때문에 목까지 잠겨온다.


그때였다.

마치 희망처럼 빨간 드레스를 입은 작은 소녀가 나풀거리며 스쳐간다.
잠시 몽롱한 꿈을 꾼 것이거나 담배연기겠거니 하며 스윽 바라보는데 색다른 강렬함이 가슴 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더위와 피곤에 찌든 나른한 시선에게 상큼한 청량제같은 그런 느낌이 박하사탕처럼 온 몸으로 시원하게 번져간다.
소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무뎌진 감각을 스스로 달래며 마음을 다져본다.
오랜 여운처럼 잔상이 남는 소녀의 뒷모습이 문득 그리워질 것 같아 카메라를 든다.


매캐한 공기와 악취, 길바닥에 수북히 버려진 오물덩어리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더운 열기, 웅웅거리며 날아다니는 파리떼들,
살갗이 바싹바싹 타들어갈 것 같은 강렬한 햇살, 피부병에 거뭇하게 찌든 개들,
낡고 오래되어 음산하기까지 한 그 골목의 낯선 풍경이 오랫동안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건
오로지 빨간 옷을 입은 작은 '소녀' 때문이다.


소녀의 가지런하면서도 경쾌한 웃음소리가 골목을 뛰어다니고 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사르나트로 반나절짜리 여행을 간다.
푹푹 찌는 폭염과 풀풀 날리는 먼지를 맞으면서 시작된 사르나트 여행은 생각만큼 유쾌하진 않았다.

그다지 유적지를 선호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라도 그랬겠지만
무엇보다 지랄같은 더위가 모기나 파리보다 더 극성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씩 달라붙는 고약한 삐끼들 때문에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금새 녹초가 되고 만다.

얼마나 더웠는지, 연신 물만 벌컥벌컥 마셔댔더니
준비해간 1.5리터 생수통 몇 개가 금새 동이 난다.
나무 그늘 밑으로 흐느적거리며 찾아들어가도 바람 한 점 없는데다 오전부터 달궈진 지열 때문에 숨통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연신 부채질을 해도 뜨거운 바람만 얼굴을 간지럽힌다.
구경은 고사하고 움직일 기력마저 상실했다.

이제는
타들어 가는 갈증 때문에 웅덩이에 고인 물이라도 마실 태세다.
물이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여자 일행들의 간절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던지,
햇볕 쏟아지는 뜨락에서 작업하는 아낙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애원을 할 정도다.
아쉽지만 주변에도 마실 물은 없단다.
그렇게 그녀를 만난다.

정수리끝에 와닿는 무시무시한 햇살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매점까지 다녀올 용감한 전사는 없어 보인다.
제법 먼 거리?
현실적인 거리 감각이 무디어질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서 거리는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목마름보다 열배는 가혹할 햇살의 공포 때문에 누구도 선뜻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목마름에 시달려 보기로 한다. 아니 버텨보기로 한다.

인도인 아낙이 서 있는 곳은 다멕 스투파 앞을 가로지르는 철책...

철책을 사이에 두고, 양해를 얻어 아낙의 눈빛을 담는다.
가로막힌 철책이 주는 단절감은 극복할 수 없을테지만 만남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제법 세련되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불타는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와 묘한 미소가 은근히 자극적(?)이어서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멎은 듯 조용하고 머리는 텅 비어있다.
타들어가는 갈증도 끓어오르는 더위도 잊은 지 오래다.

찍어놓은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몇 장을 인화해서 건낸다.
만족스런 결과물에 뜻하지 않은 선물까지 받아든 그녀는 유쾌한 웃음을 까르르 터뜨린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구슬처럼 카랑카랑하게 햇살 위로 미끄러진다.
더위에 지친 일행들의 표정도 오랜만에 밝아진다.
몇 장의 사진이 던져주는 유쾌한 즐거움이 화색을 돌게 한다.
그 속엔 뜻하지 않은 만남, 작은 소통이 있었다.

"아차해(좋아요)?"

나는 '아차해.'

 

-  사르나트


 

 

 




 






 

 

 

 

수많은 사람들의 군상...
낯선 곳으로의 이동...
긴장감과 기대...
역안을 붕붕 떠다니는 허연 눈동자들과의 조우...
직면하게 되는 불안감...


소녀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 올드델리역에서...

 

 

 




 

 





 

 

 


이방인을 향해 흔들어주던
그의 따뜻한 환송 덕분에
여행은 낯설지 않았다.

쭐래, 쭐래~

 

 





 

 

 

 

 

 





단정히 놓인 슬리퍼...
참회하듯 고개 숙여 머리를 깍고 있는 슬픈 상주喪主의 야윈 옆모습...
경건한 마음으로 집중하는 이발사의 눈과 손...
너무나 일상적인 바라나시의 풍경이지만 왠지 이 광경을 목도할 때마다 왈칵 눈물이 난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고 흔히들 애기하지만 이곳에선 죽음이 너무 빈번하다.

죽음이 너무 빈번하다 보니 죽음조차 일상이 되어버리고
시체가 타는 화장터를 말없이 지켜보던 여행자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시니컬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한낮의 공기는 40도를 육박하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검들의 행렬에 무감각해진다.
작열하는 태양조차 시니컬해지는 바라나시의 이상기류...


그래도 죽음은 슬프다.

슬픔은 늘 마음 속에 둥둥 떠다닌다.

 

-  바라나시 다사스와메드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