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배낭엔 무엇이 들었을까.














로마의 어느 민박집에 묵고 있을 때였다.
부산에서 왔으며 빡빡한 한 달 일정으로 전 유럽을 휘젓고 다닌다는 '부산친구팀'.

그들이 민박집을 나간 지 불과 2시간도 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로마 시내를 다 돌아 보았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문득 그가 든 홀쭉한 배낭이 궁금해졌다.
그래도 한 달 일정이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 많아서 저 작은 배낭 안에 다 넣어오기도 벅찼을텐데...
그들은 들고 다니는 배낭은 뒷동산 산책갈 때나 들고 다니는 아주 작은 배낭이었다.






 




그가 배낭에서 꺼내놓은 물건은 정말 별 것 없었다.
수건, 속옷(그것도 한 벌), 잠옷으로 사용할 운동복, 1회용 칫솔, 치약이 전부...
과연 이런 준비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빈약했다.




정말 대단했다.
그들의 짐싸기는 왠만한 배낭여행의 달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수준을 능가했다.
이렇게 작은 배낭으로도 한 달 정도 여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장황한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겉옷은 정말 더러워지지 않는 한 빨지 않았고,
속옷은 하루에 한 번씩 번갈아 빨며 되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민박집에 가면 굴러다니는 게 세수비누니 그걸 이용해서 세수를 했고,
빨래비누는 한국인에게 조금씩 빌려서 빨래를 해결했고 사정이 안되면 그냥 맹물에다가 빤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배낭에서 꺼낸 것은 다름아닌 자전거 와이어였다.
요즘은 세련되고 예쁜 와이어들도 많은데 그들이 가지고 다닌 와이어는 그야말로
강철로 된, 아주 튼튼하고 무거운 와이어였다.


그걸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난당해도 별로 아쉽지 않을 배낭의 내용물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랬다.
 

"유럽엔 도둑이 워낙 많다고 해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예요"
특히 야간기차를 타고 갈 때는 와이어로 배낭을 꽁꽁 묶어두기 때문에 걱정없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림상으로는 와이어가 커 보이지 않지만 배낭 속에 칭칭 감겨있는 와이어를 실제로 보면
누구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작은 배낭의 부피를 거의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두껍고 무거운 자전거 와이어...
배낭의 어떤 것보다 더 무겁고 성가신 와이어였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와이어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참으로 즐겁고 유쾌한 길동무들이었다.
여행은 어떻게 하든 재미있고 즐겁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이후부터 그들은 '4차원 부산친구'팀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