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일본인으로 오해받은 사연










인도, 바라나시를 여행할 때였다.
찌는 듯한 더위에 겨우 몸을 가누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이 선글라스 너머로 보였다.
여행을 할 때는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 선글라스를 끼지 않는 편인데
바라나시의 강렬한 태양이 주는 눈부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굽다 만 치킨'같이 생긴 뚱뚱한 몸매의 동양인이었다.
오랫동안 짙은 외로움에 찌들었는 지 상기된 듯한 그의 얼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환하게 펴지고 있었다.
 
 
 
 
 
 



세상(그래봤자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가 전부지만)을 여행하다 보면,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현지 상인들을 만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동양인들에게는 니홍진日本人이라는 물음이 어딜 가나 먼저 나온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인도상인들은 내가 그들의 앞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일본인인 줄 알고 어설픈 일본어로 고함을 질러댔다.
살짝 빈정이 상하긴 하지만 우리보다 몇 십년 앞 선 여행문화를 가진 일본이니 어쩔 수 없다.
1988년 여행 자율화 이후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외국여행의 기회가 열렸다면
일본은 이미 막강한 부를  내세워 앞다퉈 외국여행을 떠났고

인도도 이미 한국인들이 들어오기 몇 년 전에 일본인 여행자들에 의해 점령(?)된 지역이었다.


이제 인도엔 일본인 여행자들보다 한국인 여행자들의 숫자가 월등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밀물처럼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그곳의 빈자리를 한국인 여행자들이 꽉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인도는 한 마디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참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굽다 만 치킨'같이 생긴 일본인 사내는
느닷없이 일본어로 '니혼진데스까(일본인입니까?)'라고 물어왔다.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하니 순간 녀석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도쿄 출신이라고 밝힌 '굽다 만 치킨'같이 생긴 그는 나처럼 혼자 인도여행을 왔다고 했다.
델리에서 바로 바라나시로 넘어왔는데, 한국여행자들은 많은데 일본여행자들은 거의 보지못했다며
그는 하소연을 하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내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물으니
그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더니 어눌한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간단 명료하게 물음에 답했다.

"그냥, 일본인처럼 보였어요."

나도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 더 짧은 그의 영어 때문에 더 자세하게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꼭 일본인처럼 보였다는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여야 했다.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동행이 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또 이렇게 보니 정말 일본인 느낌이 나는데요.'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아무리 뚫어져라 살펴도 된장 냄새 풀풀 풍기는 토종 한국인의 이미지밖에 없다.





 
 
 
 
 
 
 
그러다,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몰려있는 뱅갈리토라라는 골목길을 돌 때
한 한국인 여자 여행자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하며 다가가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아래의 그림처럼 물어왔다.

"한국분이셨어요? 가트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는 모습을 몇 번 뵜는데,
그땐 일본사람인 줄 알고 인사도 드리지 못했어요,"
 
 
 




  









 
그때의 내모습을 아래의 그림처럼 표현해봤다.
물론 그려진 그림이라 다소 미화한 감은 없지 않지만,
얍실한 선글라스, 일본여자들이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하는 덧니, 그리고 토끼이빨,
왠지 간사하보이는 염소수염, 너무 까맣게 그을려 어둠 속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피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선뜻 이해가 갔다.
거기에 수많은 카메라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녔으니 딱 일본인으로 오해받을만 했다. 
그래도 그렇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이 기분은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썩 유쾌하지 않는 기분은 마치 머리에 총맞은 듯한 느낌..^^
곧 죽어도 일본사람만큼은 되기 싫은 한국인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여행을 다니면서 거대한 벽처럼 항상 내 앞을 가로막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오해마저도 여행을 떠나왔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추억 아이템을 그렇게 획득한 기분이다.
총 맞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배낭을 꾸려서 여행을 떠나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