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증, 경험해본 적이 있으세요?







 


여행 중에 유일하게 고산증을 경험한 곳이 인도 라다크여행에서였다. 더 정확하게는 라다크의  주도라고 할 수 있는 레에서였다. 고산증(또는 고산병)은 해발고도 2500~3000m 이상의 고도에 올랐을 때 나타나는 병적증세라고 하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산악병 ·산취()라고도 한다. 높은 산에서는 기압이 내려가는 동시에 공기 속의 산소분압이 감소하므로 불쾌해지거나 피로해질 뿐 아니라 두통 ·동계() ·치아노제[] ·식욕부진 ·구토 등이 일어나며, 더 올라가면 졸음 ·현기증 ·정신혼미 또는 정신흥분이나 감각이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항공기가 급상승할 때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항공병이라고 한다. 어떤 고지에 2~3주간 체재했다가 다시 올라가게 되면, 적혈구와 심박출량()이 증가하여 보통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높은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순화()라고 한다. 또 초봄의 고산에서 강렬한 자외선의 조사()로 인하여 생기는 급성피부염도 하나의 고산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레의 평균 해발고도는 3,500m 수준. 델리에서 레까지 비행기로 건너온 것이 화근이었다. 델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선한 레의 날씨 때문에 깊숙하게 넣어놓은 오버트라우저를 입고도 가벼운 한기를 느꼈다. 게다가, 머릿속은 빙그르르 돌면서 두통증세를 보였고, 속은 울렁거렸으며 숨까지 차올랐다. 물어보니 고산증이라고 했다. 물과 차를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걸어다니면 해소된다고 하던 이 고산증은 그 이후로도 3일동안 유지되었고, 이동할 때마다 기분나쁜 고통을 선사하며 서서히 소멸되어 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개라고 하는 5,320m의 창 라 고개를 넘었지만 고산증은 더 이상 발발하지 않았다. 단지, 고도가 워낙 높다보니 조금 힘겹게 걷기만 해도 숨쉬기가 부대끼는 정도였다.


인도 라다크 여행을 하기 전에는 네팔의 푼힐언덕이 내가 올라간 최고의 고도였다. 

푼힐언덕의 고도는 3,210m. 보통 푼힐언덕에서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하기 마련인데, 어찌어찌 걷다보니 올라가던 많은 사람들을 채치고 내가 가장 먼저 오르게 되었다. 비록 해발고도가 3000m 이상이긴 했지만 고도를 천천히 높혔기 때문에 전혀 고산증 같은 증세는 없었다. 물론 ABC까지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이럴 땐, 완보로 천천히 고도를 높이면서 물을 많이 섭취하는 게 가장 좋다. 증세가 심할 경우, 서둘러 하산하는 게 고산증을 예방하는 지름길... 


중국 실크로드 여행 중에 만났던 최고 고도는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이 맞닿은 쿤자랍패쓰(중국명 홍치라포)였다. 평균 해발고도가 4,600m인 이 일대에서도 더 이상의 고산증은 찾아오질 않았다. 라다크여행에서 겪은 고산증의 악몽이 되살아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다행히 어떤 고산증 증세도 나타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 지 모른다.  덕분에 그 높은 고도에서 바라보는 하늘빛은 어찌나 푸르던지, 내 눈 속에 파란 물이 뚝뚝 묻어나는 느낌을 똑똑히 경험할 수 있었다. 정신까지 말갛게 푸른 색으로 물드는 느낌이었다. 


3,776m가 최고봉인 일본의 후지산에서도 고산증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고도를 천천히 높힌데다, 7합목의 산장에서 편하게 잠을 잔 터라 그다지 고산증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고산증은 갑자기 고도를 올릴 경우 흔히 발생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함께 했던 몇 분은 지독한 고산증의 후유증으로 산행을 진작에 포기해야 했다. 

고산증을 벗어나려면 백약이 무효하다. 고도를 낮추는 것만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자 예방법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후지산 정상까지 오르는 걸 포기해야 했지만, 어쩌면 단념할 줄 아는 포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들어, 인도의 라다크 여행 중에 경험했던 그 고산증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고산증의 추억만큼 그 때의 여행기억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선연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때론 포기해야 하는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하는, 그 알싸하고 매캐한 아픔이 있어서 더욱 진하게 기억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카메라 가방만 덜렁 매고 먼 길을 나서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인도 라다크 레 - 눈쌓인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레 주변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인도 라다크 레 - 샨티스투파에서


 인도 라다크 레 - 구 레왕궁에서 라마스님을 촬영하다


 인도 라다크 레 -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창라고개(5320m)를 오르며 바라본 구절양장같은 길


 5,320m의 창 라 고개... 구름도 잠시 머물다 가는 그곳엔 타르쵸만 바람에 흩날렸다.


 5,320m의 창 라 고개 - 여름옷만 덜렁 입고 오른 이곳에서 때아닌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5,320m의 창 라 고개에서 -  그곳을 지키던 인도군인들, 문득 긴긴 겨울을 보냈던 강원도 철책에서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창 라 고개를 넘어서 판공초로 가는 도중에 만난 유목민 아이 - 이 한 컷을 찍기 위해 오르막을 거칠게 오르는데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인도의 젖줄 인더강이 흐르던 어느 곰파의 타르초...
이곳도 평균해발고도가 3500m


 봉우리가 빨간 빛으로 덮히기 시작하는 다울리기리봉.
네팔 푼힐 전망대(3,210m)


 8,000m 히말라야 산군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


 타르초 흩날리는 그 언덕에선 안나푸르나 사우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경건함이 잔뜩 배여나는 아침의 기억들...


 파란색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고레파니에서의 아침
던야밧, 네팔리 친구들~!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홍치라포에서) - 해발고도 4,800m가 넘는 이 곳에선 더없이 파란하늘이 우릴 반겼다.


 쿤자랍패쓰를 타고 넘어오던 파키스탄 군인들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에 서 있는 파키스탄병사. 1986년에 이곳에 세워졌다 보다.
1986년이면 내가 입대하던 그 해...


 중국 쪽에서 바라보는 파키스탄 쪽 쿤자랍 패쓰...
여전히 계곡을 타고 오는 바람과 파란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낯선 그곳을 지키는 파키스탄병사의 얼굴까지도...


 중국 암도지방(동티벳)의 랑무스...
이젠 해발고도 3,000m 정도는 고산증에 대한 어떤 걱정도 없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랑무스의 곳곳을 누비고 돌아보면서 그렇게 티벳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었다.


 며칠 뒤에 있을 불교축제를 앞두고 열심히 청소 중인 어린 라마승들...
그들의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귓전에 흥건하게 들려왔다.


 룽다가 흩날리는 랑무스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그렇게 티벳인들의 삶을 돌이켜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올랐던 높은 산마다 한결같이 티벳불교의 상징인 룽다가 흩날렸던 걸 기억해내니,참 아이러니 해진다. 
여전히... 나는 티벳의 많은 곳을 돌아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