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시티 여행을 시작하는 첫째날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보슬비에 기온마저 급강하해서 두터운 오버트라우저까지 걸치지 않으면 한기까지 느낄 정도로 퀘벡의 기온은 서늘하게 내려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인근이 비교적 유흥가라서 주변엔 식당과 바, 술집, 나이트클럽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지난밤 나이트클럽 입구에서 요란스럽게 담배피우며 대화를 나누던 젊은 청춘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거리는 거짓말처럼 빗속에 눅눅히 잠겨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어 스케치하듯 이곳저곳을 찍지만 비 때문인지 감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비'라는 존재는 반갑지 않는 불청객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춰들고 찍어야 하는 사진찍기도 그렇지만, 돌아다니기에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서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비를 보면 먼저 한 숨부터 터져 나옵니다.
혼자 떠난 배낭여행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 이번 여행처럼 짧은 '이벤트 여행'에서는 심적인 압박이 의외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퀘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한 멋진 사진을 블로그에 포스팅한다면 나름대로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만족스러운 여행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텐데, 낮은 회색빛으로 드러운 우중충한 하늘을 보니 적어도 이날만큼은 그런 기대를 가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퀘벡주의 주도(州都)인 퀘벡시티는 여자들이 여행하면 딱 반할 여러가지 조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스러운 전체적인 거리풍경은 물론이고 예쁜 꽃들로 장식된 카페들이 거리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랫동안 낭만에 젖게 만들고픈 묘한 매력을 지닌 도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고 불리는 불어를 거리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음악마저 가을의 체취를 가득 담은 샹송이라면 금새 가슴이 설레여서 퀘벡여행이 주는 독특함에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잠시 앉아 진한 에소프레소를 홀짝이며 마시던 까페에서 에디뜨 삐아쁘가 부른 감미로운 'La vie en Rose(장미빛 인생)'가 흘러나왔습니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가을비로 인해 포도는 젖어있고, 카페 바깥으로 내걸어 놓은 화초들에선 선명한 물기가 한껏 어려 있습니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느긋하게 걷는 퀘벡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닷없이 감흥에 잠깁니다.
비는 여행과 상극이라고 내내 말하면서도, 이렇게 카페에 앉아서 바라보는 비는 오히려 느긋함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감성이 메말라 버린 저같은 사람에게도 퀘벡의 비는 이렇게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데, 감성 풍부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영감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쨋든 숨가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겠습니다. 사진... 좀 못 찍으면 어떻습니까. 그저 이렇게 앉아서 또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분에 겨운 행운일테니 말입니다.
패스트푸드점(햄버거류)으로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늦게 가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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