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우연히 참석한 북인도의 석가탄신일 법회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하다.
며칠 전에 다녀왔던 틱세곰파로 다시 갈 요량으로 아침부터 숙소를 나선다.
30분마다 버스가 출발하고, 거리도 가깝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 필요는 없다.
매일 들리는 '라마유르'에서 간단하게 볶음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길을 나선다.

오랜만에 날이 화창하게 개여있다.

너무 화창해서 달리는 차량들이 일으키는 먼지 입자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전선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레 시내를 관통해서 버스 스탠드로 온다.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레 버스 정류장.

이곳에서 밤을 지샜는지 한 켠에 모인 사람들은 이불을 개고 양치질까지 하고 있다.
잠시 혼란에 빠진다.
이번엔 틱세 곰파로 가는 버스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행선지를 영어로 적어놓은 게 아니라서 무조건 물어봐야 한다.

"틱세곰파?"

몇 사람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모른다고 지나치는데

한 남자가 자신이 탄 버스를 가르키며, 이 버스가 틱세 곰파로 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은 걸로 봐서는 출발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시간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버스가 잘못되었다면서 다른 차로 갈아타야 한다면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그러고도 꽤나 기다렸다. 라다크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붐비는 사람들을 비집고 차장이 요금을 받으러 왔다.
어디 가냐며 묻는다.
틱세 곰파로 갈 것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버스를 잘 못 탔다는 게 아닌가.
갑자기 난감해졌다.

'어떻해야 하나? 어떻해야 하나?'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마침, 승복을 차려입은 할머니 스님 한 분이 내리는 게 보인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무작정 그 할머니를 따라 내린다.
막 공항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곰파 아래였다.
그제서야 번득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핀다.

하늘은 더 없이 맑고, 여과되지 않은 햇살은 강하다.
멀리 인더스강이 있고, 어김없이 초록으로 구성된 길다란 숲이 보인다.
설산은 눈부신데다, 땅은 거칠게 말라있다.

 

 

 

 

 

 

 

 



 

 등이 구부정하게 휘은 할머니 스님을 따라 무작정 곰파로 들어선다.
느릿하게 걷는 할머니의 발걸음보다, 더 느릿하게 걷는 내 발걸음.
스며든 불안감이 어느새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바랑을 짊어진 할머니는 오르막을 오르면서 힘에 부대꼈는지 한참을 쉬신다.
어쩌면 그녀가...
오늘 내 행로의 등대가 될 지 모른다는 착각마저 든다.
무작정 그녀를 따라서 곰파에 오른다.


 

 

 

  

 















 

앞서 가는 비구니 스님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룽다 사이로 사라지는 게 보인다.
잰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가 몇 컷을 날린다.
붉은 법의와 화려한 룽다의 색감이 묘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손바닥같이 작은 뜨락엔...
파닥거리는 때묻지 않은 신선한 햇살이 가득하다.
 

 

 

 











































 

 

 

 

시계가 훤히 트인 언덕에 올라서서 오랜만에 아름다운 풍광을 찍는다.
설산과 인더스 강, 숲들, 마을과 집들...
어느새 이곳에서 익숙해져 버린 풍경이지만, 떠나오면 그리울 것 같아...
카메라에 그곳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놓는다.

푸른빛이 감도는 푸른빛은 마치 가을하늘처럼 청명하고,
봄을 맞은 인더스강 유역은 초록빛 수풀로 무성하다.
정성껏 경작해놓은 밭에선 여린 새싹이 작은 고개를 내밀고 세상과 조우한다.

비록 어긋난 여정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풍마가 있고, 따뜻한 햇살이 가슴 한 켠에서 설레임을 부추기고,
시선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게 하는 하늘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싶다.

 

 

 

 

 

 

 

 

 

 



 



사람 없는 풍경만 찍으려니 왠지 심심했는데,
마침 공항 쪽을 바라보는 한 스님이 보인다.
넓은 공항을 배경으로 외롭게 서 있는 라마를 찍고 싶었는데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스님이 서 있는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화장실 같은 작은 집, 앵글에 꽉 차버리는 계단, 나무와 곰파의 다른 건물들이 시선을 막아선 것이다.

어렵사리 구도를 정하고 한 컷을 날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제법 나이가 성성하신 스님이시다.
내 손을 이끌며, 조금전부터 요란한 악기소리가 들리던 법당 쪽을 가르키신다.
뭔가 신명나는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설픈 이방인은 낯설음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어두침침한 계단을 내려가서 회랑을 돌자 작은 마당이 나온다.
마당엔 스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나를 본 스님들이 한결같이 법당 안을 가르키며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법당을 막고 있는 커튼을 재낀다.
어둠에 적응되지 못한 동광 때문에 내부가 깜깜해서 앞을 볼 수가 없다.

자세를 숙이고 구석진 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앉는다.
법당 안은 이미 요란한 염불과 악기소리로 꽉 찬 느낌이다.
숨을 고르고 앉아 있으니 어둠 속의 사물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모셔져 있는 제단을 기준으로 좌 우측으로 마주보면서 라마들이 도열하듯 앉아 있고
왼쪽 뒷편으론 큰스님들이 각기 한 분씩 띄엄띄엄 좌정해 계신다.
며칠 전 상크르 곰파에서 바라본 1인 법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대하고 엄숙한 느낌이다.

그때도 애기했지만, 염불은 리드미컬해서 마치 흥미로운 장단같다.
절정때마다 치는 꽹과리 소리나는 악기와 독특하게 휘어진 손잡이를 이용해 치는 북,
종과 피리가 흥을 돋군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나 말고도 관전자들이 더 있음을 알아챈다.
멕시코에서 왔다는 부부와 독일에서 온 중년의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서 법회를 경청하고 있다.
그들과 눈빛으로 인사를 교환하고는...
조심스레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젊은 스님에게로 다가간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
"후레쉬만 켜지 않으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쭐래)~!"

사실 아무리 흥미로운 볼거리라도 사진을 찍지 못하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 여행의 목적은 하나도 사진이요, 둘도, 끝도 사진이기 때문이다.
법회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염불에 집중하는 스님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아 거의 기다시피 한다.
그러다 보니, 행동반경이 자연스럽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카르 곰파처럼 이 곳 역시 법당의 조명시설이 열악해서 iso를 올리지 않으면 셔터속도가 나오질 않는다.
단렌즈의 조리개를 최대개방 상태에서 iso만 올리놓고 찍는데, 단렌즈이기 때문에 발줌을 팔지 않으면 먼 곳은 찍지조차 힘들다.


 


 



 

 

 

 

 


옆에 앉은 서양인들에게 물어보니 '부처님 오신 날'의 마지막 법회라고 한다.
여행 중에 한 번씩 찾아오는 즐거운 행운이 오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랜다.

그래, 그 할머니...
버스에서 강한 자력으로 나를 이끌었던 그 할머니가 오늘의 길잡이였던 셈이다.
어쨌든, 법회에 심취해 갔고, 우연한 행운이 준 고마운 선물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인다.
왼쪽 뒤편에 앉은 큰스님은 쉼없이 염주를 굴리면서 뭔가를 염원하시고,
황금색 법의를 걸친 부처님은 세상을 굽어보시며, 말이 없으시다.

해탈하시길~ 기원합니다.


 

 

 

 

 

 

 

 


법당 안의 화려함이나 요란스럽고 신명나는 염불 장단으로만 따지자면,
마치 한국의 무당집 같은 분위기다.
좀 더 엄숙하고 정적인 것을 제외하면...
비약일지는 몰라도 무지몽매한 이교도의 눈에는 왠지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감이 간다.
 





 

 

 

















 

 

 

 노란 모자...
티벳 불교의 여러 종파 중 황모파(黃帽派), 즉 겔룩파에 속한다.
현재의 달라이라마인 '카왕 로상 예셰 텐징 강쪼'가 이 겔룩파의 수장이고 살아있는 부처님, 활불活佛이다.

법회의 의식은 아주 단순하다.
염을 읊다, 가끔 악기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독특한 의례는 일정한 패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데 경건함 보다는 흥미로움이 묻어난다는 사실.

 

 

 

 

 

 

 

 

 

 

 


 젊은 스님들은 법회보다는 내가 건내는 사진에 관심이 더 많다.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한 장씩 건내면, 몰입해야 할 법회시간에도 그걸 보며 키득대며 즐거워 한다.
내가 분위기를 망칠까 괜히 쭈삣거리며 망설이는데도 젊은 스님들이 오히려 더 요구를 한다.

역시,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과 호기심은 어딜 가나 똑같은 모양이다.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중하고 값진 시간이다.

몇 시간동안 지속되는 그들의 법회를 보면서 야릇한 감흥에 빠진다.

버스를 잘못 타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했던 여행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이곳까지 왔고,
어느새 그들에게 환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예측불허성의 여행이 주는 진미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들 속에 묻혀 그들의 단편적인 삶을 바라보고 그걸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추억하는 즐거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경직되고 생경한 몸짓도 많이 완화되었다.

노스님들에게 사진을 건내주면,합장을 하시며 고맙다는 표현을 꼭 하신다.
눈빛과 몸짓으로 고마움을 전달받으면 닭살같은 소름이 돋는데, 기쁨의 또다른 표현이리라.
그들과 함께 한다는 건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그 기쁨까지 고스란히 되돌려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눈을 감은 채, 그들의 법회를 경청하고 있는데 멕시코에서 왔다는 부인이 내 어깨를 툭툭 친다.
낮은 목소리로 잠시 법당 뒷쪽으로 따라와보라고 한다.
카메라만 들고 그녀를 따라가자, 그곳엔 또다른 의식이 진행 중이다.

1년에 꼭 한 번,
'부처님 오신 날' 법회가 있는 이틀동안만 개방되는 오래된탱화라고 한다.


 

 

 

 


 

 

 

 

 

어느새 법회가 끝이 났다.
식시 시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스님들과 참관자 모두에게 식사가 주어지는데, 밥과 함께 여러가지 반찬류가 나온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밥과 반찬류 각기 큰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신자들이 와서 개인 접시에 들어주는 배식형식이다.
밥을 들어줄 때의 신자들이 짓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은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만면엔 늘 미소를 짓고 있고, 정성스럽게 들어주는 손짓은 늘 조심스럽다.
은근히 양도 많아서, 옆에 앉은 중년의 독일여자는 웃으면서 '조금만'을 연발한다.

스푼으로 식사를 하시는 노스님을 카메라에 담는다.
대부분의 스님들이나 현지인들은 맨손으로 밥을 먹는데, 스푼이라서 오히려 생소하다.
그 은근한 실루엣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老스님의 포스 또한 대단하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청명한 햇살이 마치 축복처럼 라다크를 비추고 있다.

즐거운 경험을 한 탓에, 마치 신열이 난 것처럼 볼이 발가스름하다.
의도하지 않은 길 위에서의 만남들, 그 속엔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혼자 떠나왔지만, 혼자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예정되기라도 하듯 어느 길에서나 동행을 만난다.

 

 

 

 



















 

 

법회 때의 사진이 아쉬웠는지, 의젓하게 황모를 쓰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모바일 프린터는 어디에서나 인기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고 즉석에서 뽑아주니 다들 즐거워하는 건 다양한 일...
그것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한층 쉬워졌다.

모바일 프린터의 원리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허접한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렌즈에 비하면, 막강한 dslr 카메라의 렌즈를 활용하기 때문에 화질 차이는 엄청나다.
LCD 화면으로 사진을 확인시켜 주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걸 뽑아주는데...
가난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라 그런지, 다들 호응이 좋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게 유일한 흠.
사진을 찍어주다 보면, 여기저기서 서로 찍어달라고 난리다.
나중엔 가져온 필름이 다 떨어졌다고 얼버부리고 말지만,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모바일 프린터를 가지고 간 계기는 몽골에서였다.
길에서 우연히 목동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통하지 않는 언어 대신 몸짓과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사진을 원했고,
그럴 때마다 내게 주소를 적어주면서 사진을 꼭 붙여달라고 했다.

유목민인 탓에 그들의 주거지는 일정하지 않고 늘 돌아다니게 되어 있는데
그들이 건내준 그 주소란 것도 대충 어느 지역이라는 것과 사람의 이름만 나와 있지, 정확하지 않았다.
유목민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아팠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오려다가 부피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게 더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몽골을 다녀온 이후에, 우연히 이 모바일 프린터를 알게 되었고...
그걸 구입한 나는 여행 때만 되면 들고 다녔다.

비록 작은 기계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나와 현지인들을 비로소 소통하게 만드는 작은 매개체나 마찬가지였다.


 

 

 

 

 

 

 

 





 

 

 법회도, 식사 시간도 끝이 나자, 스님들은 인더스강과 설산이 훤히 보이는 작은 뜨락으로 모인다.
옹기종기 모여서서는 한담을 나누면서 긴장했을 마음을 풀고 있다.

그들에게 고맙다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스님들...
추억을 만들어 준 그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