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 푼힐에서 맞는 아름다운 아침풍경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창 너머로 바라본 밤하늘은 맑게 개여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가깝게 내려앉아 있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어젯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얼마나 놀랬던지...
행여 푼힐에 올라 제대로 풍경을 조망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밤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잠시 침낭에 몸을 뉘었으나 심한 기대감 때문인지 오히려 눈만 말똥거린다.


합판으로 칸막이를 둘러친 롯지에서는 쉽게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그렇게도 몸이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하게 울려대는 옆방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지난 밤 몹시 뒤척인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새벽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눈이 뜨졌으니 인간의 강박관념은 오히려 시계보다 정확하다.

 

대충 짐을 꾸려 바깥으로 나왔다.
날카로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옷깃을 여미다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많은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이 사선을 그으며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다.
몽골에서 봤던 선명한 밤하늘을 다시 본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아가 아닐까하는 우쭐함이 생겨 피식 웃고 만다.

별을 잃는다는 건, 꿈을 잃는 것이라고, 늘 버릇처럼 중얼거렸는데...
내 가슴 속엔 여전히 꿈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준비를 끝냈는지 나의 포터인 '개다르'가 인기척을 내며 곁으로 왔다.
"good morning, 개다르" 어두워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느껴진다.

후레쉬를 준비하지 않은 그에게 내가 가진 두 개의 후레쉬 중 하나를 건낸다.

짊어진 내 카메라 가방을 매려고 했지만 나는 가벼운 삼각대를 건내며 화답처럼 말없이 웃어보인다
고레파니까지 무거운 배낭을 둘러매고 왔는데, 잠시라도 너를 쉬게 하고 싶어...
그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림자처럼 늘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어젯밤엔 몇 명의 포터들과 불가에 빙 둘러앉아서는 대화를 나눠었다.

어찌어찌 흘러가다보니 네팔의 미래에 대한 애기까지 흘러나왔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성토의 자리이기도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네팔의 현실에 젊은이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전무한 산업시설,  좌우익으로 갈라져 총부리까지 겨누는데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정치판은

네팔 국민들의 기본적인 '살아가는 문제'따위엔 신경도 기울이지 않고 제 실속만 챙기기 바쁘다고 했다.

관광산업으로 외화를 벌어 드리고는 있으나 제반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외화수입마저도 정치인들의 검은 주머니로 들어가니 네팔 국민의 삶은 이미 도탄에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네팔 국내에서는 도저히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니 네팔의 젊은이들은 한국 등의 나라로 도망치듯 떠나고,

일부 젊은이들은 프랑스의 외인부대 등 때론 죽음까지 불사하는 거친 삶 속으로 부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떠난 삶이라고 편한 건 아니어서 인간이하의 질시와 천대를 받는 생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가 오히려 멍에가 되어 가혹하게도 그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세게 최빈국의 현주소를 포터들은 열변하듯 설명했고 나는 그 안타까움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내내 한숨을 쉬어야 했다.

"한국은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진 않잖아요."

"우리는 그것마저도 힘들어요"

대학교에서 네팔어를 전공한다는 개다르도 섭섭함과 울분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얼굴은 암울했으며 현실은 참담해 보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만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는 충고 뿐이었다.

 

 

푼힐로의 짧은 새벽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고레파니에서 푼힐까지 가는 길은 며칠 전 내린 눈이 쌓인데다 얼어붙어서 빙판길을 연상시킬 정도로 미끄럽다.
미처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았더니 거북이 걸음으로 느릿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다리를 헛디디기만 해도 밑으로 내동댕이 쳐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어서 더 조심스럽다.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푼힐 언덕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고레파니에서 출발하면 푼힐까지는 1시간 반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새벽 4시반 무렵이었고 알아본 바로는 일출시간이 대략 새벽 6시정도 였으니 도착하고서도 약간의 시간 여유는 있을 듯 싶다.

중간지점에서 새벽 4시쯤에 서둘러 출발한 일행을 추월하고 또 앞질러 오르던 중국인 부부도 따라잡는다.

거친 눈길에다가 야간산행이었으니 벌써부터 지치는 모양인지 숨소리가 꽤 거칠다. 힘 내라고 다둑여 주고는 앞장서서 오른다.

 

그렇게 오르다가 잠시 멈춰서서는 후레쉬를 끄고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우두둑거리며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네팔 젊음이들의 미래도 저 별처럼 영롱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한 가슴으로 올려다 볼 밤하늘의 찬연함은 얼마나 축복일까마는 그들의 가슴엔 여전히 찬바람이 냉냉하게 불고 있으리라.

그들이 소중하게 간직한 찬란한 별의 소망이 영원하기를 빌어본다.

개다르의 어깨를 툭 치며 묻는다.

 

"Are you happy?"

"I'm so happy with you."

"Thanks. Gedar. I am so so so happy with you, too. and I hope you'll be always happy."



 

 

        
        


 

 

 
 
 

 
 


 
어떻게 오르다 보니 가장 먼저 푼힐언덕에 도착하게 되었다.
동녘하늘에선 어느새 여명이 트고 있었고 짙은 계곡은 아스라하게 운무가 깔려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검은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던 많은 별들이 어느새 빛을 잃어갔다.
지독한 눈보라가 이미 점령한 푼힐 언덕은 그야말로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너머 보이는 히말라야 산군山群들은 어둠 속에서도 보무당당하게 푼힐언덕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림같은 파노라마가 펼쳐진 이곳에서 나는 밑도끝도 없이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단지 사진으로만 봐왔던 막연한 경치 이상의 어떤 것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자연은 쉼없이 나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어떤 힘이 있음에 분명했다.
막혔던 혈관을 뚫고 파열하듯 격정적인 기운이 끊임없이 용솟음쳤고 꼼짝없이 얼어붙은 채 그 신비로운 풍경만 목도해야 했다.

그곳이 여기 있어 산에 올랐듯이 그곳은 여전히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새삼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스스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8,000m급 고봉을 배경으로 별의 궤적으로 담고 싶었는데 결국 작은 소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삼각대를 펼치는 것조차 잊은 채 시나브로 변해가는 고봉의 풍경들만 보고 있다보니 어느새 동녘이 환해졌기 때문이었다.
허망하지만 창창한 날씨를 만난 것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동녘하늘에선 시뻘건 기운이 태동하고 있엇다.
그 기운은 어느새 붉은 빛으로 뻗쳐오르더니 이내 안나푸르나 사우스의 정상에 붉은 빛을 툭툭 털어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느새 올라온 사람들도 그 장관에 감탄사마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안나푸르나 사우스 정상을 비추던 빛은 어느새 점점 산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느낌 좋은 아침, 붉은 빛감들이 하얀 정상 위에 만들어내는 색감은 그야말로 신비롭기까지 했다.
설레는 흥분과 긴장으로 카메라에 담는 순간마저도 잊은 채 육안으로 그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일출을 봤다고 하지만 8,000미터 고봉에서 꽃처럼 번져가는 그 붉은 색감만큼은 희열 이상의 어떤 의미였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렸고 생전 올리지 않던 기도를 드렸다.

자연이 창출하는 거대한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감의 발로였다.

 

 

 

 
 
 
 
 

 

 
 
푼힐 전망대의 왼쪽에 있는 다울리기리 봉도 어느새 아침의 붉은 빛에 휘감기긴 마찬가지였다.
푼힐의 아침이 주는 이 경이로움은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포터들은 우리들에게  'You are a lucky man'을 외쳤고 그 날 푼힐에 오른 여행자들은 충분히 아침의 절정을 느끼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전날 롯지의 지붕 위에 후두둑 떨어지던 빗소리로 인해서 일출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일출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푼힐언덕에 올라서 단지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심 뿐이었다.

그런데도 새벽에 깨어나 바라본 하늘은 그야말로 결정적 '환희'를 느끼게 해준 모티브였다.

새벽 밤하늘을 가득 매운 은하수와 점점이 흩어져 금새 떨어질 것 같은 초롱한 별들이 우리의 행운을 예고해주고 있었다.

 

이틀동안의 힘든 산행은 일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제법 높은 곳에 올라서 바라보며 느끼는 세상일과 삶의 연민따위는 티끌만큼 작고 볼품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늘 담대해지길 바라면서도 옹졸한 성격탓에 가슴을 닫고 살았던 자신에 대해 비로소 회한이 밀려왔다.

 


 

 
 
 
 
 

 
 
 
붉은 빛이 서서히 물러나자 이번엔 감춰진 에메랄드 빛이 하늘가로 형언할 수 없이 번져갔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산정의 만년설이 금새 파란빛으로 물들 것 같이 시리고 차가운 느낌으로 성큼 다가왔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아침녘의 히말라야 군봉들을 조망한다는 것은 분명 색다른 풍경이었다.

 

 
 
 
 
 
 

 


 
기분 좋게 번져가는 아침 햇살 때문인지 밤새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햇살이 닫혀있던 깊은 계곡을 비칠 때면 내 마음까지 개운해졌다.

차가운 바람이 연신 푼힐 언덕을 휘몰아쳤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서는 빠짐없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ㄷ.
한동안 산행을 하지 않던 내게도 산은 늘 본연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산은 내게 늘 올라오라 올라오라 종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독한 기다림 끝에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우는 안나푸르나의 얹저리에 섰고 마침내 울분을 토하고 말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악착같은 미련이 가슴 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애써 외면했다.
결국 모질게 이어온 인연도 고개만 돌리면 끝이 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동쪽 하늘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큰 산도 없었는데다 아름다운 일출 장관을 연출하지도 못했었다.
해가 뜨자 낮게 깔려 있던 구름이 운해가 되어 능선을 타고 흐르긴 했어도 너무 낮게 깔린 탓에 장관을 연출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늘가에 적당한 구름만 있었어도 동쪽 하늘은 더욱 멋지게 피어올랐으리라.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했다.

모든 현상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려가도록 종용하는 이기적인 버릇은 늘 안타까움으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쪽하늘이 불타던 그렇지 않던 '럭키맨'의 영광을 누렸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빛살이 쏟아지고 있는 동쪽 하늘을 그렇게 카메라에 담았다.

위선적인 마음의 가벼움을 못내 지워내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에게 되는 행위를 그렇게 찾아나섰다.
찬란한 역광처럼 아름다운 푼힐의 언덕에 그렇게 서 있었노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느새 서쪽 하늘이 완전하게 드러나자 움츠린 트레커들의 발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간직이나 하려는 듯 여기저기서 연신 카메라가 터졌다.

그 아침을 온전히 '환희'로 맞이한, 함께 했던 사람들.

 

블랙커피로 어느새 차갑게 식어가는 열정을 달랬다.

속이 따뜻해졌고 마비되어 가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났다.

 

 
 
 
 
 

 
 
 
잠시 함께 여행했던 S군.
똑딱이로 찍고 있길래 내 카메라로 포즈를 취하게 해서 사진을 찍었다.

멋진 선글라스를 쓴 그는 다울라기리봉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았다.


 

 
 
 
 

 
 

 
삼각대를 개다르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스냅샷 촬영에 돌입했다.
산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산도 좋지만 산을 즐기기 위한 그들의 표정이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있어야 풍경도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고레파니의 숙소에서 함께 묵었던 일본인 여행자 겐조.
혼자 와서 그런지 뒷모습에서 왠지 쓸쓸함이 느껴졌다.
지난 밤, 그와도 참 많은 애기를 나눴다.

영어와 이젠 기억마저 희미해진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의 영어발음은 다른 일본인들과는 달리 꽤 괜찮았다.

물어보니 미국에서 1년동안 어학연수를 했다고 했다. 역시~

도쿄에 산다는 그는 특히 내가 일본여행을 다녀왔음과 나의 어눌한 일본어에 꽤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인 특유의 감격해 하며 맞장구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렇게 스케치를 하다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어느새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힘겹게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푼힐 언덕엔 사람들이 드문드문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려가기가 싫었다.
빡빡한 일정만 아니라면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히말라야군을 조망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제 가면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늘 다시 올 것이라는 허울좋은 다짐을 하지만 짧은 여행 일정으로는 다음을 기약할 수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넓고 가고 싶은 곳은 너무도 많은데 내게 주어진 여행 시간은 너무 짧았다.

맛뵈기 식으로 잠시 찍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 없어서 그럴 때마다 숱한 미련의 끈들이 발목을 잡았다.

거창하게 세계를 유랑한다는 명분은 어쩌면 내게 있어서 말장난과 같은 것이리라.


잠시 다녀가기엔 너무 아름다운 곳.
결국 가장 먼저 올라왔던 이곳을 가장 늦게 내려가게 되었다.

시간에 대한 미련들...


 
 
 
 
 
 

 
 

 

 

 

 

 

 

 

 

 


 
 
 
조금 내려오다 보니 룽다가 현란하게 펄럭이는 곳이 나타났다.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아무도 가는 사람이 없었지만 혼자 씩씩하게 걸어올랐다.

개다르도 쪼르르 내 곁을 따라나섰다.

눈 속에 우리 두 사람의 발자국이 그렇게 새겨졌다.

그렇게 룽다를 배경으로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담았다.
룽다가 있어서 더 네팔스럽고 히말라야다운 풍경이 연출되는 것 같았다.

이런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래서 마침내 찍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사진이 꼭 그랬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는 잘 알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려면 무엇보다 심성이 고와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세태에 물든 사람에게는 어쩌면 그 아름다움조차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근성으로 흘러버리는 습성이 이미 깊숙히 몸에 배인 탓이 아닐까 싶다.


 
 
 
 

 
 
 
 

 
 
 
빛나는 역광을 받은 일본인 겐조의 포터.(사실 그의 이름은 묻지 못했다.)


그는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때론 발음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는데, 그와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산업시설이 전무한 네팔에서는 돈을 벌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으며 정부의 숱한 실정으로 네팔경제는 피폐가도를 달린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이나 일본같이 잘 사는 나라로 건너가 돈을 벌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꿈이라고 했다.
핍박받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방송을 많이 접한 탓인지 우려섞인 목소리로 만류하기도 했지만 네팔의 현실은 너무 암담했다.
그의 코리언드림이 환상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네팔리들의 가난한 삶이 하루속히 종식되기를 기원하면서...


 
 
 
 
 
 

 

 
나의 포터였던 개다르, 일본인 여행자 겐조, 겐조의 포터, 그리고 나...


이렇게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며칠동안 함께 길동무를 한 것도 우연인데 싶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개다르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성격 탓에 포터의 역할 이상의 것을 내게 주어었다.

길동무였고 가이드인데다 통역자였고 사진보조였으며 때론 모델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어쩌면 단순히 거론될 수 있는 그런 역할 이상의 어떤 정신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더 많이 준 게 사실이다.

그와 함께 웃었고 그의 흥얼대는 노래를 들었으며 그로 인해 네팔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큰 행운을 잡은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에게 행운 있으라~

 

 

 
 
 
 
 

 

 

독일인 여행자 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