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몽골인들에겐 한국은 무지개의 나라





 





 

홉스골 입구의 MS게스트 하우스에서 맞는 아침.

늘 그렇지만 새벽이면 일출을 찍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동쪽 하늘의 짙은 구름 때문에 붉은 색감이 좀처럼 배어 나오질 않아 실망하던 차였다.
그러다 반대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서쪽 하늘은 어느새 구름이 걷혔는지 전에 없이 푸르렀다.
하늘 색감은 파란 물이 뚝뚝 묻어날 것처럼 선명하고 명징했다.

놀라운 색감이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너무 청명한 푸른색이었다.
이런 하늘을 보기 위해 몽골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떨렸다.
몽골을 왜 '파란 하늘의 나라(The land of blue sky)'라고 하는지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그야말로 감격이었다.

 


 





 

 

 

  

짧았던 홉스골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또 떠나야 했다.
함께 가신 선생님들과 그리고 그림자로 보이는 나...
그렇게 우리의 발자취를 카메라에 담았다.

게르 천장을 때리는 어젯밤의 거센 빗줄기와

함께 나눠마셨던 짜릿한 보드카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이동하기 위해 짐을 챙겨 밖으러 끄집어 내놓았다.
잠시동안의 망중한.

 

 









 




이제부턴 울란바타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차를 달렸다. 차를 달리고 달리다, 너무 예쁜 곳이 나와 무조건 차를 세웠다.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나 봄직한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쪽하늘은 너무 맑아서 투명할 정도였는데,
동쪽하늘은 짙은 구름의 여운이 여전히 벗겨지지 않은 채 깔려 있었다.

 









 

 

 



갑자기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어릴 때, 다리 좀 흔들며 불렀던 남진의 '님과 함께'가 바로 그것.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딱...
그 그림같은 집이 그곳에 펼쳐져 있다.
정말 거짓말 같았다.

 








 

 




키릴문자라서 읽을 줄은 모르지만...

4km로만 가면 그 어느 곳이 나온다는 말이겠지.

한 번씩 나타나는 이정표...
그래야 이 넓은 초원에서 길을 잃지 않겠지.

불투명한 우리 인생에도 저런 이정표 하나 쯤은 있어야 하는데...

 








 

  












 

하늘이 예술이다.
게다가 뭉게구름까지...
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선들한 가을 바람이 불어 초원의 마른 풀들을 눕히며 지나갔다.

풍덩 빠지고 싶을만큼 아름답고 선연한 푸른 색감의 하늘...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본 적이 있었던가.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렇게 연방 감탄해본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우리가 달려온 길들이 뒤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과 초원과 그 흔적처럼 남아있는 풀들의 서걱대는 합창소리.
흔들리며 추고 있는 군무가 그야말로 가슴을 설래게 했다.
초췌한 그리움 하나를 남기며 떠나는 여행이었다.

우리가 그 속에 서 있었다.

사방을 빙 돌아가면서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사진을 찍었다.
어느 곳이나 하늘빛은 장관이었다.
에메랄드 빛보다 더 고운 하늘빛이었다.
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
혼절해있던 핏톨이 역류하는 듯한 이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
그 정점에서 터져나오는 감탄사.









 




 









 

 

 

 


 

멀리 있는 게르에서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들이 신기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독하게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을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내게로 달려와 엷은 미소를 보낸다.

'센베노'

나도 그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멈칫거리며 밝은 표정이 금새 굳어져 버렸다.
그런 녀석들을 보니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풋'

남자아이는 그래도 징기스칸의 후예답게 용맹한 포즈를 취해준다.

가지고 있는 막대로 한껏 무술자세를 흉내내다 문득 카메라를 주시하는 녀석...
녀석의 얼굴엔 장난끼가 성글성글 맺혀 있다.
척박한 땅의 아이들이지만 꾸밈이 없어 보였다.

그 옆엔 자매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서 있었다.

약간 촌스런(?) 색깔의 옷을 입긴 했지만 여자아이들 답게 얼굴엔 부끄러움과 낯설음이 가득하다.
얼마나 어색했는지 인사를 건내도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들고 있던 사탕과 초콜렛을 그들에게 건냈다.
짧은 정차 중의 휴식이라서 카메라만 들고 뛰어나온 탓에 주머니엔 겨우 그만큼의 사탕과 초콜렛만 남아 있었다.
아쉬웠다.

큰 여자아이가 고맙다며 자신의 게르로 자꾸 나를 이끈다.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지금까지 투어리스트 게르에서만 묵은 탓에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어떨까 자뭇 궁금하던 터였다.
소녀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멋진 하늘에 대한 경외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하늘을 가르키며 어디선가 줏어들은 '텡그리, 텡그리'(너무 아름다운 하늘이란 뜻으로)를 외쳤고,

소녀도 '텡그리'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해줬다.
그 파란 텡그리 아래엔 하얀 게르가 한 채 서 있었다.
서성대는 사내들의 모습도 보였다.

낯선 곳에 이끌리긴 해도 잔뜩 경계심을 풀지않는 나의 이 어리숙함.

선생님들은 저 멀리서 가축들만 사진에 담고 계신 모양이다.
결국, 혼자서 색다른 여행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센베노'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건냈다.

사내들 중 가장 연장자이신 한 영감님이 나를 반갑게 맞는다.

'굿 아프터눈 굿 아프터눈'

지금은...오전시간인데도 영감님은 '굿 아프터 눈'만 연발하셨다.

영감님은 어설픈 발음의 영어로 내게 친밀감을 표시하신 것이었다.


추측컨대 그의 영어인사는 '굿 아프터눈'밖에는 없는 듯이 보였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한 눈빛 닳고 빠져 볼품없이 되어버린 누런 이빨과는 대조적으로
선글라스와 모자 때문에라도 영감님의 센스는 꽤나 도회적으로 보인다.

'웨어 아유 프롬?'(어데서 왔노?)
'솔롱고스~'(한국에서 왔어요)
'아, 솔롱고스, 코레아~~~'




영감님은 가벼운 맞짱을 치시며 뭔가를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그 이후의 대화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어 단어가 몇 개 섞인 것 같긴 한데 내 빈약한 듣기와 이해력은 그만 한계치에 부딪힌 느낌이어서 그저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솔롱고는 몽골어로 무지개란 뜻이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라고 부르는데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뜻이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게 된 연유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고려를 정복한 원(元)나라가 고려에서 아름다운 공주를 왕비로 데려오면서 그 왕이 고려를 일컬어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불렀다."라는 말이 설득력 있다.  왕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비 기황후.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고려의 공주가 아니라 공녀로 차출되어 황후에 오른 인물로 한국사에서는 '요녀'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다.
오늘날 몽골인에게 솔롱고스라는 말은 '한국'을 뜻하는 말로 아주 친근하게 불리고 있다.

 

 

 









 



우리의 대화 때문인지 다른 사내들은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 같지는 않고 그들 특유의 수줍움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시늉을 하자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더 물러선 채 물끄러미 나를 지켜다봤다.

 






 

 





 

 

 




 

숱한 시간동안 말 안장 위에서 보냈을 몽골인들...
흘러간 시간만큼의 손때가 그렇게 묻어났다.
그 풍부하고 투박한 질감이 문득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 위엔 그들의 온전한 삶이 놓여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몽골인들은 말 위에서 생활하고 말과 함께 자며
말과 함께 인생을 마감한다고 하지 않던가...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들의 삶이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설래였다.

비록 아주 찰나의 순간이긴 하지만 그들 삶 속으로 스펀지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소통할 수 없는 낯선 언어로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언어를 경청했으며 그들의 웃음과 함께 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게르의 내부였다.
궁핍하고 빈약한 살림살이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길 위의 사람들.
초원 위의 사람들...

여주인이 요구르트가 담긴 커다란 그릇을 내게 건냈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탓에 조심스럽게 한 숟갈을 뜨서는 맛을 봤다.
요쿠르트의 상큼한 맛이 입안에 금새 번졌다.

입의 까탈스러움 때문에 어딜 가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특히 몽골에선 양고기 같은 건 그 독특한 구린내 때문에 입에 대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요쿠르트는 의외로 맛있었다.

몇 숟갈을 뜨고서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 게르의 주인장인 듯한 남자분이었다.

나담 축제때나 입을 멋진 모자와 델을 입고 포즈를 취해준다.
아마도 내 카메라 때문이리라.
한껏 멋을 부린 주인장은 그렇게 포즈를 취해주셨다.
그 선한 눈빛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만 가져갔더라도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서 드렸을 텐데 옹졸한 판단때문에 두고온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이 가장 좋아했을 소중한 선물을 나의 실수로 말미암아 두고 온 것이 또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의 몽골체험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그들과 그렇게 짧은 만남은 나를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즐거운 추억 하나를 그렇게 담았다.

일행들이 기다리는 푸르공을 향해 다시 달려왔다.

나 때문에 꽤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여전히 그곳엔 푸른 하늘과 이젠 결코 낯설지 않은 게르 한 채와
초원의 가축들이 있는 풍경이 고스란이 들어왔다.

왠지 눈물이 찔끔 났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아득한 거리감이 더욱 조바심을 불러 일으켰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리움 하나를 두고 왔다.

거친 먼지를 날리며 초원 위를 질주하는 푸르공...
그 이동하는 작은 섬 안에서 우린 꼭 그 만큼의 몽골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수박 겉핧기 식으로 몽골의 겉모습만 훑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몽골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질은 없고, 현상만 있는 여행.

그래서, 몽골여행은 늘상 아쉽다.




























사람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드시 차를 세웠다.
이젠 잊혀져 가는 낯선 수레와 그 행렬들이 정겹다.
허허벌판에서 만나는 이방인들과의 어색한 조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다.


초원에서 만난 몽골사람들은 한결같이 차분한 느낌이다.
말수가 적은데다 한국사람들처럼 적극적이지도 수다스럽지도 억척스럽지도 않다.
마치 모든 것에 달관한 듯이 먼산을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빛과.
건내주는 담배 한 개피를 천천히 음미할 때 가끔 보여지던 투박하고 굵은 손가락 마디처럼
세월의 질감이 제대로 꿈틀대는 그런 느낌이다.

그렇게 그들도 떠나갔다.
그 하늘 속으로, 그 초원 속으로...

그 거리만큼,그렇게 만남도 그리움도 멀어져 간다.
결코 만나지 못할 두 개의 직선처럼...
아득히...

어느새 잉태된 그리움.
초원에선 모든 것이 그리움이 되었다.

그 초원의 한 모퉁이에서 아주 잠시지만, 정말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우리도 그렇게 함께 했다.

그리고, 그리움 한 개를 그렇게 툭 던져놓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