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홉스골에 물드는 몽골의 가을풍경



 



 








어느새 홉스골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구불구불한 사행천(蛇行川)이 펼쳐진 작은 벌판이 모습이 보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무릉에서 홉스골로 가는 4시간의 짧은 여정 속에서도 좋은 풍경을 만나면 어김없이 푸르공을 세웠고
마치 정에 굶주린 아이처럼 그 풍경들을 낱낱이 카메라에 채워갔다.
사행천 - 말 그대로 뱀같이 구불구불한 하천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빛나는 소금처럼 흩어져서 빛나고 있는 아스라한 게르 몇 채와 가축들이 때아닌 감성을 자극했다.






 






 


홉스골 입구 쪽에 서 있던 어워~!
하늘도, 하닥도, 표지판도 푸르른 그 곳의 끄트머리에서 푸르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풀어헤치며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형상의 구름띠가 너무 인상적인 하오의 그 길..










 











 




 

 


이번 몽골여행의 단점은 시간이 너무 빠듯한데 있었다.
한구에서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울란바타르에서 무릉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홉스골에 며칠 머물면서 주변 일대를 말을 타고 돌면서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는데 막상 울란바타르에 도착하니 비행기 예약이 안되었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비행기가 만석이어서 표를 못구했는지에 대한 진의는 지금도 파악하기 힘들지만 꽤나 난감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푸르공을 타고 홉스골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 이동시간과 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였다.
몽골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아쉬움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이건 마치 너무 잘 짜여진 시간표처럼 어디 하나 찌르고 들어갈 틈조차 보이질 않았다.
하루 온 종일 이동하다 잠시 투어리스트 게르에서 지친 몸을 눕혀 쉬다가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이동, 또 이동...
아름다운 초원에 감탄하는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하다.
며칠동안 사람조차 없는 허허로운 초원을 질릴 정도로 달리다 보면 감탄과 감동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단어인지 저절로 느끼게 된다.
어느새 무기력한 공기로 채워진 차 안은 반복되는 패턴같은 권태가 곧 일상이 되고 만다.


하룻밤의 짜투리시간밖에는 할애할 수 없는 아름다운 홉스골에서의 여정은 그래서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에 푹 쉬며 즐겨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경유지로서의 개념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서 돌아보는데 부담마저 느낄 정도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라도 타며 돌아봐야 타봐야 하지 않느냐는 나의 제안에 함께 가신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망설이셨다.
말을 타시기엔 연세가 너무 드신데다 돌아볼 충분한 시간도 없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더이상 혼자 고집을 피울 상황이 못되었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따라서 홉스골(골은 호수라는 의미)의 극히 일부 지역만 간단하게 하이킹하기로 했다.
이번 몽골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구름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급기야는 한쪽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덮히고 있었다.
가슴 얹저리에 자리잡기 시작한 불안감 느낌들처럼...


홉스골까지는 다시 푸르공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거칠다 차를 몰다 잠시 인근 마을에 들러 뭔가를 사는 잉케...
그가 가져온 봉지에 담긴 것은 다름아닌 반쯤 말린 물고기였다.
봉지를 열어젖히니 비릿한 비린내가 순간적으로 차안을 가득 채웠다.
홉스골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반건조상태로 말려 시장에서 팔고 있었는데 잉케는 너무 맛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어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그가 건낸 물고기를 아무도 선뜻 받는 사람은 없었다. 
낯선 음식에 대한 시도는 늘 도전 정신(?)이 필요한 법.
나이드신 선생님들은 비릿한 냄새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셨고 그나마 젊은 내가 작은 조각만을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솔직히 한 번의 시도로 맛있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맛은 아니었다.
홍어처럼 약간 톡 쏘긴 했고 적당히 간도 배어 있기도 했지만,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그런 맛 때문에 입맛을 끌어당기진 않았다.


푸르공은 질퍽질퍽한 산길을 힘겹게 올랐다.

고개만 넘어가면 홉스골이라는 잉케의 말이 굳이 아니래도 울창한 숲 때문에 홉스골이 가까워짐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숲들 사이로 소가 끄는 수레가 보였다.
여자아이와 할아버지가 끄는 나무 실은 수레 그리고 적당한 역광이 너무 보기 좋았다.
아마도 이 날 본 마지막 햇살이었으리라.


 





 






 

 

 


막 홉스골에 도착할 무렵 그렇게 맑던 하늘이 어느새 짙은 구름으로 덮혀 버렸다.
빛이 자취를 감추자 그 강하던 컨트라스트마저 교묘히 사라지고 말았다.
낙엽송들의 노란 색감들이 조금 전보다 훨씬 뚜렷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홉스골은 다소 어둡지만 명확한 채도를 띤 채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홉스골 주변은 이미 가을이 깊게 스며들고 있었다.


푸르공에서 내려 호수가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일 정도로 호수는 맑고 깨끗했다.
윗통을 벗어 재끼고 엉거주춤하게 서서는 그 맑은 물로 개걸스럽게 세수를 했다.
물칠을 할 때마다 얼굴에 쌓였던 기름기가 한 꺼풀씩 제거되는 그런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쌓였던 노폐물을 씻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의식처럼 결연했고 적당한 바람은 젖은 얼굴의 물기를 기분좋게 말렸다.

 



 

 

 

 


 

 

 

 

 

홉스골을 배경으로 잉케를 담았다!
우리가 홉스골 주변을 돌며 촬영을 하는 동안 잉케는 그동안의 먼지같은 노고가 고스란히 쌓인 푸르공을 열심히 닦았다.
푸르공, 그야말로 며칠 간을 쉼없이 달려서 이 먼 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녀석이니 그만큼의 호사를 누릴 권리는 충분하리라.
처음 그 생김새를 보고는 실망도 많이 했었지만 이젠 정이 들대로 든 녀석이었다.
그리고 단순함이 주는 위력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우직하게 푸르공을 몰면서도 우리의 길잡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 준 우리의 '잉케'
내가 불러준 '몽골의 키아누 리브스'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잘 생긴 용모는 늦가을 홉스골에서 더욱 빛이 났다.

 

 

 

 

 



 


































 

 

 

홉스골의 풍경은 마치 스우스와 오스트리아를 연상시킬만큼 너무 이국적이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낙엽송들과 간간히 놓여져 있는 예쁜 집들, 고운 물빛과 적당한 바람...
그 호숫가로 익숙한 듯 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소심한 A형같은 녀석들은 인기척을 내며 다가가기로 하면 화들짝 놀라서 한 달음에 도망가기 일쑤여서 아예 먼 발치에서 녀석들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간간히 구름을 뚫고 나온 몇 가닥의 햇살이 낙엽송 위로 찬란하게 쏟아졌다.


호수를 거닐면서 검은 개와 놀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사탕을 주자 녀석은 환하게 웃으면서 한웅큼 받아든 채 벤치로 갔다.
주머니 가득 사탕을 집어 넣는 모습이 너무 만족스러워 보였다.
홉스골은 여행보다는 휴양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같아 보였다.
너무 오랫동안 머물면 무료하고 심심해서 나같이 방랑벽이 있는 여행자에겐 적당히 며칠 머물면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바로 홉스골이 아닐까 싶다.
사실, 몽골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던 많은 사람들의 여행기로 인해 홉스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단지 환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주보게 된 홉스골의 풍경은 그 환상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그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아름드리 낙엽송들이 여지없이 잘려나간 그 자리엔 밑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렇듯  잘려나간 나무들은 대부분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이동 중에 묵었던 게르들의 마당엔 으례 땔감들로 쓰일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런 땔감들은 단지 관광객들의 안락한 잠자리를 보충해 줄 용도로만 사용되고 버려지는 소모품들이었다.
민둥산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날카롭게 잘려져 나간 나무의 밑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선 어떤 희생이라도 불사해야 겠지만 그로 인해 먼 훗날, 그들이 치를 재앙의 댓가는 너무 가혹하리라.


하늘은 어느새 짙은 먹구름으로 덮히고 말았다.
인적조차 끊긴 홉스골은 적막에 빠져들었다.
문득, 옆에 있던 야산 위로 오르고 싶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홉스골도 좋긴 하지만 약간 평면적인 느낌 때문에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이곳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싹텄다.

 




































 

 

그렇게 산을 올랐다.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가팔라서 금새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하긴, 만만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난관을 만들어 왔었던가.
세상은 만만하게 대할 어떤 것도 없다.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오르막을 오르니 쌓여던 피곤 때문인지 몇 걸음 오르지도 못해서 숨을 골라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초입 쪽의 엉성한 숲과는 달리 위로 오르면 오를 수록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은 태고적의 모습을 그대로 띄고 있었다.
짙은 숲이라서 그런지 곳곳엔 누런 이끼들이 말라가고 있었고 떨어져 나간 큰 나뭇가지들이 곧잘 진로를 막기는 했지만 말이다.
낙엽 때문에 숨겨진 썩은 나뭇가지를 밟아 몇 번이나 미끄러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힘겨운 산행 끝에 마침내 꼭대기에 올랐다.
우리가 서성였던 홉스골 호수 주변 전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대단한 장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힘겹게 올랐던 것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해줄 만큼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옥색을 띈 물빛과 노랑빛으로 물들어가는 숲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흥건하게 젖은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날이 흐리고 뿌연 대기 때문에 멀리까지 조망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좋은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시간도 잊었고 상념도 잊었다.
어느새 거친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오로지 혼자가 되었다는 그 야릇한 느낌.
그건 외로움도 아닌, 두려움도 아닌, 또한 공포도 아닌...
단지, 그런 느낌이었다.



야크들이 길을 막아섰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녀석들은 꽤나 건장해 보였다.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큰 눈만 꿈뻑대며 경계를 할 뿐 풀을 뜯는 작업을 멈추진 않았다.
빨간 지붕과 푸른 숲이 배경이 되서 그런지 느낌이 더욱 알프스에 온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요들송의 기교한 음을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적이 끊긴 홉스골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운은 없었다.
하긴 몽골의 초원에서는 그게 어디든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호수가에서 뭔가 꿈틀대길래 바라봤더니 물을 뜨러 온 아이들이었다.









 








 

 


 


금새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성수기가 끝난 홉스골의 9월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데다 하늘마저 잔뜩 구겨져 있어 마음을 침잠하게 한다.
산등선을 타고 바람이 불면 노랗게 물든 낙엽송의 옅은 잎사귀들이 우두둑거리며 마른 기침을 하듯 떨어진다.
흐린 9월의 홉스골은 춥고 스산한데다 인적마저 뚝 끊겨서 홀로 된 여행자를 서글프게 한다.
몽골스럽지 않은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는 홉스골 호수...
길을 잃고 혼자 오른 작은 산등성이에서 코발트빛의 아름다운 물색을 가슴에 담는다.
빛이 있었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풍경이겠지만 빛이 없어서 오히려 처연하고 허전한 색감들이 시선 속으로 슬프게 투영된다.


이 넓고 낯선 땅.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말달리던 더없이 넓은 초원의 한 끝에 그렇게 섰다.
몇 날 며칠을 달려도 볼 것이라곤 빛 바란 허허벌판에서 잔뜩 짊어진 외로움의 무게와 초원을 가르는 낯선 바람밖에 없던 여행.
아무리 거친 여행이라 할 지라도 통과의례처럼 거치고 가야 할 삶의 한 단면이라고 오랫동안 신조처럼 맹신하곤 했지만,
이번 여행은 유독 어려운 여행이 될 것임을 초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깨닫게 된다.

스스로 다독이며 힘을 돋궈 나가긴 했어도 마음을 나눌 다정한 동무가 곁에 없다는 현실만로 더욱 지치고 우울해진 것 같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이런 현실을 더욱 조장하고, 때론 마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지도 모른다.
따뜻한 한 줌의 햇살이 그리운데, 바람은 너무 거칠고 차가운데다 대지는 황폐할 정도로 메말라서 그래서 모든 것이 무겁다.

성수기가 끝난 넓은 홉스골 호수에선 여행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최대 여행지라 일컫는 홉스골에서조차 사람을 만나기 힘든다는 건 몽골의 어디에서나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말과도 같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초원은 넓은데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희박한 몽골 땅...
그나마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을 예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찾아온  홉스골에서는 여행자는 커녕 현지인들조차 없다.
게다가 한참동안 길을 잃고 헤매였으니 순간적인 두려움과 초조함에 휩쌓인 뒤라 그런지 마음은 더욱 상실감에 휩감긴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긴 했지만 녀석들의 표정은 의아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런 녀석들의 사진을 담는다. 낮게 구름이 드리운 탓에 셔터스피드가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iso를 올리고는 녀석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자 새삼스러운지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짧은 녀석들과의 만남.
녀석들의 따뜻한 미소 때문에 오히려 건조해진 가슴 속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다.


짧은 만남이지만, 여운은 길고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단지 사진 한 장 찍은 게 전부일 지 모르는 그런 만남이지만, 여행의 우연성은 이래서 더욱 빛을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헤마다 우연히 만난 아이들의 그 환한 미소...
어쩌면 잃어버린 내 어린 날의 꿈들이 아이들의 미소 속에 투영되어 있던 건 아니었는지...
 



 


 

 

 












 

 

수많은 차들이 지나갔을 흔적~!
며칠 전에 비가 왔는지 도로는 진창처럼 질어서 걷기조차 불편했다.
그나마, 도로 한 켠은 말라 있어서 차가 지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홉스골의 숲을 그렇게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늦가을의 노란 낙엽송의 색감이 예쁘게 LCD에 피어올랐다.
전체를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부분을 보는 것도 즐겁다.
가을은 그렇게 홉스골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