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노란 가을 숲을 거닐다.



 







화이트 레이크(차강누르)의 새벽.

몽골여행 중엔 언제나 그랬지만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났다.

대충 촬영장비를 챙기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아직도 어둠이 켠켠히 자리 잡은 이름 모를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보면...
나처럼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나온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점점 먼동이 트는 동쪽 하늘.

쪽빛으로 물들어 가는 성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삼각대를 설치했고 한동안 해가 뜨길 기다렸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기가 너무 깨끗해서 그런지 해가 뜰 무렵의 태양빛은 너무 강렬했다.

낮게 구름이라도 깔려 있으면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을텐데 이 날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강한 태양빛 때문에 극심한 노출차이가 생겼다.
필터를 끼워 최대한 노출차이를 극복하려 했지만 강한 빛은 오히려 플레어를 발생시키고 말았다.
하긴, 날마다 찍는 일출 사진 하나 못 건지면 어떤가.
몽골의 차강누르에서 산뜻한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어느새 차강누르에 아침이 밝았다.
얕은 산 위를 비치는 강렬한 아침 햇살이 이 땅 위에 원기를 내려주고 있었다.

닫혀있는 게르와 느릿하게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야크.

새로운 일상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푸르공(러시아제 승합차) 두 대.
오른쪽이 우리가 타고 온 푸르공이다.

관광객을 실은 푸르공은 정면과 오른쪽에 "tourist"라는 붙여놓은 스티커를 부착해놓았다.





 


 





낮게 드리워진 햇살 때문에 길을 따라 이어진 전신줄이 예쁘게 빛을 받았다.

굉장한 먼지를 날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차량, 그리고 게르 몇 채.


우리가 묵은 게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침풍경이다.





 

 

 

 

 

 

 

 

 

 

 

 

 

 

 

 

 

 

 

 

 

 

 

 

 

 

 

 

 

 

 

 

 

 







아름다운 화이트 레이크를 떠나, 우리의 여행은 계속 이어졌다.

화이트 레이트가 아름답긴 했지만, 번잡한 도시에서 온 우리의 시선으로는 많이 심심해 보였다.
관광철도 끝이 나서 그런지, 이곳을 찾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화이트 레이크를 빙 돌아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살얼음이 낀 개울을 보자 어젯밤의 그 혹독했던 추위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제 갓 여름의 문턱을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몽골의 밤은 이미 한국의 겨울 날씨처럼 추웠다.

며칠동안 허허로운 벌판만 달렸는데 이 날은 어찌된 건지  구불구불한 산길만 오르내렸다.

민둥산이 아니래서 다행이었다.
햇살을 받은 노란 낙엽송들이 마치 북미의 그것처럼 이국적이었다.


우리가 왔던 그 길을 따라 전봇대들이 서 있었고 몇 가닥 전신줄이 계속 이어졌다.

소통의 길~!


게르 한 채 찾아보기 힘든 산길이었지만,
분명히 길은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누군가의 왕래는 비록, 드문드문이었지만 이어지고 있었다.
그게 삶인 것처럼~

야트마한 야산으로 올라갔다.

한 달음에 올랐더니, 숨이 목젖까지 차고 올랐다.
우리를 태운 푸르공이 느릿하게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가을빛이 가득한 산 허리춤을 끼고 오르는 그 모습이 마치 거북이 등껍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느리긴 했어도 기어코 오르고 마는 그 대찬 근성.

거친 바람의 영향 때문일까.

산에 난 나무들이 한쪽 기슭에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몽골의 산은 대부분이 민둥산이었는데 한 쪽 기슭에만 듬성듬성 숲을 이룬 모습을 보니,
마치 대머리를 연상시켜 웃음이 나왔다.

적당하게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낙엽송의 노란색이 유달리 도드라졌다.

가을이 만연하고 있는 몽골.
아마도 이 짧은 가을이 지나면 금새 겨울이 올 것이다.
혹독하고 힘든 계절일텐데도
몽골인들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숙명처럼 그걸 받아들일 것이다.








 

 















































 

대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하늘이 너무 파랗다.
그 파란 하늘 속에 마치 유영하듯 떠 있는 낮달.
몽골의 독특한 나무 전신줄과 함께 담아보았다.

고운 빛의 입자들이 낙엽송이 가득한 숲 위로 골고루 뿌려지고 있었다.

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은근한 명암과 적당한 광량이 주는 이 느낌.
조금은 뭔가 모르게 부족한 풍경이긴 했어도 나는 오랜만에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고,
부족한 내 표현법으로나마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몽골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풍경은  캐나다의 국립공원에서나 만날 줄 알았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진 숲이었다.

바람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신기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우리는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걸어가면서 찍고 구경하고...
그야말로 이른 가을을 누구보다 빨리 즐기고 있던 셈이었다.


"잉케~! 너무 아름다워"

그와 담배를 나눠 피우면서도 나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며 '원더풀, 뷰티펄'을 연발했다.
그럴 때마다 잉케는 예의 그 수줍은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뱃불 끌 때, 조심하세요. 산불이 날 수도 있어요."

건조한 날씨 때문에 곧잘 산불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럼, 이 아름다운 곳이 화마로 인해 순식간에 폐허가 되면 안되지.
햇빛을 받아 두드러지게 빛나는 노란숲~!

다시 푸르공을 타고 우리는 음미하듯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오른손을 바깥으로 내밀어 은근히 불어오는 바람과 적당한 빛을 느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 사이를 미끄러지듯 흘렀다.
아무런 인적도 없는 그 길을 내려오면서 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산길을 벗어나자 계곡 사이로 좁은 벌판이 펼쳐졌다.
게르도 몇 채 보였고 작은 마을도 나타났다.
다시, 사람들의 공간으로 접어든 모양이었다.
길을 벗어난 푸르공이 개울 옆 작은 숲에서 멈춰섰다.
잠시동안의 휴식이었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콧노래가 흥얼거리며 새어나왔다.

몽골의 독특한 지형들을 가까이에서 구경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겨웠다.


멀리서 한 목동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목동이 있는 풍경은, 그 동안 허전한 풍경만 담았던 우리 일행의 아쉬움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그 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진은 빛이 났다.
사진의 최종 주제는 곧 '사람'으로 귀결된다는 오래전부터 듣고 있지 않았던가.
세상엔 사람만큼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낼 수 있는 요소도 없다고 한다.
사람은 곧 사진의 한 표현이며, 주제요, 소재인 셈이다.

사람에 대한 사진을 한동안 포기하고 있었다.

늘, 사람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걸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핑계일 수 있지만...


언덕을 오르다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우리를 그제서야 본 모양이었다.
그 역시 사람이 그립긴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척박한 오지에서 이방인을 만나기란 그들 역시 쉽지 않은 일일테니 말이다.
언덕을 쏜살같이 내려오는가 싶더니 개울을 첨벙첨벙 가로 지르며 그가 우리에게로 왔다.
물살을 튀기며 힘있게 달려오는 그의 모습~.
아직 얼굴엔 앳띤 티가 역력한 그는 몽골의 후예답게 당차 보였다.

'센베노'

인사를 건내도 그저 웃기만 했다.

내가 만난 많은 몽골인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인사를 건내도, 담배를 건내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만 날릴 뿐이었다.

젊은 그도 그랬다.

손짓으로, 몸짓으로 '다시 한 번, 개울을 가로질러 달려서 와줄 수 없냐'고 묻자,
그는 그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로 화답을 하며, 힘차게 말을 몰았다.
'Ai servo. 연사 기능을' 이용해서 몇 컷 날리긴 했지만,
5d의 연사 한계는 결국 초당 3 frame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청년에게 담배를 건내주고는 불을 붙여줬다.

그리고 보니 몽골 남자들과의 첫 관계는 늘 담배로 시작되는 셈이다.
담배를 같이 피기는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 서로 멋적어서 그런지,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그저 미소만 날릴 뿐이었다.
잉케라도 옆에 있었다면  통역이라도 요청하겠지만
그는 열심히 차량 세차중이라 부를 처지도 안되었다.

그에게 줄 만만한 선물이 없었다.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니 피던 담배갑이 나왔다.
방금 뜯었으니 당분간 피기에는 부족하진 않으리라.
모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준 그에게 건내는, 작고 성의없는 선물이었지만...
의외로 표정이 환해졌다.









 




 

아침 일찍, 차강누르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풍성한 아침, 저녁 식사와는 달리 점심식사는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해야 했다.

아는 메뉴가 달리 없으니 주문하는 것도 늘 비슷했다.
볶음밥이 아니면 고기와 야채로 볶은 것에다가 옆에 맨밥을 살짝 올려놓은 그런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에서 음식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60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먹는 시간은 그 날의 입맛에 따라 틀려지지만 5~10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렇게 들린 어느 작은 동네였다.

잉케가 동네 이름을 가르켜주긴 했지만 독특하고 억센 발음 때문에 금방 잊어버렸다.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저씨였다.
늘 표정없는 몽골 남자들만 만나다 이렇게 환한 얼굴로 환대해주는 아저씨를 보니 오히려 낯설었다.
그 아저씨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을 필두로 해서 이 낯선 도시에 대한 스케치 작업에 들어갔다.






 



 


 

 

전통의상을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멀리서 몇 컷 담았는데,
점점 내 앞으로 다가서면서 짐짓 저런 포즈를 취하신다.
마치 얼마 전 시골 어르신네가 나오시던 TV의 한 프로그램이 연상됐다.
도회로 나간 아들, 딸, 손자 들에게 안부인사를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딱 그 포즈가 되셨다.

'오히려 자연스런 포즈가 좋겠는데요.'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lcd로 촬영된 사진을 보여드리자, 안경쓰신 할머니가 대뜸 사진을 뽑아 달라고 하신다.
그렇잖아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아 많이 아쉬웠는데...
이런 사정 애기를 제대로 해드릴 수가 없으니, 그 부분이 더욱 아쉬웠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가게에서 면 종류를 사오던 여자아이를 세워놓고 찍었다

라면인가 싶어 자세히 봉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봉지에 made in china라고 씌여있는 영문자 말고는 온통 키릴 문자로 된 설명밖에 없어서,
정확하게 그 면이 어떤 맛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무튼 '맛있냐?'라는 물음에 '맛있어요'라고 손짓하는 걸 보면 그들 입맛에 맛는 면종류인 듯 했다.






 


 

 

 

 

 

 

 

 

 

 

 

 

 





 

 

 

집들의 색감이 너무 예뻐서 찍었다.
낡고 오래된 문과 간판들인데다, 이미 세월의 흐름 때문에 원래 제 색감을 많이 잃어가긴 했어도,
파란, 녹색 등의 색감은 꽤 예뻤다.

늘 봐오던, 푸른 하늘과 푸른 초원이라서 그런지 파란색과 초록색에 대한 감각은 탁월해 보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어차피 인생은 길 위의 삶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자신만의 몫.
제대로 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지,
지난 경험으로 겨우 유추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길은 흐릿한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불투명하며 혼란스럽다.

내 몸에 달라붙는 수많은 갈등과 번민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내 삶의 방향에 대한 기나긴 물음에서 시작된 방황은 유년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었던 셈이다.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그 길을 따라 길을 나섰다.

다이나믹한 모험은 없을 지라도, 여전히 그 길 끝에 펼쳐질 새로운 만남이 궁금해졌다.
괜히 마음만 조급해진다.

 

 

 





 



 

푸르공이 지나가자 한가롭게 길을 가든 양 무리가 기겁을 하며 도망치고 있다.
꼬리를 실룩거리며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한참이나 웃었다.













잠시동안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시간.

우리가 밟아온 그 길을 돌아봤다.

언제 저만큼 지나쳐 왔지, 과연 그 길을 달려오긴 했을까.
조금 전에 우리를 스쳐갔던 차가 마른 먼지를 토해내며 하오(下午)의 벌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하늘은 한없이 푸르렀고 낙엽송은 노랗게 말라가는 시간들.
바람도 잠시 쉬고 가는 그 언덕에서 다시 파란 상념에 잠겼다.






 



푸르공 앞에 선 잉케가 노랗게 물들고 있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삶은 늘 이렇겠지.

작은 푸르공을 타고 얼마나 이 길을 달렸을까.
여행자인 우리에겐 초행길이겠지만,
그에겐 너무 익숙해서 눈 감고도 달릴 수 있는 길이리라.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그는 얼마나 번민하고 있을까.




 





저 언덕을 넘어 조금만 더 가다보면,
오늘의 우리의 행선지인 무릉에 도착할 것이다.

얼마나 무료한 시간을 또 차에서 보내야 할까.

몽골여행은 끊임없는 이동의 연속이다.
그나마, 마을이라도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이런 황량한 벌판 위에선 그저...그저...
상념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바람과 나누는 애기도 어느새 시들해졌다.
상념에 젖지 않으면 달리 할 게 없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샤워 생각이 간절했다.
인근에서 제법 큰 도시라는 무릉이 그래서 그리웠는 지 모른다.
그나마, 인근에서 제법 큰 도시라는 무릉에 가면 호텔에서 1박 할 계획이었다.
게르에서 낭만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물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게 가장 큰 흠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이빨 닦고 물 몇 점이나 물티슈 등을 이용해서 얼굴을 닦아내는 시늉만 하는 게 전부였다.

며칠동안 한 번도 머리를 감지도 제대로 된 세수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날씨가 건조한 탓인지, 그렇게 씻지 않았음에도 전혀 가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대했던 샤워에 대한 꿈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렇게 찾아간 호텔이었는데 이번엔 빈방이 없단다.
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우리 여행의 한 숙명이라면 그걸 따를 수밖에는...

어느새 해거름이 지고 있었다.
제법 구름이 그럴싸한 게 꽤 멋진 일몰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찾아간 어느 게르 앞~!
우리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무릉의 저녁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