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몽골로의 가을여행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몽골에선 그런 즐거움이 애뜻함으로 다가온다.
몽골의 황량한 벌판을 달리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지기 마련.

봐도 봐도 끝없는 벌판~!

드문드문 나타나는 게르들.
그리고, 소리없이 스쳐가는 바람들...


체체르렉(Tsetserleg)에 도착했다.

인구 10만 명의 아르항가이 아이막의 주도(州道)로, 인구는 17,0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삼면이 얕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그런지, 그동안 느꼈던 벌판의 황량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를 반긴 건 다름아닌  그곳의 사람들이었다.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페어필드(Fair field)'라는 식당 앞에 푸르공이 멈췄다.

낯선 몽골에서 페어필드는 색다른 공간이었다.
이 척박한 땅에 수세식 좌변기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지만,
서양인들로 꽉 찬 레스토랑과 따뜻한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잠시동안이지만, 말젖 냄새가 풀풀 풍기는 컵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서양인들처럼 감자튀김과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이었다.
어느새 맑던 하늘은 옅은 구름으로 뒤덮히고 있었다.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마을로 향하는 아이들을 무작정 따라 나섰다.
몽골의 어느 도회를 가더라도, 가옥구조와 동네모습은 사진처럼 정내미 떨어지는 사각형이었다.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가옥들의 생김새는 뚜렷한 개성도 없었고, 볼품마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채로움도 낯설어 좋기만 했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기에 가장 편한 대상은 어린이였다.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가 지나가길래, 부탁했더니... 몹시 부끄러워 한다.
여전히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아이들... 아이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몽골이라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 도랑을 따라 아줌마와 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빨래를 하고, 끝마친 빨래는 탈탈 털어 그 앞에 펼쳐놓고 말렸다.
윗도리와 바지, 양말 등을 입는 순서대로 펼쳐놓은 걸 보니, 앙증맞았다.
아줌마에게 가볍게 목례를 드린 뒤, 빨랫감만 찍었다.

사실,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가서질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이야, 워낙 친화력이 강하다 보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늘 표정없이 굳은 얼굴의 몽골인들에게 다가가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여전히 용기가 필요했다.


이번엔 용기에 물을 담는 여자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센베노"라고 인사하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줬다.
눈가에선 부끄러움이 듬성듬성 묻어났다.
'이 물을 마시는 거야?'
나는 혹시나 싶어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다행히 그렇지 않단다. 가벼운 빨래를 할 때 사용할 물이라며, 또 그렇게 시늉을 해준다.
재밌는 언어 표현이며,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다시, '사진 찍어줄까'라고 물으니, 서로 바로보며 배시시 웃었다.
거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도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이들의 미소가 파인더 속으로 한 웅큼 들어왔다.
한국 아이들을 꼭 빼닮은 몽골 아이들의 수줍은 미소.

아이들의 모습에선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강한 햇살과 바람, 가혹한 추위 때문에 고와야 할 아이의 피부는 많이 거칠어져 있었지만,
이방인을 향한 그 순수한 눈빛만큼은 깊고 맑아 보였다.
따로 줄만한 선물이 없어서, 가지고 있던 사탕을 한웅큼씩 건냈다.

LCD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는다.
사탕만큼 달콤한 아이들의 그 환한 웃음.
힘든 여정이었지만, 머리 속이 박하사탕처럼 맑아지는 느낌이다.








 

 

 

 

 

 

 

 

 

 

 

 

 

 

 

 

 

 

 

 

 

 

 

 

 

 

 

 

 

 

 

 

 

 

 

 

 

 





체체르렉을 떠날 무렵, 만난 한 부녀.
그의 남루한 행색에서도 가난의 흔적이 엿보였다.
며칠동안 씻지 않았는지 꾀죄죄하긴 했지만, 낯선 이방인들에겐 호의적이었다.
가지고 있던 사탕과 초코렛 등을 그의 딸에게 건내자 그가 대뜸 받아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그렇게 체체르렉을 떠났다.
언덕을 오르니, 체체르렉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조수석의 창문을 열고 전경을 담으려니 좋지 않은 도로여건 때문에 차가 심하게 요동쳤다.

옆에 앉은 잉케가 그걸 눈치챘는지, 서행을 하며 사진을 찍으란다.
잉케도 어느새 우리에게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매번, 차를 정차시켜 사진을 찍었으니, 일정한 시간에 목적지에 가야 하는 운전사의 입장에선 못마땅했으리라.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건 사진이었다.
우리는 몽골의 아름다운 산하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있는 몽골리안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고...
그게 우리의 몽골 방문 목적이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의 목적과 잉케의 입장이 처음엔 엇갈렸던 게 사실이지만,

잉케도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며, 마음을 열고 있었다.
 
몽골은 이미 가을로 치닫는 중이었다.
예쁜 노란색으로 물들고 있는 숲들과 그 앞에서 살찌우고 있는 말들....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었다.

몽골리안들은 다가올 기나긴 겨울을 위해 한창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레 가득 건초를 담아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그들이 모습이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려 문득 시선을 끌었다.
노란 색으로 물든 수풀 사이로 소가 끄는 수레를 몰고 가는 두 남자.
자칫 이방인들의 시선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쯤으로 묘사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들은 긴 겨울을 대비한 치열한 생존의 모습이었으리라.


몽골의 겨울은 꽤 길고 춥다고 했다.
이제 9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초원의 밤은 한국의 겨울만큼이나 춥고 메말랐다.
그들의 유일한 소득원인 가축들을 위해 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인적조차 없는 그런 벌판의 길 위에서,
가끔 고장난 차를 세워놓고 손을 흔드는 몽골리안들을 만날 수 있다.
성품이 착한 잉케는 그들을 결코 마다하지 않고, 매번 차를 세워서 고장난 차를 살폈다.
차를 세울 때마다,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니, 우리 역시 그것 때문에 불편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잉케와 우리 일행들 사이에선 어느새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비록, 잉케가 그들을 돕기는 했지만, 오래 되어 퍼진 차를 제대로 수리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저, 살펴봐주고, 조언을 해주는 정도...
잉케가 그렇게 고장난 차를 살피고 있으면, 그 호기를 틈 타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이 모녀도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었다.
한 눈에 봐도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그야말로 지극정성임을 알 수 있었다.
지극한 모정은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한 모양이다.

 

 



 











 







우리의 푸르공은 그들을 뒤로 하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벌판을 가로 질렀고, 얕은 개울을 건넜고, 똑같은 풍경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벌판 속으로 몇 시간을  달렸다.
가끔씩 잉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시끄러운 엔진 소리 때문에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풍경을 보는 것도 무료하면, 얼풋 선잠을 자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이제 익숙해져 버린 풍경을 보는데 보냈다.

잉케와 나는 세 개의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주로 영어로 소통을 나누긴 했지만, 잉케나 나나 그다지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 그가 사용하는 한국말,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몸짓언어까지 총동원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내면적인 깊은 애기까지 나누기는 힘들었지만,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덴 불편함이 없었다.
휴식을 취할 때마다 잉케는 차량을 손질했고, 나는 그의 곁에서 담배를 나눠피우며 한담을 즐겼다.
잉케와의 어색함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잠시, 용암지대가 깍여서 형성된 출룻계곡(Chuluut canyon)에 차를 세웠다.
계곡 근처로 다가가니, 그 깊이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었다.


어느새 어둠이 사방에 깔리고 있었다.
아직도 목적지인 차강누르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잉케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저녁노을을 찍을만한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게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고 잉케는 도로를 벗어나 초원을 가로 질러 가더니 낯선 게르 앞에 차를 세웠다.

낯선 이방인의 등장으로 늑대처럼 생긴 커다란 몽골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그렇게 게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몽골의 석양을 카메라에 담았다.
잉케의 호의적인 배려와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도 호의적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던 게르의 주인,
그 마음씨는 몽골의 석양만큼 아름다웠다.


서쪽 하늘에 장관을 이룬 노을의 흔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 아름다움을 잠시 접어둔 채, 푸르공은 이미 짙은 어둠이 장악해버린  길을 조금씩 열며 달렸다.
달빛이 없어서 그런지 어둠은 유난히 짙었다.
노을이 물러난 그 자리엔, 성그런 별빛이 도드라지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 때문에 제대로 된 길인지 분간도 안가는데도 불구하고, 잉케는 익숙하게 푸르공을 몰았다.
짙은 어둠 속에 우뚝 쏟은 봉우리들의 실루엣이 낮시간 동안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듯 했다.
"Volcano, Boom~!"
잉케는 이 지역이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되었다며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어둠을 뚫고, 마침내 또 하루 유숙할 차강누르의 한 게르에 도착했다.
차강누르(white lake)는 몽골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의 하나로, 입구인 Tariat(타리앗)에서 1인당 3,000 투그릭의 입장료를 받는데,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다행히 매표원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게르 앞에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거치했다.
칠흑같이 짙은 어둠이라, 별빛이 유난히 낮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15분 정도의 노출로 어느 정도 별의 궤적을 담기는 했지만너무 어두워 수평을 잡는데도 실패한데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단점 때문에 금새 밧데리가 방전되고 말았다.

여유 밧데리를 5개 정도 챙겨오긴 했지만, 중간중간 충전을 못해 가동할 수 있는 밧데리는 이제 몇 개 남지도 않았다.
적당한 곳에서 충전을 시키지 못하면 사진조차 못 찍을 판이었다.

차강누르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