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떠난 몽골여행 #4 여행의 즐거움










여행은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얻기위해 여행은, 지금까지 축적된 고정관념과 인습을 벗는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벗지않고, 늘 고정된 시선으로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 든다면 결국은 유쾌하지 못한 경험만 남길 뿐이다.

몽골에 온 후 지금까지의 내가 꼭 그랬다.
닫힌 생각,  움츠린 경계심, 유연(flexible)하지 못한 성격에서 오는 비뚤어진 시선...
그래서, 목동들에게 접근도 못하고 내내 주변만 맴돌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잔뜩 주눅든 긴장이 스르르 풀리자 밤새 쌓인 피곤이 또 몰려왔다.
마음이란 게 꼭 이런 식이다.
마음은 스스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경계들을 수시로 오간다.

단정지으면 지을 수록 스스로를 옮아매는 올가미의 고통은 극에 달하지만 비우면 비울수록 솜털처럼 가벼워지는게 또 마음이다.

끊임없이 비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자의 진정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열악한 포장도로가 계속 어느순간 끊기는가 싶더니 우리가 탄 푸르공은 어느새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달릴때마다 건조한 대기에서 뿜어내는  분말같은 먼지가 차 뒤로 뽀얗게 일었다.
오히려 비포장도로가 달리기엔 수월했다.
패인 부분도 별로 없는데다 덜컹거림도 아까보단 많이 잦아들었다.

꿈틀대는 뱀처럼 몇 갈래로 합쳐졌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초원의 길들은 아마도 차들이 만든 모양이었다.
전신줄을 따라, 차륜들이 만들어 낸 흔적같은 길들이 몽골의 역사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돌면서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한 무리의 말들이 보이는 곳에서 또 차를 세웠다.
오후 내내 우리를 따라온 태양이 어느새 서녘하늘에 길게 몸을 누인채 통념적인 붉은 빛을 빚고 있었다.
질주하는 말들이 일으키는 뽀얀 먼지가 미지근한 햇살에 투영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사처럼 카메라를 둘러매고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는 지극히 몽골스러운 풍광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허허로운 황야에서 이보다 더 멋진 피사체가 어디 있을까.
말馬이 있고 역광인데다 뛸 때마다 녀석들이 내는 먼지에 가끔 웅덩이에 비쳐지는 반영까지 담을 수 있으니 모든 조건이 탁탁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늦은 하오의 태양이 만들어내는 붉은 햇살까지 일조를 하니 어설픈 아마추어 사진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걸음이라도 다가서기라도 하면 말들은  '움찔'거리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짧은 다리로 기여히 쫓아가서 무리를 몇 갈래로 쪼개놓은 뒤에 즐기듯이 카메라에 담았다.
즐거운 사진찍기는 그야말로 '타임 킬러time killer'와 같아서 시간은 금새 훌쩍 흘렀다.

 

저 멀리 말을 탄 2명의 목동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용하던 말 무리들을 몇 갈래로 찢어놓는 등 난동(?)을 부렸으니 뭔가 싶어 궁금했을 것이다.
아까의 실패를 만회하고 조금이나마 그들 앞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태양을 등진 채 다가오는 그들의 실루엣이 주는 위압감과 궂고 험상궂은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번에는 좀 더 당당해지고 싶었다.
 

"센베노"(몽골의 인삿말)

다가서며 인사를 건내자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중년의 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년처럼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내 걱정이 얼마나 기우였는 지를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무엇이든지 시도도 않은 채 걱정부터 늘어놓는 내 선입견이 너무  어설퍼 보여서 더욱 그랬다.  


마음을 열자 그렇게 그들이 다가왔다.
그들에게 담배를 건냈고 불을 붙여줬다.
서스럼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 그들을 보니 정말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다소 도회에서 살고 있는 탓에 비교적 뽀얀 피부를 가진 우리의 외모와 굳이 비교하자면,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와 평편한 얼굴에 도드라지는 광대뼈를 가진 그들이지만 따져서 보지 않으면 한국인들과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이웃사촌을 대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말에서 내린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웃음으로 그들 역시 우리를 환영한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원래의 색깔이 어땠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꾀죄죄한  전통의상 '델'을 입고 투박하고 찡그린 인상의 사내들이었지만  말수는 적었다. 가지고 있는 물병을 건내자 달게 물을 마신 사내는 이내 다른 사내에게 남은 물을 넘겼다.
목이 말랐던 모양이었다. 목이 마른만큼 사람에 대한 갈증도 심했으리라. 바람만 존재하는 이 넓은 광야에서 그들은 얼마나 춥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모든 것이 너무 허허롭고 외로워서  미친듯이 고독에 몸부림칠 것 같은 이 넓고 메마른 땅에서의 그들의 삶을...
오랫동안의 도회 생활에 익숙한 내겐  비현실적인 몽상처럼 느껴져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처음 물을 마셨던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보자기에 곱게 싼 뭔가를 꺼냈다. 보자기를 푸니 작은 병이 나왔고 뚜껑을 열어 내 코에 살짝 내밀었다. 몽골인들이 피운다는 코담배였다. 바람같이 알싸하고 시원한 박하냄새가 났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말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웃음만으로 화답해야 했다.
옆에 앉은 다른 목동은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흥미롭다는 듯 눈길이 카메라를 향해 쏠리고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그 목동을 향해 몇 컷을 날린 뒤 LCD창을 통해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자 아까보다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자신의 모습을 찍어서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보는 것처럼 마냥 신기한 눈치였다.

번갈아 가며 두 목동들을 찍어주자 이번엔 서로 사진을 보여달라고 난리였다.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서로 몽골말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다시 한 번 LCD창을 가리키면서 뒤로 넘어갈 듯 거칠게 웃어재꼈다.
조금전까지 말없이 담배만 태우며 먼 초원을 응시하던 조용한 초원의 사내들은 이내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여자아이들마냥 수다스러워졌다. 초원에서만 생활하는 유목민들인 그들에게는 적잖은 문화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말은 통하진 않았지만 담배 한 개피와 사진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교감하고 있었다.
그들의 호기로운 웃음소리가 메마르고 서늘했던 초원 위를 은빛구슬처럼 맑게 굴러갔다.
단지 안타까운 건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건내 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시때때로 초원을 떠돌며 생활해야 하는 그들에게 주소같은 게 있을리 만무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달해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의 환한 얼굴과 안타까운 내 마음이 묘하게 클로즈업된  평행선 상에서 위태롭게 줄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쉽게 이들과 헤어지고 막 해거름이 지기 직전에 다시 한 번 다른 목동들을 만났다.
'센베노'로 시작된 만남은 담배 한 개피를 건내주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과장없는 표정을 카메라에 담은 뒤 LCD로 사진을 확인시켜주는 식의 정해진 수순대로의 레파토리가 전개됐다. (이런 수순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 짐이 될 것 같아서 두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너무 아쉬웠다.
사진이 귀한 몽골에서,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서 선물로 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긴한데 투바디two body 사용의 불편함과 겨울 침낭을 넣으면서 비롯된 비대해진 배낭의 부피 때문에 목록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렸었다. 여행 첫날부터 두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공백은 몽골여행 기간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에게 큰 의미가 될 귀중한 선물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사진하는 사람으로써 커다란 마음의 짐일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을 만나 소통하는 일은 나의 큰 즐거움이다. 비록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는 없지만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야 말로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난 관광지만 패턴처럼 도는 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인들과 조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행자를 봉이나 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장사치들과  접촉해서 끊임없이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고 때론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삐끼들과 거지아이들의 손을 과감하게 뿌리쳐야 하는 귀찮은 고통의 시간들도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과도 조건없이 순수한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 같다. 

뒷골목을 거닐다가 만나는 사람들이거나 어느 들판을 떠돌면서 만난 현지인들에겐 물질적인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우리네 시골의 느긋한 인심처럼 단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그저 반갑고 고맙기 때문에 때론 과분하기까지 한 살가운 친절을 베푼다. 받은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것은 그 흔한 인지상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담배 몇 개비, 생수 몇 개 정도의 선물로는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불과한 땜방식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초원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선물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나왔을 자연스런 생각의 발로였으리라. LCD창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들의 거친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내 사진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사진만 찍고 총총히 돌아서서 떠나버리고마는 초라한  이기주의가 너무 큰 모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무겁고 번거럽다는 이유 때문에 두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필요성이 그때처럼 절실했던 적은 없었다.
순수한 눈빛을 가진 사내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나는 철근같이 무거운 최책감을 가슴에 쓸어안고 돌아서야 했다.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기대했던 바양고비(알승하타사르헤)는 오전의 여권 해프닝과 오후의 잦은 사진찍기로 인한 지체로 이미 물건너 간 상태였다.
아쉽기는 했지만 두 번에 걸친 목동들과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해가 지고서도 1시간이나 훌쩍 지났지만 서쪽하늘의 붉은 기운은 여전히 뚜렷해서 장렬했던 노을의 뒷수습을 담당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 위로 감색과 남색Deep blue이 적절하게 그라데이션된 하늘빛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파란 하늘이 물러간 그 자리엔 별들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어둠은 이미 사위를 채우고 있었다.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초원은 우리가 탄 푸르공의 라이트 불빛 말고는 어떤 빛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도  잉케는 그의 질주를 한 번도 늦추거나 멈추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맞는 첫날의 감흥은 늘 새롭기 마련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여행 첫날의 긴장된 흥분으로 꽤나 긴 하루를 보냈다.
낯선 풍경을 접해서 그걸 카메라에 담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했으며 몽골의 냉냉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낀 감회는 남달랐다. 정신은 또렷하게 말똥거렸지만 여전히 사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자리 한 켠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의 여행일기는 늘 장황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우리의 첫 숙소인 하르호른의 투어리스트 게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온 몸에 덕지덕지 묻은 먼지가 피곤처럼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