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벳여행] 야크젖 짜는 티벳의 여인들




미국인 에디와 루얼까이 초원 일대를 택시로 둘러보기로 하고선 전날 호텔 측에 예약을 해놓았더니 
아침 9시가 되자 택시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새벽부터 서둘러 천장대를 다녀온 탓인지 아니면 흐린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몸은 눅진눅진한 피곤에 절여진 느낌이었다.
가급적이면 느리게 여행하는 것이 요즘 내 여행의 주된 모토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휴식없이 강행군으로 일관했던 여행 때문에 몸에 이상기류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머리는 하루정도 쉬는 게 어떠냐고 끊임없이 앙탈을 부리며 종용하는데도 몸이 먼저 반응하니 어쩔 수 없다.
아마도 꽤 힘든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싹텄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카메라 장비를 챙겨들었다.

원래 루얼까이 초원에서 가장 볼만하다고 하는 황하구곡 제1만은 저녁 무렵에  다녀오는 게 가장 좋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 때의 황하구곡은 굽이치는 물살 위로 번져가는 금빛 노을이 그대로 반영되어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서둔 것은 야크 젖을 짜는 티벳여인들을 꼭 한 번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택시는 루얼까이 초원의 반대편에 있는 궁빠라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벗어난 택시는 어느새 초원의 한 켠으로 느릿하게 달리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의 진동이 심하게 요동칠 때마다 왠지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어쩔 수 없는 여행체질인가 보다.
소금에 절여진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서는 꼼짝도 하기 싫던 몸은 어느새 여행이 주는 기대감에 시나브로 달궈져 갔다. 


초원의 한 티벳인의 텐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건 송아지만한 크기의 우람한 티벳개였다.
어찌나 이빨을 드러내놓고 사납게 짖는대는 지 오금이 찔끔거릴 정도였다.
그렇찮아도 기린산맥을 넘어오면서 만난 티벳인들의 행렬에서 갑자기 덤벼드는 티벳개들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애써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야크 젖짜는 일은 아침부터 시작된다는 호텔 사장의 이야기대로
티벳탄 텐트 주변은 묶여진 야크들에게서 젖을 짜고 있는 여인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나무통 가득히 젖을 채운 티벳여인이 큰 통으로 짠 젖을 옮기기 위해 나무통을 들고 걸어나오고 있다.

 

 

 

 

 

 

 

 

 

젖을 짜다가도 내가 카메라를 갖다대기만 하면 빤히 렌즈를 응시하는 젊은 티벳여인.

 

 

 

 

 

 

자신의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야크들,

 

 

 

 

 


 


너무 다가갔더니 이방인의 느닷없는 침입에 움찔 놀란 야크가 뒤를 돌아보고 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젊은 여인의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물어보니 이곳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일종의 '체험형 관광지'였던 셈.
얼마전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힘든 지역인만큼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한족 중심의 중국 관광객에게 각광을 받는 곳이라고 했다.
역시 많이 찍혀본 경험이 있는 그녀만의 자연스러운 포즈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젊은 여인의 시어머니 쯤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젖짜는 일에만 열중하다가도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갖다대는 자세라도 취하면 너무 태연하게 저런 표정이 나오셨다.
오랜 관록이 그대로 묻어나는 슈퍼스타급 표정...

랑무스의 여행사와 연결된 이런 식의 '체험관광'은 꽤 바람직한 여행의 한 형태라고 보여진다.
너무 관광지화 되어버린 곳에서는 너무 돈만 밝히는 상인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져서 애써 외면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만큼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티벳인들의 전통적인 삶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들에겐 자연스럽게 그들 삶을 가까이서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늘 척박한 땅에서 가난한 삶을 일궈 나가야 했던 티벳인들에겐  비록 약간이긴 하지만 경제적인 보탬이 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어미 야크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새끼 야크를 완력으로 끌어내고 있는 젊은 아낙.

야크의 젖을 짜기 위해서는 먼저 어미와 새끼를 떼어놓아야 한다.

떼어놓은 어미와 새끼들은 서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각각 발목에 줄을 묶어 놓는데

가끔 어미 젖이 그리운 새끼야크들과의 끈질긴 신경전 때문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물론 젖을 다 짠 어미야크들은 곧 새끼야크들과 감동어린 재회를 하게 된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

우연찮게 3대가 나란히 카메라의 앵글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할머니, 할머니의 그 할머니 때부터 시작된 젖짜는 일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어려 일손을 거들지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 역시 시간이 흘러 자라면 당연히 젖짜는 일을 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전통은 누적되고 거친 초원에서도 삶은 지속되는 모양이다.

 

사실, 저 어린 소녀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당연히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텐트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아이의 알몸(?)을 보고선 저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여자아이를 한참 찍고 있으니 멀리서 젖을 짜는 젊은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내가 사진을 찍든 말든 그런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아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티벳인들은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인 에디에게도 꽤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만큼은 서양인인 에디에게도 관심이 없다.

어린 그녀의 눈길은 그런 작은 관심 따위엔 이미 초월한 듯 먼 시선을 초원 쪽에 고정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텐트 주변의 초원에서 야크들의 젖짜는 일을 하고 있는 반면,

남자들은 넓은 초원으로 양떼를 몰고 나가 방목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초원의 끝에서 남자가 말을 타고 텐트쪽으로 다고오고 있었다.

 

 

 

 

 

혹독한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을 제외하면 이곳에 사는 티벳인들은 대부분 초원에 텐트를 치고 살아간다.

우리 눈에는 전혀 경계가 없는 일반적인  초원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이곳에도 엄연히 개인의 사유방목지가 따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서 꽤 먼 곳에 방목지가 있는 사람들은 야크나 당나귀에게 텐트나 온갖 짐을 다 싣고,

야크와 양, 소등을 몰고 이동하게 되는데 그 행렬이 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말린 야크똥이 수북히 쌓인 수레 근처에서 놀고 있는 아이.

말린 야크똥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품목이다.

나무가 거의 없는 이지역의 특성상 말린 야크똥은 뗄감으로 더없이 요긴하게 사용된다.

차를 타고 이 지역을 지나가다 보면 집집마다 높다랗게 쌓아놓은 야크똥을 볼 수 있는데, 긴 겨울동안 요긴하게 사용될 뗄감이기 때문이다.

 

 

 

 

 

 

 

혼자 노는 게 익숙한 지 아이는 혼자서도 잘 논다.

 

 

 

 

 

 

 텐트 주변의 일상

 

 

 

 

 

 

저 너머 마을이 바로 인근에서 가장 큰 궁빠라는 곳.

겨울이면 저 곳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날이 풀리는 봄이면 티벳인들은 자신들의 방목지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이곳은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 초원이기 때문에 봄은 그만큼 더딜 수 밖에 없고, 혹독한 겨울은 길 수밖에 없다.

7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해서 겉잠바를 입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가 없을 정도니...

그 곳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행자들에게 선물로 사탕을 받은 여자아이는 더욱 혼자놀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소를 탄 티벳탄 카우보이~!

 

 

 

 

 

 

 

 

텐트 앞에 놓여진 야크의 두개골.

아이는 그저 무심할 뿐이다.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대던 송아지만한 티벳 개.
녀석의 광기같은 극도의 경계심에 잔뜩 두려움을 가진 채 멀리서나마 녀석을 담았다.

 

 

 

 

 


햇살이 몇 줌 들어온 텐트 내부.

소소한 세간살이가 전부인 텐트 내부는 그야말로 유목민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전 몽골 여행 중에 들렀던 게르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곳에서도 삶도 지난하기는 마찬가지일테지만...

그때보다 한결 유연해진 내 시선을 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법 여행을 다닌 덕분에 이런 낯선 풍경도 이젠 익숙해져버려 어떤 감상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들고 온 말린 야크똥을 이용해 불을 붙이고 있는 할머니.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는 걸로 봐서는 불쏘시개로 사용한 야크똥은 완전하게 마르지 않은 모양이다.

 

 

 

 

 

 

너무 일상적인 티벳탄 텐트 안의 풍경.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서 야크젖을 끓이는 동안, 여자아이는 젊은 아빠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새 자욱한 연기가 천정으로 난 구멍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없다.

 

 

 

 

 

 

 


의외로 말린 야크똥의 화력은 상당히 센 편이었다.
야크젖이 담긴 솥을 꺼내자마자 강력한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걸 보면 그 화력이 얼마나 강한 지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을 찍어서 인화해줬다는 소문이 어느새 옆 텐트까지 옮겨간 모양이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남자아이가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서둘러 내게로 오고 있는 모습...

 

 


 



 


딱딱하게 마른 티벳탄 브레드와 함께 특유의 노린내가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야크젖을 그들이 에디에게 먼저 건냈을 때...
맛을 본 미국인 에디의 얼굴이 금새 마른 빵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탐탁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에디의 표정이 이렇게도 일그러지는 것일까.
그렇게 잔뜩 궁금증을 안고 있을 때 내게도 한 순배의 야크젖이 전달되었다.
냄새는 조금 비릿했지만 그렇게 못먹을만큼 비리거나 느끼하지도 않았다.
썩 땡기는 맛은 아니지만 오전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영 못 마실 맛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