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델리 빠하르간지에서 길을 잃다.




 





더웠다.

델리는 더웠다.
굽굽한 습기가 온몸에서 묻어나는, 그런 비열한 더위가 파리떼처럼 극성을 부리는 델리시내...
수많은 사람들의 허멀근 눈빛이 거리를 둥둥 떠다녔고, 연이은 차량의 경적소리가 지열이 후끈 달아오르는 도로를 가득 매웠다.
느닷없는 더위와 사람들의 물결에 놀라서 쏜살같이 달리는 오래된 택시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택시기사가 흘낏 돌아보며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빠하르간지"라고 대답했더니 못 알아듣는 시늉을 하며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워낙 외국인과 인도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사기성 강한 택시가 많은 인도인지라, 인도정부에서는 '프리페이드 택시'라는 특별한 교통시스템을 고안해서 운영하고 있다. 목적지까지의 비용을 매표부스에서 미리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지정된 장소에 정차해 있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가 적혀있는 영수증을 보여주면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시스템이다.

영수증을 미리 기사에게 줘버리면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 떨궈주기 때문에
꼭 목적지에 도착해서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한 다음 영수증을 건내줘야 하는데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지라 기사가 '빠하르간지'라고 말하자 확인도 않고 영수증을 덜컥 줘버리고 말았다.

수많은 인도인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굽굽한 더위와 함께 밀려드는 비릿한 하수구 냄새같은 악취,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도로는 뻘떡이 될만큼 질척거렸고 둘러맨 가방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다.  지나가는 외국인 여행자라도 보이면 길이라도 물어보겠는데, 할 일 없이 서 있는 수많은 인도남자들만 멀건히 서서 막 택시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훑어보고 있었다.


순간, 여기가 빠하르간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지만 이미 나를 내동뎅이친 택시는 멀찌감치 도망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리 둘러봐도, 저리 둘러봐도 그 큰 도로엔 수많은 사람들과 릭샤들과 소떼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을 뿐, 거리를 확인해주는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행색이 말끔해 보이는  인도 남자를 붙잡고 무작정 '빠하르간지'를 외쳤다.
그는 한참 알아들을 수 없는 인도말로 뭔가를 애기하더니 내가 등지고 서 있는 쪽을 가르켰다.

아마도 쭉 가다가 왼쪽으로 가라는 말같았다.
'던야밧(고맙다)'을 외치면서 그가 가르켜준 방향으로 날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걸어도 막다른 길이 나오지 않길래 또 누군가를 붙잡고 '빠하르간지'를 외치며 방향을 물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던 남자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가르키며 저곳이 빠하르간지 방향이라고 했다.  갑자기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정신은 서서히  '패닉상태'로 빠져들었다.


길을 잃었다.
낯선 델리의 어느 길가에서 그렇게 길을 잃었다.
길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멍 하니 서 있는 내 주변으로 시커먼 남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의 언어로 저마다 뭔가를 애기하며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혼란의 구렁텅이 속에서 마냥 허우적대며 외면한 채 서 있어야 했다. 지랄같은 델리의 더위 때문에라도 그랬겠지만 정작 혼란을 부추긴 건 낡고 허름한 옷을 걸친 시커먼 인도남자들의 허연 눈빛 때문이었다.

조용한 라다크에서 휴양하다시피 편하게 지냈던 내 몸이 아직 이런 북적임에 적응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두를 뿌리치며 어디론가 가긴 해야겠는데, 정작 어디가 목적지인지 방향감각조차 상실한데다 극도의 정신적 혼란스러움으로 움직일 기력마저 잃었다.


모든 것은 통과의례일 뿐이다.
냉정해야 한다.
이런 혼란은 태풍같이 거세긴 해도 금새 지나치기 마련이다.
익숙해지면 이 정도의 혼란은 혼란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

 


라다크 지역에서 작동조차 하지 않던 핸드폰이 델리에선 뻥뻥 터졌다.
가이드를 무작정 뒤져서 내가 가고자 했던 호텔의 전화번호를 찾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짧은 신호가 두어 가더니 인도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스팟 호텔이냐?'
                호텔지배인:   '그렇다'
                나:               '거길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다'
                호텔지배인:   '있는 곳이 어디냐?'
                나: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긴 사람들이 아주 많은 큰 길이다.'
                호텔지배인 :  '그럼 사이클릭샤를 타고 갈리찬디왈리라는 곳으로 와라'
                나:               '릭샤 왈라에게 그렇게 애기하면 그곳을 아는가?'
                호텔지배인 :  '대부분 알 것이다.'
                나:               '잠시만... 여기 릭샤왈라가 있다. 바꿔주겠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꽤 많은 사이클릭샤왈라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한 릭샤왈라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내밀었더니 낯설게 전화를 받으며 한참을 그들의 언어로 뭔가를 주고 받았다.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깡마른 릭샤왈라는 내게 다시 핸드폰을 내밀고는 타라며 손짓을 했다.


'릭샤 비용은 얼마 정도 들겠는가?'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10-15루피 정도 들 것이다.'
'알겠다. 잠시 후에 만나자. 고맙다.'
 

그렇게 통화가 완료되자 꽉 막혀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배낭을 풀어서 의자 위에 올려놓고는 릭샤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그렇게 사이클 릭샤가 달리기 시작했다.
덜컥이는 릭샤가 조금씩 나아가자 사람들의 물결이 마치 홍해를 가르듯이 옆으로 비켜났다.
여전히 날씨는 더웠고 매캐한 악취가 진동을 쳤지만 잔뜩 움츠려들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면서 다시 여행자의 기분이 되었다.


한 켠으로 비켜서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자의 입장이 되다보니 느긋해졌다.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페달질을 계속하는 여리고 마른 릭샤왈라의 작은 체구가 왠지 안스럽게 느껴졌지만 비로소 빠하르간지에 왔다는 반가움과 더불어 든든한 길동무를 얻은 것 같은 뿌듯함이 내 얼굴 위의 미소로 묻어났다. 끈적끈적한 땀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지만 낯선 인도시장의 주는 묘한 흥미로움에 잔뜩 끌리고 있었다.


내가 '델리의 빠하르간지'로 간다고 하자, 레에서 만났던 빅람(라다크에서 만난 인도남자) 한사코 그 곳만큼은 가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었다.
빠하르간지만큼 위험한 곳은 없으니 차라리 자신이 추천해주는 좋은 호텔에 묵으라고 권유했지만, 배낭여행자의 메카인 '빠하르간지'를 빼놓고는 내가 묵을 곳은 델리의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사실, 그동안 한국인들이 꽤 그리웠었다.
일주일동안 한국말은 물론이고 한국음식조차 입에 대지 못했으니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거기다 가져간 핸드폰은 내내 통화불능상태여서 아내에게조차 제대로 연락도 못했었다.


그런 빠하르간지에 마침내 도착했다.
듬성듬성 배낭을 짊어진 서양인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빠하르간지임에 틀림없었다.
배낭을 들고 내리자 릭샤왈라는 느닷없이 30루피를 요구했다.
나를 가르키며 20루피, 배낭을 가르키며 10루피, 이렇게 해서 도합 30루피라는 것.
무조건 어거지로 갖다붙이는데에는 도가 튼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당할까 마는 나도 만만찮았다.
그까짓 한국돈으로 300원도 채 안되는 10루피는 우리 시선으로 보면 작은 돈에 불과하지만 이건 순전히 기분 문제였다.
분명히 릭샤에 올라탈 때 15루피로 흥정을 끝낸 상태였고 여린 몸뚱아리로 나를 태우고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렇찮아도 30루피를 줄 참이었다. 그런데도 다짜고짜 말도없이 30루피를 요구하니 살짝 감정이 상한데다 황당하기까지 했다.

인도의 최하위 카스트중의 하나인 불쌍한 사이클 릭샤왈라와 굳이 싸워서 뭐하겠냐 싶은 마음도 언뜻 들긴 했지만
그래도 내 할 말을 해야겠다 싶어 당당히 '안돼, 15루피라고 아까 애기했잖아'라고 버티니 릭샤왈라는 움찍했다.배낭을 다시 들고는 그에게 30루피를 건냈다.어둡던 그의 표정이 금새 화사하게 피어났다. 잔뜩 찌푸린 눈가의 주름 속으로 세월의 고단함이 엿보여 왠지 안타까웠다.


"땡큐, 써~"


고작 15루피에 써sir라는 호칭까지 들었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지만,
이런 릭샤꾼들과의 작은 실랑이는 인도여행의 끝날까지 이어지는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 빠하르간지의 만수네 짜이집

 




하루에도 몇 번씩 '만수네'에서 짜이를 마신다.
그 좁은 골목의 한 켠에 앉아서 뜨겁고 달콤한 짜이를 마시면서 비로소 인도에 왔음을 느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가끔 대화할 동행이 있어 즐거운 짜이 마시기.
나름의 방법대로 인도를 즐기는 중이다.


"만수네"로 들어가는  골목은 막혀 있다.
자칫 단절이 주는 불안감과 공허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때론 수많은 소통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나로선 그 단절이 주는 미학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언제부터인지 내 여행은 그랬다.
무질서하게 열려진 세상으로부터 흐트러진 나를 찾아가는 가벼운 스트레칭같은 것이라 여겼다.
40대가 가지는 이 사회의 중압감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잠시 시스템처럼 움직이는 한국이라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스스로를 짧게나마 가두고 싶었은 지도 모른다.
좀 더 거창하게 애기하자면, 자아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일환 쯤으로 치부해두고 싶다.

단절된 골목 끝에 걸린 몇 점의 의상이 참 아름답다.
그래, 여행은 내 삶에 한 번씩 주어지는 색다른 즐거움이겠지..

 

...

 

 

 

 







 

 

 

 

 

 △ 만수네 짜이집에서 만난 한 노인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빛이 너무 좋아서 한 컷~!

 

 

 












 

 

 △ 빠하르간지의 한 골목



 

새벽이면 어느 정도 청소가 되기 때문에 거리는 깨끗해진다.

 

 

 











 

 

△ 역시 만수네 짜이집에서 만난 멋진 인도 영감님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셔서 그 노인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가진 장비를 보면서 자신도 프로 사진가라고 소개를 한 그와 사진과 인도를 주제로 주로 대화를 했다.
델리의 신도시라 일컫는 코넛 플레이스 주변에 자신의 사무실이 있다며 정중하게 초대를 했지만...
너무 복잡하게 가는 길을 설명해주셨던 탓에 길을 헤매다 결국 들르지 못했다.

 

 






 

 

 

 

 

 

△ 거리에서 만난 인도아이

 

 

 

 






 

 

 

 

△ 새벽에 찾아간 어느 힌디사원에서의 여인

 

 

 

 






 

 

 

△ 불을 켜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들의 소중한 제례가 진행되고 있다.

 

 

 






 

 

 

 



△ 꽃바구니를 든 한 사두가 염을 읊조리며 기원하고 있다.

 

 







 

 

 

 

 

 

△ 빠하르간지의 어느 골목의 과일행상들

 

 

 

 






 

 

 

 

△ 델리, 빠하르간지 뒷골목에서

 델리, 빠하르간즈 뒷골목을 다니고 있는데 꽃으로 만든 예쁜 장신구가 푸른색의 벽에 걸려있다.
종교적인 의미인 것 같은데,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탓에 별 생각없이 셔터를 누른다.
눈길을 끄는 건 '내용'보다는 '외양'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알 수 없는 우문이 비로소 터져나온다.

 

 

 






 

 

 

 

△ 빠하르간지의 뒷골목에서 만난 한 아이

 

 

 

 

 





 

 

 

 

 

 

 





 

 

△ 델리, 빠하르 간즈 뒷골목의 어느 사원 앞...

 

사원의 후미진 제단에 뭔가를 뿌려진 붉은 장미꽃잎과 촛불...
누구의 기원이 그렇게 간절했을까.

 

 

 

 






 

 

 

 

 

 

△ 빠하르간지의 뒷골목

 

 

 

 

 






 

 







△ 빠하르간지의 뒷골목



 

저 문틈으로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지만 기다림은 헛된 공허와도 같이 믿음을 배신했다.
그러다 누군가 나타났다.
비록 깡마르긴 했지만 눈빛만큼은 성성한 한 사내...
기다림이 헛된 공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 빠하르간지 뒷골목에서 만난 한 악기장수

 


북을 사라며 내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북장수.
태생적으로 어떤 연주에도 소질이 없는데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잔뜩 사는 걸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북을 사달라며 애원을 했다.

관심을 보인 것도 아니고, 그와 애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도
유독 나만 따라다닌다.
나중에는 너무 귀찮아서 화를 벌컥 냈더니 그러면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래서 찍게 된 그의 사진.

MP-300으로 사진을 인화해서 건냈더니
온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북장수들게 소문을 다 내어놓은 모양이었다.
나를 본 북장수들은 한결같이 나를 따라다녔다.
사진을 찍다가 '둥둥'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북장수가 배시시 웃으며 '포토 플리즈'를 연발했다.
나처럼 잔뜩 카메라 장비를 들고 다니는 동양인이 워낙 드물기 때문에 금새 그들의 레이더에 걸리고 마는 나.

한동안 그들을 피해다니느라 혼쭐이 나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