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가을에 떠난 몽골여행의 프롤로그




하르호른으로 가는 길은 포장도로였다. 아니, 그나마 포장도로였다.
출발 무렵엔, 중간중간 도로가 유실되기는 했어도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UB(울란바타르의 준말)를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하르호른 쪽으로 가면 갈 수록 도로상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군데군데 폭탄을 맞은 것처럼 패여있는 도로는 주행이 불가능해 보였다.


가면 갈 수록 패인 웅덩이는 지뢰밭처럼 자욱해서 운전자 잉케와 우리를 수시로 괴롭혔다.

마치 기막힌 곡예라도 부리듯 요리조리 핸들을 힘겹게 돌리면서도, 잉케는 7~80킬로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핸들을 꺽을 때마다 몸이 좌우로 쏠리는 건 당연했다.
어떤 때는, 열린 창문으로 몸이 튕겨져 나갈까봐 손잡이를  꽉 잡기까지 했다.
노면路面 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서 굳이 패인 부분을 지나지 않더라도 심한 요동과 소음을 끊임없이 양산해 냈고,
엉덩이는 수시로 들썩거렸으며, 알 수 없는 혼돈과 짜증들이 머릿 속을 어지럽게 흔들어 댔다.
머릿 속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가던, 그 정점의 어느 순간이었다.
혼란의 틈바구니 속을 비집고, "통과의례"라는 낱말이 스쳐갔다.




 




'그래, 어쩌면 우린... 몽골이라는 생소한 나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가벼운 통과의례를 치뤄고 있는지도 모른다.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신작로가 들어서기 전, 한국의 시골길도 이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갓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니 불과 몇 십년전이었다. 
신작로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몇 년후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갔다. 
소 달구지가 어렵사리 오가던 그 길이, 신작로로 인해 버스가 들어왔고 동네사람들은 더이상 높은 재를 넘지 않아도,
읍내 5일장을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신작로를 따라 촘촘하게 나무전신주가 들어서더니, 이내 낮처럼 환한 전깃불이 우리집까지 들어왔다.
비록 동네에 한 두대지만 TV까지 들어오자, 흑백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신기한 영상에 온 시선과 신경을 빼앗겨 버렸다.
우리는 동화와 전설을 잊기 시작했고 별똥별과 반딧불에 대한 추억마저도 잃었다.
오랫동안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탓에 가난했던 과거를 까마득하게 망각한 채 살아온 것이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땅, 몽골에 와서야 깨닫는다.



오래되어 빛바랜 것들을 경시하고 늘 부나방처럼 새로운 것만 추구하려는 어리석은 우리들의 자각을 말이다.
덜컹거리는 불편함 쯤이야, 마음 먹기에 따라 금방 해소시킬 수 있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불쾌가 유쾌로 전환되기도 한다. 늘 어설프게 먹은 마음이  힘들다며 성가시게 치근거렸나 보다.
거친 도로와 푸르공의 허약한 쇼바 때문에 수시로 일어나는 잦은 요동과 소음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그냥...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몽골여행은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아니,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정신적으로 꽤나 피폐해 있었다.
문득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바리바리 배낭을 꾸리고 짧은 일정이지만 무작정 몽골로 날아들어왔다.

바람을 찾아 떠난 여행...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
나를 찾아 떠난 여행...


하지만, 황량한 광야에서 느낀 건 오히려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의 결들을 결코 잡을 수 없음을 비로소 알았다.
내심 기대했던 바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실체없는 뜬구름같은 것이었다.
격정같은 열정이 용솟음치고 불꽃같은 희망이 새록새록 가슴에 각인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런 바람이 아니었다.
그 결들은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은 현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마음은 진정되지 않고 여전히 고통과 피폐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단지, 끊임없이 내 자신을 부추기는 어떤 두려움...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미망...
아득히 먼 길에 대한 공포만이 가슴 켠켠히 먼지처럼 쌓여갔을 뿐이다.
떠남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각되고 소실될 것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헛된 바램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초원에서 이는 바람은 수풀을 눕히고 강을 건너서 내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손금에 새겨진 운명의 길들이 일렁이는 바람에 노스탤지어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정작 깨닫지 못하는 사이, 미련한 사색들만 끝없는 나락 속으로 내 육신을 떠밀고 있을 뿐이었다.
가슴이 서걱이며 바람소리를 흉내냈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나는 한동안 생채기처럼 모진 여행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여전히 한국의 날씨는 늦여름의 열기로 후끈거렸고
제대로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여린 몸뚱아리는 내내 고열로 앓아 누워야 했다.
가슴 속으로 초원의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밤마다 쉼없이 베게잇을 적셨다.
그리움이 점점 병이 되었다.
그리움이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내가 되었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나는 정말 어리석게도 그제서야 깨달았다.
바람은 늘 내 마음 속에 있었다는 것을...
그 아득한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느낄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마음은 그렇게 속삭였다.


몽골은 내 정신의 원천같은 곳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였듯이...
태생의 본류가 비로소 시작되던 곳, 돌이켜보면 그래서 마음도 몸도 편했었으리라.
어느새 몽골 초원이 그립다.
몽골로 가는 꿈을 가끔 꾼다.
엄습하던 그 지독한 추위만 없었어도 그럭저럭 견딜만 했을 바람의 땅으로...
그렇게 바람을 안고 훌쩍 떠나고 싶다.

 

 

 


                                                                       - 몽골 여행기 중에서...





























 





 

 










한참 언덕을 오르던 그는 그제서야 손을 흔드는 우리를 본 모양이다.
초원에 사는 대부분의 몽골사람들이 그렇듯이, 척박하고 고립된 오지에서 이방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테니
그 역시 사람이 반갑고 그리웠을 것이다.
언덕을 쏜살같이 내려오는가 싶더니, 금새 개울을 첨벙첨벙 가로 지르며 한달음에 달려온다.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점점이 물살이 튀어오르고 탄탄해 보이는 몽고말의 갈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순간, 망각해버린 줄 알았던 기마민족의 DNA가 핏톨 속에서 융기한다.
피가 거꾸로 쏠릴 정도로 유연한 역동성에 매료당하고 만 것이다.
어설픈 실력으로 카메라를 움켜쥐긴 하지만 제대로 몇 컷 누르기도 전에 성큼성큼 그가 다가온다.
세계를 유린하고 호령하며 마침내 '팍스 몽골리카'시대를 개창하여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섰던 진정한 노마드nomad,
강인한 징기스칸의 후예.

얼굴엔 앳띤 티가 역력한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말 타는 솜씨만큼은 당차고 의연하다.

'센베노'(몽골의 인삿말)

먼저 인사를 건내고 가져간 과일과 빵을 함께 먹으면서도 그는 말 없이 옅은 미소만 날린다.
그에게선 초원의 짙은 바람냄새가 났다.








 

 



 

 

금새 장대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성수기가 끝난 홉스골의 9월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데다 하늘마저 잔뜩 구겨져 있어 마음을 침잠하게 한다.
산등선을 타고 바람이 불면 노랗게 물든 낙엽송의 옅은 잎사귀들이 우두둑거리며 마른 기침을 하듯 떨어진다.
흐린 9월의 홉스골은 춥고 스산한데다 인적마저 뚝 끊겨서 홀로 된 여행자를 서글프게 한다.
몽골스럽지 않은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는 홉스골 호수...
길을 잃고 혼자 오른 작은 산등성이에서 코발트빛의 아름다운 물색을 가슴에 담는다.
빛이 있었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풍경이겠지만 빛이 없어서 오히려 처연하고 허전한 색감들이 시선 속으로 슬프게 투영된다.


이 넓고 낯선 땅.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말달리던 더없이 넓은 초원의 한 끝에 그렇게 섰다.
몇 날 며칠을 달려도 볼 것이라곤 빛 바란 허허벌판에서 잔뜩 짊어진 외로움의 무게와 초원을 가르는 낯선 바람밖에 없던 여행.
아무리 거친 여행이라 할 지라도 통과의례처럼 거치고 가야 할 삶의 한 단면이라고 오랫동안 신조처럼 맹신하곤 했지만,
이번 여행은 유독 어려운 여행이 될 것임을 초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깨닫게 된다.
스스로 다독이며 힘을 돋궈 나가긴 했어도 마음을 나눌 다정한 동무가 곁에 없다는 현실만로 더욱 지치고 우울해진 것 같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이런 현실을 더욱 조장하고, 때론 마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지도 모른다.
따뜻한 한 줌의 햇살이 그리운데, 바람은 너무 거칠고 차가운데다 대지는 황폐할 정도로 메말라서 그래서 모든 것이 무겁다.


성수기가 끝난 넓은 홉스골 호수에선 여행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최대 여행지라 일컫는 홉스골에서조차 사람을 만나기 힘든다는 건 몽골의 어디에서나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말과도 같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초원은 넓은데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희박한 몽골 땅...
그나마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을 예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찾아온  홉스골에서는 여행자는 커녕 현지인들조차 없다.
게다가 한참동안 길을 잃고 헤매였으니 순간적인 두려움과 초조함에 휩쌓인 뒤라 그런지 마음은 더욱 상실감에 휩감긴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긴 했지만 녀석들의 표정은 의아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런 녀석들의 사진을 담는다. 낮게 구름이 드리운 탓에 셔터스피드가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iso를 올리고는 녀석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자 새삼스러운지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짧은 녀석들과의 만남.
녀석들의 따뜻한 미소 때문에 오히려 건조해진 가슴 속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다.
짧은 만남이지만 여운은 길고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단지 사진 한 장 찍은 게 전부일 지 모르는 그런 만남에 불과할 지라도, 여행의 우연성은 이래서 더욱 빛을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헤마다 우연히 만난 아이들의 그 환한 미소...
어쩌면 잃어버린 내 어린 날의 꿈들이 아이들의 미소 속에 투영되어 있던 건 아니었는지...






 

 

 









벌써 반나절 째,인적이 뚝 끊긴 길을 내달리다
길 위에서 말을 타고 가는 한 소년을 만난다.
비록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단절의 벽을 극복할 순 없지만,
소년의 옅은 미소는 파랗게 가슴 속을 파고든다.
허허로운 몽골땅에선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축복이요 기쁨이다.


수많은 차선이 공멸하는 그 초원의 길에서도 우리의 운전자 잉케는 80km로 유지한다.
포장되지 않은 길이다 보니 차체의 요동은 정신을 홀라당 빼놓을 정도로 최악이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다시 스프링처럼 위로 튀어올랐다가 꼬꾸라지기도 하고...
한참을 쳐다봐도 쪽빛하늘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9월 초순의 몽골초원은 더더욱 바짝 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이 없으니 왠지 식상한 느낌이다.
며칠 지나니 차체의 흔들림에 적응이 되었는지 나른한 초원의 풍경만 보고 있으면
시끄러운 엔진소리조차 자장가처럼 들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한 낮의 따뜻함에 데워진 밀폐된 차안의 공기 입자가 달콤한 낮잠을 부추기나 보다.


그러다, 누군가 '사람이다'라고 외치기라도 하면 퍼뜩 몽롱한 잠에서 깨어나

마치 오랜 친구를 우연히 조우할 때의 상기된 마음으로 잉케에게 'stop~!'을 합창한다.
어느새 우리의 사진 습성에 익숙해진 잉케는 '푸르공(러시아제 승합차)을 세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벌판으로 달려나간다.


"센베노, 비 솔롱고스 홍"(안녕, 난 한국사람이야.)


그렇게 사람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을 때 만난 소년.
다가가기 위해 어설픈 몽골말로 인사를 건내지만 소년은 그저 웃기만 한다.
내 말투가 어색해서 그런 것일까 초원의 소년은 잠시 웃다가 말에서 훌쩍 내린다.
가지고 간 비스켓을 나눠주고 생수 몇 개를 넌지시 건내주면 빨갛게 타들어간 얼굴에서 다시 미소가 스며나온다.



너도 사람이 그리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