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하나 달라던 중학생 또래의 몽골아이

 

 

 





























삼각대를 차 안에 그냥 놔둔 모양이다.
게르 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삼각대는 보이지 않았다.
곤하게 자고 있을 잉케를 깨우기도 뭐해서 카메라만 들고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차가운 새벽공기가 살얼음처럼 폐부를 찌른다.
춥다.
금새 차가워지는 손등을 마른 입김으로 녹여보려 하지만...그래도 춥다.
일출직전의 그 파란 색감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더 추운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추위에 끙끙대는 내 모습을 흘낏 쳐다보며 지나갔다.
낯설지만 때론 결코 낯설지 않은 이방인의 모습...
몽골인과 한국인의 외면적인 모습이 꼭 그럴 것이다.
너무 닮아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서로 구분하기조차 힘들 정도니 말이다.

일출직전이라 셔터스피드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들을 역동감있게 아니 모션 블러처럼 흘러가듯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쁜 아침의 일상은 낯선 무릉이라는 도시에서도 똑같이 재연되고 있었다.
공산시대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무릉은 나름대로 초원에서는 꽤 큰 도회였다...

그곳의 아이들이,
그곳의 남자들이 그렇게 아침을 분주하고 바쁘게 열고 있었다.



여명은 너무나 눈부셨다.
뒷산 언덕을  뻘겋게 불태우는가 싶더니, 이내 동녁하늘 언저리가 완전한 붉음 속에 잠겨버렸다.
매일 새벽마다 일출사진을 찍는 나였지만...
이런 멋진 빛깔을 연출해내는 일출을 한국에선 자주 볼 수가 없어서 늘 안타까웠는데...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 기분좋은 느낌이라니...그건 곧 희열이었다.


그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만큼 그들의 공해에 찌들지 않은 자연이 그래서 부러웠다.
멋드러진 구름까지 연출하는 그 일출의 신명나는 축제에 마냥 들떠있었다....


볼이 발그스러한 몽골의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녀석들을 향해 싱긋 웃어보이자 한 녀석이 대뜸 다가오더니 담배 한 개피를 달라는 시늉을 했다.
초원에서 만난 사내들과 가장 빨리 친할 수 있었던 게 바로, 담배...
하지만, 담배를 건낸 건 대부분 중년의 사내들이었지 이런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겐 주전부리할 수 있는 과자나 음료수 등을 건내주며 친분(?)을 쌓아 왔었다.

얼굴 가득 마른버짐으로 얼룩진  녀석은 겨우 중학생 또래의 어린 나이였다.
우리로 따지자면 아직 머리에 소똥도 안벗겨졌을 그런 나이대.
한국 같았으면, 대뜸 호통을 치며 쫓아버렸겠지만... 말 없이 한 개피를 건냈다.
그러자, 이
번엔 불을 붙여 달란다.
바람 때문에 손으로 가린 채 어렵사리 불을 붙여주자 녀석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아침의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옆에 계신 다른 선생님들은 기도 안찬다는 표정을 지어셨다.
하기야, 교육계에 오랫동안 몸 담으셨고 모두 정년퇴임을 하신 교장 선생님들이시니 더욱 그러셨으리라.
아무튼 재밌는 녀석임에 틀림없다.
(이걸 재밌다고 표현해야 하나 어쩌나? 글을 쓰는 내내 망설여졌다.)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무릉의 게스트하우스 게르.
작은 난로가 가운데 놓여있고 6개의 침대가 게르의 원을 따로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아주 간단한 구조였다.
통풍이 되게끔 게르 위는 여닫을 수 있는 통풍구가 마련되어 있었고 바깥에서 조절이 가능했다.

 




 

 

 

 

 

 

 

 

 

 

 

 

 

 

 

 

 

 

 

 

 

 

 

 



 

 

아침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의 행렬이 끝없이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체육대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각 학년을 알리는 푯말을 들고 무리지어 가는 아이들의 행렬은 군대의 사열과도 흡사했다.
잠시 뛰는가 싶더니 다시 공산군대의 딱딱 끊기는 듯한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바뀌었다.
이해하지 못할 구호를 외쳤고 이해하지 못할 군가풍의 씩씩한 노래를 불렀다.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지기라도 하면 길을 재촉하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치 제식훈련이 몸에 배인 듯이 걸음걸이와 손놀림이 익숙하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착착 꺽일 때마다 관절에선 절도있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의외로 아이들의 표정만큼은 밝았다.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들과 그들의 조국인 몽골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몽골의 아이들의 이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초원에서, 때론 울란바타르의 음험한 골목에서...

내팽개쳐진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랐다.
삶의 신산스러움만큼이나 그들의 미래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그들을 밝음으로 이끄는 어떤 힘 또는 원천이 아닐까.
아이들을 찍고 또 찍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녀석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밝게 자라거라.

튼튼하게 자라거라.
많이 배우고, 익혀서 몽골의 기둥이 되거라.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행자들을 위한 투어리스트 게르.

그 집의 묘한 색감과 질감이 마력처럼 이끌렸다.
낡고 허름한 것 같으면서도 비뚤하고 어눌한 것 같으면서...
그 속엔 묘한 질서와 함께 끌리게 하는 은근함이 살아 있었다.

오전의 풍부한 햇살을 받으면서...

검둥개가 졸음에 겨운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집 앞마당에 조금만 난전이 들어섰다.
조잡해 보이는(?) 물건들을 갖다놓고 뭔가를 파는 아줌마...

표정이 전혀 어둡지 않다.

물건을 사고 파는데는 많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못짓, 손짓, 눈빛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다.
그 아름다운 창틀과 아줌마의 대비가 눈에 뜨였다.



 



 





 

 

 

 

 

 

 

 


교복으로 갈아입은 '따와'를 불러세운다.
따와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 딸...

잦은 외국인과의 접촉 때문인지 영어가 능숙한 '따와"는
발음도 거의 미국인 네이티브 스피커에 가깝게 버터 발음(Slur)이다.

그런 그녀의 유창한 발음 때문에 몇 마디를 건냈는데, 왠일인지 전혀 이해를 못한다.

알고 보니, 간단한 몇 마디만 유창할 뿐이란다.


"I cannot speak English"

목소리 톤이 유달리 높은 "따와"

자지러지게 웃을 때의 그 웃음소리는 마치 탱탱한 기타줄에서 나오는 선율처럼 살아서 꿈틀 댔다.
그런 그녀에게 모델을 부탁했는데, 의외로 수줍음이 많다.
5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터지자, 굳어있는 표정이 더욱 어색해져 버린다.

귀여운 "따와"
나는 그런 따와를 가끔 한국말로 놀려대곤 했는데...
"따와야~ 사과 좀 따 와~! 사과 먹고 싶어~!"

뜻을 모르는 그녀는 마냥 웃기만 했다.
그녀의 웃음이 하늘을 닮아 있었다.

 

 

 





 

 




 

무릉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차가 퍼져 버렸다.
더 정확하게 애기해서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
여행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어느새 친해져 버린 우리의 운전사, 잉케는

도와주겠다는 우리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한 채 열심히 타이어를 바꿔 끼우는 중이다.

내 카메라에도 익숙해졌는지, 잉케가 자연스럽게 웃는다.

멋진 사나이, 몽골의 키아누 리브스~
그의 이름은 잉케~!

 








 



















 

거칠게 달려오는 푸르공에 놀란 양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양들이 잽싸게 몸을 피하는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지극히 희화적이다.
실룩샐록대는 꼬리털 때문에, 나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났다.
양들의 '오야붕'쯤 되는 녀석일까.
다가가면, 다른 녀석들은 부리나케 도망가기 바쁜데,
이녀석은 멀뚱하게 쳐다보며 경계하고 있다.
저 너머에 물웅덩이가 있어 그런지, 초지가 아직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 있던 목동이 낯선 우리의 출현 때문인지 급하게 말을 몰고 달려왔다.

늘 그렇지만 첫 만남은 잔뜩 긴장하기 마련이다.
얌전하게 풀을 뜯는 양들의 대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도 있겠지만,
굳은 얼굴로 다가서는 첫인상에 대한 낯설음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하지만, 금새 지나친 기우라는 걸 알게 된다.
몽골 남자들은 한결같이 조용했다.

담배를 건내고, 마실 물을 건낼 때도, 남자는 조용히 미소만 지은 채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우리가 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타고 온 말이 잔뜩 긴장했는지, '푸르릉'거리며 경계했다.

외지인들에게 나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잉케가 대신 설명을 했다.

남자는 자리에 풀썩 앉아서 우리가 건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와 우리 사이에 은근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먼 산을 응시하는 남자의 가녀린 눈빛과 머리를 풀고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허리에 장난감 총을 찬 건 보이(Gun boy)도 등장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 타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어느새 다가와 으젓하게 포즈까지 취해주는 꼬마.

몽골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탄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단련된 그들의 기마술이 결국 세계를 제패했으리라.
여전히 초원 위로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꿈이 흐르고 있었다.

잉케와 몽골남자 부자(父子)와의 조용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벌판을 타고 흐르는 바람소리처럼 나즈막했다.
언제나 그들을 바라볼 때면 바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포즈를 요구한 적은 없지만 조용하게 담배를 피면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 눈빛이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습을 담기 위해 몇 번이나 앵글을 바꾸며 촬영했다.


그의 말馬,
그가 살아가고 있는 작은 벌판, 
느슨하게 손에 쥔 담배,
고요한 눈빛,
거칠고 주름 패인 얼굴,
오래되어 남루한 옷차림...


내가 생각하는 몽골의 전형과 너무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