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한글이 신기하다고 하는 외국인들





 

'여행은 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여행 중엔 이동이 잦다.

주로 도시간 이동에서는 기차를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중국이나 인도같이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선 20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걱정부터 앞섰는데 이력이 붙다보니 그 정도는 그야말로 '껌'이다.

 

MP3에 다운받은 음악을 들으며 낯선 이국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다음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가이드북을 뒤적거리거나, 노트나 넷북을 꺼내들고 밀린 여행기를 적거나, 현지인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맥주 하나 사들고(인도에서는 불가능) 멍 때리다 보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 지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린다.

 

장시간 함께 가야 하는 기차여행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금새 친구가 된다.

그만큼 대화할 기회도 많아지고 가지고 온 음식이나 음료수 등을 나눠먹는 등 허물없이 지내다 보면 여행은 결코 지루해질 겨를이 없다.

내 입장에서, 기차여행만큼 여행의 느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차만 타면 희안하게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정도니 이 정도되면 단단히 중독된 셈이다.

아마도 기차에서 겪은 기분좋은 추억들 때문이리라.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내 앞에 마주앉은 청년은 독일인, 나폴리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독일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몇 년동안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그 청년은 내가 중국사람인 줄 알고 중국말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이며, 한자는 좀 알지만 중국어는 전혀 모른다고 대답하자 미안하다며 멋적게 웃었다.

독일을 몇 번 다녀온데다 독일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와 쉽게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공감대를 찾은 셈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떻게 하다보니 '이름'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유학한 독일 청년은 따로 중국이름을 가지고 있다면서 간자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서 보여줬다.

사실, 유柳라는 글자를 제외하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간자체라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이번엔 내 이름을 한자로 적어서 보여주니 그는 유창한 중국발음으로 따라 읽어내려갔다. 중국어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글로도 제 이름을 적을 수 있어요?"

 

대뜸 그렇게 물어오면서 자신의 독일이름을 종이에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Lauch...라우흐.

몇 번이나 느리게 자신의 이름을 발음한 독일청년 라우흐는 종이를 내게 건내 한글로 적게 했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그의 한글 이름을 적어서 보여줬더니 이 청년, 금새 눈이 동그래졌다.

Wow로 시작된 그의 감탄사는 끝없이 이어졌는데, 요약하자면 한글이 너무 예쁘다는 것.

 

"이렇게 예쁜 글씨는 정말 처음 봐요. 마치 그림같이 예뻐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네요"

 




 

 




 

 

 

 

 

 

 

란조우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는  20여 시간동안의 기차여행.

넷북을 꺼내들고는 한참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문득 뒤쪽에서 아이 한 명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동안이나 내 뒤에 우두커니 멈춰서서는 타이핑하는 내 손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 빙긋 웃으며 중국말로 뭔가를 물어왔다.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내가 느낌으로 끼어맞춰 해독한 결과, '글자가 너무 신기해요' 이런 뜻 같았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글이 마냥 신기했으리라.

 

 

"이것은 한글이라는 글자야. 한꿔더지(韓國的字)~"

 

"아~ 한꿔~"

 

그러면서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눈에는 신기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저런 희안한 글을 부지런히 타이핑하고 있는 나도 신기했을 테고, 이런 좁은 기차안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도 신기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녀석은 '하오더'를 연발했다.
'좋다'라는 뜻일테지... 

 

 

韓國的字는 그때 급하게 만든 조어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