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거닐다




 







나는 이런 풍경이 좋다.

위에서 내려보는 전망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서로 대조되는 몇 가지 조형물들이 아름다운 배경 속에 들어가 있는 이런 프레임을 좋아한다.

룽다가 흩날리는 티벳식 집들과 이슬람교 사원의 첨탑들...
그 이루어질 것 같지 않는 부조화의 연속선상.
멀리 설산이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라라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는 '텐진'
어린 그녀의 영어는 아주 유창하다.

이제 갓 스무살...
맛있는 에스프레소향이 넘쳐나던 라라 갤러리


카메라를 갖다대자, 그녀의 표정에서 수줍움이 가득 피어오른다.
비록, 라라 갤러리의 조도가 너무 어두운 탓에 iso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사진은 그나마 볼만하게 나왔다.

그녀에게 사진을 하나 건내자, 손을 곱게 모아 "쭐래"를 읊조린다.
그 풋풋한 웃음에서 마치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느껴진다.

 












오래된 구 레시가지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굳이 이렇게 카메라를 갖다대지 않는다고 해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면들.













레의 낯선 풍경들.
멀리 폴로경기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난히 크리켓을 좋아하는 인도인들이라 그런지, 이곳에선 거의 매일 크리켓경기가 펼쳐진다.
게다가, 가끔씩 보는 TV에서는 연신 크로켓 경기가 진행 중이다.

인도인들은 그 크리켓을 보면서 열광하고 환호한다.

 



 



















전날 오르지 못한 남갈 체모 곰파에 오른다.
구름이 잔뜩 끼여 꽤 흐린 날.
왠지 모든 것이 을씨년스럽고 스산하다.

 







 






설산에서 만들어진 구름떼는 레의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다.

새벽녘에 혹시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또다시 힘겹게 샨티스투파에 다녀왔지만,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일출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머릿속을 휘젖고 다니는 이 불안한 두통...
그리고, 가뿐 숨소리...
고산증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레 시가지의 전경들.

저 속에도 사람들이 산다.
얼핏 들여다 본 그들의 집 안.
세간살이도 없는데, 어두컴컴한 방안은 왠지 처량한 느낌이다.

그래도 사람이 산다.
비록 가지지 못해 늘 추위에 떨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룽다가 묶인 기둥 위에 까치가 앉아 있다.

그 아래 쪽으로 수풀이 제법 무성한 창스파 지역의 풍경이 펼쳐진다.
초록으로 물들고 있는 창스파와는 달리 구 레시가지는 나무 한그루없이 볼품없고 초라한 느낌이다.

 

 












레의 중심지...

옆에 이슬람교 사원과 티벳불교 사원이 공존하고 있다.
인도는...
역시 인도다.
수많은 종교가 공생하는 곳.

 














 


며칠동안 함께 여행을 했던 인도인 친구, 그의 이름은 지란집...

그는 꼴까따(예전 캘커타)에서 왔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했고,
잠시 휴가를 얻어 형이 군생활하고 있는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설산이다.
설산에 포위된 레.
이 곳의 겨울은 꽤 길고 혹독해서 6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육로가 뚫린다.
마날리와 스리나가르로 뚫리는 육로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한다.

아직까지 레는 비수기...
여전히 많은 레스토랑과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닫고 있다.
한마디로 오픈 준비 중인 셈...

 

 









레의 이런 느낌이 참 좋다.
황량하면서도 척박한 분위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색다름을 일깨워준다.

이런 땅에서 살아가는 라다키들에겐 얼마나 혹독한 시련일까마는...
난 그저 여행자일 뿐이고, 낯설고 어색한 이런 분위기에 매료될 뿐이다.

 

 












집으로 가고 있는 가족들일테지...

망원렌즈로 귀가하는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곳에서도 단란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역시 가족이 있어 행복하지 않을까.
볼품없이 초라한 세간살이일지언정, 그들에겐 가족이 있다.

그 속엔 행복도 더불어 있다.
행복의 잣대는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마음이 풍족한가에 있지 않을까.

 




 








 

왜 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몽골의 어느 도회를 떠올렸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두 곳...
귀가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

 













레 왕궁의 옆 모습.

남걀체모 곰파에서 내려와 다시 우회해서 마을쪽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바라본 레왕궁.
아름다운 번영과 영화는 그저 전설처럼,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골목을 내려오다, 한 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그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걸 느꼈는지, 환하게 웃는다.

나도 '피식' 웃으며 "쭐래"라고 인사를 나눈다.

이런 우연한 만남...
꽤 즐겁고 유쾌하다.
그저 짧은 웃음과 짧은 인사 한 마디가 전부이지만...
그 속엔 만남에 대한 색다른 기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레에선 어디서나 이렇게 눈덮힌 산을 볼 수 있다.
룽다가 흩날리는 어느 집 앞에 걸린 눈 덮힌 산.














문득 골목을 돌아나오다 한 노파를 발견한다.
앉아있는 그 모습이 마치 모든 것에 달관한 듯하게 의연해 보이신다.

어떻게든 사진을 찍다.
지근거리에서 카메라를 갖다대면 의식을 하기 때문에 내가 의도한 사진을 찍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또 망원으로 렌즈를 교환한다.

그렇게 담은 할머니.
말없이 세상을 살라하신다.
그저...
바람처럼...

 












 

그를 만난 건, 사모사를 파는 가게 안.
사모사는 감자를 으깨어 넣은 고르케같은 음식인데, 기름에 튀겨서 나온다.
삼각형같이 생겨서, 늘 어감상 '살모사'가 먼저 연상되는 그런 음식.
바삭바삭한 맛과 감자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 꽤 자주 먹던 음식 중의 하나...

내 옆에 앉아서 짜이를 마시던 그가 문득 카메라에 찍히길 원했고 난 주저없이 셔터를 누른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같은데...
그와는 그 후에도 두 번정도 더 조우하게 된다.
 













문득 길을 걷다 보면,
대조를 이루는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막 발견하고 카메라를 갖다대기도 전에 사람들이 의식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을 담는 게 쉽지 않는데..
어쩌다 이 날은 운이 좋은 모양이다.

왠지 낯선 대조...











늦은 저녁, 헬기 조종사인 '지란집'의 형을 만났고 그들 형제와 함께 가까운 틱세 곰파에 다녀왔다.
문제는 삼각대를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iso를 최대한 올리고 찍어야 했다.
비록 노이즈로 가득한 사진이 되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틱세곰파의 야경사진 한 장을 겨우 건졌다.















틱세 곰파에서 바라본 라다크지방.

삼각대가 없다고 야경을 찍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분하고 슬픈 게 어디겠는가.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숙소에 팽개쳐 놓기만 했으니 아쉬움은 배를 더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달밤의 스투파...
아쉬움은 남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야경을 담는다.

 

 

 

 

 

 

고산증세가 좀처럼 가라앉질 않고 있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도 이미 숨은 턱까지 차서 깊게, 정말 깊은 호흡을 하지 않으면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여전히 머릿속을 오가며 은근히 자극하고 있는 자그마한 통증과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미쓱거리는 뱃속...
며칠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몸이 적응이 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산증세를 느끼는 걸 보면 체력이 많이 저하되긴 했나 보다.
때론 불편하고 불쾌했지만 견디지 못할만큼 고통스러운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기가 너무 건조해서 입술이 하얗게 텄고 강력한 직사광선 때문에 얼굴엔 덕지덕지 선크림을 바른데다 선글라스까지 껴야했다.
다행히 오후가 되자 구름이 몰려들어 직사광선만큼은 피할 수 있었지만 거침없이 불어오는 마른 바람 때문에 얼굴은 버짐이 핀 것처럼 버석거렸다.
며칠동안  깍지 않은 수염이 자란탓에 손으로 쓰윽 만져보면 오돌토돌, 까칠까칠한 것이 기분좋게 만져졌다.
고산증세만 빼면 여행은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행은 처음 며칠이 가장 힘든 법이다.
그곳의 낯선 문화와 풍속에 익숙하지 못해 힘들고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음식 때문에 며칠을 고민해야 하니 그것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늘 굴리는 잔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그곳의 풍습에 적응하게 되니 그때부터는 한결 편해진다.
또  배가 고프니 뭐든지 먹지 않고서는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된다.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고르다 보면 현지음식인데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게 되니 그때부터는 여행이 한결 편해진다.
특히 이곳 레 지역은 티벳음식이 많은데다 다른 라다크 지역보다는 여행자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즐겨먹는 보편적인 음식들이 많다.
서양음식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지만 현지 음식에 확신이 없을 땐 한 번씩 먹곤 하는데...
서양음식이라곤 하지만 거의 정체불명의 서양식인 경우가 많아서 실망하기 마련이어서 많이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럴때면 어디서나 주문이 가능한 '볶음밥'이라는 히든카드를 꺼내곤 하는데,'라마유르'라고 하는 작은 식당은 내 입맛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맛도 좋은 편인데다 가격대비 양까지 많으니 우리같이 늘 굶주림(?)에 쫓기는 배낭여행자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주인이 네팔인이라서 은근히 더 끌렸는 지도 모른다.
네팔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더니, 어땠냐며 다시 묻길래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트래킹 중에 네팔의 유명한 포크송 하나를 배운 적이 있는데 혹시 아느냐고 물었더니,대뜸 "래썸 삐리리?"라며 다시 되묻는다.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되니 대화를 나누는 게 편해졌다.
갈때마다 그는 친근한 듯 인사를 건냈고 나는 큼지막한 접시에 나오는 '에그 푸라이드 라이스(계란 볶음밥)'을 주문했다.


'라마유르'식당에서 조금만 올라오다 보면 '서브지만디'라는 채소시장이 있다.
작은 길 안쪽으로 이어진 골목쪽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데, 이곳을 가르켜준 것도 '라마유르'의 주인이었다.
5월의 인도는 망고가 제철이었다. 제철에 나는 인도의 망고는 즙이 풍부한데다 떨떠름한 맛이 없어서 망고의 제맛을 즐기기엔 충분했다.
또 어느 지역을 가나 내가 빼먹지 않고 사먹는 과일이 있었으니 바로 청포도였다.
약간 시큼하고 떫은 맛이 감돌긴 했으나 숙소에서 밀린 여행기록을 적거나 책을 읽을 때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곁에 두고 먹었다.
그것도 귀찮으면 올드포트 거리(Old fort road)에 있는 라씨집에 들러서 달콤한 망고라씨를 마시며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다.
이 집에 앉아 있으면 레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공예품 가게에 들러 흥정을 하는 서양인 여행자의 모습도 보이고, 마니차를 돌리며 어디론가 느리게 걷는 순례자의 모습도 보였다.
난전을 펼친 할머니의 긴 하품과 줄지어 바쁘게 오가는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도 낯설게도 다가오던 풍경이 이곳에 앉아있으면 어느새 익숙해진 거리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Free Tibet'이라는 오래된 포스터가 바람에 흩날렸고 어느새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가면 길게 해거름이 깔리고 있었다.


라다크의 전통집을 고쳐서 커피샾으로 개조한 '라라 갤러리'에 가면 스무살의 애띳 아가씨가 우리를 반겼다.
"혹시 이름이 라라?"라고 물었더니 슬그머니 웃으면서 "텐진"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의 영어는 너무나 유창해서 어설픈 내 영어가 자꾸 묻혀버렸다.
라다크인(라다키)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텐진은 화려한  라다크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녀가 타준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그녀가 들려주는 라다크의 오래된 과거를 경청했다.






지금은 북인도의 한 지역에 불과하지만 원래 이곳은 라다크 사람들의 왕국이 900년이상 지속된 곳이었다.
1020년 경에 고대 티벳제국이 세 형제에 의해 각기 영토가 나뉘게 되는데 그 중 한 형제가 라다크지역으로 이동하여 왕조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것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몇 세기동안 그들은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의 왕국의 완전한 독립과 자치를 이루고 있었다.
15세기 초에 내분이 일어나 왕국은 나뉘어졌지만 1470년 란첸바칸이 라다크를 재통일하고 남걀왕조를 수립하였다.
라다크가 다시 강성해진 것은 1616-1694년 무렵이었는데, 이 시기엔 셍게남걀왕과 델단남걀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왕국의 영토확장 뿐만 아니라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 라다크의 파쉬피나 교역권을 탐낸 잠무지역의 도그라 토후국의 표적이 되고, 급기야, 1834년 도그라국의 라다크 침략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다.
1842년 침략자들이 물러날 때까지 도그라국에 합병되어 있다가 1848년 암리스챠르 조약이 맺어짐에 따라 영국은 도그라 토후국에게 라다크를 넘겨줌으로써 결국 '잠무 & 카쉬미르'주의 일부로 편성되었다.
1947년 마침내 인도의 국토분할이 이루어지고, 카쉬미르가 인도로 인도될 때 라다크도 그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