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행복한 라다크 사람들과의 만남






샨티스투파를 내려와 어느새 창스파 지구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머릿속은 징징거리며 울리는 공명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속은 터무니 없는 심한 울렁증으로 머쓱거렸다.
두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그런 묘한 기분과 함께 알싸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렇게 불쾌한 고산증과의 조우는 시나브로 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숙소에서 이불을 싸매고 며칠동안을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심한 고산증을 겪었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이 정도의 얕은 고산증이 내게 온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창스파 지구를 내려오면서 빨래하는 아낙을 만났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정중하게 부탁하니 부끄러운 기색이 완연하면서도 흔쾌히 허락하는 그녀.
그렇게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환한 표정으로 낯선 이방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길 양옆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많은 식당과 여행사, 액세사리점, PC방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시 언덕배기를 오를 작정이었다.
이번의 목적지는 저 언덕 너머 우뚝 서 있는 구 레왕궁.
900년 이상 지속된 라다크 왕국의 상징이기도 한 저곳은 라싸의 포탈라 궁을 본따서 만들었다.
1834년 도그라 왕국에 합병된 이후 저곳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소리없이 쇠락하고 있었다.

나트마한 언덕에 불과하지만 몇 걸음 내딪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금새 목젖까지 차고 올랐고 머릿속은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힘겹게 떠나온 여행길에서 복병처럼 만난 고산증은 그야말로 난감했다.
사서 하는 고생인만큼 누구에게 항변할 처지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옥죄어오는 기분나쁜 고통만큼은 떨쳐버리고 싶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 고산증을 빨리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행 욕심이 많은 내게 그런 말들은 사치처럼 들렸다.






 











오늘따라 하늘은 왜 이렇게 푸른거야.

거친 숨을 몇 번이나 내몰아쉬면서 그렇게 길모퉁이에 주저앉고 말았다.
골목 위로 사각형의 작은 하늘이 빼꼼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숨을 들썩이면서도 파란 하늘이 주는 묘한 그리움에 한동안 휘감겨 그렇게 몇 마디를 내뱉았다.
찔끔 눈물이 났다.
여행 첫 날부터 겪게되는,  아릿한 고통의 시간들이 던져준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이었다.





























올드 레는 100년 이상된 흙집들로 빼곡했다.
수풀이 우거진 창스파 지구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올드 레...
파란 하늘과 너무 대비가 되어 그런지 황량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도대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렇찮아도 가뿐 숨을 겨우 안정시키며 그제야 올드 레를 조망할 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명치끝이 탁하게 막히면서 답답해져 왔다.

익숙하고 편리한 도회생활을 벗어나서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여행으로 한 번 쯤 오는 것은 몰라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난 내내 상심하고 절망하고 말 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면 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아무리 여행으로 어느 정도의 오픈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내가 마음을 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착각에 빠진 채 떠돌이처럼 여행만 다녔었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아 충분한 소통을 할 수는 없을 지 모르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이 있으니 별 문제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진실을 가지고 서로에게 접근하느냐다.

레 왕궁 입구에서 라마스님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힘겹게 그곳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내 몸을 거추장스럽게 감싸고 있던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팽개치듯 풀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파랗던 하늘이 금새 샛노래지는 특이한 경험까지 동시에 겪으면서 숨을 헐떡일 때 그들이 먼저 '쭐레'라는 인사를 건내왔다.

내내 서럽던 고통에 휘감겨 있던 내게 그 말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여행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풍경 때문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주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스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바로 인화한 사진 몇 장을 건냈다.
즉석에서 나온 사진을 보며 놀라워 하는 그들의 표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고 따뜻한 짜이 한 잔을 건내는 그들...
말은 통하진 않지만, 그저 묵묵한 미소로써 소통하는 시간들이었다.

몇 번이나 '쭐래'라는 고마움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며, 유난히 거친 손으로 곱게 사진을 스다듬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흥건했다.
그러기를 또 몇 번을 반복했을까...
품 안으로 사진을 집어넣는 그의 손길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의 심장 곁엔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린 사진 한 장이 놓였다.
심장이 뛸 때마다 그렇게 저장된 추억의 한 켠이 파르르 되살아나리라.
마치 심장 떨리게 아득한 그리움처럼 어느새 라다크가 그립다.


'쭐래'는 라다키(라다크 사람)들의 인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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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는 노스님이 이번엔 내 손을 덮썩 잡고는 숙소로 향하셨다.
환하게 웃고 있는 달라이 라마 사진이 벽에 붙은 스님의 숙소는 작고 초라했지만 마음만큼은 너무 따뜻했다.
계피향이 가득한 짜이 한 잔과 몇 개의 과자를 내 앞에 건내는 그의 손길...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 멀뚱하게 앉아서 서로 바라보기만 해야했던 어색한 침묵 속에도 짜이 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심전심... 













풀 한 포기 없는 이 황량한 땅에서 도대체 넌 뭐 먹고 사니?
























단지 설산을 배경으로 스투파(탑) 근처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의 실루엣을 찍으려고 했을 뿐인데...
낯선 이방인이 든 카메라를 먼저 감지한 아이들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고 LCD로 녀석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보여주자 '까르르'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고산증 때문에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곧 해가 질테니 멀리도 갈 수 없는 형편...
이곳에서 오늘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작정하고 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녀석들의 독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한 장 씩 인화해서 사진을 건내주니 아이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서로 자기가 먼저 찍겠다며 아귀처럼 다투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자신의 동생부터 찍어달라는 우애가 돈독한 녀석들도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의 숫자가 감당안될만큼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기 위해 LCD를 보고 있으면 빙둘러싼 아이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호기심을 보였다.
햇살에 검게 그을린 볼떼기와 70년대 내 친구 코보가 그랬듯이 말라비틀어진 인중가의 콧자욱들...
언제 빨았는지 모를 녀석들의 옷에선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피어올랐지만
그래도 웃음만큼은 너무 해맑아서 함께 있는 그 순간만큼은 지속되어온 고산증이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 유쾌한 만남은 들고 온 40여장의 인화지가 바닥이 나서야 끝이 났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참 행복했다.
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작은 사진 한 장밖에 없을 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함께 보낸 오후는 홀로 떠난 여행자에겐 많은 위안이 되었다.

너희들의 메마르지 않은 또랑또랑한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남아있단다.
나는 너희에게...
작은 추억을 선물한 행복한 사진사로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