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고산증에 시달린 라다크에서의 첫 날





산티스투파를 오르다 문득 올려본 하늘...
머리를 짓누르는 고산증의 고통은 한 걸음 떼기도 버겁게 만들었는데
파란 하늘 아래 걸린 산티스투파는 여전히 요원했다.







 

 

 

 

 


 

이곳이 바로 산티스투파.
햇볕을 받은 노란 지붕이 참으로 인상적인 이곳은 일본인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산티는 인도어로 행복이라는 말이고, 스투파는 '탑'쯤으로 해석하면 될 테니 이름하여 '행복탑'.


산티스투파 너머의 눈덮힌 산이 바로 해발 5,360m에 있는 타그랑라라고 불리는 험준한 고개.
보통, 마날리에서 레까지 육로로 이동할 경우에는 3개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번째 고개가 로탕라(해발 3,980m), 두번째 고개가 바라라차라(4,892m),
세번째 고개가 바로 저 너머 보이는 타그랑라(해발 5,360m)다.
워낙 고개가 험준하다 보니, 마날리에서 레로 오는 육로길은 5월에서 11월까지만 열리고
동절기에는 항상 닫혀있다.

내가 갔던 5월 중순에도 여전히 마날리와 레를 연결하는 육로는 막혀있었고,
충분하지 않은 여행시간 때문에 결국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샨티스투파에 오를 작정이다.
겹겹히 쌓인 피곤과 예고없이 들이닥친 고산증세 때문에 비록 고생을 하고 있긴 해도 한 걸음씩 오르다보면 더디게라도 오를 것이다.
아득히 먼 곳에 올려다 보이는 산티스투파가 그렇게 파란 하늘 끝에 매달려 있다.



가파르진 않은데도 계단을 몇 걸음 오르니 금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대기 중에 산소가 희박하다 보니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며 끊임없이 새로운 공기를 요구한다.
쉬었다 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야말로 더딘 걸음으로 한 걸음씩 오른다.
무거운 장비의 무게 때문인지, 지구의 중력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하게 나를 끌어당긴다.


오르면 오를 수록 레시가지의 아름다운 전망이 시나브로 모습을 드러낸다.
병풍처럼 레를 둘러 쳐져 있는 빛나는 설산들이 마치 거인의 위용처럼 웅장하고,
하늘은 푸른데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결이 참으로 곱다.

소풍나온 아이처럼 잔뜩 기대에 불풀어 있기는 해도 현실적인 고통은 참으로 극복하기 힘들다. 
한참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샨티스투파는 여전히 요원하다.
젠장... 미리 올려다 보는 게 아니었는데...
미련한 내 불찰을 내내 못마땅해하면서  또 몇 걸음 오르다 계단에 풀썩 주저 앉는다.
오늘따라 유독 무거운 장비들과 끊임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여진같은 두통과
터져나갈 것처럼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의 압박들로 인해 부실한 내 체력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려가는 서양애들이 쓰러져있는 내 곁을 지나치면서 'keep your head up!'이라고 외친다.
힘내라는 뜻일테지...  '화이팅'을 속으로만 따라 외치면서 몸을 일으킨다.

이곳에 온 지 며칠(few days) 됐다는 한 여자애는 그 동안 판공초와 누브라 밸리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곳에 가려면 여행사를 통해 퍼미션과 지프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가격이 만만찮다며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한 여행사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2박 3일의 누브라 밸리 코스는 1,000루피(25,000원)가 가장 싼 금액인만큼
여러 여행사를 돌아다니면서 가격 등을 점검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추천한다.
관심있는 지역에 대한 정보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귀에 속속 들어오는 걸 보면 아직 뻗어 있을 단계는 아닌 듯 싶다.

다시 힘을 낸다.


사진을 보면서 늘 그리워하던 그 풍경들이 여과없이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다.
어느새 봄이 완연하다고는 하지만 5월의 레는 여전히 냉냉하고 차갑다.
공기가 깨끗해서 한낮의 태양은 강렬하고 따가운 반면 그늘같은 곳으로만 들어가도 오싹한 한기가 돋을 정도다.
오랫동안 멈춰서서 요동치는 심장만큼이나 들뜬 철없고 뜨거운 설레임을 그렇게 식힌다.

때론, 우뚝쏫은 절벽 위에 곰파(절)와 함께 너무 황량하고 척박한 풍경도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척박하다고는 하지만 창스파 지역은 연두빛 나무잎과 풀들이 연출해내는 독특한 풍경과 색깔때문에 이제 막 봄의 축제를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 독특한 풍경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비로소 묵은 체증이 풀리는듯한 이 카타르시스...












 

 

 

 

 

 

 

 

 

 


 

산티스투파를 관리하는 노스님을 만났다.
일본인들에 의해서 산티 스투파가 세워지다 보니 동양인들에겐 꽤 호의적이신 스님은
낯선 나를 향해 연신 '쭐레 쭐레'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내신다.
그렇찮아도 고산증 때문에 잔뜩 고통스러워 하고 있던 내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산티 스투파를 배경으로 찍고 싶다면서 자리를 옮기신다.

그렇게 그의 사진을 찍었다.
서서 찍기도 하고, 앉아서 찍기도 했는데... 그 잠시의 움직임 때문에 금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고산증...
아마도 이번 라다크여행에서 만만찮게 나를 괴롭힐 복병일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싹텄다.










 

 


 

어느새 만연한 봄.
사실, 5월의 레는 여전히 꽤 쌀쌀하다.

대기가 깨끗해 한낮의 태양은 강렬해서 꽤 따가운데 반해,
그늘같이 서늘한 곳에만 들어가도 오싹하니 한기가 돋을 정도다.




 

 


 

저 멀리 멋진 성곽처럼 언덕에 우뚝 솟은 라다크 구 왕궁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한 때는 이 일대를 호령했던 라다크 왕국의 왕궁으로 티벳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왕궁 아래로는 100여년 이상된 오랜 집들로 가득한 레 구시가지가 쓸쓸하게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물줄기가 바로 인도 문명을 태동시킨 모체, 인더스 강이다.




 


 


어느새 이곳에서도 경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교적 비옥한 땅인 창스파 지구







 


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걀체모 곰파.
곰파라는 말은 '절'이라는 말이다.

 

 


산티 스투파에서 바라본 레 시가지의 전경




 

 


 



No smoking.
RS 500, fine

금연.
500루피 벌금...

한 라다키(라다크 사람)가 레를 조망하고 있다.







 

 

 

레 지방은 중국,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꽤 많은 군부대가 주둔해 있다.
접경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국경과는 꽤 많이 떨어져 있어 긴장감은 훨씬 덜하다.







 

 

 

아까 만난 스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드렸더니
일어선 스님도 반갑게 환송해준다.
어쩌면 혼자하는 내 여행이 그렇게 쓸슬하지 않았던 것은 이렇게 만난 작은 인연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쭐레~ 쭐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속은 미슥거렸고 숨 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희박한 공기를 마시느라 내 호흡은 거칠었고 몇 걸음 뗄 때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말로만 듣던 고산증 증세였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레...
육로로 이동할 경우엔 천천히 고도를 높히기 때문에 고산증세가 이렇게 급격하게 찾아오지 않았을 지 모르겠지만,
비행기로 이동한 탓에 한꺼번에 높아진 고도에 채 적응못한 내 몸이 격렬하게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는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책이나 여행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겪었다는 그 고산증을 과연 나도 겪을까, 만약 겪는다면 그건 또 어떤 고통일까 하는 작은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다.
그런데, 고산증의 핵폭탄을 이곳 라다크에서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사실, 레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옭죄어 오는 두통과 미쓱거리는 속의 울렁임, 가파지는 호흡은 심해져 갔다.
움직일 기력조차 없어서 내내 침대에서 보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던지 걸어다니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산티스투파같은 언덕배기를 오를 때는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이 금새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히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고산증이란 낯선 불청객이 내 여린 몸뚱아리를 덮쳤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여행 본능은 오히려 고산증 따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