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 파슈파티나트에서의 상념





 


 

시체 타는 매캐한 내음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리 마스크까지 준비하고 갔었다.
비록 짧은 시간 안에 훑어본 파슈파티나트였지만  그곳엔 또 다른 일상이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아니, 지극히 일상적인 삶만 난무하는 곳.
삶도, 죽음도 마치 일상처럼 고착화되어 버린 곳.
그곳이 파슈파티나트였다.

관광지화되어 버린 탓에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하는 수많은 사두들과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코브라 악단들과 휴식을 즐기는 네팔리들과
우리 같은 여행자들로 파슈파티나트는 넘쳐났다.
우리가 던져주는 작은 동전 몇 닢에 종교를 팔았고  음악과 웃음을 팔았고 인생을 팔았다.
늘 경건할 것이라 사념화되어 있던 파슈파티나트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섣부른 기대를 안고 간 내 불찰이었다.
늘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또 다른 고정관념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속인(俗人)이다.

속인의 눈은 곧잘 진실을 외면하고 화려함을 쫓는 습성이 있다.
아까부터 나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낡고 허름한 어느 골방 안에서,초점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문득, 대면하게 될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처음부터 주눅이 들어 있었는 지도 모른다.
허공을 떠다닐 그들의 허멀건 눈빛과 초라한 몰골을 대한다는 건, 어쩌면 햇살 좋은 날에 맞닥뜨리게 될 또다른 공포쯤으로 여겼다.
그렇잖아도, 골고루 퍼진 햇살은 파슈파티나트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터였다.
         
화창한 날에 맞이하는 죽음의 실체...
문득 쏴~한 소름이 훅 끼쳐왔다.
진득하고 눅눅하게 달라붙는 습기처럼 썩 내키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그렇게 떨어지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그래서 또 한 걸음 떨어진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외면하고 싶어서 돈을 주면서까지 뭔가를 찍으려고 했는 지도 모른다.
그래, 화려함만을 쫓는 속인의 앵글은 그래서 그만그만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비쥬얼은 늘 그런 식으로 진실을 감추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비쥬얼은 본질을 따라오지 못한다.
감춰진 진실의 힘은 어느 순간 깨어나서 무섭게 타들어간다.
그 강한 화력은 거칠 것이 없어서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팍을 파고 들어서는 지독한 고통만 남긴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장사치들이 달라붙는다.

국가 공인 가이드를 자칭하며 허가증까지 보여주는 청년이 가장 적극적이다.
다소 성가셨지만, 두 분(도 형님과 서산에서 온 육규씨)의 암묵적인 동의 때문에 애써 거절하지 못한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은 건 원숭이 모자였다.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평화롭게 털손질을 해주는 원숭이 떼들...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담장 밑으로 아래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았다면
그저 네팔의 오래된 도시 쯤에 온 것으로 착각했으리라.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잿더미를 화장을 관장하는 남자가 뒤적이는 게 보였다.
꽤 충격을 받을 줄 알고 어렵게 고개를 돌려 쳐다봤는데 의외로 감정이 일지 않는다.
매캐하리라고 생각했던 시체타는 냄새마저도 없다.
그저, 불타고 남은 잿더미라는 단순한 시각적 구성만이 단상에 남는다.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그저 무성한 햇살만이 자욱할 뿐이다.
화장터로 오면 뭔가 독특한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이곳은 마치 공허같이 허전하다.
슬픔도, 기쁨도 없는 그저 타인의 무덤덤한 시선만 난무하는 공터같은 느낌...
화두가 없는 세상처럼 느껴졌다.

 

 

 

 

 

 

 

 

 

 

 

 



사두...

힌두의 삶에는 몇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 마지막 단계가 바로 사두(sadhu). 우리말로 풀이하면 '탁발승' 또는 '고행자' 쯤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그들이 속해있던 가정도, 사회마저 저버린 채 진리추구를 위해 가난을 벗삼아 고행을 일컫는다고 한다.
무슨 의식인가를 치뤄주면서 미간에 빨간 빈디(점)를 찍어주고 머리위로 꽃을 뿌려준다.
옆에 있던 가이드 녀석이 무슨 축복의식이라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달갑지 않은 가이드의 설명을 대충 흘려 넘기면서 사두의 사진을 찍는다.
사두의 선한 눈빛이 마음에 든다.
진지하진 않지만 은근한 눈빛이 꽤 매력적이다.
그러나, 축복의식을 수행하던 사두의 밝고 선한 눈빛과는 달리  돈을 요구할 때의 날카로운 눈빛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뚜렷한 대조가 되었다.
사람의 선한 표정이 한 순간에 표독하고 악랄하게 일그러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질 정도였다.
여행이 끝난 지금에도 그의 돈에 대한 모진 집착의 눈빛이 뇌리 속에 각인처럼 박혀있다.
결국, 50루피를 박시시(적선)했다.


 









 

 

 


사두가 의식을 수행하던 바로 옆엔, 한 사람이 누워 있다.
삶의 의욕을 상실했는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다.
주변의 어떤 사람도 그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발바닥에선 진한 삶의 체취가 묻어났다.
행여 누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딱 한 컷을 담았다.


 

 













 

부유한 계급의 시신들은 저렇게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화장터를 사용한단다.
그가 부유하던,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슬퍼야 할 장례의식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어떤 슬픔조차 없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는 게 그들에겐 정말 기쁨일까.


 






 

 

 

                    솔직히...
                    종교적인 의식은 내가 가진 보편적인 지식(?)으로는 이해 못할 구석이 많다.
                    보편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준은 지극히 한국적인 모럴에 그 토대를 둔 것이리라.
                    즉, 지극히 한국적인 시선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드니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 마련이다.
                    깊이 있게 여행을 하려면 제대로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늘 시간의 부재 탓으로 돌리고 마는 내 게으름이 아쉽기만 하다.

                    '무엇을 하는 의식일까'에 대한 오랫동안 집착처럼 남았다.

 

 

 

 


 

              궁금해서 망원렌즈로 당겨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르는 것을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믿음이, 신념이, 의식이 저곳엔 있을 게다.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


 

 

 
 

 

화장터의 전체적인 풍경이다.
따뜻한 봄햇살이 내리쬐는 화장터는, 화장터라기 보다 그저 조용한 공원같은 느낌이다.
이제 막 시신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단상壇上.
하지만, 우리처럼 곡哭을 하며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는 시선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고통도 슬픔도 없는, 햇살 난무하는 세상이 그곳에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저곳까진 가보지 못했지만 작은 의식을 올리는 사람들 옆으로 떨어져 앉은 두 사람은 또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아마도 유족들에게 빈디를 찍어주고 꽃을 뿌리고 힌디어로 기원을 하는 일종의 바바들이었으리라.

유추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기로 했다.

괜히 어설픈 지식으로 유추하고 추측하면, 그게 곧 고정관념처럼 굳어지기 마련이다.
봤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가보서도 모르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우리의 좁은 시선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게 오히려 속 편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도 익히 봐왔던 그런 힌두의 상像들.
             힌두신앙을 알리 없는 내겐 그저 물리적인 나열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의 좋은 소재쯤 될까.
             강렬한 햇살 때문에 오른쪽이 오버되어 버렸다.
             (결국,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으로 귀결되고 마는 이 무지한 지식의 한계란...)

            
 

 


 

 

 

 

 

 

 

또다른 사두를 만났다.
그들은 어설프고 과장된 몸짓으로 충실히 우리의 모델이 된다.
모델이 되어주고 받는 돈은 겨우 50루피.
지갑을 열어보니 50루피짜리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바꿔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어쩔 수 없이 1달러짜리를 건냈더니 흘낏하며 바라보는 눈매가 매섭다.

 

사두의 얼굴에 그려진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진 모르겠다.
워낙 다양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 탓에 애길 들어도 제대로 모를 것 같아 포기했다.
아무튼, 외국인인 우리의 눈엔 그저 신기한 어떤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들도 그런 우리의 호기심을 잘 이해한다는 듯 교묘히 그 속을 파고든다.

애써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고자 화려한 사두를 찾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두의 얼굴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이 그렇게 우리를 유혹했으리라.
결국, 본질은 외면한 채 외양에만 치중해야 했다.
고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두는 어디에서도 만나질 못했다.
단지...돈을 요구하는 사두들만 카트만두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두로 치장한 모델들만 북쩍댄다.

굳이 파슈파티나트가 아니더래도,
타멜거리와 인접한 달발 광장에서도 이들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포즈를 취했고 반드시 손을 벌렸다.
사두처럼 행세하긴 하지만,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델사두들에겐 흥미를 잃고 말았다.

 

 

 

 


 

 


 

                물어보니 인도에서 왔다고 했다.
                제법 묵직한 카메라를 든 우리가 등장하자, 요란한 음악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신나고 경쾌한 리듬이다.

                피리를 부는 사람은 앞에 놓인 작은 뚜껑을 열어서 코브라가 나오도록 했다.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코브라는 그 특유의 코브라 트위스트를 절대 선보이지 않는다.
                코브라마저도 삶에 지친 모양이다.


 

 








 

 

               그 악단(?)에서 가장 젊어보이는 핸섬 가이.
               그는 자신의 주특기가 뱀 칭칭 두르기라도 되는야, 의기양양하게 뱀을 목에 감는다.
               좀 더 앞으로 다가가자, 우리 앞으로 뱀을 쓰윽 내미는데...
               갑자기 카메라 렌즈 앞으로 대가리를 내민 뱀 때문에 얼마나 놀랐던지...


 
 

 

 

 











 

 

'아저씨, 카메라 의식하지 마시고 좀 더 연기에 몰두하세요.'

 

조용하던 파슈파트나트가 우리의 등장으로 난데없이 풍악으로 덮혔다.
피리부는 아저씨는 연신 신이 나서 더 크게 피리를 불러재꼈고,그걸 보기 위해 구경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졸지에 우리가 던져주는 돈 몇 닢 때문에 일대는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결국, 5명으로 구성된 악단은 각자에게 50루피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돈을 지불할 우리가 아니지 대충 100루피 정도만 던져주고 물러났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긴 했지만...

파슈파티나트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저, 쓸쓸하게 주검들이 불태워지는 그런 경건한 공간쯤으로 생각했었는데...

 

 






 


                       파슈파티나트에서의 죽음이란...
                       늘 일상적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슬프지 않는 현실.
                       아니, 오히려 이곳에서 죽음을 맞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죽음을 그렇게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원 쪽에서 화장터로 넘어오는 문.
                  이상하게 저런 프레임을 좋아한다.

                  이교도는 저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 궁금한 지도 모르겠다

 

 

 




 

 

 

 

 

 

 

 

 

                   이분도 사두.
 
                   혼자 떨어져 외롭게 계신데다, 그 눈빛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절단된 발가락 때문에 측은지심까지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앉아 계시는 곳은 어느 작은 사원 앞.

                   자연히 배경이 어두워서 인물만을 부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원 안의 어두운 부분 때문에 자꾸 노출이 오버되는 바람에 몇 번이나 애를 먹었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건, 일단 찍긴 했다.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mp-300으로 사진을 뽑아드렸다.

                   막, 사진을 뽑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번엔 사두 대신 우리가 구경거리가 됐다.
                   아니, 우리가 가진 모바일 프린터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뽑아낼 수 있는 모바일 프린터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뽑은 사진을 잠시 두자, 윤곽이 뚜렷해졌다.
                   둘러 선 사람들이 한바탕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 사원 앞의 잘 말라가는 빨랫감.

                            햇살이 번져가고 있는 빨래 앞에선 왜 이렇게 개운한 느낌이 드는 걸까.

                            개운한 느낌은 꼭 나만 느끼는 게 아닌 모양이다.
                            빨래를 끝낸 남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 느낌이 너무 좋다.


 

 

 



 

 

 

 




 

                     파슈파티나트도 한참 정비중이다.
                     회색된 벽을 칠하는 사람들.
                     그리고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빗질하는 사람들.
                     열심히 회벽칠을 하는 남자.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말끔한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네팔리들의 웃음은 너무 자연스럽다.
                     활짝 열린 하늘에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햇살이 쏟아져서는 마당에 뒹굴고 있었다.


 

 

 




 

언덕 위의 벤치에서 파슈파티나트를 즐기는(?) 남자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싱긋 웃으며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림으로 나타내는 파슈파티나트는 또 어떤 모습일까 싶어서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꼭 그만의 시선으로 그만의 느낌으로 담겨진 파슈파티나트가 화폭 속에 담겨져 있었다.
왜곡되게 표현되기도 하지만 마음이 간절하게 원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그림에 왠지 마음에 끌린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잠시동안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오래된 사원촌이 나온다.
그 안의 온갖 문양과 건축양식들이 문득 낯에 익었다.
폐허같은 앙코르와트에서 봤었던 그런 양식과 문양이다.
힌두교에 대해서 나름대로 몇 번이나 책을 찾아 읽기는 했어도 여전히 낯설다.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와트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을 두고, 조금씩 흘러왔을 문명의 이전移轉~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문화와 문명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곳에 사는 사람은 달라졌어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비둘기들...
                   하늘은 파랬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내내 삶과 죽음을 떠올렸고, 몇 번이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중얼거렸다.

                   '삶과 죽음의 길이 여기 있음에 두려워
                    나는 간다는 말도 다 못 이르고 갔구나...'

                  '미타찰(彌陀刹=극락)'에서 도를 닦으며 기다려 달라고 했었지...

 

 

 

 






                   남녀교합상

                   훨씬 에로틱한 것들도 많던데 약간 덜 에로틱한 것으로 찍었다.

                   이런 내용을 찍을 땐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들다가도...
                   막상 돌아와서 생각하면 왜 안찍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건 왜일까?
                   두 마음의 갈등은 살면서 끊임없이 부대끼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작은 갈등에 대범해질 줄 아는 지혜.

 

 







불이 타고 있는 단상 앞의 두 남자는 또 무슨 애길 나누고 있을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아련한 행적을 추억하며 조의를 표하고 있는 중일까.
대머리 아저씨의 정수리에 꽂히는 태양빛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보기엔 그들의 표정이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덤덤한데다 표정까지 없는 그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너무 낯설어서 애써 적응하기조차 힘들었다.










 


 

                   부유한 제단과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허름한 제단들이 연달아 놓여져 있다.
                   불타고 있는 두 구의 시신들이 보였다.
                   물론, 천으로 덮어서 화장하기 때문에 시신 자체를 육안으로 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시신이 불태워진다고 생각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완만하던 감정의 기복들이 요란스럽게 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애써 피해왔었는데 그렇게 주검과 마주 했다.

                   그 아래 강가에서는 무언가를 줍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살아있음과 불타고 있음의 극명한 대조와 그 차이...
                   그래도,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뜨거운 불에 몸이 녹아내려도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어쩌면, 한 줌 재로 돌아갈 몸뚱아리일 것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연연하고 아둥바둥 살아가는지...

겁도 없이 불길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리며 얼굴에 와닿는 게 느껴졌다.
불타고 있는 시신 자체가 인생의 본질은 아니겠지만 이번만큼은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불꽃은 열정처럼 타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뿌연 연기를 뿜어댔다.
붉은 열정으로 살았을 어떤 사람의 영혼이 그렇게 날아가고 있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천당으로 가소서...
아니, 사신死身이 믿었던 종교에서 가장 좋다고 한 그 땅으로 가소서~!
그 믿음처럼 비둘기처럼 자유롭게 훌훌~!
창공 속으로 흩어지소서~

 








 

화장터에선 여전히 죽은 이들의 몸이 불태워지고 있었다.
그게 또다른 삶의 시작인 것처럼....


          

 

  

좀 더 오랫동안 파슈파티나트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촉박한 포카라행 비행기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빠져 나와야 했다.
기회가 되면,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이 곳에 오고 싶다.
그때는 좀 더 이른새벽에 이곳을 찾으리라.
새벽이 주는  숭고한 의미와 함께 정신까지 정화시킬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햇살이 낮게 드러누웠을 때의 그 묘한 실루엣을 생각하니 닭살처럼 긴장이 돋았다.
비록, 주검들이 불태워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삶은 지속되고 있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버려진 옷가지를 줍는 아이들의 애처러운 삶의 몸짓이 있었고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병약한 사람들의 눈빛이 허옇게 떠다니기도 했지만,
햇살은 거짓말처럼 눈부셨으며 사원은 말끔하게 단장되고 있었다.

바라만 봐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파슈파티나트는 어두운 삶의 막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공간이었다.
생존에 대한 치열한 갈구가 어느 곳보다도 강하게 작용하는 곳.
윤회전생(輪廻轉生) 중에 현세는 그저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
끊임없는 속박의 업에서 벗어나, 부디 해탈하는 장소이길 바랬다.

 

'아, 하늘은 왜 이렇게 파란거야.'
방금 잠에서 깬 사람처럼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우두둑거리며 비둘기들이 하늘 속으로 날아 올랐다.  
         
그곳을 나와 작은 가게에서 김빠진 인도산 음료수를 마시고...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에게 적당한 금액을 지불했다.
         
녀석,
우리가 지불한 금액이 적다며 투덜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