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의 따뜻한 추억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지도 꽤 많이 훓어봤고, 명성이 자자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기웃거렸으며, 뮤지컬이나 각종 공연장을 폼나게 찾아 다니며 관람하기도 했고, 다양하고 맛있는 각국의 음식에 취해 한 때는 미각여행의 명분으로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역시 여행에서 가장 마음을 흔드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제외한 다른 요소들은 여행을 하게 되면 당연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물론, 현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기획된 여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베트남의 사파나 박하여행, 중국의 실크로드와 동티벳여행, 인도의 라다크와 바라나시 여행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행은,
명성이나 유적, 자연환경 등 사람이 아닌 다른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실행된 게 사실이다.
여행 초기에는 유적지나 관광명소, 아름다운 자연조건, 음식이나 공연 등이 여행의 주관심사였다.
남들 다 가는 곳에서 남들과 비슷한 포맷의 사진을 찍고 지인들에게 대단한 경험이라도 한 것인양 자랑하고 다니는
그렇고 그런 여행을 다녔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다녀오면 알맹이가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유적을 보긴 했는데 도통 마음을 움직이는 여운같은 게 남아있질 않았다.
그저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유적지를 지식도 없이 뱅뱅 돌기만 했으니 더욱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허전했다.
세번씩이나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가고 싶어 안달이었던 토스카나 지방을 다녀오긴 했는데 여행의 갈증은 더욱 강렬하게 목젖을 타들어 갔다.
내 여행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곳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여행은 몽골과 네팔 등지를 여행한 뒤라서 그런지 감동과 감흥은 확연하게 떨어져 있었다.
나라 전체가 관광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로마시대의 수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는 이탈리아였지만
사람사는 냄새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메마른 땅과도 같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내 여행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준 계기가 된 것은 이탈리아 여행 직후가 아닌가 싶다.
입맛도 서서히 변하듯이 여행의 유형도 그렇게 조금씩 바뀌었다.
유럽이나 일본같은 선진국 일변도의 여행에서 비록 가난하긴 해도 사람의 냄새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으로의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현지인들과의 예정없는 만남은 무엇보다 큰 감동을 주는 여행의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소통했던 작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빛났는 지는, 여행을 추억하면서 미소짓는 입가에서 느끼게 된다.
압도할만한 아름다운 풍경도, 오래되고 고풍스런 유적지도 더 이상 기억에 남아있질 않았다.
단지 서로 마주잡은 두 손의 따뜻한 감촉만이 오래도록 여운처럼 남아있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현지인들과 교감을 쌓고 친해지는 과정들을 단계별로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지극히 나처럼 사람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씌여졌다는 점이다.
등 뒤로 따뜻한 색감의 램브란트 빛이 흐르고 짙은 주름의 노인이 평온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카메라에 담고 싶은 그런 장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그것도 말조차 통하지 않는 노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작정 접근해야 하는데, 특히 소심한 A형을 가진 나같은 사람은 지레 겁을 먹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는 눈치만 살핀다.
나의 느닷없는 출현 때문인지 아니면 강렬한 저녁햇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잔뜩 찌푸려 있다면 주눅이 든 나는 말 한 마디 건낸 채 돌아서야 했다. 거기다 몇 번의 거절을 당한 뒤라면 자신감은 이미 상실할 대로 상실한 상태가 되고 만다.
실제로 현지인들을 제대로 담아본 적이 없는 여행 초기의 내 자화상이다.
동행이 있어서 함께 접근하면 모를까, 주로 혼자 다닐 때는 현지인들이 보는 앞에서는 카메라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정도로 의기소침해 있었다.
좀 더 다가가면 꽤 괜찮은 장면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선뜻 말 붙힐 용기가 없으니 멀리서 망원렌즈로 당겨 겨우 찍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찍고 싶은 사진과의 괴리감이 생길 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눈빛에도 부담을 느끼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현지인들의 사진을 찍고 싶어서 접근하던, 여행의 폭을 넓힐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던,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줍음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태연하게 웃으면서 다가가 보라.
열에 아홉은 이방인의 접근을 순순히 허락할 것이다.
한 번 당할까 말까 하는 거절에 대한 불편한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시도조차 못한다면 영원히 낯선 사람 앞으로 다가가는 일 따위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한 번 시도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시도해 보면 이보다 더 쉬운 것도 없다.
마음 속에 먹구름처럼 끼여있는 수줍음과 거절에 대한 불안한 장벽을 걷어내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 보라.
현지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낯선 이방인들을 환대할 것이다.
배낭매고 훌쩍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데 짧은 영어 때문에 엄두가 안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면 그보다 좋을 것도 없겠지만 영어를 전혀 못한다고 해서 미리 겁먹고 여행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영어권 국가를 여행할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만약 유창한 영어를 앞세워 당신에게 접근하는 현지인이 있다면 대개는 장사꾼(일명 삐끼)이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목적은 한결같이 여행자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기 때문에 용모 반듯한데다 말쑥하기까지 해서 쉽게 정신을 현혹시킬 용의가 다분하므로 항상 주의해야 한다.
즉,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특정 현지인들은 영어를 못하거나, 영어를 하더라도 여행자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불특정 다수의 현지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영어보다는 오히려 현지인들의 언어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당장 우리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길을 묻기 위해 낯선 서양인이 인사를 하며 접근했는데 만약 내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해보자.
서양인이 영어로 인사하고 접근했을 경우와 어눌한 발음이지만 한국말로 접근했을 경우라면, 당연히 한국말로 인사하고 접근한 경우에 더 친밀감을 가질 것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도나 네팔 등을 여행한다면 현지인들에게 '나마스테'라는 인삿말을 건내보자, 인사를 받은 인도나 네팔사람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시 '나마스테'라는 말로 화답해줄 것이다. 나마스테라는 말 안에는 단순히 인사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데, 즉 '당신에게 깃들어 있는 신께 문안드립니다'라는 고귀한 뜻이 된다. 단순히 인삿말 하나를 건냈을 뿐인데도 인도인들이나 네팔인들의 태도는 눈빛만 마주쳤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등의 인삿말은 되도록이면 현지어를 암기해서 사용한다.
한국에서 미리 알고 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들에게 물어본다.
인도나 네팔에서는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던야밧(고맙습니다), 무제아프소스헤(미안합니다),피르밀렝게(다시 만나요), 아차헤(좋아해)' 등을 외워고 다녔는데, 인도를 떠날 때 며칠동안 묵었던 호텔 지배인에게 '피르밀렝게'라는 인사를 건냈더니 느닷없이 'when?'이라고 물어왔다. '피르밀렝게'라는 말을 단순히 'good bye'라는 '단절'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영속성을 지닌 'see you again'이라는 의미임을 알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의 어느 카메라 수리센터에서 우연히 인도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울산의 꽤 이름있는 회사에 근무한다는 그도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서 그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그와 인도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헤어지기 직전 내가 던진 '피르밀렝게'라는 인삿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에게서 그런 인삿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인도에 있는 인도인이던, 인도를 떠나온 인도인이던 자신의 모국어로 친근하게 인사를 건내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호감을 갖기 마련이다.
중국의 실크로드와 동티벳을 여행할 때는 다양한 민족의 인삿말을 외워야 했다.
중국의 신장지역은 한족 뿐 아니라, 위구르족, 카자흐족, 타지크족, 몽골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살기 때문에 각 민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각기 다른 인삿말을 알아야 했다. 게다가, 반한족감정이 심한 카쉬카르 등지에서는 한족과 거의 유사하게 생긴 나같은 한국사람은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다. 카쉬카르를 방문한 시기가 우루무치 사태가 일어나기 며칠 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이 다섯개의 말만 알면 위구르족이 사는 지역은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내가 한족이 아님을 알고 더욱 친밀하게 다가오는 위구르인들로 인해 내 여행은 훨씬 풍부해졌고, 내 카메라엔 수많은 위구르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담겨갔다.
세상 어디를 가나 아이들만큼 접근하기 편한 대상은 없다.
굳이 애써서 접근하려 하지 않아도 호기심이 잔뜩 묻은 눈빛으로 서스럼없이 다가오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약간의 코믹한 동작만 보여줬을 뿐인데도 까르르거리며 숨넘어가는 아이들과는 금새 친구가 되고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금새 카메라 앞에 선다. 단지 찍힌 그들의 모습을 LCD로 보여줬을 뿐인데도 신기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금새 또 웃음보가 터진다.
하지만, 세상에 때가 묻지 않아야 할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나라의 아이들은 가난에 시달리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구걸과 앵벌이를 하고 있다. '원 달러'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그래서 슬펐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의 한 켠에서 아무렇게나 잠을 자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허기를 채우고, 관광객을 만나면 손을 벌려 원달러를 외치던 아이들...
앙코르왓의 도시 시엠립에 며칠동안 머물 때 밤이면 인근의 포장마차(일종의 노천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 때 만난 아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식당에서 약간 떨어진 어두운 골목에 우두커니 앉아서는 하염없이 우리(아내와 나)의 먹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주춤거리는 식당 주인에게 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볶음 요리를 주문해서 건내주자, 얼마나 오랫동안 굶주렸는 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국물이 있는 따뜻한 만두국을 추가로 주문해서 줬더니 이번에도 녀석은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해치웠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의자에는 앉지도 않은 채 그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먹으라며 아내가 몇 번이나 종용하고 나중엔 화까지 내봤지만 아이는 결코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그 이후의 여행부터는 아이들을 작은 선물을 항상 준비했다.
사탕이나 볼펜 등 배낭의 부피를 많이 늘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유용한 것들을 준비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너무 대박이어서 준비해간 물품은 초기에 품절되기 일쑤였는데 이럴 때면 현지에서 더 구매를 해서 준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네팔에서 트래킹을 하다가 만나는 아이들은 여행자들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손을 벌리며 '스윗(사탕)'을 요구했다.
이미 다녀간 수많은 여행자들에게서 사탕 등 먹을 것을 얻어먹은 게 관행처럼 굳어지다 보니 여행자들은 당연히 사탕을 주는 것처럼 인식되어 버린 모양이다. 달콤한 사탕을 먹은 이곳의 아이들은 그래서 치아상태가 좋지 못하다. 물이 귀한 곳이라서 양치질을 거의 하지 않다보니 충치로 인해 고생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하물며 네팔정부까지 나서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지 말 것을 경고할 정도다.
이후부터는 볼펜을 위주로 한 작은 학용품을 준비해갔다.
가끔 현지에서 공책 등을 구입해서 나눠주기도 하는데, 이런 작은 나눔들이 세상의 아이들과 나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말고 환한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었다.
물론, 준비해 간 양은 늘 턱없이 부족했다.
러시아제 승합차(일명 푸르공)으로 반나절을 달려도 게르(몽골식 이동용 텐트) 하나 찾아보기 힘든 몽골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게 그만큼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몽골여행에서는 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이것이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초원에서는 그나마 제법 큰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의 스케치를 하다가 우연히 한 아저씨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저씨의 모습을 LCD로 확인시켜주려고 아저씨 앞으로 카메라를 갖다 대는데 두 손으로 뭔가를 받치는 시늉을 보이시는 게 아닌가.
손으로 받치고 있으면 사진이 나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착각한 아저씨.
내 카메라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을 때, 일순 그의 얼굴 위로 스쳐가던 너무 서운해 하는 빛은 두고두고 멍울처럼 가슴에 남았다.
그때의 그 미안함과 죄책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작은 마을에 살기 때문에 주소라도 가지고 있는 그 아저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우편으로나마 뒤늦게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몽골인들에게는 사진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었다.
늘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특성상, 주소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일 이후부터는 나는 여행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즉석 프린터기를 챙겼다.
네팔 카트만두의 아샨초크라는 시장에서는 상인들에게 둘러쌓여 수십장이 넘는 사진을 바로 찍어서 뽑아주기도 하고,
인도 라다크의 작은 절에서는 라마스님들에게 사진을 뽑아주고 융성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즉석 프린터기는 여행지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고 어디에서나 나를 환영받는 여행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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