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민박집의 매너없는 한국 여대생




 






1.

비가 그치고 있었다.
서편 하늘로 번져가는 붉은 노을이 장엄한 서사시처럼 일순간에 피어올랐다.
삼각대를 들고 오지 않은 게 너무나 아쉬웠다.
저 붉은 노을이 시들면 이내 베네치아는 짙은 어둠 속에 잠기고 말텐데, 매직아워(일몰 후 30분 전후)를 놓칠 게 분명했다.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모습만 카메라에 담을 목적으로 나온 탓에 삼각대를 민박집에 두고 온 게 이렇게 후회로 남다니...



화려한 노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나브로 잦아들었고 베네치아는 예상대로 푸른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푸른 빛이 완연한 베네치아의 야경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아쉬움만 가슴 속에 팽팽하게 남아 있었지만
민박집에 갔다오면 좋은 기회를 놓칠 게 분명했으니 차분히 마음을 비우고 추억으로만 담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남겨둬야 또다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민박집은 저렴한 숙박 비용에 두 끼의 식사를, 그것도 한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숙소다.
성수기인 여름철의 경우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도미토리(다인실) 형식으로 방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받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욕실과 붙어있는 화장실이 하나 또는 두 개인 민박집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침마다 한 바탕 홍역을 치를 각오도 미리 해야 한다.


저녁식사 시간이라서 그런지 민박집 안은 젊은 대학생들로 넘쳐났다.
작은 공간 안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다 보니 입구쪽엔 신발을 둘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좁고 협소했다.
베네치아라는 한정된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다닥다닥 붙은 그들의 협소한 가옥구조 쯤이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10여명의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화장실이 한 개밖에 없다보니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거기다 베네치아 민박집은 식당도 너무 좁아서 겨우 5명 남짓 앉을 공간밖에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개 팀이 번갈아 돌아가며 식사를 해야 하는 등 유럽의 다른 민박집들과 비교했을 때는 꽤나 열악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일몰과 야경을 보는 바람에 비교적 늦게 민박집에 들어왔더니 벌써 첫 팀의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동하느라 긴장한 탓에 별로 먹은 게 없어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숙소에 들어오는 순간, 쌓여있던 긴장이 눈 녹듯 스르르 풀리면서 잊었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번째 식사팀에 합류해서는 그야말로 식은밥 하나 남기지 않고 개걸스럽게 해치웠다.
포만감과 함께 누적된 피곤이 그제서야 밀려왔고 잠시 침대에 누워 지친 몸을 식혀야 했다.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시간전에 욕실(또는 화장실)로 들어간 여대생이 여전히 나올 생각을 않는다며 푸념하는 소리였다.
베네치아 야경을 보러 나가기 전에 미리 볼일(?)을 봐야 안심이 되는데 한 여대생 때문에 아무도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몇몇은 투덜거리며 바깥으로 나간 상태였고, 아주 급한 몇몇은 여전히 남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유럽의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유료인 것도 그렇지만, 미로가 복잡하게 얽힌 베네치아는 그런 유료화장실마저 찾기 힘들기 때문에
미리 숙소에서 볼일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빨래같이 당장 급하지 않거나 시간이 걸리는 일들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하면 될텐데도
다른 사람들의 급한 사정(?)따위는 태연하게 외면한 채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못된 이기주의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자기 집구석에서나 하던 나쁜 버릇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장소에서 스스럼없이 하는 뻔뻔함이 한편으론 놀라웠다.
남에 대한 배려 따위는 길가의 개똥보다도 못하다고 여기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어쩌면 우리의 어긋난 교육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참사람이 되라는 인성 교육은 철저히 배제한 채 성적 위주의 밀어붙이기 식의 교육정책이 낳은 우리 시대의 안타까운 사생아가
그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모를 측은지심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보면, 난 비약을 참 잘하는 편...)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조금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자기 차례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다른 대학생들이 안타까워서 내가 나서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다 됐어요'라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욕실 안에서 들려왔고 금새 빨랫감을 한 웅큼 든 새초롬한 여대생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미안한 기색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 말조차도 사람들에게 건내지 않은 채 흘낏 쳐다보며 자기의 방으로 가버렸다.
많은 여행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저런 싸가지없는 여대생은 또 처음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못해도 미안한 기색정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텐데
어떤 잘못도 없었다는 듯이, 아니...
도리어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을 했는지 눈까지 흘기고 가는 그녀 앞에서 황당함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성질 같아서는 한 바탕 큰 소리를 내며 따져보고 싶었지만, 좋은 여행 와서 그러면 뭐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이내 마음을 접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무조건 1등이 되라고 아이들을 종용하지만,
일본의 부모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사실, 일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가정교육에 관한 것은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인간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선현들의 말씀도 그런 뜻에서 다시금 되새기는 건 어떨까.






화장실 문제만 제외하면 이곳에서 묵는 하루는 크게 부담이 없었다.
일단 먹거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 물론 잠자리야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여행 중에 그 정도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입맛에 맞는 먹거리와 여행 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 있는 점,
그리고 동행을 찾기도 쉽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여행 때마다 한국인 민박집 아니면 게스트 하우스를 곧잘 이용한다.


비록 나이차는 꽤 있을 지 모르겠지만 여행자라는 동질감 때문에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도 비교적 자유롭다.
내 또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늘 한결같은 주제에 국한되기에 아쉬움도 많았는데
여행과 사진과 예술, 그리고 젊음에 대해 애기를 나누다 보면 묵혀둔 열정이 그제서야 고개를 삐죽 내미는 경우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야경을 보러 가자는 내 제안에 함께 밥을 먹고 있던 여대생들이 선뜻 동의를 했다.
어둠이 켠켠히 내려앉은 어두운 밤거리를 그렇게 나와서 걸었다.
비가 그쳐서 그런지 좁은 골목들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떠밀리다시피 해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도시들은 저녁 6시만 되면 한산한데 반해 너무 유명한 관광지인 베네치아는 그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수로변으로 예쁘게 치장한 카페마다 한 웅큼의 사람들이 식사와 와인을 즐기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고,
리알토 다리 위에선 연인들의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의 진한 애정행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달 일정으로 유럽을 돌고 있다는 그녀들은 영국에서부터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쉼없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유럽여행'이라면서 이곳에 오기 위해 몇 달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호기롭게 웃었다.
대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그런 코스, 새롭지도 않을 유적지를 떠돌면서도 그녀들은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문득 로마에서 만났던 여대생들과 어쩌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애기를 하는 지...
획일화되고 보편화된 여행이 만들어낸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풋풋한 젊음을 간직한 그녀들과의 동행은 즐거웠다.
연신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도 그렇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감탄을 아끼지 않는  표현법 때문에도 그랬다.
녹이 슬어 군데군데 홈이 빠진 나의 열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따뜻함을 그녀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2.

비오는 날의 이미지는 왠지 거칠고 투박하다.
바닥에 고인 질퍽거리는 물웅덩이 때문에 신발 안으로 어느새 물이 스며들고 말았다.
비까지 추적되니 그렇잖아도 떨어진 기온 때문에 몸까지 으스스하게 떨려왔다.
거리에서 조각피자로 간단하게 요기를 떼우고 골목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한 번 쌓인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화려한 쇼윈도우 앞에 멈춰 서서 언뜻 가격표를 들춰보고는 1,000유로가 넘는 가격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담배라도 피워서 짙게 깔린 외로움을 떨쳐버릴려고 했는데 라이타마저 말썽인지 제대로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유영하듯 흔들려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것 같던 젊은 날의 열정은 시나브로 사그러들었던 모양이다.

뜨거운 청춘과 열정이 사라진 쓸쓸한 뒤안길에는 철저히 혼자된 고독만 나뒹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술은 숙성이 되어 깊은 맛이 더해지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차분해지고 생각의 깊이가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예전만큼의 수다스러움도, 새로운 것에 대한 강렬했던 호기심도 어느새 면역이 되었는지 많이 무뎌져 있는데다,

세상을 시니컬하게 보는 경향이 짙어진 탓에 가슴 속은 늘 메마르고 건조해서 바짝 말라가는 느낌이다.
톡톡튀는 시각과 생각들, 그리고 라떼처럼 감미로운 감성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걷다가 지치면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떠다녔다.
이름도 모를 역에 내려서 잠시 걷다가 그것도 지치면 다시 바포레토를 탔다.
비가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의 바포레토엔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그들은 한결같이 카메라로 베네치아를 스케치하기에 바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와보니 굳어있던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들 틈에 끼여서 베네치아의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원하는 순간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하이에나처럼 카메라를 들었다.
그래봤자 흔하디 흔한 베네치아의 풍경사진일 수밖에 없겠지만
내 카메라에 든 베네치아의 풍경은 좀 더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길 은근히 기대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시각만큼은 독특하고 차별화되어 있으며 자신만의 표현법이라며 우월감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게 있어서 사진은 재미의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일상과 여행의 나날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그런 재미.
조금만 다른 앵글로도 전혀 다른 것들로 표현이 가능한 사진만의 세상은 나를 추구하는 또다른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세상을 유랑하고 여운같이 오래 남는 즐거움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 앞으로 다가가기 좋아하는 내 유쾌한 성격이 재미를 증폭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찍으면 찍을 수록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오히려 어렵기 때문에 더 재미를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자기만족'으로 귀결되는 일종의 유희의 소산인 셈이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그 흔해 빠진 여행 사진의 부류고 많은 사람들로 부터 영향을 받은 아류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여행을 다니면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 즐겁고 들떠있기 때문에 여전히 카메라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것이리라.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한 그런 사진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 즐기기'위한 그런 사진이 나의 출발점이요 여전히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