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유럽의 벼룩시장





 








유럽의 많은 도시에선 일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독일 중서부의 작은 도시 에센 인근의 뮬하임에서도 그랬고 프랑스 파리의 어느 길모퉁에서도 그랬다.
도시를 배회하다 문득 열리는 작은 벼룩시장의 오래된 물품에 이끌려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렇다고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사놓으면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은 낡고 오래된 골동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고 굳은 도시의 한 켠에 시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한국이나 동남아의 시장처럼 온통 먹거리 일색의 시장도 아니고 지나칠 정도의 호객행위도 없어서 그런 것에 익숙한
우리에겐 다소 어색하고 미지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유럽의 벼룩시장은 나름대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저런 물건들이 과연 팔릴까 싶을 정도의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다.
오래전에 사용해서 이제는 제대로 작동조차 되지 않을 것 같은 구닥다리같은 물건들이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가구와 액자, 도자기류, 그림, 카메라, 건반, 인형, 동전, 등, 악기, 의류, 핸드폰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빛이 바랜데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여있기까지 했다.
도무지 구매욕구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게끔 하는 극악의 디스플레이도 망설임을 부추기는데 일조를 한다.


독 '새롭고 기능좋은 것'만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쓰레기같은 물건들만 널려있는 잡동사니 시장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요란스럽게 치장된 광고문구에 현혹되어 1년도 안된 하자없는 핸드폰을 구형으로 취급하여 급하게 바꿔버리기 일쑤고... 막강한 기능을 탑재한 신형 자동차들의 물결로 거리는 날마다 업그레이되고 있다.


신제품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dslr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2-3년이던 동종제품의 제품 출시주기가 급기야 1년 이내로 줄어들자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희안한 편견으로 철새처럼 몰려들었고 때로는 보급형은 제대로 된 사진을 담을 수 없다는 억지같은 논리로 전문가급의 플래그쉽바디로 전향하는 사람마저 늘어났다.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 것만을 지향하는 의식은 도시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었다.
500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어디에도 '유구'한 것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게 되고 말았다.
높게 올라간 수많은 빌딩들과 수많은 아파트들이 본래의 서울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오래되고 지저분했던 달동네는 하나같이 철거되고 그 자리엔 산뜻한 디자인의 비싼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공간 배치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탓에 결국 그들만의 아파트가 되고 말았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고 녹지는 개발에 밀려서서는 줄어들어 황폐하게 변했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관 일변도의 산업화가 점점 무절제한 황금 만능주의와 개발지향 정책에 편승하여 '빨리 빨리' 문화를 양산해내고 있었다. '역사'를 그저 과거의 고루한 유산쯤으로 치부한 탓에 우리는 낡고 오래된 것은 무엇이라도 부수고 뜯어고쳐야 하는 1순위에 올려놓고 말았다.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둘 헐려나가고, 추억이 서린 달동네가 그렇게 강제 철거당하고, 수목이 울창한 산비탈을 깍아서 새로 건물들이 들어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1년도 안되서 달라지는 도시의 외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차가운 콘크리트 숲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엔 여유를 즐길 시간도 공간도 없어진데다 오랜 추억마저 잃어갔다.
우리의 안타까운 현대사가 만들어낸 우리네 풍속도의 한 단면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벼룩시장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펼쳐놓는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도 참 바람직하고 현명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우연히 들리게 된 피사 인근의 작은 도시, 루카에서도 한창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키안티의 언덕들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없었지만 작은 성곽도시 루카는 그렇게 색다름으로 다가왔다.
루카의 격자형 거리는 기원전 180년 로마 식민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17-18세기에 건설된 크고 견고한 성벽이 차량의 진입을 막아주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보기엔 그야말로 쾌적한 환경이었다.

강한 햇살 때문인지 루카시내는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늘로 인해 음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햇살 가득한 거리를 돌아디닐 때는 잘 몰랐는데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한국처럼 습도가 높지 않은 건조한 기후 탓일 것이다.


이렇게 노출차가 강한 날은 그늘 쪽의 암부가 유난히 두드러진다.

적정노출을 잡는데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에 측광을 여러군데 해보지만 밝은 쪽에 맞추다 보면 암부가 너무 어두워지고,
어두운 쪽에 맞추다보면 밝은 쪽(특히 하늘)이 노출 오버되어 화이트홀이 생기기 일쑤였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좋을 지 모르지만 카메라로 찍을 때만큼은 너무 어려워서 늘 표현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그런 여행도 때론 즐겁다.
솔직히 사진에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 체험하지 못해 발생하는 어려움을 스스로에게 많이 호소하기도 했다.
그곳을 다녀오긴 했지만 사진찍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보면 정작 여행의 알맹이를 망각하고 마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스냅 위주의 사진을 찍다보니,
그런 생각은 더욱 두드러졌는데 그럴 때마다 소중한 여행의 본질을 상실하는 듯한 안타까움 때문에 가슴이 저렸다.


비록 사진 때문에 여행을 떠나오긴 했지만, 사진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였다.
주마간산처럼 그저 훑고 지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래서 많이 들었나 보다.
제대로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하면서 그저 스냅류의 사진만 남발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일종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회간접시설(도로, 항만 등)이 너무 잘 갖춰진 이탈리아를 떠돌면서 나는 한 번도 이것을 '여행'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내가 가진 편견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여행의 정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여행은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오지 또는 그 비슷한 지역을 힘들게 돌아다니는 것으로 늘 정의하고 있었다.
도로가 너무 잘 갖춰져 있어서 접근성이 뛰어난  이탈리아를 떠도는 행위는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이라고 성급하게 정의를 내렸다.왠만큼 이름난 도시를 가면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로 들끊는 이런 식의 여행은...


현지인과 관광객의 구분의 거의 없는데다 현지인과의 소통마저 거의 단절되어 있는 이런 식의 여행은...
배낭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떠나온 이곳에서 여전히 패키지 관광의 흉내를 내고 있는 대학생들의 행태를 바라볼 때면 더욱 그랬다.게다가, 항상 정해진 레파토리처럼 일정한 틀만 끊임없이 돌고 있는 식상함이야 말로 이곳에서의 여행을 여행이라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사진을 찍는데 성의가 없다보니, 사진은 제대로 된 '사진'이라기 보다는 스냅류의 보기좋은 이미지만 양산해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지는 모르지만 결국 허울좋은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여행을 떠나온 게 아니라 관광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친퀘떼레였다.
아름다운 다섯개의 해변마을이 있는 친퀘떼레...
우리는 루카를 떠나서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덕으로 이어지던 토스카나와는 또다른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법 높은 산이 나오는가 싶더니 작은 고성들이 마치 구름처럼 산정에 걸려있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이 만들어졌다.
낯설음은 분명 새로운 기대를 양산해내고 있었다.


제법 복잡한 라 스페치아 La Specia라는 작은 도시를 벗어나 어느새 친퀘테레까지 이어지는 해변도로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자 라 스페치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언덕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차를 세웠다.
시계가 너무 좋은 날이라 그런지 멀리 있는 제법 큰 산이 여과없이 보였고 나즈막한 분지 위에 자리한 라스페치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친퀘떼레로 접어드는 관문도시인데다 이탈리아 해군기지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