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몽골의 가을하늘





 





 

 







 







 







 







 







 






 

 

 

낯선 길손을 태우고, 정처없이 떠돌았던 우리의 푸르공(러시아제 승합차).


투박한 디자인과 볼품없는 외형 때문에 실망도 하고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명성대로 그 기동력은 대단했다.
자동화를 위한 전자적인 설비가 없는 아주 단순한 기능이기 때문에
초원에서 차량이 고장이 나더라도 익숙한 운전자라면 누구나 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빈약한 쇼바 때문에 승차감은 열악했지만 잔고장이 거의 없어서 마치 초원의 off-road에 최적화된 차량같았다.
준비된 잉케의  대처능력 때문에 오히려 푸르공의 가치는 빛이 났고 
'펑크' 이외엔 별다른 고장없이 우리의 여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푸르공은 우리의 "Let's go" 명령을 기다렸고
그럴 때마다 잉케는 엑셀을 밟고는 거친 초원 속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기복없는 몽골의 초원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됐다.
몇 시간을 달리고서도 초원의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침잠하는 느낌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로 푸르공(러시아제 승합차)의 질주 본능은 멈추지 않은 채 이어졌고
우리들은 그 푸른하늘에 맘껏 취해 있었다.


이제 막 9월 초순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원의 풀색은 누렇게 변했고 거친 바람결 속엔 차가움이 묻어났다.
그나마 맑은 햇살이 주는 온실효과 때문인지 차 안의 공기가 따뜻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왁자지껄하던 선생님들은 차량의 진동이 주는 안락함과
차 안을 떠돌아다니는 나른한 공기입자들 때문에 이  고개를 떨구셨고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어설픈 영어와 손짓으로 운전자 잉케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긴 여로의 무료함을 달래야 했다.


그렇다고 마냥 달린 것만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금새 푸르공을 세웠고 전사들처럼 카메라를 둘러매고는 초원으로 달려나갔다.
넓은 초원에 별처럼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은 촬영의 좋은 소재였다.
선들한 바람이 제법 부는 초원은 숨막히는 도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냥 황량하다고 생각한 초원의 이름모를 장소에도 생존에 필수적인 실개천이 뱀꼬리처럼  흐르고
볕이 좋은 물가엔 녹색의 풀들이 꿈틀거렸다.

이런 좋은 장소를 모를 리 없는 목동들이  양이나 소, 염소같은 가축들을 풀어놓았고
가축들은 곳곳에 흩어져서는 열심히 풀을 뜯으며 살 찌우기를 하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무턱대고 그려왔었던 목가적인 풍경이 꼭 이랬지 않았나 싶다.
한정없이 높고 파란 몽골의 가을 하늘 속으로 몇 점의 구름이 유영하듯 떠다녔다.
바람은 다소 거칠고 차가웠지만 파란 하늘을 비집고 나온 여과되지 햇살 때문인지 이곳만큼은 고즈넉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태고 이래로 흘러왔을 지 모를 낯선 시간들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정지해버렸는지 넉넉한 한가로움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사진이고 뭐고 다 귀찮다 싶어서 볕이 좋은 언덕배기에 훌쩍 드러누워서는 몇 가닥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몽골에 온 게 실감났다.
너무나 푸르러서 이내 쪽빛으로 내 온몸이 물들 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멋드러진 서사시라도 지어, 주체할 수 없는 이 감흥을 제대로  노래했을텐데
무딘 감각과 표현법으론 달리  방법이 없어서 끊임없는 감탄사만 내뱉으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 황.량.함.
바람 끝에 실려오는 또다른 무게의 바람의 결들.
바람은 초원에 누워, 누워서는... 말없이 초원의 풀들을 애무했고 애잔한 가을의 노래를 읊조렸다.










 

 

 

 

 

 

 

 

 

 

 

 

 

 

 

 

 

 



멀리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뽀얀 먼지를 토하며 달려오는 오토바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서는  오토바이가 근접하기를 기다렸다.
이런 황량한 곳에선 모든 현상이든지 사진의 소재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곳에서의 소재거리는 게 너무 흔하고 뻔한 것이어서
몇 컷 찍다보면 더 이상 찍을 게 없을 정도로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하늘, 초원, 그리고 초원에 점점히 흩어져 있는 가축들과 아주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게르와 사람들...
아무리 좋은 것도 자주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단조로운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금새 싫증을 냈고
또 새로운 것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오토바이는 너무 좋은 소재였다.

요즘의 몽골인들은 원거리를 이동할 시에는 말보다는 오토바이를 많이 애용한다고 했다.
세월의 흐름은 몽골에서도 빗겨갈 수 없나 보다.


색다른 풍경만 나오면 차를 세웠다.
우리의 몽골여행은 그랬다.
홉스골 까지 정확한 날짜에 가느냐 못가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를  목 마르게 하는 건 오로지 사진이었다.


멀리서 봤을 땐, 하얀 호수 위에 빨간수초가 떠 있는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 수록, 우리의 판단이 점점 틀려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얀 소금 땅 위에 피어난 빨간 풀...
빨간 풀은 마치 칠면초처럼 까칠까칠했지만, 색깔만큼은 참으로 예뻤다.


정말 소금일까.
한 선생님은 직접 확인까지 하셨다.
정말 소금이었다.
허허로운 땅에서 맛보는 소금 한 줌의 감격이 새롭다.

아주 오래전 바다에서 융기된 지형이 지금의 초원을 이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나무 하나 없는 허허로운 광야만 달렸는데, 왠인인지 제법 울창한 숲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몽골에서 이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싶어, 또 차를 세웠다.
우리가 차를 세울 때마다 일정이 지체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잉케(운전자)의 얼굴은 순간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이 좋은 풍경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 더 지나자 숲은 제법 큰 강까지 이어졌다.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9월 초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아름드리 나무들.
마치, 사진으로만 봐온 캐나다의 가을 풍경이 연상되었다.
얕은 강가로 말을 탄 몽골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파악한 그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쉼없이 셔터를 눌렀다.


하늘만 조금 더 파랬으면,
노란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강가 반대편에만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괜한 바램도 났지만...
단지 이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사실, 몽골에서 이런 풍경을 보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몇 날 며칠은 허허로운 광야만 달리다 홉스골 근처에 도착해서야 겨우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느닷없이,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강의 지류들이 거미손처럼 뻗어 있었다.
추측컨대, 일대의 숲을 만든 건 바로 이 강이었으리라.
강은 숲을 키우고, 숲은 사람과 가축을 그 안에 살게 했다.
결국 강은 사람과 가축을 살리는 자양분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정말로 강 줄기를 따라 숲이 듬성듬성 형성되어 있었다.
그 숲 근처엔 꼭 한 두 동의 게르들이 있었고,
게르 주변으로는 수많은 가축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강 주변에서 비롯되었듯이,
척박한 땅 몽골도 그것이 예외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