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그림같은 토스카나의 풍경 속으로...




 

아씨시를 떠난 우리 일행은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평원지대에 놓여있는 아레초를 거쳐 시에나에서 여정을 풀었다.
미처 숙박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오지 않은 탓에 시에나 인근에 주차를 하고 무작정 호텔을 찾아들어갔다.
비수기여서 다행히 남는 방은 많았지만 한결같이 비싼 게 흠...
여자동행이었던 K의 능숙한 영어실력 때문에 제법 싼 가격(100유로)에 세명이 함께 묵을 수 있는 호텔을 해거름녘에야 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독일에서 유학중인 K를 구하자던 내 제안은 알뜰한 배낭족인 K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다.


남자 둘, 그것도 중년의 남자와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다 여행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는 젊은 남자 C,
그리고 멀리 독일유학 중에 잠시 짬을 내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던 대구 아가씨 K와의 짧은 동거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곰삭은 내가,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울만도 할 텐데 형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여행이 아니면 어디서 젊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일행이 되었으며 비록 아무일은 없을테지만(?) 한 방에서 지내보겠는가.
여행은 해묵은 가식을 털어내고 동질감을 차곡차곡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인 셈이다.
나이 쯤이야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제법 줏대있는 말이 제대로 적용되는 곳이 '여행'을 떠난 길 위에서가 아닐까.
한국에서의 나는, 젊은 그들의 열정을 치기 쯤으로 치부해버려서 어쩌면 대화조차도 회피했을 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길동무가 될 수 있었고 길동무가 되었기 때문에 가슴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늘 깨달음이었다.



한 방 가득 짐을 풀고 우리는  잔뜩 어두워져가는 시에나 거리를 거닐었다.
내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달려서 피곤한데다 토스카나까지 왔는데 와인 한 잔 정도는 마셔줘야 그나마 체면이 설 것 같았다.
레스토랑 바깥에 놓인 메뉴판의 가격대를 확인하고는 그나마 저렴하다고 판단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약간 외진데다 사람의 인기척마저 뜸한 시간대라 그런지 레스토랑 안은 우리 말고는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다.
호스트가 안내해주는 외진 자리에 앉아서 물끄러미 시에나 시내를 바라보며 막 나온 하우스와인을 홀짝였다.
어느 식당엘 가나 하우스와인을 마시는 버릇이 생긴 탓에 주저없이 하우스와인만 시키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화이트와인을 선호했다.
드라이한 맛의 와인 몇 모금을 들이키자 온 몸이 금새 달아올랐다.
피곤하긴 피곤했었나 보다.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와 달콤한 와인이 주는 기분좋은 분위기가 확장된 긴장감을 금새 떨어뜨렸다.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미친듯이 세계를 떠돌고 싶다고 했었고 보헤미안처럼 세계를 떠돌면서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젊은 남자 C는 1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유럽여행 때문에 과감하게 그만두고 90일정도의 일정으로 돌고 있었다고 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유럽이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유럽은 또 달랐고 많은 것을 얻었다고 애기했다.
어쩌면 나처럼 그 역시 여행에 미쳐갈 것이 분명했다.


대구의 K대에 재학하다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유학온 여대생 K는 바쁜 일정을 쪼개서 짧은 일정으로 이탈리아를 여행중이라고 했다.
틈만 나면 인근의 프랑스와 체코, 스위스 등을 돌아보고 있다는 그녀는 독일의 기술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전공은 의외로 금속공학, 강철여자였다.


여행 이야기는 호텔로까지 이어졌고 거리에서 산 와인과 과일 등의 안주류로 끝장을 보고서야 겨우 끝이 났다.
서로 다른 이야기였지만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는 우리를 더욱 친숙하게 했다.
그래서 여행이 즐겁고 만남이 즐거운 모양이다.

 

어제와는 달리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다.
호텔방의 성그런 기온 때문에 새벽같이 눈이 뜨졌다.
냉기가 흐르는 호텔방 안은 어젯밤에 먹은 음식 잔해들로 지저분했다.
일행들을 깨우기 싫어서 조용하게 정리를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눅진눅진한 냉기가 완연히 사라지고 굳어있던 목덜미가 따뜻하게 풀려갔다.


자고 있는 일행들을 깨우기 싫어서 그대로 시에나 거리로 나섰다.
여전히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는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어느새 가득했다.
낯선 이방인을 향해 가끔 눈짓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워낙 관광도시인 탓에 어색하는 법은 없었다.
카메라도 가지고 가지 않은 짧은 산책...


그 도시의 새벽 냄새를 맡고,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어두컴컴한 골목끝에도 밝음이 퍼저나가는 색다른 중세도시를 음미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의 모습만 물끄러미 살피는 이런 산책은 그래서 참 기분이 좋다.
막 문을 연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인상쓰며 들이키다 보면 이곳이 문득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오니 그런 느낌도 참 좋았다.

새삼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소소한 하나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여행은 그래서 늘 각별할 수밖에 없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무분별할 정도로 토스카나 지방의 평원으로 달려나갔다.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고서는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고 또 다시 차로 이동하는 게 일정이었다.
모로 가나 세로 가나 우리의 목적지인 '피렌체'까지는 오늘 밤까지만 도착하면 될 일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선뜻 고개를 내비치던 햇살은 오전으로 접어들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기온이 급강하하고 때론 작은 빗줄기까지 그었지만 자유로운 기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여태 끝나지 않은 여행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누가 흥에 겨워 한국노래를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마치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처럼 같이 흥얼거렸다.
비록 부피가 큰 게 흠이긴 했어도 우리가 렌트한 차량은 한적한 토스카나지방의 국도를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낯설다는 것은 늘 경이로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론 낯설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하는 욕심도 끝이 없이 샘솟아 올랐다.
틈만 나면 차를 세워 카메라를 들었고 때론 좋은 화각을 위해 멀리까지 한달음에 오르기도 했다.
비록 달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사진이라고 폄하할 지는 몰라도 그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기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다른 어떤 시도도, 다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짧은 시간 최대한 담을 수 있는 사진에 최선을 기울였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 보니 시골장터가 세워져 있었다.
규모나 벅적거림은 우리네 시골장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빈약했지만 그나마 장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제법 활기차 보였다.
늦은 아침도 해결할 겸, 장터사진도 좀 찍을 겸해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큼지막한 닭꼬치 몇 개와 귤  한 봉지, 1.5리터 우유를 사들고 나오는데 또 우두둑거리며 비가 내렸다.
비록 작은 시장이긴 해도 제대로 된 시장구경을 해보고 싶었는데 왠지 아쉬움이 야금야금 돋아났다.

뜨거운 닭꼬치를 개걸스럽게 뜯어면서도 내내 창밖의 시장 풍경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시장도 금새 한산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비오기 전에 몇 장 찍은 놓은 사진에 만족해야 했다.
하긴 그것만 해도 어딘가.






 


















































 

토스카나 지방은 기대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독특한 지형과 쭈뼛쭈뼛하게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언덕마다 빼곡히 들어선 포토밭들의 곡선이 꽤나 흥미를 일으키는 곳이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은 그런 풍경...


그곳이 토스카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