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바티칸에서 보낸 반나절

 







 

민박집에 함께 묵고 있던 남자 대학생 두 명과 동행이 되었다.
젊고 유쾌하며 때론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그들과 동행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대학생들은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 나는 바티칸보다는 베드로 성당만을 둘러볼 참으로 아침부터 서둘렀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구경거리 많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만 먼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미술관 관람에 대한 열정이 예전보다는 많이 시들해졌는지 조금만 구경을 하며 걸어다녀도 몸이 쉽게 지쳐왔다.


무거운 촬영장비를 들고 그렇게 거리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어도 지치지 않던 강철체력이 희안하게도 미술관에서는 30분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큼 여행의 관심도가 예전과는 다르게 바뀐데다 이미 그 전에 봤다는 자만심이 혓바늘처럼 가슴에 돋아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 번 방문해 봐서 그런지 로마는 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배회하듯 설렁설렁 돌아다니기 때문에 가끔 길을 잃긴 해도 여전히 로마는 익숙하고 친근했다.
어느 정도 볼만한 곳이 정해져 있는 탓에 굳이 지도를 보지 않고 걷더라도 금새 아는 길이 나왔고 그곳엔 늘 한 웅큼의 관광객들이 서성거렸다.
그래서 로마는 편안하고 홀가분하며 안심이 됐다.


치안을 강화한 탓인지 골목마다 경찰들이 넘쳐 났고 소매치기나 집시같은 걸인들의 느닷없는 구걸행위도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여행길에서의 달뜬 긴장감이 사라진 탓에 경계심마저 느슨하게 풀려갔다.

테르미니역에서 바티칸까지 가는 64번 버스는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데다 복잡하기에 유독 소매치기가 많다는 악명이 자자했다.
아내와 같이 했던 8년 전의 '유럽 배낭여행'때는 주의사항까지 꼼꼼하게 읽고 점검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조심하며 일일히 확인하곤 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거의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거의 무신경했고 무방비한 상태였다.

베드로 성당에 입장하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대학생 가운데 A가 갑자기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적였다.
작은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지갑이 교묘히 사라지고 말았다.
후회하고 요란을 떨어도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였다.
지갑 안에는 그 날 사용할 약간의 현금과 체크카드만 들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꽤나 큰 곤욕을 치뤘을 뻔했다.


대부분의 여행경비와 여권 등은 숙소 내의 배낭에 따로 넣어놨고 혹시 몰라서 체크카드도 2장을 만들어서 사용해왔다고 했다.
큰 액땜을 한 셈 치자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불쾌감 때문에 A는 여간 꺼림칙해하지 않았다.




여행 중에 이런 불상사가 생기면 누구나 불쾌하고 참담한 심정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다행스럽게도 꽤 많은 여행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도난이나 분실사고를 한차례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고로 인해 낙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여행 자체까지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봐온 탓에 혼란스러운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유럽여행 중엔,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특히  현상이 심했는데
심지어는 강도로 돌변한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에 의해 돈을 강탈당한 사례까지 나오고 있어서 늘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가는 야간열차에서의 악명은 치를 떨 정도로 심했는데 바짝 신경을 기울여서 언제 일어날 지 모를 도난에 대비해야 했다.
여러 명이 잠을 자는 쿠셋에서는 자칫 방심하고 긴장을 풀기 마련인데 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방심한 순간을 낚아채는 나쁜 녀석들이
늘 주변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됐다.
소리내지 않게 은밀하게 들어온 도둑들은 그야말로 감쪽같이 귀중품을 훔쳐갔다.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깨어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잠에 빠져들었을 그 짧은 순간을 도둑은 놓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당한' 여행자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신경은 잔뜩이나 날까롭게 깨어 있어야 했다.
(요즘은 유럽 기차의 쿠셋에도 잠김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예전만큼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너무 도난이나 분실에 신경을 기울이다 보면 자칫 여행의 오롯한 즐거움을 놓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자.


비단 위험은 낯선 곳을 여행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처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낯선 여행지에서까지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주의를 하고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에 조금만 대비해 놓는다면 그다지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복대나 호주머니를 만들어서 반드시 필요한 여권이나 항공권, 현금, 신용카드 등은 깊숙하게 감춰놓고 그 날 사용할 약간의 돈만 주머니 등에 넣어두거나
이동시엔 가방을 앞으로 맨다던지  야간열차의 쿠셋이나 침대칸을 이용할 때는 자신의 배낭이나 캐리어의 입구 등을 소형 자물쇠로 잠근 뒤
와이어로 좌석에 묶어놓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여행자들은 대부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다 고가의 전자제품인 카메라, MP3, 노트북 등을 늘 휴대하고 있어서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도난 사례가 유난히 많은 곳이 바로 인도라는 곳이다.
한국 배낭여행자들이 유난히 선호하는 기차는 SL급인데 가격도 저렴한데다 현지 인도인들이 많이 탄다는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SL급의 기차는 에어컨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따로 관리해주는 차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자신이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난히 촬영장비가 많은 나로서는 따로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 없었다.
SL급보다 한 단계 높은 3A급 이상의 열차만 탄다는 게 인도여행에서의 내 철칙이었다.
돈 몇 푼 아끼려고 비싼 장비를 도난당하느니 오히려 에어컨이 나오는 3A에서 맘 편하고 시원하게 여행하자는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오는 기차를 SL급으로 탄 한국 여자 배낭여행자가 하차하려던 순간에
자신의 작은 배낭을 잃어버렸다는 애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가방 안에는 여권(비자포함)과 항공권, 신용카드, 현금, 카메라까지 들어있었는데 문제는 주변에 일행이 많아서 오히려 방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방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었다.
도난은 순간적으로 일어났고 그제서야 헐레벌떡 자신의 가방을 찾았지만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은 탓에 행방은 묘연할 수밖에 없었다.
땡전 한 푼 없이 델리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호텔에 투숙했고
대사관을 찾아가 임시여권과 비자를 받는데 많은 시간(적어도 7일)을 허비해야 했으며 그렇게 항공권도 재발급 받아야 했다.
마지막 여행경비는 십시일반으로 얻은 약간의 돈으로 버티다 한국으로 추방당하다시피 되돌아가야 했다.
추억이 담긴 카메라까지 없어진데다 그동안 그녀가 인도에 가졌을 애정과 추억마저도 산산히 부셔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난 배낭족은 아니지만 어떤 배낭여행자는 인도 기차에서 만난 네팔인이 호의로 건낸 음식물(또는 음료)을 마신 게 화근이 되어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고 한다.

깨어나보니 그가 가졌던 귀중품(현금이나 카메라또는 MP3)은 네팔인과 함께 온데간데 없고 호의는 불신이 되었고
급기야는 여행까지 망치고 말았으니 그의 참담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자꾸 인도여행 사이트에 회자되다보니 그렇게 당한 한국인 여행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차림새나 접근방식이 너무나 유사한데다 비록 권한 음식물(또는 음료)의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유형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음료나 음식물을 권하면서 접근하는 사례는 비단 인도 쪽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는 의도적인 호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현지인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문까지 뜰 정도였다.


어딜 가나 여행자들의 가방과 돈을 노리는 사기꾼들은 득실대고 여행자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상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도같은 곳이야 자질구레하게 작은 돈으로 등쳐먹는(?) 릭샤들의 횡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하다.
인도와 인도인을 이해하고 으례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여행하다 보면 애써 악다구니를 써가며 싸울 이유는 없어진다.
힘들게 떠나온 여행인데 작은 일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을 해야하고 필요없는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을테니 말이다.
여행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조심하지 않고 대범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국 피곤해지는 건 여행자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다.
조금만 조심하고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즐거운 여행이 그렇게 자신 앞으로 성큼 다가오기 마련이다.


바로 동행에게서 일어났던 일이 남 일같지 않아서 그때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유쾌한 성격을 가진 A는 금새 안정을 되찾았지만 다시 한 번 자신들이 가진 휴대품에 주의를 가졌다.
일반적으로 들고 다니는 배낭형 카메라 가방보다는 여행 때는 하네스숄더와 벨트 그리고 렌즈를 각자 넣을 수 있는 포치(케이스)를 사용하는데
촬영이나 이동중에는 소형자물쇠로 늘 채워두고 있고 무게 때문에 가져가더라도 금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지냈었다.
혹시나 싶어서 각 케이스 안에 놓아둔 렌즈들을 살펴보니 내 물건들은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다.


대학생 동행들이 보길 원했던 바티칸 박물관 쪽은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긴 줄 때문에 시작점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 위세에 눌린 탓인지 아니면 좀 전에 발생한 도난 사고의 우울한 기분 때문인지 조심스럽게 나와의 합류를 물어왔고
늘 동행이 없어서 외롭던 여행자는 흔쾌히 OK사인을 보냈다.

바티칸 박물관에 늘어선 줄이나 베드로 성당 앞의 넓은 광장을 빼곡히 채운 줄이나 길기는 매 한가지였지만
그나마 이곳의 줄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어느새 좀 전의 불상사도 까마득하게 잊었는지 여행이라는 즐거움에 들뜬 두 젊은 동행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었고
때로는 귀여우면서도 느끼한 표정과 포즈(?)로 찍는 셀카찍기 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곁에 있던 서양인들도 두 젊은 동행의 셀카찍기놀이가 재미있었던지 키득거렸고 더욱 의기양양해진 동행들은
그런 서양인들과도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공유했다.

이래저래 넘치는 젊음의 열정과 끼가 부러웠고 그들의 호기로움에 내 마음마저 고양될 지경이었다.






 

 









 

 

산 삐에뜨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긴 회랑들.
수많은 관광객이 도열한 듯 줄지어 서 있는 베드로 성당 앞의 광장 옆으로 분주하게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 로마인들.
여전히 그곳에도 아침은 있었고 한국의 그곳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침은 분주했다.

어디나 도시인들의 삶은 바쁘고 숨가쁘게 움직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행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다.

 

 

 

길게 줄을 서고 있을 때,  우연히 바라본 성상과 하늘

 

 

 

 

 

 

 







 

성 베드로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꾸뽈로.
그곳에서 바라본 바티칸 시국의 풍경.




 

 

 

 

400mm망원렌즈로 당겨서 산 삐에뜨로 광장과 성상을 담아봤다.
얼마전에 행사를 했는지 광장 앞쪽으로 간이의자들이 빡빡하게 놓여있었고 그 사이로 관람자들이 유유히 지나다녔다.




 

 
















 

꾸뽈로에서 바라보면 산탄젤로와 로마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 좁은 꾸볼로에서는 로마를 카메라에 담거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꾸뽈로에서 바라본 여러가지 풍경들

 







아내와 함께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는 꾸뽈로에 오르지 못했었다.
돌아와서 찬찬히 여행을 추억하면서 여행카페를 드나들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내 마음을 건드린 건 바로 꾸뽈로에서 바라본 로마의 풍경이었다.
게다가 산 삐에뜨로 광장을 기준으로 열쇠형의 회랑들이 선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는데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꾸뽈로에 대한 유혹은 갈 수록 더해갔다.
로마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꾸뽈로에 오르리라 다짐하던 터였다.
단순한 성격 탓에 로마에서의 첫 행선지가 바로 성베드로 성당이었고, 가장 먼저 올랐던 곳이 바로 꾸뽈로였다.





 

 

 

외부에서 바라본 성베드로 성당의 첨탑

 

 

 

 

 독일에서 왔다던 예쁜 소녀




해바라기를 하던 소녀가 너무 예뻐서 그녀의 부모에게 "May I take a photo?"라며 정중히 부탁을 해서 담았다.
소녀와 눈을 맞추기 위해 한참 엎드려서 찍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그녀의 아빠가 재밌던지 그 광경을 찍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한동안 껄껄껄 웃다가 상투적으로 어디서 왔느냐며 질문을 했고 그들은 독일의 뒤셀도르프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아~ 뒤셀도르프'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잠시 들린 기억이 났다.
뒤셀도르프 인근에 있는 에센이라는 작고 아담한 도시에 지인이 살고 있어서 그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쾰른과 뒤셀도르프 등지를 여행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는 지방마다 다른 다양한 맛의 독일맥주들도 매일 저녁 음미하듯 마시면서 여행을 했었었다.
그런 애기들을 독일인 남자에게 건내니 어느새 서먹하던 관계에 따뜻한 동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독일이 어땠냐는 질문에 두말없이 'wirklich schön(정말 아름다워)'이라는 어설픈 독일말로 답하자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워했다.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독얼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가벼운 인사정도와 열까지 셀 수 있는 숫자가 전부...
몇 개 아는 단어로 만든 단순한 조합이 의외로 여행의 즐거움을 추가시켰다.


여행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보상받는 선물같은 추억들이 가끔 있다.
아마도 어린 소녀의 사진과 함께 소녀의 부모들과 나눴던 짧은 대화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독일에 여행을 오게 된다면 연락 한 번 달라는 말에 나는 처음으로 포토프린터로 인화한 소녀의 사진을 건냈고
마지막으로 'Tschüß! 츄즈'라는 독일의 작별인사를 건내며 고개를 숙였다.

 









성 베드로 성당의 본당 안의 모습.

길이가 무려 186m인 본당의 끝에는 바로크 양식의 캐로피인 거대한 발다키노가 놓여져 있다.

 




 



산 삐에뜨로 광장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성당

 





 







 







산 삐에뜨로 광장의 입구엔 미국에서 왔다는 한 화가가 광장과 성 베드로 성당을 연필로 스케치하고 있었다.

잘 그리진 못했지만 한 땐 수채화를 주로 그렸던 이력이 있던 탓에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며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있게 웃으며 그림을 내 쪽으로 돌리며 보여주었다.


아직 미완의 작품이라 감히 평가를 할 수 없어서 단지 엄지손가락을 지켜세웠는데,
그가 그린 작품들을 보여주겠다면 작은 책자 하나를 슬며시 건냈다.
연필로 스케치한 위부분에 수채화로 채색을 한 작은 화첩이었는데 정교하기가 예사롭지 않아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 자주 여행을 온다는 그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며 추켜세웠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듯 동의를 보냈다.


슬며시 가슴 밑바닥에서 꺼져가던 그림에 대한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임을 잘 아는데다, 무엇보다 소질과 끈기가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에 쉽게 지치고 마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나의 열정에 비한다면
다소 점액질이고 끈질김을 요구하는 그림 등의 예술활동은 애초에 내겐 무리였다.

 

그래도 창조적인 그의 그림이 마냥 부러웠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그렇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오랫동안 상처처럼 가슴에 남나 보다.
게다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도조차 못하고 무너뜨려버린 어린 날의 내 꿈들이 너무 아쉬웠다.
이제는 유년의 꿈처럼 희미해진 내 삶의 꿈들이여~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기 전의 어느 문.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가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입은 스위스 용병.

 





 




1624년 교황 우르반 8세의 지시에 따라 베르니니가 제작한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발다키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서 있다.

 

 

 

 

 



높이 136.5m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으나 그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다.

 

 

 

 

 

 



 수세기동안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의 손길이 닿았는지 군데군데 닳아있었다.
'성 베드로의 발'은 아르놀포 디 캄피오의 13세가 작품.

 







꽤 오랫시간 저곳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었다.

성베드로의 발을 만지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차근차근 카메라에 담아나갔다.
극적인 장면을 담고 싶었는데 밋밋한 단렌즈의 영향 탓인지 아니면 호기심으로 만지는 여행객들 때문인지 느낌이 전혀 오질 않았다.
동행인 대학생들도 내가 찍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지겨운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필 꽂히는 하나의 장면에 매달리다 보면 시간은 금새 흘러가지만 단지 곁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동행들에겐 꽤나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다른 볼거리 쪽으로 자릴 옮겨볼까도 생각했지만 내 안의 독특한 아집이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는 편이다.
너무 흔하거나 일반적인 광경은 곧잘 외면하거나 배격하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필이 와닿는 장면에선 몇 시간동안 마음에 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다양한 화각과 앨글로 담아보고 때론 누군가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리기도 하며 예측했던 장면들이 연출되어주기를 또 기다리고...
그렇게 마음에 드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자리에 꼼짝없이 매여있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 장의 사진'이라는 의미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임으로 신경쓰지 말자)



그때 그녀가 내 시야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소망을 빌던 다른 여행자들과는 달리 지긋한 정성에서 우러나는 입맞춤으로 간절히 뭔가를 소망하는 그녀.
내 안의 작은 종이 긴 여운을 남기며 오랫동안 가슴을 두드리며 공명통처럼 울렸다.
경배하는 아름다운 눈길과 신심이 가득 묻은 손길, 그리고 부드러운 믿음의 입맞춤이 내 마음을 자극했던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짧은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봤자 겨우 서너컷 정도 찍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짭은 기도를 마친 그녀는 일행들과 함께 인파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 뒤를 바짝 따라가면서 MP-300을 꺼내서 카메라에 연결시키고는 인화단추를 눌렀다.
이 사진을 나 혼자만 독식한다면 너무나 이기적이면서도 불합리한 모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파 속으로 금새 묻혀 사리질 것 같아 동행들에게 대신 미행을 맡기고 대신 사진 한 장을 어렵사리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전해 준 그녀의 사진 한 장.
내게는 아릿한 추억처럼 그리움이 된 사진이기도 했다.
낯선 동양인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너받을 때에 그녀의 놀라워하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성스러운 기도의 장소 성 베드로 성당
길이가 무려 186m인 본당의 끝에는 바로크 양식의 캐로피인 거대한 발다키노가 놓여져 있다.

 

 

 

 

 

 

 

 

 

 

 

 


성스러운 기도의 장소, 성 베드로 성당

 

 

 

 

 


















꾸뽈로에서 바라본 바티칸 시국

 




 

 

 

 

 


막 성베드로 성당을 빠져 나오는데 옆에서 걷던 A가 문득 말을 건냈다.
 

"형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참 재미있습니다."

"아니 왜요? 그동안 재미없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여행이 그저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면서 그저 찍기식으로 돌아다닌 게 전부였다면,
형님과 함께 다니니 많은 사람들과 잠시 대화하고 웃을 수 있으니 그게 오히려 더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또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다시 B가 거들었다.


"인터넷에서 유럽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 보통 유명한 곳, 맛있는 곳에 대한 정보는 흘러넘치는 반면 이런 식의 재미까지는 제공하지 않잖아요.
그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자랑처럼 흔적을 남기기 위해 늘 가는 유명한 곳에서 판에 박히듯 똑같은 사진을 찍고
감히 현지인들에게는 접근조차 못한 채 한국인들과 돌아다니면서 웃고 떠들기 바쁜데...
어떻게 보면 이런 여행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어떤 게 진짜 여행인 지 아직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진짜 여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희망사항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지지 않는 오지만 찾아다니면서 고행하듯 극한의 한계까지 치닫는 그런 여행이 진짜여행일까.
아니면 이름난 관광지만 떠돌며 명품쇼핑과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낭만을 즐기면서 유유자적하게 떠나는 여행이 진짜 여행일까.
가이드가 든 여행사의 깃발을 쉼없이 따라다니면서 숨막히게 빡빡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 여행이 진짜여행일까.


그것말고도 여행의 형태는 너무 많아서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사실 어느 게 진짜여행인지는 오로지 자신만이 정답을 가지고 있을 듯 하다.
그 속에서 얼마만큼의 만족을 찾고 얼마만큼 자신에게 유익함을 줬느냐가 관건이 아닌가 한다.


과연 나는 진짜여행을 하고 있을까....
그런 물음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