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낡고 오래된 카메라 5D 이야기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5년 9월쯤에 EOS 5D를 처음 손에 넣었습니다.
출시되자마자 바로 샀으니 이제는 희귀품이 된 초기물량입니다.
그 이후로 줄곧 이 녀석만 사용했으니 사용햇수도 어느새 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요즘처럼 걷잡을 수 없이 기술이 진보하고 신제품이 쏟아지듯 나오는 시대에 디지털 제품을 5년 넘게 사용한다는 사실은 제게는 꽤 이례적입니다. 
 
특히 저처럼 얼리어댑터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디지털 제품이 나올 때마다 수시로 격정같은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그 긴 시간을 하나의 제품만으로는 도저히 감내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안하게도 카메라(EOS 5D)만큼은 기변에 대한 욕구없이 잘 사용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끔 기변에 대한 유혹이 수시로 밀려들지만, 5D의 색감과 화질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새로운 카메라에 적응하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제 색감과 느낌을 만드는 보정작업도 만만찮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자꾸 망설여집니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카메라는 한결같이 화소수가 높기 때문에 덩달아 컴퓨터까지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까지 처해집니다. 이래저래 만만찮은 비용이 지불될 게 뻔해서 섣불리 시행을 못하겠더군요.
 
그리고 보면, 제 낡은 카메라(5D)를 들고 세상의 참 많은 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발 5,000m가 훌쩍 넘는 언덕을 오르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방진방습기능이 전혀 없는 5D가 흠뻑 젖는 고통의 시간을 겪기도 했으며, 사막의 미세한 모래입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좁은 5D의 틈 속으로 밀려들어와 서걱이는 먼지를 털어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용케 잘 버텨주고, 끊임없이 좋은 화질을 뽑아주는 5D를 애써 내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닳고 닳아서 외관은 어느새 스크래치가 가득해졌고 손이 자주 가는 곳은 반들반들해져서 이게 과연 5D의 외형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결국 생긴 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어설픈 선입견만 없다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더없이 멋진 녀석으로 탈바꿈해 있습니다.
 
어디다 대고 내세울만큼 사진을 잘 찍는다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희안하게 5D로 찍은 사진은 제게 만족감을 줍니다.
맑고 투명하며 자연스러운 색감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화질도 상당히 우수해서 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뽑아낼 수 있습니다.
몇 번 새로운 기종의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긴 했었지만 5D같은 느낌이 결코 나오지 않아서 실망한 걸 보면 제가 5D의 색감과 화질에 잔뜩 빠져있긴 있나 봅니다. 어쩌면 이게 디직2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요즘 나오는 캐논 카메라는 한결같이 디직4라는 이미징 프로세서를 달고 나옵니다.
당연히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진보했으니 카메라에 장착된 이미징 프로세서도 좋은 제품을 달고 나와야겠죠.
요즘 나오는 5D mark Ⅱ나 60D에 디직4라는 이미징 프로세서가 장착되어 있다면  5D는 몇 년 전의 기술인 디직2를 달고 있습니다.
당연히 디지털제품은 신형일 수록 성능이 뛰어나고 기술의 집약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디직4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미징 프로세서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노이즈는 예전보다 훨씬 감소했다지만,  오히려 iso를 올려서 촬영하게 되면 암부쪽에 뭉개지는 현상같은 게 발생해서 제 눈엔 거슬리더군요. 자연스러움이 많이 줄어든, 과장된 표현이 그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새로 나온 전자제품이 무조건 좋다?라는 선입견은 여기서 깨졌습니다.
어느 카메라든 손때묻고 익숙한 자신의 카메라가 새 카메라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많이 뽑아준다는 쪽으로 전향했습니다.
어차피 사진이라는 것이 카메라가 찍기보다는 사진사가 찍는 것이고, 사진사는 어떻게든 좋은 화질과 느낌의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 카메라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지배적입니다.  
 
5D, 이제 6년째 사용하고 있는 바디지만, 여전히 바디기변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단렌즈로 주로 촬영을 하는 제게 있어서 현란하게 눈 앞을 아른거리는 렌즈 하나가 있습니다.
오이만두라고 일컫는 50mm f1.2가 바로 그것입니다. 50mm f1.4렌즈도 있으면서, 50mm f1.8렌즈도 있으면서...거기다 50mm대를 커버해 줄 수 있는 24-70mm f2.8 L USM 렌즈까지 있으면서도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제 5D에 50mm f1.2를 장착해서 촬영을 한다면 또 어떤 느낌이 날까 하는 궁금증이 욕심을 부채질하는 기본적인 원동력입니다.
 
이래저래 사진을 계속한다면 기변에 대한 욕구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이 없을 듯 합니다.
그래도 당분간 카메라에 대한 기변계획이나 욕심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안심입니다.
 
충분히 좋은 사진을 뽑아주고,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는 완소 5D.
내 사진 생활은 당분간 이 녀석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