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움, 경주 삼릉 솔밭







새벽부터 깨어나 이리저리 뒤척이다 몇 잔의 커피를 마시며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들을 들춰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다시 우포늪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며칠동안 짙은 안개가 산하를 덮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던 지라 일단 우선순위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우포늪은 자욱하게 앞을 가리는 안개보다는 수면을 부유하는 물안개가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하지만, 너무 짙은 안개로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을 생각하면 일단 배제하는 게 좋습니다.
 
안개로 유명한 곳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경주 삼릉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더군요.
어제 다녀온 경주지만, 허둥지둥 서두른 탓에 제대로 경주의 가을을 담지 못했던 터라 가을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생각이 '삼릉' 쪽으로 굳히게 되자 미친 듯이 '삼릉'이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관건은 안개였습니다.
 
가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가서 후회하는 게 좋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경주로 차를 몰았습니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부산-울산간 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위로 옅은 안개가 깔리는가 싶더니, 이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엄습해왔습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거북이처럼 느리게 달려서 도착한 삼릉 초입...
근래에는 보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새벽의 삼릉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구
부러진 채 늘어선 소나무들의 실루엣이 안개 속에서 휘감아돌고 있는 모습은 마치 꿈 속을 거니는 것처럼 신비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름난 안개출사지답게 새벽부터 자리를 틀고 사진을 찍고 있는 수많은 사진가들의 모습도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연방 터지는 셔터소리들이 적막한 삼릉의 새벽의 깨우고 있었습니다.



안개 속에서도 뱀이 또아리를 꼬듯 독특한 형상으로 서 있는 삼릉의 소나무들

@ 경주 삼릉, 2010



내 카메라의 앵글도 그를 따라 자욱한 안개 속의 솔밭을 찍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서서 솔밭의 새벽을 느끼는 남자

비늘처럼 서늘한 안개가 드러난 피부 위로 달라붙습니다.

@ 경주 삼릉, 2010




안개 속을 유영하듯 거닐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쩌면 내 사진 속의 '그'는 또다른 나의 모습일 지 모릅니다.

그 짙고 거친 안개 속에서도 뭔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본능적으로 사진 거리를 찾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 경주 삼릉, 2010



시간이 지나도 안개는 좀처럼 걷히질 않았습니다.

삼릉에서 이렇게 자욱한 안개를 만난 것이 얼마만인지...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거북이 운행을 하면서도 삼릉인근의 소나무 숲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바로 천년의 신비로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 경주 삼릉, 2010

 


삼릉의 국민포인트라 불리는 석교 앞입니다.

어느새 태양이 떴는지 붉은 기운이 동쪽하늘에 완연합니다.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빛내림이 언제 시작될런지,

사진사들은 다들 좋은 자리 하나씩을 맡아놓고 빛내림이 시작되길 기다립니다.

@ 경주 삼릉, 2010



오랜 기다림의 끝...

마침내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는가 싶더니 가려졌던 빛이 소나무 끝에서 부딪힙니다.

빛내림의 전조가 보입니다.

자리를 못잡은 사진사들은 허둥지둥 자리를 찾기에 바쁩니다.

@ 경주 삼릉, 2010



빛이 스며들자, 삼릉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좋은 사진을 찍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흥분하는 맛도 색다릅니다.

@ 경주 삼릉, 2010



개인적으로 강렬한 빛내림도 좋지만,

이렇게 은근하게 곳곳에 빛을 투영해주는 장면이 더 좋습니다.

마치 비밀의 화원같은 느낌...

속살을 보고 싶은 치명적인 유혹이 숨겨져 있는 듯 합니다.

@ 경주 삼릉, 2010




잠시 다른 사진을 찍고 있는데 빛내림(또는 빛갈라짐)은 이미 절정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안개에 휘감긴 삼릉의 빛내림을 찍고 있는 사진사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풍경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지런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

다시 한 번 새기게 됩니다.

@ 경주 삼릉, 2010




'사람도 풍경이다'

예전에 제가 풍경사진 잘 찍는 법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면서 드렸던 내용입니다.

화각은 약간 다르지만, 동일한 장소에서 담았습니다.

사람이 있는 풍경과 없는 풍경...

@ 경주 삼릉, 2010





대박이라고 할만큼 좋은 사진은 아니지만...

그렇게 기분좋은 아침을 경주의 삼릉에서 맞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안개와 빛이 있어서 좋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틈틈히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사진은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를 끈끈히 이어주는 작은 모티브같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하게 됩니다.

 

촬영장비 : 캐논 EOS 5D + 24-70mm L f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