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부산 송정해수욕장의 새벽녘 풍경












익숙한 그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인데도 마음만큼은 늘 새롭습니다.
어느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선들 불긴 해도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삶의 현장에 섰다는 그 느낌과
고단하지 않은 희망처럼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싱그럽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슬쩍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새벽하늘이 예사롭지 않아 오늘도 가까운 송정으로 달렸습니다.
달맞이고개를 넘어가면서, 잔뜩 가졌던 일출에 대한 기대는 잠시 실망으로 수그러들었지만 새벽에도 깨어있다는 특권의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새벽일터로 나가는 어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는 것... 호흡한다는 것...
그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어두운 구름들이 끊임없이 꿈틀대는 새벽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붉은 빛을 토해내는 여명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어부들의 잰 발자국 소리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왠지 가슴이 한 켠이 아려옵니다.
 
버릇처럼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협소한 시각과 유연하지 않은 생각 때문인지 더 이상 늘지 않는 사진이지만, 이 아침을 기념하기 위해 찍었습니다.
그나마 미친 듯이 사진을 찍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친듯이 사진만 찍다보면, 생각이 고갈되기 일쑤인데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가을이 가슴 속으로 파고듭니다.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한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던 송정 해수욕장...
그 아름다운 곳에서 쉼없이 담던 일출의 장관들이었는데, 오랜만에 나간 송정은 왠지 낯섭니다.

대충 일출각을 잡고 삼각대를 펼치니 주변에 계신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내옵니다.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를 기억해 주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 그저 반가울 뿐입니다.
 

이제는 사진을 찍기위해 송정을 찾기보다는 짧은 산책처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찾습니다.
깨어나지 않은 멀건 정신과 꾀죄죄한 몰골로 나서는 송정이지만,
기분좋게 한 컷 날리고 마시는 모닝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사진이라는 취미를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과 나누게 되는 따뜻한 정담이 오히려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뭔가를 함께 공유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밤새 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불안감과 긴장들이 해돋이와 함께 말끔히 사라집니다.
매일 똑같은 일출사진을 왜 찍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제가 일출사진을 즐겨찍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릅니다.
일출, 그 버릴 수 없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송정의 해돋이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넉넉했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찾아오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