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추억같은 그리움으로 피어난 꽃무릇














슬픈 추억...

 
밀양의 어느 작은 산사의 뜨락에 꽃무릇이 한웅큼 피었다.
장인어른의 49제를 지내기 위해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는 밀양의 그 작은 산사에 꽃말처럼 측은해 보이는 꽃무릇이 선혈같은 붉은 색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느새 9월의 후반, 그렇게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사람들마다 가을이 왔음을 깨닫는 방법은 제각각이겠지만, 희안하게도 나는 꽃무릇이 피는 이 계절이면 어김없이 가을을 느끼곤 한다. 긴 대롱에 피어난 독특한 꽃모양이 내게는 온 산야가 울긋불긋한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을의 전령사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이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늘 마음이 설래고 먹먹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떠나간 것들에 대한, 다가올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게 하니 말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독경소리가 낭랑히 울려퍼지는 작은 산사에서 만난 꽃무릇은 그 느낌부터가 사뭇 다르다.
꽃무릇으로 유명한 불갑사나 선운사, 용갑사 등지에서는 그야말로 붉은 융단으로 비유될만큼 수많은 꽃무릇이 지천에 피어있지만, 이곳은 조그마한 뜨락에 숫자를 헤아릴만큼 듬성듬성 피어있어서 왠지 쓸쓸해 보인다. 게다가 날씨마저 우중충하게 내려앉아서 기분까지 착잡하게 젖어든다. 스님의 슬픈 곡조같은 독경과 목탁소리가 한껏 우울을 조장한다.
그래서, 죽은 자를 그리워 한다는 꽃무릇의 붉은 색이 가슴 속을 더욱 선연하게 파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과 슬픔, 고독이 한껏 배인 그 이중적인 황홀한 자태...
꽃이 지고서야 비로소 잎이 돋아난다는 꽃무릇, 결국 운명은 서로를 참혹하게 갈라놓았다.
찬연한 가을을 맞이해야 하는데, 지독한 그리움 속에 허우적거리다 선명한 붉은 빛을 피우고 말았다.
 
가슴 속에선 여전히 차가운 빗물이 내리고 있는데도...
 
 
꽃무릇의 꽃말은 '슬픈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