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떠난 몽골여행 #3 한국과의 유사성 살펴보기




 

 

 


그 이후로 꼭 네 번정도 더 차를 세웠다.

처음엔 '어워'가 있는 야트마한 돌무더기 언덕 앞이었다.

군데군데 성스러운 푸른 천,'하닥'이 매어져 있는 그 야산을 오르자 광활한 초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너무 광활하다 보니, 보이는 풍경이 오히려 심심하기까지 했다.
변하지 않는 풍경이 몇 시간동안 계속되다 보니, 초반의 감동이 어느새 일상처럼 무덤덤하게 식어갔다.





 

잠시, 어워를 통해서 한국와 몽골의 유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워, 어버, 오보(Ovoo)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마을어귀에 있는 정자나무 왼쪽으로 새끼를 꼰 줄을 걸어 알록달록한 천과 새끼를 두르고,
돌을 쌓아 지성을 드리는 던 곳이 서낭당, 성황당이라고 알고 있다.

'어워'도 고갯길이나 정착마을의 입구에 돌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나무를 꽂아 만든 것으로
나무 가지마다 '하닥'이라는 푸른천을 매달아 놓았다.

푸른천은 하늘(텡그리)을 의미 하는 것으로 하늘, 즉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의 표현이다.
하늘은 곧 천신사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시조로 모시는 단군에 대한 어원을 고대 알타이어에서 유추해 낼 수 있다.  
위에서도 애기했지만, 몽골에선 하늘을 '텡그리'라고 한다.
이는 고대 알타이어인 '탕구르(Tangur)'가 그 어원이며, 신성한 '하늘' 즉 천신을 뜻한다.
'탕그리'를 한자로 음차하면 '단군檀君'이 되며, 단군이라는 말은 거룩한 하늘에 제를 지내는 수장, 즉 제사장을 의미한다.  

이렇듯, 겨울이 길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야 했던 북방민족은 하늘과 태양을 그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바이칼 호수지역을 대표하는 신은 '불한'신神이다.
또 몽골비사에 따르면, 푸른늑대(볼테치노)와 암사슴(고아바랄)이 큰 물을 건너 오논강의 근원지인 불한산 속의 초원에서
아들(바다치한)을 낳게 되는데, 이가 바로 몽골의 시조였다고 전한다.
'불'은 밝음과 해(태양)라는 뜻이고 한은 '칸'이라는 말로 몽골의 징기스칸, 신라의 마립간,
돌궐의 계민가한에서 볼 수 있듯 수장首長을 일컫는 말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다른 이름은 '동명성왕'이었고, 이 역시 밝음을 뜻하며 수장의 뜻이다.  
스스로 '일월의 아들'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칭했고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자임을 강조했다.(광개토대왕비문)
아울러 부여와 초기 고구려의 왕성이 '해'解씨였음에도 알 수 있다.
신라를 일으킨 박혁거세도 '밝다'에서 성을 차용했으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불거내弗矩內도 이런 맥락해서 이해할 수 있다.


어워를 통해 살펴본 한국과 몽골의 유사성을 살펴봤다.
다음엔 어워를 지탱하는 나무와 푸른천인 '하닥'과의 연계성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물과 햇볕은 동식물이 자라는 필수조건이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면, 햇볕은 생명력을 키우는 자양분과 같은 것이다.
고대 퉁구스인들은 자연을 형성하고 있는 하늘과 해 뿐만 아니라, 물과 수목, 땅
그리고 그 속에 모든 동물에게까지 정령이 있었다고 믿었으며,

특히 나무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매개체 또는 메신저라고 생각했다.

몽골을 여행하다 보면, 굳이 '어워'가 아니더래도, 큼직한 나무마다 '하닥'이 매어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정령이 나무에 깃들었다고 믿는 샤마니즘적인 요소가 가미된 탓이다.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을 기원하며 빌었던 곳도 '신단수神壇樹'라는 나무 아래였으며,
삼한시대에는 각 읍에  '소도蘇塗(제단)'를 설치했고 소도에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 지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솟대도 이런 수목신앙의 한 변형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수목숭배 신앙의 현상은 한국인과 유전자적으로 가장 닮았다고 하는 브리야트인(몽골인의 한 지류)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타이가 지대의 한복판인, 바이칼호수 주변에 살고 있는 브리야트인들은 말을 묶는 나무기둥에 문양을 새겨놓고 천을 매달아 놓는데,
이 역시 하늘과 교통하는 안테나 또는 교신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브리야트인과 고대 신라인과의 연계성 부분이다.  
잘 알다시피, 신라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고분 양식을 '적석목곽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의 유명한 파지라크 고분은 신라 적석목곽분의 원형이 있다.
이는 신라의 고분보다 800년이나 앞선 것이었는데, 그 시차를 두고 브리야트인과 신라인과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음이 분명하다.
자작나무는 한냉지역에서 나는 수목으로 날씨가 따뜻한 신라에선 구하기 힘든 목재였다.
그런데도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신라인들은 자작나무(백화나무)를 숭상했다.
천마총에 발견된 승마용 장니障泥(말다래)가 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천마도가 그려져 있다.

그 주인공이 쓰고 있던 것도 백화피白樺皮(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모자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서기에선 신라를 '白木'이라고 쓰고 '시라키'라고 읽었다.
신라를 일컫는 말은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徐那伐)·서야(徐耶:徐耶伐)·서라(徐羅:徐羅伐)·서벌(徐伐) 등 다양한데,
이는 신라新羅라는 국명으로 발전하게 된 어떤 이유를 설명하는 듯하다.  

더 재미있는 건, 생김새가 독특한 신라의 금관에서 이 수목신앙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금관은 모두 서너그루의 나무와 나뭇잎, 열매, 사슴뿔과 새 등의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베리아 일대에 살던 샤먼(무당)들에게 있어 나무는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성스러운 존재였고,
이들은 사슴의 뿔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특히 신라금관은 흑해 북쪽 사르마티아 지역에서 출토된 스키타이족의 금관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7~8세기에 이미 철기문화를 사용한 그들은 유라시아 초원지역에 이미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하늘로 통하는 매개체로서 타이가 지대에 곧게 자란 자작나무를 섬겼고, 생명을 이어주는 사슴을 어느 것보다 숭배했다.

이들은 숭배하던 나무와 사슴으로 가장 고귀한 인물(아마도 임금)의 관으로 만들었는데,
특히 신라금관의 출出자형 수목형 양식은 스키타이 칼자루의  '성스러운 나무 무늬 즉 성수문聖樹文과 동일하다.
황금을 좋아하던 이들은 무기와 장신구들을 모두 황금으로 장식했다.
전세계를 통틀어 금관을 만든 종족도 스키타이인과 신라인밖엔 없었다.

 






 

언어학적으로 몽골 또는 북방민족과 우리와의 관계를 비교해봐도 상당히 재미있다.
언어라는 것이 비교적 사멸되거나 변형되기 쉽기 때문에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워낙 극단적일 수가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데 여기서는 지극히 기본적인 몇가지만 애기하고자 한다.

 

'바타르(batar)라는 말은 고대 알타이어로 '영웅'이라는 뜻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는 '울란(붉은)+바타르(영웅)'가 합쳐진 것이다.
이 바타르라는 말이, 곧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배달(baedar)'이라는 말이 음운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 또는 '배달겨레'라고 하지 않던가.
 

'민족'또는 '모두'를 의미하는 '겨레'라는 말의 어원도 재미있다.
청나라 마지막 임금, 푸이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였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라는 뜻이 담긴 이름으로  해석했는데,

금나라를 세운 '아구타'의 6대조,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의 22대조 조상이 고려초에 여진의 땅으로 건너간
신라유민 김함보라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이는 금사金史를 비롯해 청나라와 한국 등의 사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요, 금, 청나라의 역사도 우리 역사에 편입시키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의미있는 관찰이다.)

단, 이름 자체에 대한 한자적 해석은 너무 비약적인 부분이 많아서 논외로 재쳐두려 한다. 

 

애신愛新은 발음하기에 따라 '아신 또는 아이신(asin)'이라고 하는데 퉁구스어로 '금 또는 김金'이라는 말이다.

퉁그스어를 소리나는데로 한자로 차용하다보니 애신愛新이 되었지만, 그들의 시조인 김함보의 성인 '김'씨를 그대로 사용했다.
금金이라는 말은 '밝음'에서 나온 것으로 '신神'이라는 뜻이며 순수한글의 '감, 금, 검, 감(아래아 .)으로 각각 파생되었고
일본어의 '카미kami神'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을 비롯해서, 신라의 김알지도 이런 맥락이며,
여진족들의 왕성 역시 '김'씨인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하물며 그들은 국호까지 '금' 또는 '후금'이라고 할 정도였다.
태양을 숭배하던 북방민족의 종교적인 전통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새삼 증명하는 것이다.

각라覺羅는 '가라' 또는 '게레'라는 퉁그스 말이 한자로 차용된 것이다.
남쪽의 삼한 진국을 일컫은 일본말도 카라'kara'韓였다.  

철기 문화가 발달한 가야伽倻도 '가라加羅'라고 불리웠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韓國을 음독할 경우엔 캉고쿠지만 훈독할 경우 '카라 쿠니 kara kuni'라고 발음하는데,
이 '가라' 또는 '게레'가 오늘날 한글의 '겨레'로 음운변화한 것이다.


'배달겨레' 즉, '바타르 게레'라는 말을 풀이하면 '영웅 민족'이라는 뜻이 된다

'어워'를 통해 알아본 우리민족과 몽골(또는 북방민족)과의 유사성,
언어학적인 관점에서의 유사성을 여러서적을 통해 비교해 보면서,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게 사실이다.
기록된 역사가 거의 전무한 유목민족의 경우, 민족학적, 언어학적, 고고학적인 고증을 통해
유사성을 유추해 내는 과정은 신비로운데다 경이롭기까지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야말로 너무 파래서 빠지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였다.
가끔씩 은빛 비늘을 지닌 비행기가 하늘 저 편으로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여운같이 긴 제트구름을 토해냈다.
'The land of Blue sky'이라는 단순한 말로는 결코 표현못할 파란 색감이 하늘을 기분좋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의 푸르공은 광활한 몽골초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이어지는 초원과 나트마한 산야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되자, 새로움은 금새 일상의 풍경 쯤으로 변했고, 감흥도 처음과는 달리 많이 밋밋해져 있었다.

다시 차를 세운 곳은 어느 강가의 작은 다리 너머였다.
강가로 푸른 초원이 형성되어 있고, 그 강엔 말과 소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도 그 강에서 머리를 감거나 멱을 하거나, 고기를 잡고 있었다.
서경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카메라를 들고 다리를 가로질러 뛰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