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 가득했던 청매실농원의 밤



 

몽롱한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날카로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매화향기가 흩날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흐드러진 벚꽃이 지천을 뒤덮었고 하얀 눈보다도 더 선명한 그리움처럼 우두둑 쏟아져 내리더니 금새 신록이 여물어가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마치 일장춘몽처럼 낯설고 허망하다. 단지, 아주 잠시동안 마음의 평정이나마 되찾으려고 무딘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계절은 그렇게 아무일 없다는 듯 내 주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그랬다. 

매화향기 가득한 그곳에 들어섰을 때에도 여전히 식상한 시선과 의식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들던 이 곳, 이 낯선  풍경... 그리고 너무나 뻔한 유형의 사진 포맷들... 해가 갈 수록 조악한 인공의 구조물로 뒤덮여가는 그곳에서 어떤 기대조차 갖지 않게 되었다. 건성처럼 몇 컷을 누르고, 익숙한 오르막을 따라 올라 세트장으로 지어진 초가의 마루에 걸터앉는다. 

사람들의 부러운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올 때조차도 짧은 여행이 주는 고단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밀려오는 고단함과 더불어 생각을 가로막는 편두통이 지끈거리며 머리끝에서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람은 낯설게 느껴질만큼 차가웠다.


정지(부엌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누군가가 불을 짚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캐한 연기가 굴뚝을 빠져나와 바람을 타고 마당을 떠돌더니 고개 숙인 내 코에까지 와닿았다. 연기 속에는 마른 솔잎이 자글자글 타들어갈 때의 그리움같은 냄새가 기분좋게 함유되어 있었다. 희안하게도 망각하고 있던 추억의 편린들이 편두통을 비집고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들은 유전인자처럼 또렷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카메라를 들고 한달음에 정지 쪽으로 향했다.

의외로 젊은 여자분이 마른 솔잎을 이용해서 불을 짚히고 있었는데 쉽게 불이 붙지 않는지 정지 안은 이미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인사를 청하자 그 와중에도 그녀는 목련처럼 밝은 미소로 답례를 보내왔다. 일행 중 한 명이 선뜻 거들고 나섰다. 무슨 대단한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 군대에서 불 붙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자원한 일행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고운 그녀의 얼굴이 매화꽃처럼 더욱 환하게 피어났다. 불을 짚히기 위해 꽤나 고전분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며칠동안 비가 온 탓이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린 솔잎과 장작은 일행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뒤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덕분에 그들의 모습을 온전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 기억될 지 모를 추억을 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으며 쉼없이 셔터를 누르는 호사로움을 즐겼다.

 

아마도 당분간은 유쾌한 시간들이 이곳의 기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궂은 날씨 속에서 말없이 흘러가 버렸지만 유쾌한 기록들은 잔상처럼 오랫동안 남을테니 말이다.


 

한참 철 지난 사진들을 이제야 들춰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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