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가을에 떠난 몽골여행 #1 출발














 

언제나 여행을 꿈꾸는 내게 TV과 잡지 또는 사진 등의 매체를 통해 한번씩 보는
몽골의 하늘과 초원은 그 자체로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 전까지 내가 몽골에 대해 알고 있던 게 무엇일까?
책상머리에 앉아 곰곰히 생각을 되짚어 나갔다.
몽골이라 부르기보다는 중국식으로 비하해서 부르던 명칭인 몽고蒙古에 더 익숙해 있었고,
무엇보다 세계를 제패한 위대한 "징기스칸"이라는 영웅의 이름과 고려시대 몇 십년동안
우리의 국토를 유린한
잔인하고 살기 넘치기로 유명한 몽골 기마군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유목민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의 건설로 인해 지금의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런 바탕하에서
'몽골리카' 시대를 개창하여 동서양의 문물과 문화가 마음대로 교류하고 유통하게끔 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강력한 무력과 발빠른 역참제도의 도입으로 장대한 대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하르호른(옛 몽골의 수도)과 연결된 초원길로 각국의 조공단 일행과 무역상들이 모여들면서 예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갔다.



비록 제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문명과 문물이 교류하고 소통했던 것만큼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책에 곧잘 나타나던 '노마드Nomade(유목민)'라는 피상적인 단어가 무엇보다 마음을 어지럽게 흔들어댔다.
가축들에게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유목생활은 진정한 노마드들에게야 지난한 삶의 질곡이겠지만,
다분히 낭만적인 여행자의 입장에 선 내게는 그 단어가 주는 묘한 질감이 나를 겉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노마드라는 그 낯선 단어는 잠재되어 있던 내 여행 본능을 부추겼고 그야말로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가 되어갔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초원 위에 드러누워 머릿결을 어루만져 줄 산들바람을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부글부글 들끊기 시작했다.
어두운 초원 한켠에 웅크리고 앉아서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이 쉼없이 떨어질
몽골의 오염되지 않은 밤하늘이 미친듯이 그리워졌다.




몽골은 그런 원초적인 그리움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여행기와 사진을 읽었고 조금씩 개략적인 여행계획을 세워 나갔다.
여행은 처음 계획을 세울때부터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사람의 여행기와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내 몸은 뜨거워졌고,
이미 머릿속은 몽골의 초원을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는 자화상이 그려졌다.



아무래도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기엔 몽골이라는 나라는 너무 넓었고
무엇보다 여행 정보가 너무 빈약한 탓에 스케쥴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조차 난감했다.

가보고 싶은 곳과 체험하고,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은 너무도 많은데도
터무니없이 짧은 일정은 순조로운 여행 계획에 차질을 불러 일으켰다.



유럽, 일본, 동남아 등의 여행 정보는 너무 많아서 감히 제대로 담기도 벅찬데 반해 
몽골의 여행 정보는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했다.

하긴, 한국여행자들의 여행 행태는 다양하다기보다는 특정지역에 대한 편집증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요즘들어 다양한 지역으로의 여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고 있다지만,
특정지역 위주로의 편중은 여전하기 때문에 많은 아쉬움을 불러 일으킨다.

유럽이라고 하더라도 유명한 곳의 정보나 사진 등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지만 그외 지역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과 다양한 지역으로의 여행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시도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한국인의 여행풍토가 많이 아쉽다.





 































 

 

 

 

 




 

 

 

 

그렇게 배낭을 꾸렸다.
9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울란바타르엔 벌써 눈이 내렸다고 하니,
추위에 대한 지나친 핸디캡 때문에라도 두툼한 오리털 침낭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60L짜리 배낭과 오리털 침낭.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이것들을 매고 얼마나 많은 산들을 홀로 오르내렸는지,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목뒷덜미에서 싸아하게  번졌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떠난다는 설렘과 흥분이 아주 잠시 꿈틀댔다가 사라졌다.
자주(?) 떠나다 보니 여행을 떠나는 기대감이 체감적으로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기대와 흥분은 여전했다.

첫 여행 때는 아예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설레고 흥분되더니 요즘은 막상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그런 감정이 생기니 많이 둔감해졌다.

사실, 둔감해졌는지 익숙해졌는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내리기 힘들지만
첫사랑의 설레임같은 짜릿하고 달콤한 맛은 예전보다는 많이 희석되었다.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감정은 열정을 조절하는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어왔는데, 자꾸 그 신념이 풍화되어 사라지는 느낌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그만큼 더 섭섭하고 안타까운 지 모르겠다.
잠시의 요동이 있고 난 후, 비행기는 미끄러지듯 밤하늘로 잠겼다.
비행기 안은 우리처럼 여행을 떠나거나, 사업차 출장을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세 부류의 사람들로 거의 만석이었다.




비록 짜릿함이야 예전보다 덜하지만 잠시 일상과 업무에서 벗어난다는 기쁨도 남다른 감회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매일 양복을 입어야 하고 무쓰를 발라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넘겼고 면도를 해서 말끔해 보이게 하는
다분히 성가시며 번거럽던 일상의 형식적인 치장과 틀에서 벗어났다는 소소한 해방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낮은 헤이즈처럼 몸을 짓누르고 있던 나락같은 암연의 장막이 걷히고 산뜻한 개운함이 머릿속을 맑게 했다.
새롭고 낯선 땅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그런 감정들이 나를 유쾌하고 들뜬 소년으로 만들었다.



입국수속이 길어져, 징기스칸 공항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UB게스트하우스에 픽업을 부탁해놓았더니, 의외로 김사장이 직접 픽업을 나왔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오랫동안 기다렸을 승합차에 올랐다.
불을 밝힌 차량들의 긴 행렬이 일제히 UB를 향하고 있었다.



걱정했던만큼 쌀쌀한 날씨는 아니었다.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쌀쌀한 정도...
눈이 왔다고 해서 주섬주섬 많이도 챙겨넣었는데,이 정도 날씨라면 괜한 짐만 불린 게 아닌가 싶다.


일행 네분-모두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은 연로한 탓에 드림호텔에 모셔다 드리고,
나 혼자 김사장을 따라 어느 허름한 아파트 2층에 위치해 있는 UB 게스트하우스로 왔다.
잠시동안이지만, 오랫만에 낯선 곳에 혼자 남겨졌다는 고즈넉한 기분 때문인지 잠시 감상에 젖었다.


비록 작고 허름하지만, 젊은 여행자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고 정보교환도 용이한 이런 숙소를 예전부터 선호했었다.
배낭여행자의 기본 체질을 타고 난 모양이다.


동침(?)하게 될 사람은 의외로 벽안의 꽃다운 스위스 처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녀가 웃으면서 방안으로 들어설 때에 소심한 A형인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줄 알았다.
쮜리히와 루체른 중간쯤의 어느 소도시에 산다는 그녀는 한 달 정도의 기간으로 중국과 몽골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여행 도중 허벅지를 다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1시간 가량 그녀와 늦은 대화를 나눴고, 그렇게 그렇게 새벽녁이 되어서야 각자의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아무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