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인도를 그리며...
















후배가 3개월 동안 인도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작년에 인도의 라다크지방과 델리, 바라나시, 아그라 등을 20여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터라
후배의 여행준비를 도와주고 있으면서도 문득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인도여행 후기가 아쉬워...
예전 제 개인홈페이지에 간간히 소식을 전하기 올려놓은 내용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해 봅니다.

이젠 그때의 그 낯익은 시간과 풍경이 그립습니다.












 

2008년 5월 19일


오늘로써 꼭 4일 째 레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도가 3,500미터가 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주 일어나는 큰 문제는 아닌데, 특히 새벽녘 또는 높은 곳에 오를 때 가끔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라다크 지방의 작은 도시로 몇 바퀴만 돌면 더이상  돌 곳이 없는 한적한 곳입니다.
과연 인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해서, 늘 눈빛을 마주치게 되면 '줄래'라는 인삿말을 서스럼없이 건냅니다.

독특한 지형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설산들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느낌입니다.
하지만, 풀 한 포기 없는 지형 탓에 땅은 척박하고 사람들의 피부는 거칠어서 가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첫날, 둘쨋날은 레 시내를 주로 돌아다녔고, 세쨋날인 어제는 짚차로 5~6시간 거리에 있는 판공초라는 호수를 다녀왔습니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염호'라고 하는데 특히 그 곳을 가기 위해선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개(5,300미터)를 넘어야 했고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짚 운전사들은 몇 번이나 눈을 치우고 달릴 정도로 험난한 곳이었습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날씨 탓에 단지 몇 장의 사진만을 찍은 게 너무 아쉽네요.

인도라는 선입견 탓에 여름옷가지만 준비를 해서 그야말로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습니다.





 

 

 

 

 








 

 

2008년 5월 21일


여기 시간으로 오후 6시 35분입니다.
방금 이른 저녁을 먹고, 청포도 한꾸러미를 싸가지고 가는 길에 인터넷방에 들렀습니다.
언제나 먹는 밥은 에그프라이드라이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도음식인 달 등을 주로 먹곤 했는데,
아직까진 인도의 커리맛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잠시 접어두고 버겁게 볶음밥만 먹어대고 있습니다.
인도 돈으로 60루피, 한국돈으로 따지면 1,500원정도 됩니다.
낯선 여행들에겐 충분한 힘을 비축할 수 있을 정도로 양은 엄청납니다.


이곳 레가 인도의 다른 지방보다도 1.5배정도 비싸다고 하니 대략 인도의 물가가 얼마나 되는지 실감나시죠?
조금 전엔 시외의 작은 곰파(절)에 다녀왔는데, 마침 어제가 이곳의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해서, 법회가 오늘까지 있었습니다.
원래 가려던 곰파는 가르켜준 사람들이 잘못해서 무작정 곰파 앞에서 내려서 올라갔는데, 버스요금이 7루피, 즉 175원 정도되더군요.

아무튼 법회에 참석해서 라마(스님)들의 사진도 많이 찍고 또 찍어서 나눠드리고 했더니 아주 고마워 하시더군요.
게다가 맛있는 공양까지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이 곰파에선 인더스 강을 볼 수 있는데 인더스 강 주변으로 푸르른 녹지가 형성되어 있어
황량하고 척박한 라다크 지방의 젖줄기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티벳불교 중에도 계륵파 곰파에 뜻하지 않게 들러 좋은 구경거리를 할 수 있는 행운.
게다가, 일년에 한 번만 볼 수 있다는 오래된 탱화까지 볼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습니다.
계획되지 않은 여행은 이래서 즐거운가 봅니다.


밤에 추운 것과 온수가 나오지 않는 것을 빼놓고는 상당히 괜찮은 동네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라, 위성통신을 이용하는 인터넷도 상당히 빠릅니다.
단, 10분에 15루피라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렇게 여유를 즐기면서 여행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쁩니다.












 

 

 

 

 












2008년 5월 22일



어젯밤엔 게스트하우스에 투숙한 여행자들과 함께 밤늦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대부분, 인도인 여행자,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는 네팔인 청년 둘... 그리고 저...
꽤 많은 사람들과 둘러 앉아서 술을 마셨고, 분위기는 참으로 유쾌했습니다.
인근 인도의 군부대에서 마시는 럼주를 하리줌(GH를 관리하는 네팔청년)이 권하길래,
저는 사가지고 간 포도를 안주 삼아 꺼냈고, 이어서 델리에서 왔다는 인도인 부부와
고아에서 왔다는 인도여자(28살이라고 하는데, 나이가 더 들어보임), 또 짜이푸르에서 사업차 왔다는 청년...
그리고, 몇몇 네팔리 사람들(아마 관리하는 청년들과 친분이 있는 사이같음)이 모이니 꽤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인도 사람들...참 유쾌하더군요.
영어발음은 좀 듣기 힘들어서 처음엔 꽤 애를 먹었지만, 그것도 술이 들어가니 적응이 되더군요.
럼주에, 맥주(킹피셔라는 인도 맥주인데 델리에서 만들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빅람-델리에서 온 부부 중 남편-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습니다)와 보드카까지 동원된 술자리는...


나중에 저를 안주 삼아 더욱 유쾌해질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넘도록 술을 마셨고 덕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수 있었습니다만  일어나니 9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늘 찾아가는 '라마유르'에서 네팔식 국수요리인 '뚝바'를 먹었습니다.


썩 얼큰하진 않지만 국물이 있어서 숙취를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가는 쥬스가게에 들러 30유로짜리 망고라씨 한 잔...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날이 너무 좋아 다시 한 번 체모 곰파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체모 곰파는 레 시내를 전망하기에 아주 좋은 곳인데 물론 오를 땐 그만큼 힘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두 번이나 올랐지만 늘 흐린 날에만 올랐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오늘같은 날은 다시 한 번 올라도 괜찮을 것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오후엔 레에서 3~40분 거리에 있는 틱세 곰파를 다녀오면 딱 안성맞춤일 것 같았습니다.


라씨 한 잔을 느긋하게 마시고 있는데, 서양인 여행자 4명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젊은 사람 셋은 프랑스 인,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은 스웨덴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우연히 이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혼자 적적했는데, 그나마 동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더군요.
그렇게 그들과 곰파를 오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쾌한 프랑스 아이들은 연신 노래를 흥얼거렸고, 어깨를 들썩였으며,
친절한 스웨덴 아저씨는 사근사근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더군요.
그들 옆에서 그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오히려 신이 나더군요.
아무튼 즐거운 동행이었고 즐거운 추억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줬고 그들에게 찍은 사진을 인화해 건내주니 너무들 좋아하더군요.
동행이 있는 여행은 혼자할 때만큼 속도감은 없습니다.


이들은 지긋하게 여행을 즐기는 타잎이더군요.
완보로 천천히 걸으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가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즐기는 게 저런 것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내일이면 이곳 레를 떠나네요.
일주일 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무덥고, 혼란스럽다는 델리 쪽으로 나간다니 문득 겁이 납니다.












 

 

 

 

 














2008년 5월 23일



새벽 6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다시 델리로 넘어왔습니다.
인도의 공항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많은 점검절차를 거쳐야 겨우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습니다.
줄잡아도 10번 이상은 받았던 것 같습니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도시를 넘어올 때의 긴장감과 함께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레'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 이해하시나요?
지금 델리는 꽤 덥습니다.



그리고, 제가 묵고 있는 숙소(스팟호텔)가 있는 델리의 빠하르간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글핏하면 다가오는 릭샤들의 호객행위, 걸인 아이가 당당하게 내미는 꾀죄죄한 손들...
게다가, 거리엔 각종 오물이 섞어가는 냄새... 뿌연 공기들.
프리 페이드(pre-paid선불요금제)택시의 티켓을 끊으려고 1,000루피를 건냈더니,
184루피인 요금에 잔액을 300루피와 몇 장을 내미는 매표원과의 작은 실갱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교통사정 때문에 택시기사의 운전은 거칠고 난폭하기 이를데 없어서
연신 울려대는 클랙션과 끼어들기는 예사고...
엉뚱한 곳에 내려주고 떠나버리는 황당한 짓거리로 인해 또 한참동안을 헤매야 했습니다.

어쩌다, 뉴델리 역 앞까지 가서 호텔에 전화를 걸게 되었고 거기서 타게 된 사이클릭샤.
목적지까지 다 와놓고는 대뜸 20루피를 요구합니다.(원래는 10루피...)
나를 가르키면서 10루피, 배낭을 가르키면서 또 10루피, 그렇게 20루피라고 하는군요.
한 마디로 제 혼을 쏙 빼놓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거의 일주일만에 김치찌게로 밥을 먹었습니다.
늘 볶음밥이나 뚝바(네팔식 국수요리), 가끔 인도음식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일주일밖에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숙소는 잡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움은 이곳 날씨만큼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장, 아그라나 바라나시 등으로 이동하려면 기차표부터 예매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수없이 많은 하얀 눈동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뉴델리 역사 안으로 성큼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네요.
게다가 당장 주말로 이어지는데 제대로 기차표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동행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에 묵기로 한 것인데...
지금은 비수기라 이곳에 오는 한국인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군요.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속옷 빨래도 끝내고 이렇게 컴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일단, 일대의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무작정 다녀볼까 합니다.
운이 좋으면 한국인 동행자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









 

 

 

 

 










 

2008년 6월 1일




오늘 새벽, 17시간의 긴 기차여행 끝에 델리의 빠하르간지로 돌아왔습니다.
느린 인터넷과 무기력하고 늘어지게 만드는 무더운 폭염으로 인해 바르나시에서는 도저히 인터넷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까만 피부가 더 까매졌고 제법 까칠해진 수염 때문에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다들 잘 지내시죠?
바라나시에선 매일같이 똑같은 일과의 연장이었습니다.
새벽 6시반부터 뜨거워지는 햇살 때문에 어김없이 새벽 다섯시 무렵이면 강가(갠지즈)강으로 나가서 주변을 산책했고,
가끔 보트도 타며 강가강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의 똑같은 일상을 카메라에 담곤 했었습니다.
이곳의 아침 뿌자(일종의 힌두교 의식)는 해돋이와 함께 시작됩니다.


인도의 전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은 그들의 거룩한 강가강에 몸을 담그고 기원을 하게 되는데,
그 강가강이 이방인의 눈에는 결코 순결해 보이진 않아 보인다는 게 무엇보다 문제였습니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 멱을 감는 아이들, 도비왈라(빨래하는 하층카스트)들의 힘찬 빨래짓과 게으르게 돌아다니는 개들...


지금은 건기라서 하얀 강바닥을 드러내놓은 곳이 많지만,
그래도 그곳에선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그 놀라운 현실 앞에선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짧은 일정으로 스쳐가는 여행자의 피상적인 시선으로 어떻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었고, 그들의 의식을 인정하며,
그들의 거칠고 모진 삶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언제나 'No problem'을 외치는 장사치들과의 작은 흥정도 재미있으며
바라나시만의 독특한 골목풍경에 매료되었고 다양한 군상들의 삶에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저들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수많은 헛된 물음들...
결국은 모든 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해답을 찾으려는 착각같은 우문들이 더이상 무의미해지는 곳.
그곳이 바라나시가 아닐까 합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버닝가트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나는 그 뜨거운 불길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느꼈고,
허기가 졌으며 달콤한 라씨(일종의 요쿠르트같은 발효음료)가 미친듯이 먹고 싶었습니다.
죽어서, 강가강의 그 가트에서 몸이 태워진다는 건 행복한 죽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더이상 버닝가트엔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장작을 살 돈이 없어 구걸을 하는 슬픈 할머니의 눈빛에서 오늘날의 인도가 처한 현실을 보았습니다.
며칠동안 머물렀던 바라나시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작은 시장통의 그 탈리(인도의 주식) 집과 매일같이 내 입맛을 충족시켜주던 40년 전통의 라씨집의 수많은 가족들.
달콤한 리치를 팔던 과일가게 아저씨와  그 옆의 망고쥬스가게의 뚱뚱한 청년...
바삭바삭하던 도사가게, 그 뜨거운 불판 앞에서 땀을 흘리던 그 주인...


그리고 바바게스트 하우스에서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던 수많은 길동무들...
특히 셰인, 민정씨, 강아지(네덜란드인으로 그의 한국인 호칭)...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다들 그립습니다.


이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를 잠시 다녀올 예정입니다.
시간만 길다면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지만, 내게 예정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는 짧게 여행하엔 너무 큰 나라네요.






 




 

 

 

 

 

 

 

 

 

 

 

 

 

 

 














 

2008년 6월 7일


너무 짧은 20여일간의 인도여행이었지만,
게다가 너무 느긋하게 다닌 탓에 제대로 다닌 곳도 없지만,
그래도...아쉬움과 그리움을 가슴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되새김하겠지만,
아름다운 인도에서의 시간은 섬세하게 가슴 속에 남아 있답니다.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낯설고 어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