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라다크 여행의 프롤로그















 

희안하게도 델리에서 출발하는 많은 인도의 국내선 비행기들은 새벽에 출발한다.


레(Leh)까지 가는 비행기도 이륙시간이 새벽 5시 10분.
3시 20분경에 국내선 청사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이미 북새통을 이뤄서 돗데기 시장을 연상시킨다.
흡사 피난길 떠나는 사람들마냥 바리바리 짐을 챙겨든 수많은 인도인들이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서있다.
멀건 눈들이 공항 안을 붕붕 떠다녔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낯선 동양인에게 집중된 시선과 관심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경직되어 있는데도 온 신경세포가 다 깨어났는지 잔뜩 긴장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인도의 국내선 공항은 절차가 많고 수속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얼마전 짜이뿌르에서 난 폭탄테러로 꽤 많은 사람이 죽고 난 직후라 그런지 적어도 열 번 이상의 점검 절차를 거친 듯 하다.



게다가 업무를 맡은 공항요원들의 태도가 워낙 권위적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친절한데다 무뚝뚝해서 은근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리가라, 저리가라, 뭘 가져와라,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인도식 영어에 귀를 곤두세워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무엇보다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게 가장 흠. 이륙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 혼줄을 쏙 빼놓는 바람에 몇 번이나 뛰어다녀야 했고, 가는 곳마다 대기하는 줄은 왜 이렇게 긴 지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다.

다행히 '레'를 외치는 직원의 요청으로 앞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간신히 점검을 끝낼 수 있었지만 그야말로 진땀나는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비행기에 올랐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다.

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자마자 이내 비행기는 이륙을 한다.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때마다 힘들지 않은 경우는 없었지만 이번이 유독 심했던 것 같다.
머지않아 동쪽에선 붉은 태양이 용솟음치며 박차 오른다. 1시간 10분간의 짧은 비행...

 

육로로 이동하면 며칠동안을 힘겹게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라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기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내 옆에 앉은 두 명의 네덜란드 남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다.
겨우내 막혀있던 육로가 좀처럼 열리지 않아 이렇게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었고 적어도 2주 이상 라다크 지역에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어느새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긴장이 풀리니 니코틴과 카페인이 땡긴다.
카트를 몰고 가는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커피를 주문한다.
카트가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음료수를 마시는사람들이 몇 되지 않아서 물어보니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하는 시스템이란다.


20 루피. 한국돈으로 500원 정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웠기에 그 정도의 유료서비스 정도는 충분히 감내하고 받아들어야 할 입장이다.
원두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밀크를 탄 커피라도 따뜻한  뱃속으로 들어가니 한결 개운하다.


머리에 하얀 소복을 두른 장엄한 설산들이 나타나고 그 끊임없는 파노라마의 장관이 펼쳐진다.

숭고하리마치 아름답다. 거칠고 척박한 땅, 라다크의 경계에 어느새 접어든 모양이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린다.


 



























































































































햇살이 따뜻한 정원에 앉아 가볍게 차를 마신다.
델리가 후텁지근하고 습기 많은 한여름 날씨라면 이곳의 아침은 스산하고 차가운 공기가 대지를 떠다니는 만추滿秋의 그것같다.
배낭 안에 구겨넣었던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입고 샌들 위에 양말을 겹신어 보지만 여전히 쌀쌀하다.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부터는 가벼운 두통과 울렁거림 증세까지 나타난다.

물어보니 고산증이란다.
갑자기 고지대에 오르게 되면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이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해발 2500m 이상이 되는, 보통지역에 비해 산소가 약 70% 정도일 때부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레의 평균해발고도는 3,500미터.


이렇게 고산증세가 보일 때는 물이나 차를 많이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며칠동안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몸이 피곤에 찌든 상태인데다 고산증까지 겹치니 왠지 모르게 처량하다.
이 게스트하우스엔 나와 독일인 여자 한 명이 전부다. 지금은 비수기...


마날리와 연결된 육로가 본격적으로 뚫리는 6월 이후가 되면 수많은 관광객이 라다크지역을 찾는다.
그래서 그런지 게스트하우스 한 켠엔 공사가 한창이다. 주인 남자에게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확장공사 중이라고 한다.
내가 앉은 정원 곁으로 인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내 간단한 먹거리들이 하나씩 놓여진다.


뭔가 싶어서 물어보니 라다키 전통음식인 '짬빠'라고 한다.

곡물을 빻은 가루같은 것을 하얀 차에 조금 버무려서 찰지게 뭉친 다음 카레같은 곳에다 찍어먹는 식이다.
내게도 권하길래 조심스럽게 받아 먹어보니 카레맛 때문인지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고개를 끄덕이자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시던 어르신이 그제서야 빙긋 웃는다.
조여드는 머리속의 통증과 멀미같은 뱃속의 울렁거림에도 불구하고 배는 고팠던 모양이다.

민폐 끼치지 않을만큼 조심스럽게 몇 알을 손에 뭉쳐서는 입에 넣는다.
허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인부들에게 딱 맞게 할당된 양을 내가 뺏어먹는 것 같아서 손을 놓는다.
어르신과 아낙들이 더 먹을 것을 권유하지만 그저 웃음으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카메라 장비를 챙기기 위해 방을 오르는데도 여간 숨가쁘지 않다.


보통 때 같으면 전혀 의식못했을 내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데다 몇 번이나 숨을 깊게 들이켜야 했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걷는 길만이 상책인 듯 싶다.
장비를 꺼내와서는 다시 뜨락에 앉는다. 어느새 강렬해진 햇살 때문에 눈을 못 뜰 정도로 부시다.
선블락 크림을 꺼내 덕지덕지 얼굴과 목뒷부분에 바른다.


까무잡잡한 피부라서 타봐야 얼마나 더 타겠냐마는 고산지역의 직사광선은 상당히 강렬해서 뜨겁다 못해 금새 따끔해질 게 분명하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더 마시려다 보니 그들에게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 내가 줄 게 뭔가를 생각해 본다.
그래, 사진을 찍어주자. 나를 위한 사진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사진.

어떻게 이걸 설명하고 접근할까에 대해 망설이다가 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어르신의 손녀딸인 '노든'의 사진부터 찍기로 한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노든을 달래 몇 컷을 찍고 MP-300을 연결해서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주자 대번에 관심이 집중된다.

레에서의 첫 사진은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행복한가 보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 웃음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This is not for me, only for you."


받은만큼 돌려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먼저 베풀음을 받았기에 내가 가진 작은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줄 수 없어 마음 아파해 하던 몽골에서의 기억들을 애써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찍은 사진을 건낼 때마다 하나씩 번져가던 그 행복한 미소를 내내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