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로 죽을 뻔 했던 영도에 다시 가다


 






갈라진 구들장 틈을 비집고 밤새 스멀스멀 피어오른 연탄가스 때문에 겨울마다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다섯식구의 엉성한 부엌 하나 달린 달동네의 작은 단칸방,
철지난 신문지로 덕지덕지 벽을 바른 그 방은 유난히 우풍이 심했다.
슬레이트를 엉성하게 올려놓은 지붕과 어느새 바짝 말라 갈라진 벽에선 겨우내 바람소리가 들리는 하꼬방이었다.
낮은 산자락을 훑어오던 차가운 해풍이 엉성하게 지어놓은 달동네를 지나가기라도 하면 혹독한 추위가 밀려들었다.
겨우 연탄 한 장으로 따뜻함을 양도받은 채 오직 다섯식구의 체온만으로 긴 겨울밤을 버텨야 했다.

그저 꿈이려니 생각하며 아득하게 침참하고 있을 무렵 문득 나와 동생들을 다급하게 깨우는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는 빠개질 듯이 아팠고 속은 머쓱거렸으며 정신은 몽롱해서 몸을 일으키려 해도 물먹은 스펀지마냥 무거워서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완력으로 끌려나오다시피 한  마당에 그대로 쓰러져 있으면 바닥에선 성그런 냉기가 올라왔고 여전히 성긴 바람이 어린 속살을 할퀴며 지나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제법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몇 번의 토악질을 더 해야 했다.
엄마가 가져온 동치미국물을 한 사발을 꿀떡꿀떡 들이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던 후유증은 그제서야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독한 가난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있던 70년대의 부산의 영도.
산비탈을 깍아만든 달동네엔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차 있었고 땟국물이 꼬장꼬장 흐르는 아이들로 작은 골목은 소란스러웠다.
'다시꼬이'나 '마야'라는 낯선 일본식 이름의 술래잡기놀이를 즐겼고 볕좋은 뜨락에선 '다마(구슬)'나 '때기(딱지)' 따먹기를 했었다.
프로레슬링이라도 방영되는 날이면  동네에서 유일하게 테레비가 있던 동네형집에 빼곡하게 둘러앉아서는 정신줄을 빼놓을 정도로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김일선수의 박치기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일본선수들을 바라볼 때면 반전이 불러오는 묘한 쾌감에 모두 일어나서 함성을 질러댔다.
김일 선수나 여건부 선수같은 프로 레슬러들은 어린 우리들에겐 정말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다.


껌종이 모으기가 한 때 유행하기도 했었다.
영도라는 작은 동네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모으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동무들과 함께 남포동으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었다.
영도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걸어가면 부산의 가장 번화가인 남포동 일대가 나왔는데  그곳은 마치 별천지와도 같았다.
다리 하나를 경계로 명함이 뚜렷하게 갈리는 두 세계.
화사한 쇼윈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볼품없이 낡고 후줄근한 우리의 옷가지와 외모가 마냥 추레하게 느껴졌다.
비로소 우리의 가난이 눈에 띄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유쾌했고 길바닥마다 넘쳐나는 껌종이를 줍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가난 때문에 부끄러워하진 않았다.
비록 가난이 불편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영도에 들렀다.
70년대의 골목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영선동은, 삶의 공간이었다.
넓은 바다가 보이고 외항에 정박한 배들이 조류에 밀려 뱃머리를 돌리고
따뜻한 봄햇살이 비치면 한가로운 고양이가 느릿하게 하품을 하는 곳.
하꼬방 같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은 촘촘히 이어졌고...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꼭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여름날이면 곧잘 수영을 즐기던 한적한 이송도는 넓다란 해안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외항을 가로질러 남항대교라는 커다란 구조물이 새롭게 놓이고 주변엔 잠식하듯 아파트가 알음알음 들어섰지만
여전히 영선동은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영도에만 오면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게 마치 버릇처럼 되고 말았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늘 샛방을 전전해야 하는 궁핍한 삶이 어린 가슴엔 상처처럼 딱지가 되어었나 보다.


가난하고 힘든 삶이었지만 그나마 가족의 웃음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고생하셨던 젊은 아버지와 엄마, 어린 두 동생들과 나눈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면 왈칵 눈물이 난다.
스크래치 자국이 자글자글한, 컨트라스트 강한 흑백필름의 영상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가난했어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때의 삶들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삶은 너무 사치스러운데다 소모적이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내가 짝사랑했던 소녀의 집도 저 너머 어디 쯤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고 나도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영선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슬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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