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인도 바라나시의 아침풍경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새벽에 시작한다



열린 방틈 사이로 습기많은 후줄근한 바람 몇 점이 들어왔다.
언뜻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 바깥은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얼굴에 물칠을 몇 점을 찍어 바르고는 장비를 챙겨들었다.
새벽시간인데도 밤새 켜켜히 쌓은 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어두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게스트하우스의 현관문이 닫혀있다.
복도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는 종업원을 깨우려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조용히 다가가 몸을 흔드니 잔뜩 잠에 취해있던 인도인 종업원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덜커덩'거리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렸고 이내 바라나시로 향하는 문이 비로소 열렸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바라나시만의 냄새가 여전히 바람 속에 묻어있다.
깊은 한 숨을 내뱉고는 잔뜩 긴장한 어깨를 활짝 편 채 보부도 당당하게  좁은 골목을 따라 강가강으로 향한다.
어느새 붉은 색 여명빛이 동쪽 하늘을 감질나게 자극하게 있는 새벽...
미동조차 시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덩그렇게 누워서는 그렇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갠지즈 강에서 버터플라이를?



그나마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어제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갠지즈 강이라고도 불리는 강가강.
이 강에 몸을 씻으면 죄 사함을 받고, 죽어서 이 강에 뿌려지면 비로소 지난했던 윤회가 끝난다는 강력한 믿음의 강.
힌두교도들에겐 영혼의 안식처라 불리는 강가강변에선 여신에게 받치는 일종의 제례인 뿌자의식이 아침 저녁으로 열리고, 
머나먼 남인도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띠아'라고 불리는 작은 소망의 촛불을 강가강으로 떠내려 보내기도 했다.
조용한 새벽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한껏 숙연해지고 경건해져 갔다.


건기라 그런지 강의 반대편은 바짝 마른 모래강변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젯 저녁에는 난데없이 돌풍이 불어 강변의 모래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통에 온 몸에 묻은 서걱거리는 모래 때문에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한쪽에선 몸에 비누칠을 해서 목욕을 하고 있고 아낙들은 빨래를 하기도 했으며, 화장터에선 불씨가 채 가시지 않은 타버린 장작들을 강으로 보내고 있었다.

각종 생활오수가 떠내려오고 강주변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밀려와 오염될대로 오염되었고,
가끔은  타다만 시체가 떠내려 오거나 죽은 물소의 사체가 떠다니기도 한다는 애길 들은 탓에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진득하게 머리 한 켠에 살아나서 그런지 몰라도 수질은 그야말로 '똥물'을 연상시킬만큼 더러워 보였다.
그래도 인도인들은 거리낌없이 그 더러운 강가강물에 몸을 담그고 일생동안 쌓였을 죄를 꼼꼼하게 씻어내고 있었다.


'역시 강가강에서 버터플라이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강가강에서 버터플라이를 Ganges river butterfly'라는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를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실제로 이것을 본 많은 일본인들이 강가강에서 수영을, 그것도 버터플라이를 즐긴다는 애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원래 소문이란 것이 입을 거치다보면 때로는 음험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그렇게 강가강에서 수영을 즐긴 많은 일본인들이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배앓이를 했다는 애긴 단지 소문만은 아니리라.
수질의 오염상태를 눈으로 흘낏 쳐다보아도 그런 소문들이 너무 당연한데다 개연성있는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꼭 그런 애기가 돌지 않았어도 이런 똥물에 내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차라리 더우면 더운대로, 비록 똥개처럼 긴혀를 내밀고 헉헉대는 한이 있더라도 강가강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보트투어를 종용하는 장사꾼들이 그야말로 귀찮을 정도로  오가고야 난 다음에 비로소
바라나시의 메인가트라고 불리는 다사스와메드 카트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침 뿌자의식을 준비하는 사제

 

 

 

 





 
이렇게 대나무 우산이 쳐져 있는 곳에서는 순례자들의 의식을 도와주는
뿌자 바바가 앉아 있다.

 

 

 

 

 

 

 

 

 브라만 승려로부터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기도를 드리는 세 여인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잠시 의례를 갖추는 남자.
남자 뒤에 놓인 놋쇠 그릇은 강가강물을 담아가기 위한 것.
집으로 돌아가 목욕할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강가강의 영험한 효력이 그대로 생긴다는
 힌두교도들의 간절한 믿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시체처럼 사원의 한 켠에서 널부러져 자고 있던 남자.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처럼 바라나시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몇 번 마주친 탓에 나중에는 나를 보며 씨익 웃기까지 하는 그.

 

 


 


 부지런한 도비왈라(빨래하는 계급)들이 강가강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남인도에서 왔다는 한 일가

 

 

 

 한쪽에선 뱃놀이...

한쪽에선 빨래가 한참 진행중이다.

 

 



 이들은 이곳 바라나시에 오는 게 일생 최대의 행복이라고 했다.

 

 


빨래를 널고 있는 도비왈라들.

인근 숙박시설에서 나오는 시트와 담요는 모두 이들이 빨래하고 있다.

 

 

 



 해가 뜨고 날이 더워지자 점점 수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예 학교에서 단체로 수영교습을 온 곳도 있을 정도였다.

 














도비왈라들의 빨래법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신속했다.

비누칠을 쓱쓱하는가 싶더니 저렇게 몇 번 두드려 틀었고,

이내 강물에 담궈서 비누를 행궈내면 빨래는 끝...!

 

 







 알룩달룩한 깃발이 꽂힌 저곳이 메인가트라고 불리는 다사스와메드 카트.

저 너머가 화장터지만 지금은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하면서...

그렇게 강가강에서의 일상은 시작된다.

 

 

 

 

 한 켠에선 비지같은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도비왈라들이 힘겹게 일상을 열고 있었다.

 

 

 

 

 

 









 

저녁에 열리는 아르띠라고 불리는 뿌자의식과는 달리 아침시간의 뿌자의식은 아주 초촐한 편이다.
힌두교 의례를 전공한 한 학생이 올리는 뿌자의례...

 

 

 

 

 

 

 

 

 디아Dia라는 성구를 강가에 띄워 보내는 노파
나뭇잎을 실로 꿰어 그 위에 초를 얹어서 만든 디아는 그 속에 소원을 띄워 보내는 용도로 사용된다.

 

 

 

 

 

 

 

 

 목욕중인 영감님

 

 

 

 

 









 

 

 

조심스럽게 디아를 강가강으로 띄워보내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노파의 신심어린 마음이

내게도 전이되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하는 노파

 

 

 



 

 뭔가를 기원하는 브라만 승려

하얀 실을 둘러맨 사람들이 바로 브라만이라 불리우는 승려들...





 

 









 

 수많은 사진으로 인해 너무 흔해진 바라나시의 일상의 모습들이지만,
강가강변의 바라나시는 가슴 뭉클한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원색적인 색감의 강렬함.
 희안하게도 이곳에 오는 여자순례객들의 옷감은 저렇게 화려해서,
사진을 찍어놓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색감을 연출해냈다.

 

 

 

 

 

 

 

 

 축복해 줄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는 뿌자 바바

 

 

 

 

 





 

 머리를 단정히 자르고 있는 남자들...
느긋하게 기운 아침햇살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엔 붉은 빛이 감돌고 있다.
숭고한 의식을 치르듯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와 손님...

 

 

 

 

해가 뜨자 다시 대지는 점점 뜨거워져 갔다.
5시에 해가 뜨고 나서 6시가 되자 그야말로 돌아다니기에도 벅찰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강렬한 기세로 쪼아대는 햇살은 건기에 막바지에 접어든 바라나시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 싶었다.
어느새 자주 들리게 되는 강가강변의 작은 짜이가게인 이모네 귀퉁이에 앉아서 짜이 한 잔을 마셨다.
뜨거운 짜이 한 잔에 숨통이 턱턱 막혀오는 더위가 묘한 일치감을 불러 일으켰다.

세상은 마치 흐느적거리는 화면처럼 햇빛 속에 정물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