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그리운 계절, 미리보는 보성다원












혼자 길을 나섰다.

새벽 2시 50분.
새벽잠을 설치며 그렇게 부산을 떠나 보성으로 향한다.

 


짙은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
페달을 밟을 때마다 엔진에선 파열음이 터져나온다.

핸드폰을 두고 온 모양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번거럽지 않고 홀가분해서 좋다.

담배를 지그시 배어물며 새벽의 질주를 즐겼다.
예전보다 길이 좋아져 다원까진 금새 도착한다.

차를 주차하고 어두운 1다원의 삼나무 숲길을 홀로 오른다.
신선한 새벽숲의 맑은 공기가 오염된 폐부 속을 마치 삼투압처럼 스며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 소리에 저절로 흥이 날 지경이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기분.
그래서, 한동안 새벽산에 심취했었나 보다.

1다원엔 아무도 없었다.
높은 곳에 힘겹게 올라, 삼각대를 펼치고 기다리니 어느새 여명이 터온다.

제법 붉은 기운이 구름 사이를 번져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오랜만에 멋진 일출을 본다.
다양한 앵글로 구도를 잡아보면서, 쉼없이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하늘빛이 너무 아름답다.
나름대로 세운 사진의 원칙을 무시하고 파란하늘을 가르는 양떼구름도 함께 담는다.
이번 사진여행에선 딱 두 가지만 담을 생각이다.
일출과 함께 은근한 안개로 가득할 신비로운 느낌이 있는 다원의 아침을 담고 싶은 게 하나라면,
차밭을 사이에 두고 열심히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아름다운 노동이 그 두번째다.
안개가 많이 끼인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은근히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안개가 많긴 하지만 내가 찍을 각도에서는 안개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아침햇살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햇살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저 너머 남아있던 안개마저 시나브로 사라져간다.
여태껏 키워왔던 마음 속의 기대감도 덩달아 사라진다.


그저 아쉽다.


 




 











 

 





동양화의 한폭을 연상시키는 듯한 안개가 골마다 잔뜩 끼여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운해였을 그런 안개...
하지만, 다원의 계곡사이로 스며들지 않는 안개만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2시간동안의 기다림. 그 기다림도 헛되이 안개는 점점 소멸해가고 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힘없이 챙긴다.

하늘은 그런 점에서 참 공평한 편이다.
한꺼번에 모든 걸 허락하지 않으시니 말이다.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게 사진이듯 그게 인생이다.


내려오는 길에, 서울에서 여행온 아가씨 2명을 만났다.
2박 3일 일정으로 남도를 여행한다고 한다.
그들의 여행이 마냥 부럽다.

내 여행은 휘몰아치는 폭풍우 같아서 뒤를 돌아다볼 겨를이 없다.
찍고 턴이 기본.
여유가 없는 여행은 많은 걸 느끼지 못하게 한다.
내 좁은 시각안의 작은 세상만 보고 그걸 편협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당연히 남는 건 없고 아쉬움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들과 잠시동안이지만 동행이 된다.







 






 

 

 

2다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봇재.

전망이 좋아 이곳을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확트인 전망 때문에 광각으로 렌즈를 갈아끼웠다.
그나마, 파란 하늘이 남아있어서 하늘을 함께 담아본다.

 

그 비탈진 언덕의 차밭에도 여전히 분주한 손놀림들이 있다.
첫 순이 난 차잎을 따기 위해 따가운 봄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들.

기분 좋게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저런 힘겨운 노동의 결실이 담겨있는 법이다.

단지 우리가 잊고 있을 뿐이다.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을 우린 참으로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다.

보지 않고 체험하지 않으면 잘 믿지도 않으려는 현실... 그게 지금의 우리 삶이다.

 






 




























 

 

2다원이 환하게 보이는 언덕으로 올랐다.
몇 분의 사진사들이 먼저 와서 열심히 찍고 계신다.
오늘따라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이 꽤 많이 보이신다.
대충 세어봐도 200명 정도....
이 정도 규모의 작업은 전에 볼 수 없는 대규모라며 '운이 좋다'고 추켜세우신다.

 

행운...
때론 좋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안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그래, 난 운이 좋다.
난...행운아다.

 

작업하는 아주머니들 옆에선 또다른 봄날의 추억을 담는 사람들이 있다.
아래쪽에 계신 분들이 나와 잠시 동행이 된 서울 아가씨들이다.
저 길 위를 누군가 걸어주길 바라며 꽤 오랜시간동안 기다린다.
사진을 찍고 난 후, 다시 돌아가는 서울 아가씨들이 나의 모델이 된다.
역시 길 사진엔 사람이 있어야 제 맛이다.

 

언덕에서 내려와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갔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촬영허락을 받고는 조심스럽게 아주머니들을 촬영한다.
셔터음이 들릴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시는 아주머니들.

검게 거을린 얼굴에선 금방 순박한 미소가 번진다.


질펀하고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어디서 왔냐고 물어도 보시고,
환한 웃음으로 포즈도 취해 주신다.

꾸밈없는 삶이 주는 아름다움.

 




 














 

그렇게 여행이 끝이 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담양의 메타쉐콰이어와 하동의 평사리까지 가야 하는데,
정오가 되면서부터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산란광에선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핸들을 돌리기로 했다.
반나절동안 동행했던 서울 아가씨들과의 짧은 점심식사, 그리고 작별...
홀로 떠나는 여행은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이렇게 좋은 모양이다.






 



 

부록 - 찬연한 빛과 안개로 제대로 버무러진 가을의 보성다원